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도 가고 싶던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을 찾았다.
명작의 보고 루브르는 1190년 필립 2세의 의하여 군사 요새로 건축되었고 궁전으로 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된다.
37만점의 고대 유물, 중세기, 현대화 등이 3개의 건물에 소장 되어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많이 본 작품들이 있으나 그 내용은 가이드의 설명, 돌아와서 나름대로 공부를 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 아~ 왜 진작 공부을 하고 가지 않았나~" 자책을 했다.
알고 감상을 했다면 느낌은 열 배 이상 느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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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카레(네모난 안뜰) 리슐리외관 앞에서. 이정자 (61.미대)내외분과 집사람.
일찍가서 우리 일행이 몇 번째 입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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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예술품을 수집하고 이 궁전에 살다가 베르사유궁으로 왕궁을 옮긴 루이 14세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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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을 위한 두 개의 개선문 중 하나인 카이젤 개선문이 멀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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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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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us de Milo. 101BC.
Greece 멜도스섬에서 1820년 농부의 괭이 끝자락에 의해서 발견되고 마침 그곳에 정박해 있던
프랑스 선박에 팔리고 1821년 터키주재 대사가 당시 왕이던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에게
뇌물로 받쳐지지만, 예술품에 흥미가 없었던지 1822년 루브르에 기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헬레니즘 양식의 특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고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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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가는 노예" 1513-1516 년제작. 미켈란젤로(1475-1516년)
대리석 크기 22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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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천장을 모두 찬란한 예술품으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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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ke of Samothrace(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 리케). 190-220BC로 추정.
아테네 인근 섬 사모트라케에서 1863년 150편의 붙어진 조각으로 발견된 것을
15년 동안 맞추어 하반신만 완성 했고 오른쪽 날개가 없어 왠쪽 날개를 참조하여
만들어 복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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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는 3m이고 두 날개가 역동적으로 힘이 넘쳐 흐르고 여인의 의상이 바람에 휘날리며
몸에 둘러싸인 표현은 대리석 조각이라기보다 그림 같다.
배머리에 우뚝 선 자세는 승리는 확신한다.
그 내용을 관객에게 전달키 위해서인지 모나리자 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
설치하여 올라가며 올려다보게 했다.
왠쪽 날개만 아무 생각 없이 찍었는데 모조가 아닌 진짜 날개를 찍은 것이다.
스포츠용품 회사 로고 나이키는 이 날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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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화가들이 이름이...미켈란젤로, 다빈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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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dding at Cana" Paolo Veronese작.
모나리자 와 마주 보고 있는 이 그림은 베네치아 공화국이 나폴레옹에 의해서 멸망하던 날 (1888년)
비니스(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서 약탈하여 가지온 것이다.
크기가 10 X6.7 m로 대작이라 보관상의 문제로 루브르궁으로 보내진다.
가나은 갈레리아 지방의 도시 이름이고 예수가 성모 마리아(중앙에 위치함)를 대동하고
결혼식 참석했는데 포도주가 동이 났다는 말을 마리아로부터 들은 예수가 물통에 물을 담아 가지고
와서 따르라 하니 붉은 적포도주가 나오는 기적을 그린 그림인데 등장인물이 터번을 슨 아랍계 사람도 보이고
오토만제국의 왕, 영국의 메리 여왕도 있다.
결혼식장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는 왠쪽 편에 자리 잡고 있다.
악사 세 사람은 당대의 유명한 화가들이였다. 르레샹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그림, 음악 등 여러 방면에 조예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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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앞은 항상 인기가 많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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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전시실이 이렇게 한가한 것 처음이라 한다. 우리에게 다행한 일.
가나의 결혼식 그림이 얼마나 큰가를 가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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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onation of Emperor Napoleon I" 1807. Jacques L. David(1748-1825) size 9 x 6m
David는 정치에 깊숙이 관여한 예술가이다.
