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독단과 이단 시비
이글은 사단법인 생활철학연구회에서 계간으로 내는 「어느 철학자의편지」(철학하는 국민이어야 산다) 제 8호 (1993.4.1)에서 전재한 것이다. 이 글은 신앙인의 타종교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 가에 대한 좋은 글이라 생각된다 ◀편집자▶
이세상에는 여러가지 종교가 존재해 왔으며 또한 앞으로도 단일 종교로 통합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각기 다른 의삭과 나름대로 완벽한 이론의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교리와 의식이 다른 모든 종교도 몇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모든 종교는 인간의 불완전성,미완성,죄악성을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란 아무런 노력이 필요없을 정도로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병든 존재이며, 그 중에서도 반드시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존재로 본다. 지금 당장 치료를 받지 않으며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의 운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교가 지닌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렇게 중병에 걸린 인간은 누구든지 완전히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완성 가능성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가 인간에게 제시하는 것은 시험적인 처방이 아니라 완전한 처방이다. 여기에 바로 종교인의 독선의 근거가 있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절대적인 진리를 제시하기 때문에 자신의 길만을 주장하고 다른 종교인들의 주장-그리고 다른 비종교인들의 주장-을 무조건 백안시하는 독선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종교인의 입장을 우리는 '이 길만이 옳다'는 '한길이론'(the theory of nothing buts)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극히 당연한 것 같다. 어느 종교의 보편성을 주장하는 것은 다른 종교의 비보편성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입장이 전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배타주의와 독선은 몇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모든 종교인은 단편적이며 부분적인 진리가 아니라 전체적이며 보편적인 진리를 따른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입장은 종교인들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 자연적인 과정인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폴 틸리히(P.J Tilich,1886-1965)는 이러한 입장을 종교인의 자기 주장이라고 말하고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위대한 고립주의
그러면 이러한 "위대한 고립주의"를 고집해서는 안되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이러한 주장은 모든 종교가 내세우는 인간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타인을 무조건 배척하는 독선적인 태도는 종교의 제 1원칙인 평등론을 무시하는 태도다.
둘째, 그러므로 종교인의 독선은 인간이 나름대로 독창성을 가지고 성취할 수 있는 모든 진선미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고상한 행위'의 진지함을 무시하는 행위는 선하게 살려는 인간의 의지를 無化시키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셋째, 그러나 종교적 독선의 가장 나쁜 점은 그것이 종교의 인간적인 면을 고의로 외면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종교는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 인간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종교는 믿을 필요도 없도 또한 논의할 필요도 없다.
독선이 횡행하는 사회는 분열이 조장되는 사회다. 평화 ·증오 · 불의가 판을 치는 사회가 된다. 그러나 종교적 독선은 특히 이단이라는 시비로 발전한다. 그리고 종교가 지금까지-그리고 지금도-이단을 척결한다는 미명아래 저지르고 있는 역사적 범죄는 모든 비종교인의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들이 종교적 독선이라는 독버섯에 주의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종교의 주관적인 절대성과 객관적인 상대성을 동시에 인정하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관적으로는 내가 믿는 종교의 서약이 유일하지만, 객관적으로는 나의 절대적인 서약이 상대적으로 되지 않을 수 없다는 마음의 관용을 다시 배워야 한다. 경건한 기독교인이었던 파스칼(B.Pascal, 1623-1662)의 역사상에 일어난 가장 잔인한 범죄들은 언제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고 신랄하게 반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위대한 종교는 이단에서 출발
모든 종교는 당시의 불의와 불신과 도덕의 타락을 비판하는 기능으로부터 발생했다. 그러므로 위대한 종교인들은 언제나 기존 체제에 대한 도전과 비판을 그들의 주된 임무로 여겼다. "모든 종교는 이단이었다. 그리고 모든 진정한 종교인 역시 언제나 이단인이었다."
지나친 간섭과 지나친 무관심, 이것이 오늘날 종교인이 가지고 있는 두가지 독선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 종교인의 독선은 지나친 간섭의 행태보다는 지나친 무관심의 형태로 자주 표현된다. 타종교 · 사회 · 역사 · 현실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으면서도 자파의 세력확대에만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지나친 무관심의 독선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 1985년 5월 25일 여의도 광장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백만 불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세계 평화와 국가 장래를 위한 휘황찬란한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그 이튿날인 일요일의 S교회에서는 '보혜사 성령'에 대한 설교를 들으려고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교인들이 운집했었다. 그러나 그 기간에는 바로 서울시내 대학생들의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이벌어지고 있을 때였으며, 양식이 있는 모든 국민들은 걱정과 초조속에서 충고와 분노와 칭찬의 말을 보내고 있었다. 정말로 중대한 사건이었음에도 경건한 종교인들은 국가발전 · 성령 충만 · 세계 평화만을 공허하게 외치고 있었을 뿐, 이 절박한 사건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지독한 무관심의 도선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제 우리 종교도 타종교를 이단으로 걸고 넘어지는 교만함과 눈앞에서 벌어지는 절박한 사회현실에 눈 감아버리는 비겁한 무관심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종교의 본령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1993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