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코린 2,10ㄴ-16; 루카 4,31-37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제11차 창조 세계 돌봄을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번역이라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는데요, 영어로 creation에 해당하는 단어를 ‘창조’로 번역하지 않고, 줄곧 ‘피조물’로 번역하는 주교회의 번역실의 이상스런 고집이 이런 잘못된 번역을 낳았습니다.
인간도 피조물인데, 우리가 무슨 피조물을 보호한다는 말입니까?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이라는 제목은, 우리가 다른 피조물들의 위에 서서 보호하는 존재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이 오늘날의 생태 위기를 낳게 된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문자 그대로 ‘피조물을 보호’한다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 할 것 같은데요, ‘care for creation’은 ‘피조물 보호’가 아니라 ‘창조 세계 돌봄’이라는 의미로서, 인간 자신을 포함한 창조 세계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다른 피조물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살아간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겠습니다. 제가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고 관계자들에게 수 차례 건의했는데,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1989년부터 동방정교회는 9월 1일을 ‘창조 세계와 환경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2015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리스도교 일치의 정신 안에서 가톨릭교회도 이날을 동방정교회와 함께 기념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성공회와 루터교를 비롯한 여러 그리스도교 전통이 가톨릭교회와 함께 오늘부터 10월 4일까지를 창조시기로 지내고 있습니다.
레오 교황님은 올해 발표하신 “제11차 창조 세계 돌봄을 위한 세계 기도의 날” 담화문에서 우선 전쟁이 ‘생명 전체의 구조를 손상시키는 상처를 남긴다’고 지적하십니다. 아울러 폭력과 불의, 생태적 훼손과 같은 세상의 불화는 단순히 잘못된 제도나 구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 안에 뿌리박힌 더 깊은 분열의 징후’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쟁의 상처와 지구의 훼손은 인간 마음의 상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황님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라”(이사 2,4)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부르심이라고 하시며,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여러 생태계 즉 ‘창조 세계의 생태계와 인간관계의 생태계, 그리고 인간 자체의 생태계를 돌보고 지키도록 부르심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으로부터 이익을 취하려는 마음이 세상의 영의 작용이라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아끼고 돌보려는 마음이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의 작용입니다.
이번 주부터 평일 복음은 루카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되는데요, 부활 시기 이후 2주 동안 마르코 복음의 말씀을 들은데 이어, 12주 동안 마태오 복음을 들었고, 이번 주부터 대림 시기까지 13주간 루카 복음의 말씀을 들으며 여러 각도에서 예수님의 공생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에서 처음으로 전해지는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이 기적은 앞으로 바리사이들과 벌이실 안식일 논쟁을 예고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마귀의 영, 더러운 영들을 쫓아내기 위해 오셨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마귀의 영은 어디에서 일하고 있을까요? 가끔 뉴스에서, 악한 영을 쫓는다는 구실로 폭력에 시달렸던 아이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악한 영이 하는 일은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시기와 반목을 통하여 평화를 깨뜨리는 일입니다. 악한 영이 가장 극렬하게 활동하는 곳은 바로 전쟁과 폭력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현장입니다.
교회가 제안하고 있는 ‘창조 세계 돌봄’은 단순히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권고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따라 살고 있다는 징표입니다.
교황님 담화문의 마지막 부분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앞에 놓인 길은 분명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고 창조 세계를 돌볼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게 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것이 마음에서 흘러나오므로 우리의 마음을 지키라고 말합니다(잠언 4,23 참조).
우리가 겸손과 믿음으로 이 과업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새로움의 역사에 협력하는 이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사막에서 동산으로, 분열에서 친교로, 폭력에서 평화로 나아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길을 걸어갈 용기를 허락하시어, 우리 시대에 참으로 칼이 보습으로 바뀌고, 복음의 약속이 우리 세상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며, 그리스도의 평화가 온 창조 세계 위에 다스리게 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