차마고도로 티베트를 가다
송승구 저 | 한솜미디어 | 2008년 02월 | 인터넷 14,250원
책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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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차마고도로 티베트를 간 송승구의 여행서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문명과 문화의 전파통로인 차마고도가 책 속에 펼쳐진다. 일상을 탈출해 중국의 운남성에서 8일, 차마고도에서 6일, 티베트에서 5일, 네팔에서 6일 등 25일의 여정으로 다녀온 여행담과 함께 컬러사진을 수록하여 볼거리가 풍부하다. 일상에 지쳐서 일탈을 꿈꾸지만, 그것이 쉽지 않은 현대인들에게 『차마고도로 티베트를 가다』는 대리만족의 기회를 제공한다. | |
저자 및 역자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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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송승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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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출생으로, 숭실대학교 노사관계대학원 졸업(노동법학 전공)을하고, 상지대학교 법학과 졸업를 졸업하였다. 제3회 공인노무사자격시험을 합격하였고, 강원노무법인 대표공인노무사, 산재 고용보험 사무대행기관 대표, 대한산업안전협회 관리감독자교육 강사로 활동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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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책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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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1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꿈을 꿨다 _ 일탈 어디 가는데? _ 마지막 일전
2부 운남성 여행기 쿤밍 맛보기 _ 뭘 먹지? 여행의 시작 _ 기차를 탔다 인심 _ 기차 안 풍경 만만디 _ 스린의 여학생 우여곡절 _ 돈이 없다 까오콰이와 쫑빠 _ 따리행 버스타기 다툼 _ 자리와 새치기 남조왕국 흥망의 상징 _ 따리 당심추락(當心墜落) _ 창산 트레킹 서운함 _ 다운과 똘배 그리고 옥수수 아리랑과 티벳탄 _ 리쟝 극적 다름의 결합? _ 사쿠라 카페 흥정 _ 후타오샤 마부 리우핑 회상 _ 아픈 손가락 천하제일측(天下第一厠) _ 중도객잔에서 기다림 _ 어디로 갈까? 중국이 훔쳐간 이름 _ 쭝띠엔 형! 혼자 가, 나 안 갈래 _ 나시족 여인 다름 _ 쟁기와 말 헷갈림 _ 은행이 도둑질? 길을 잃었다 _ 같은 여관이 두 개?
3부 차마고도를 따라 마음속에 길이 있었다 _ 차마고도 인연 _ 동행자 나도 한 번 해볼 수 있을까? _ 야크와 소금 우연한 조우 _ 다시 만난 아리랑? 길이 막혔다 _ 차마고도의 실체 아쉬움 _ 와 거긴 안 가노? 대립 _ 급한 놈이 우물판다 우려 _ 비가 왔다 경험 _ 4,000m에서 라면이 끓을까? 지나침 _ 밥 묵을 데 없노? 안심 _ 72굽이! 교통사고를 피하다 인정을 먹었다 _ 동생들 걸뱅이 아이가? 풍경 _ 단청? 그리고 일상 꿈속의 샹그릴라 _ 여름과 겨울의 공존 느림 _ 오체투지 미안합니다 _ 이꽁(易貢) 차밭 애틋함 _ 어미 흐릿함 _ 연결 끈의 실체가 있을까? 추억 _ 예쁘면 다 용서되잖아요 연민의 정 _ 티벳탄 젊은이 억울함? _ 군대 가던 날 후련함 _ 금연 결의가 깨졌다 저기다 저기 _ 오! 포탈라
4부 티벳일기 소주에 담긴 의미 _ 중년의 정 기대와 현실의 어긋남 _ 라싸에 대한 단상 희미해지는 독립의 꿈 _ 티벳탄과 조선족 잃어버린 이름 _ 시가체 서러움 _ 막걸리 무시 _ 우리가 언제 허가 받고 다녔나? 이별 _ 한국에서 찾아뵙겠습니다 상념 _ 어머니와 차비 미심쩍은 확신 _ 허가증 마음속의 기도 _ 짜시텔레 오버랩 _ 할머니를 보았다 황당 시츄에이션 _ 우린 버스에서 쫓겨났다 의미심장 _ 다 해먹는 방법이 있다 영국이 훔친 이름 _ 초모랑마 탈출의 마침표 _ 장무 금(線)의 의미 _ 국경을 넘다
5부 네팔일기 초대받지 않은 방문 _ 길이 막혔다 고단한 삶의 흔적 _ 삿갓배미 전원도시? _ 카트만두에 대한 단상 배낭여행의 어려움 _ 카트만두 택시는 미터기가 없다 여행의 선수 _ 라이터는 어떻게 숨겼어요? 어수선함 _ 비행기와 포카라 공항 제주도가 여기에? _ 호텔 U & I 근질근질 _ 트레킹 거머리 비가 무서웠었다 _ 낚시 할 일이 없다? _ 자전거 하이킹 피는 다르지만 _ 교감 변화를 위해 _ 네팔의 록커 복귀 _ 한국의 불빛
감사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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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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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에서의 이틀째 계획은 오전에 스린 관광을 하고 오후에는 따리로 이동하는 것으로 했다. 스린은 쿤밍에서 남동쪽으로 약 90km 거리에 있다고 한다. 첫날 어설픈 잠을 자고 6시 40분경 일어나서 고양이 세수 후 이동준비를 했다. 카운터 옆 뷔페식 식당에 가보니 꽤 먹을 만한 음식들이 있다. 식당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종이쪽지를 들고 이걸 보여 달라고 한다. 