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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성령(요 16:7-14)
지난 주일에 오직 성령충만함을 받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의 약속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충만은 성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과제인 것입니다. 성령충만해야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가운데 이루어가고 우리가운데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세 가지 증거가 나타납니다. 1)찬송, 2)감사, 3)서로 복종함으로 섬김을 기뻐합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성령충만은 절대 과제인 것입니다.
외면하면 안됩니다. 성도가 성도답게 살려면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마지막 만찬을 마치시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강론을 하십니다. 그것이 요한복음 14부터 17장까지의 말씀인데 이 말씀을 다락방강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락방강화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신 것이 바로 “보혜사 성령”이었습니다.
사실 3년 동안 모든 것을 버려두고 쫓았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갑자기 청천벽력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이제 곧 너희를 떠나시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세상은 너희를 미워하고 박해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과 근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마치 목자를 잃어버린 양처럼 두렵고 앞이 캄캄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영적 공황 상태에 빠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해하기 힘든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본문 7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눈앞에 계시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병자를 고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며, 폭풍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이 곁에 계셔야 든든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떠나는 것이 ‘유익’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이 말은 ‘도움을 주시기 위해 내 곁에 항상 대기하도록 부름을 받은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변호사’나 ‘위로자’, ‘조력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 육신을 입고 오셨기에 유대 땅이라는 한정된 곳에만 계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영이신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의 ‘심령 곁에’ 영원히, 동시에 우리 안에 거하시며 도우실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곁에 와 계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세 가지로 나누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보혜사 성령은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8-11절)
(8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책망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야단을 친다는 뜻이 아닙니다. 법정에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여 피고인의 죄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유죄를 입증하다’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죄를 잘 보지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는 잘 보면서도 정작 자기자신의 눈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못하는 것같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밧세바 사건 이후에도 그는 한동안 자신의 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단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 말씀을 들려졌을 때 비로소 깨어졌습니다. (삼하 12:7) “당신이 그 사람이라” 그 순간 다윗의 영혼이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시편 51편에서 통곡하며 회개합니다. (시 51:9-10)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무엇이 다윗을 회개하게 만들었습니까?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를 듣다가 갑자기 마음이 찔릴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아, 내가 잘못 살고 있구나”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을 받았던 베드로는 11제자와 함께 예루살렘 거리에 나아가 담대하게 복음을 외칩니다. 생명을 걸고 저들의 죄악을 지적하였습니다.
(행 2:36)“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성령께서 역사하시니까 강퍅하던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때 삼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충만은 단지 감정적으로 뜨거워지는 것만이 아닙니다. 먼저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없는 은혜는 값싼 은혜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눈물이 없습니다. 회개가 없습니다. 죄에 대해 무감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작은 죄도 아프게 느껴집니다.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심령에 꽂혔습니다. 그는 통곡하며 회개했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완고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죽은 영혼을 살리십니다. 성령님은 세상이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기준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폭로하며 책망하십니다.
1)죄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9절: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세상은 도덕적, 법적 죄만 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시면 가장 무서운 진짜 죄가 무엇인지 고발하십니다. 그것은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죄입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도,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앙이 하나님을 가장 모욕하는 죄임을 성령님만이 깨닫게 하십니다.
2)의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10절: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세상은 자기 행위와 공로로 의를 쌓으려 합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제일 의롭다 생각하여 진짜 의이신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깨닫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는 얼마나 헛되고 어리석은 것이지 깨닫게 하시고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하고 참된 ‘의’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인간의 의는 결코 의롭지 못하고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이루신 그 의만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을 성령님이 깨닫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전해야 할 복음은 구원을 위해서 단 하나의 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들이 목격한 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그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단 하나의 의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만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3)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11절: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세상 임금은 사탄과 그의 세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온갖 술수로 하나님의 곁을 떠난 죄인들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하는 세상 임금입니다. 그래서 돈이나 권력이나 지식이 세상의 전부라고 주장합니다. 사탄은 자신이 왕노릇하며 믿는 자들을 위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세상 임금인 사탄 권세를 깨트리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이미 패배한 사탄의 공갈협박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945년 5월 8일 연합군이 독일을 항복시켰을 때를 '유럽 승리의 날'이라고 합니다. 전쟁의 승패는 사실상 여기서 끝났습니다. 비록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여 최종 '종전의 날'이 오기까지 패잔병들의 잔당 저항이 있었지만, 승패는 이미 결정 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사탄의 머리를 깨뜨린 결정적 '승리의 날'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패잔병에 불과합니다. 지금 우는 사자처럼 으르렁거려도 그것은 지옥 가기 전 마지막 발악일 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이 영적 실상을 보게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 임금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이 사실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여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 안에서 담대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임하신 보혜사 성령님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이 보혜사 성령님의 깨우침을 바로 알고 구원의 깊은 은혜가운데 나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보혜사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13).