1789 혁명정부 미술집정관으로 발을 들어 놓고 후에 나폴레옹 전속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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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왕권의 계승이 아니고 평민 출신인 나폴레옹이 1804년 절대적인 지지로 황제로 12월 2일 노틀담성당에서
등극하면서 피우스 7세가 씌워 줄려는 왕관을 빼앗듯이 받아 직접 씀으로써 자신이 교황 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자기보다 8살 많은 왕비 조세핀에게 왕관을 씨워 주는 장면을 다비스가 3년간 그린 작품이다.
교황은 마지못해서 축복한다는 뜻으로 손짓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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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간 구상하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200명을 직접 만나 스케치하고 입었던 의상을 가져와 살펴 가면서 3년간
정성을 드린 작품이다. 원래 나폴레옹 어머니와 조세핀 사이가 나빠 참석지 않은 어머니, 누이동생을 그리라
주문해서 조세핀 뒤에 누이동생들이 그리고 위 중앙에 어머니가 앉아 있다.
당시 조세핀은 40세가 넘었는데도 20대처럼 젊다.
나폴레옹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영국대사는 그림에 없다.
나폴레옹이 몰락 후 그도 벨기에로 망명하여 똑같은 그림을 1822년을 그렸는데 한곳을 다르게 그렸다.
누이동생(혹자는 조세핀 딸이라 함) 두 번째 여인의 의상이 분홍색이다.
다비드가 좋아한 여자라서 부각 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그림은 Versailles 궁에 걸려 있다. 그땐 몰라서 유심히 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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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중앙에, 위 뒷줄 두번째 대관식을 스케치하는 다비드가 보인다.
완성된 이그림을 한참 보던 나폴레옹이 다비드에게
" 이 그림은 더 이상의 그림이 아니다. 내가 이 속으로 걸어 들어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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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and Odalisque." 1814. Jean Ingres.(1780-1867) size: 35 X 64 inch.
Odalisque는 Turkey 황제를 시중드는 여자 노예를 말한다.
앵그르는 다비드의 전통을 이어받은 현대미술의 선구자라고 한다.
나폴레옹 여동생 Caroline Murat이 주문했으나 그녀에게 안가고 프로이센의 고르제백작이 1819에 구입한다.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된 감을 느꼈다.
꼭 말이 누워 있는 것 같이 궁둥이는 크고 말의 허리 같이 길다.
사실 이 그림을 샤롱에 전시되었을 때 척추뼈가 3개가 있는 여인, 고개 돌린 자세가
불균형 잡히고 지나치게 긴 허리를 가젔다는 혹평을 들었단다.
소품으로 등장하는 공작 깃털의 부채는 사실적에 집착하면서 왜 인체 구조는 그렇게 그렸나?
허나 이는 앵그르의 관능미를 나타내는 수법이라고, 추상화를 많이 접한 현대의 예술가들은
독특한 화풍이고 명작이라 칭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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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ne d'arc" 1854. J.Ingres.
잔다크 뒤에 서 있는 남자가 앵그르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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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ty Leading the People" 1830. Eugene Delacroix.
7월 혁명의 광분한 민중을 이끄는 여신을 그린 것이다.
1830년 7월 27일 부터 3일간 일어난 7월 혁명을 7월 28일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여신이 든 삼색기 자유, 평등, 박애을 상징하고 한 손엔 총을 들고 옆에 쌍권총을 든 소년,
뒤에 모자 쓰고 총 든 젊은이는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 자신이다.
혁명 후 샤르드10세 왕은 영국으로 망명하고 루이필립이 왕좌에 오르고 이 그림을
구입하지만 너무 선동적이라 화가에게 돌려준다.
1874년까지 화가가 소장하고 있다가 루브르가 구매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화풍은 안정적인 삼각구도을 유지하고 여신은 여성의 품위가 없다고 비판을 받는다.
여신이란 주장도 있지만 실제로 정부군에 의해서 남편이 살해당해 분노한 세탁소의 여인이란 말도 있다.
불타는 시가지 뒷쪽으로 노들담의 쌍기둥 탑이 보인다.
외젠 들라크루아는 아래 그림을 그린 제리코의 영향을 받아 낭만주의를 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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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aft of the Medusa" 1819 Theodore Gericault(1791-1824)
제리코는 落馬사고로 33세에 요절하여 단 3점의 그림을 남겼다.