해서 다시 나와 다운을 보니 얼굴이 상기되어 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어젯밤에 맡긴 디파짓 50위엔을 찾기 위해 한참을 기다렸다고 한다. 다른 볼일을 보면서 다운이 달라는 디파짓을 안주고 딴 짓 하는 카운터 직원들이 좀 안돼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다운이 가지고 있던 숙박영수증을 달라고 하여 내보이니 식당에 들어가게 한다. 아! 트윈 룸 이상 묵으면 아침 식권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던 거였구나…. 체험하면서 하나하나 배워보자…. 한국 사람도 꽤 있다. 옷차림이 가벼운 것으로 보아 관광 온 사람들…. 해장국 비슷한 것, 계란 프라이, 쌀국수는 먹을 만하다. 나는 이때만 해도 다시는 계란 프라이를 먹지 않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차화삔관은 외국인 배낭여행객이 많이 묵는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 로비 앞에 택시가 자주 들어온다. 배낭을 택시에 밀어 넣고 쿤밍 열차 역으로 출발했다.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은 열차보다는 버스가 낫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하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고자 했으므로 굳이 열차를 한 번 타 보기로 했던 것이다.
쿤밍의 대중교통 체계에 대해 우리는 거의 사전 정보가 없다. 쿤밍 열차역에 도착하여 바로 중앙계단을 통하여 역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더니 무전기를 든 뚱뚱한 여자 공안이 길을 막고 안 들여보낸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열차 표가 있어야 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을 몰랐다. 아마도 열차 역을 개방하면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니 그것을 막기 위해 표를 가지지 않은 사람의 출입을 통제하는 것 같다. 공안에게 매표소가 어디냐고 물어보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매표소 앞에 아무 생각 없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표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다. 차례가 되었다. 내 딴에는 자신 있게 외쳤다. “스린 얼! 와푸” 허걱! 창구 직원, 다른 창구에서 표를 사야 된다고 손짓을 한다. 가르쳐 준대로 다른 창구에 가서 “스린! 얼”하고 외쳤는데, 창구에서 표 팔던 여직원, 뭐라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 몇 마디 하더니 창구에 클로즈 표시만 세워 놓고 가버린다. 근무시간이 다 되었는지 아예 자리를 떠 버렸다. 조금은 당황스럽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대우를 해주길 바라진 않았다. 그러나 퉁명스러운 태도에 기분이 좋진 않다. 나중에 우리가 착각했음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의 열차는 침대칸, 푹신한 의자(軟臥), 딱딱한 의자(硬臥) 등 여러 가지이고, 거기에 따른 요금에 차이가 난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열차 역에서 배낭을 멘 채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푹신한 의자를 와푸(침대칸)로 착각하고 역무원에게 “와푸”라고 하였고 그 창구에서는 와푸를 판매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공장소에는 공안이 많이 나와 있다. 해서 공안을 붙잡고 스린! 스린! 하고 외치니 친절하게 자신이 앞장서서 표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겨우 스린행 열차표를 구입하였다. 매표소 2층에 있는 쿤밍역 대합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공항 검색대에서 검색하듯 X-ray 투시기에 통과시켜야 한다. 그것도 한 개의 문짝만 열고, 그러니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명절 전 재래시장처럼 북새통을 이룬다. 그런데 형식적인 것 같다. 별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열차 출발시각은 11시 50분, 08시 30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려고 했던 것이 3시간 이상이나 밀렸다. 1970~80년대, 우리는 어딜 가기 위해 열차로만 사람이 몰려들었었다. 그때의 열차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이 무지하게 많이 남았다. 여행스케줄은 처음부터 어긋난다. 배낭을 물품보관소에 1개에 3위엔을 주고 맡겼다. 몸이 날아갈 것 같다. 큼지막한 황소의 동상을 가운데 둔 쿤밍역 광장은 정말 넓다. 그럼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어젯밤에 보았던 조용함은 온데간데없다. 쿤밍 열차역 정면으로는 북경로가 쭉 뻗어 있고 역 광장과 연해 북경로 좌우로는 2개의 버스 터미널이 있다. --- 본문 <여행의 시작 _ 기차를 탔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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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인터넷 서점 ye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