13절,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세상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혼란스러워합니다.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경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저자가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우쳐 주시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실 분은 오직 성령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령님은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13절 하반절에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철저히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달하시고 기억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한 사람은 말씀 중심의 사람이 됩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절망과 슬픔에 잠겨 엠마오라는 고향 마을로 터덜터덜 걸어가던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곁에 오셔서 동행하셨지만, 그들은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성경에 기록된 당신에 관한 말씀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조명하심 속에서 그들의 눈이 열렸을 때, 제자들이 고백합니다. (눅 24:32)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바로 이것이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눈을 열어 성경 말씀이 꿀송이보다 달게 느껴지게 하십니다.
설교를 들을 때 "아, 저 말씀은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구나!" 깨달아지며 가슴이 뜨거워지게 하시는 분이 바로 진리의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방향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이 길이 맞는가?” 그때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길을 보여주십니다.
어떤 성도가 큰 사업의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너무 낙심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회 중에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 말씀이 그의 인생을 붙들었습니다. 결국 다시 일어섰고, 그는 나중에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환경이 나를 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살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충만한 사람은 말씀을 가까이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깨달음이 옵니다. 기도할 때 방향을 보여주십니다.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40년동안 그 광활한 광야에서 살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길을 누가 인도했습니까? (출 13:21,22),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여호와께서 낮이나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키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하늘의 만나를 내려주셔서 먹을 것을 제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하늘의 만나가 바로 영혼의 일용할 양식인 하나님 말씀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고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우리 영혼이 사는 길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시119: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을 펴고 읽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보혜사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십니다(14).
14절.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성령님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보다 예수님이 높여지고 자랑되어야 생명을 살리는 사역에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요 생명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서 오직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충만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참으로 성령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3: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성령은 사람을 높이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높이십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베드로를 보십시오. 이전에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자 담대하게 예수를 증거했습니다. (행 2:36)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증거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이처럼 자기는 감추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합니다. 성령님의 최고의 관심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알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은 말씀합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한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려면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프로그램보다 성령의 역사, 사람의 지혜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무디는 원래 평범한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학벌도 없고 말도 서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체험한 후 그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영혼이 주께 돌아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성령없이 하루도 사역할 수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성령없이 신앙생활할 수 없습니다. 성령없이 설교할 수 없습니다. 성령없이 교회를 섬길 수 없습니다. 성령없이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바뀝니다. 원망이 감사로 바뀝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바뀝니다. 죽은 심령이 살아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사탄이 세상의 거짓된 생각으로 우리를 흔들 때마다, 성령님은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령님은 오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이십니다.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진리 가운데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을 높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 내 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 “성령님, 내 삶을 인도해 주옵소서.” “성령님, 예수님만 자랑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이 시대는 지식보다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말뿐인 신앙이 아니라 성령께 붙들린 삶이 필요합니다. 보혜사 성령님 우리가운데 충만히 임하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영적전쟁에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게 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눔이야기-------------------------------------------------------
1. 말씀을 들으며 성령께서 내 삶 가운데 깨닫게 하신 죄나 변화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2. 최근 말씀이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던 일이 있다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3. 나는 사람과 환경보다 예수님을 더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고, 이번 한 주 실천할
한 가지를 나누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