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회] 부정선거 규탄시위 4ㆍ19 폭발
독재자 이승만 평전/[15장] 4월혁명으로 몰락한 독재자 2012/05/23 09:57 김삼웅'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는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 경찰이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다. ⓒ4.19혁명 기념도서관
‘안티 이승만’의 태풍이 서울에 진입한 것은 4월 18일이다.
이날 고려대생들은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4천여 학생들은 오후 1시 교내에서 선언문을 낭독한 다음 스크럼을 짜고 안암교, 종로를 거쳐 9차례나 경찰과 충돌하면서 저지선을 격파하여 오후 2시 15분 국회의사당(광화문 소재) 앞에 도착, 연좌시위에 들어갔다.
유진오 총장 등의 설득으로 학생들은 농성을 풀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청계천 4가에서 잠복해 있던 100여 명의 정치깡패들이 부삽ㆍ쇠갈귀ㆍ몽둥이ㆍ벽돌 등으로 마구 난타하여 학생 10여 명, 기자 3명 등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고대생들을 습격한 정치깡패는 반공청년단 소속으로 이정재를 두목으로 하는 동대문 특별단부라는 조직폭력배들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서울의 대학가는 다음날 일제히 폭발하였다.
지층에서 분화구를 찾아 부글거리던 화산이 4ㆍ18폭력사태를 계기로 마침내 폭발하고, 거대한 용암은 이승만의 경무대와 이기붕의 서대문 권부(權府)를 향해 밀려갔다.
흔히 ‘피의 화요일’로 불리는 4월 19일 오전, 서울대생 2천여 명이 “민주주의를 위장한 백색 전체주의에 항거한다”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교문을 출발하여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국회의사당 앞까지 진출하였다. 이와 함께 건대생 1,500명, 동국대생 1천 여 명, 서울사대생 1,500여 명, 동성고등학생 1천여 명, 서울의대ㆍ약대생 1,600여 명, 성균관대생 1,500여 명, 고대생 2천여 명, 연대생 4천여 명, 경희대생 1천여 명, 경기대ㆍ서울음대생 2백여 명, 단국대, 국학대. 한양대, 서라벌예대, 성심여대, 홍익대, 강문중고생ㆍ흥국중고생ㆍ대광중고생 등 도합 10만 여 명의 학생들이 광화문으로 밀려왔다. 거대한 해일이고 용암이었다.
해일처럼 용암처럼 밀려드는 다비테군(群)은 지휘자도, 연대도 없는 자발적인 시위대였다.
학생들은 학교 주변에 배치된 경찰의 저지선을 육탄으로 뚫고 <애국가>ㆍ<해방가>ㆍ<전우가>를 부르며 광화문 쪽으로 밀려왔다. 시위대는 중앙청 앞에서 경찰의 실탄사격을 받고 수 명이 쓰러졌다. 서울에서는 첫 사상자가 생겼다. 피를 본 학생ㆍ시민들은 경무대를 향해 전진했다. 경무대 앞에서 다시 경찰의 사격으로 많은 학생들이 살상되었다. 학생들의 희생을 지켜 보던 시민들이 합세하면서 시위대는 더욱 크게 불어나고, 흥분한 시민들 중에는 “총으로 살인경찰을 없애버리자”는 구호에 따라 시경의 무기고로 몰려가 총기 탈취를 시도하였다.
경무대 앞에서 증원된 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후퇴한 시위대는 자유당사, 반공회관, 서울신문사 등에 방화하고, 중앙방송국의 점거를 기도했으나 경비강화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날 하룻동안 서울시내 곳곳에서 수 차례 시위대와 경찰의 ‘접전’이 이루어지고,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100여 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학생들은 쓰러진 동료들의 시신을 업고 일진일퇴를 거듭하였다. 단말마적인 경찰은 최루탄, 실탄, 기관포를 가리지 않고 난사하여 사상자가 더욱 늘어났다. 4ㆍ19혁명 과정에서 186명의 사망자와 6,23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승만의 폭정과 영구집권에 항거하다가 발생한 민주주의 수호자들이었다.
4ㆍ19학생 시위에 불을 부친 몇 개 대학의 ‘시국선언문’ (요지)을 소개한다.
이 탁류의 역사를 정화시키지 못하면 (고려대학생회 4ㆍ18 시국선언문)
한마디로 대학은 반항과 자유의 표상이다. 이제 질식할 듯한 기성독재의 최후적 발악은 바야흐로 전체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기에 역사의 생생한 발언자적 사명을 띤 우리들 청년학도는 이 이상 역류하는 피의 분노를 억제할 수 없다.
만약 이와 같은 극단의 악덕과 패륜을 포용하고 있는 이 탁류의 역사를 정화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세의 영원한 저주를 면치 못하리라.
학생이 상아탑에 안주치 못하고 대사회투쟁에 참여해야만 하는 오늘의 20대는 확실히 불행한 세대이다. 그러나 동족의 손으로 동족의 피를 뽑고 있는 이 악랄한 현실을 방관하랴. 우리는 청년학도만이 진정한 민주역사 창조의 역군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여 총궐기하자.
구호
ㅡ. 기성세대는 자성하라.
ㅡ. 마산사건의 책임자를 즉시 처단하라.
ㅡ. 우리는 행동성 없는 지식인을 배격한다.
ㅡ. 경찰의 학원출입을 엄금하라.
ㅡ. 오늘의 평화적 시위를 방해치 말라. (주석 1)
혈관에 맥동치는 정의의 양식(연세대학학생회 4ㆍ19선언문)
우리와 자손의 건전한 번영과 행복을 위하여 우리는 선두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보다 나은 앞날의 발전을 위하여 헌법 전문에 기록된 바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몽매와 무지와 편협 그리고 집권과 데모의 제지, 학생살해, 재집권을 위한 독단적인 개헌과 부정선거 등은 이 나라를 말살하는 행위인 것이며, 악의 오염을 더욱 증가시키는 것 이외에 그 무엇이 되겠는가. 나라를 바로잡고자 혈관에 맥동치는 정의의 양식, 불사조의 진리를 견지하려는 하염없는 마음에서 우리는 다음의 몇 사항을 엄숙히 결의하는 바이다.
ㅡ. 부정(3ㆍ15) 공개투표의 창안집단을 법으로 처벌하라.
ㅡ. 권력에 아부하는 간신배를 축출하라.
ㅡ.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시를 허용하라.
ㅡ. 경찰은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
ㅡ. 정부는 마산사건의 전 책임을 지라. (주석 2)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의 일익을(서울대학생회 제1선언문)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지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오늘의 우리는 자신들의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과 잔악의 현상을 규탄광정하려는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천명하는 바이다.
이제 막 자유의 전장엔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정당히 가져야 할 권리를 탈환하기 위한 자유의 전역은 바야흐로 풍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보라! 우리는 기쁨이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파수의 일원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추하에 미칠듯이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형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 사수파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결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주석 3)
주석
1> 김삼웅, <민족ㆍ민주ㆍ민중선언>, 17~18쪽, 일월서각, 1984.
2> 앞의 책, 18~19쪽.
3> 앞의 책, 19~2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