삶 속에서의 인간의 고통, 환희, 죽음, 자살 등 인간의 행위를 표현하는 낭만주의(Romanticism)
즉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이성적으로 현실을 대하는 태도로 표현한다.
신고전주의와 결별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는 사진과 동영상 등으로 사회를 고발하지만, 당시는 화가의 그림이 곧 사회고발로 이어진 모양이다.
이 그림의 진상은 1819년 세네갈을 식민지화하기 위하여 4백 명을 싣고 항해하던 해군함 메튜사호가
난파되고 선장을 비롯한 귀족, 고급장교는 구명보트에 타고 149명의 선원들은 급조된 뗏목에 의지하고
선장이 탄 구명보트가 끌고 가다가 줄을 끊고 선장의 배는 달아 난다.
13일간의 악천후, 굶주림, 폭동, 기아, 탈수, 광기 배고품에 동료의 시신을 먹는 카니발리즘등 끔찍한 환경 속에
머리 지평선에 나타난 돛대를 보고 기뻐하며 구조의 손신호를 보내는 모습, 아들의 시신을 앞에 안고
넋이 나간 사람(후에 책으로 고발한 외과의사), 시신을 자른 피 묻은 도끼, 너부런지 시체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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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인맥으로 무자격자의 선장이 부른 인재로 이 그림을 본 국민들은 분노한다.
책과 그림으로 나오기까지 정부는 사실을 은폐하였다.
패기 있는 27세의 젊은 화가 제리코는 메튜사 선박의 목수를 고용하여 뗏목을 만들고 생존자 15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몇 명은 모텔로 기용하고 병원 시체 안치실에서 시신의 모습을 관찰하는 등
정열을 기울려 작품을 완성 살롱에 전시를 한다.
작품 보다는 정치적인 성향에서 비판, 찬사가 이어지고 비판에 시달리던 작가는 우울증에 걸린다.
하지만 이 그림은 낭만주의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자리를 잡는다.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 감상할 때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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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가 수집한 조각품.
나폴레옹이 수집한 작품이 5천점?에 이른다.
Oct.8th 2017
첫댓글 "The Raft of the Medusa" 1819 Theodore Gericault(1791-1824)
넘 , 끔찍한 그림이네요.
37만점이 있는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구경 잘 했네요.
감사해요.
반면 좋은 그림들이 너무나 많아요. 단체관광이라 2시간 정도 밖에 시간이 없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3-4일 걸려야 제대로 감상을 할 수 있다네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 희망사항.
마르코 글방에서 보지 못한거 역쉬 여기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시지요?
선배님도 안녕하시죠?
Oak park에 사는 큰아들집에 갈때면 항상 형님을 생각하면서 연락을 드리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환절기에 감기 조심하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현지 가이드를 잘 만났지요. 파리 국립 제5대학에서 미학석사를 받고 박사과정을 밣고 있는 앞날리 촉망되는 젊은 학도 였지요.
알고 보니 장모님이 서울대 미대 60학번이시고... 정말 진수만 골라서 보여주었습니다. 미학전공이라 설명도 명강의였지요.
가나의 결혼식은 정말 모나리자 때문에 빛을 못봅니다. 정말 훌륭한 명작인데도..
.10미터 X 6.7미터 짜리을 어떻게 그렸는가?도 궁금합니다.켄파스는 어떻게 이었고등등 의문이 많이 듭니다.
엑기스만 잘 뽑아 올리셨군요.
몇년전 서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갔다가 루부르에 들러 위의 그림들을 지치도록 보았지만
아쉽게도 사진을 찍어오지 못해 아쉬웠는데 오늘 그 소원이 이루어졌네요. 감사합니다.
답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두아들네와 온식구 12명(손주6명)가 멕시코 크르즈를 5박6일 동안 다녀왔습니다.
루브르에 너무나 좋은 작품들이 많아 3-4일을 봐야 제대로 볼것 같습니다.
너무 시간이 짧아 아쉬었지요. 제 사진으로 만족하셨다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