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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속에서 나는 소리
출 19: 1-25
오늘은 2002년 새 해 첫 주일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한다. 하나님은 옛부터 그의 사랑하는 민족과 백성들에게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불속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었다. 오늘 우리는 그 때 일을 상고해 봄으로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애굽 왕 바로에게 학대받는 자기 민족을 이끌고 애굽을 떠났다. 홍해를 건느고 신광야를 지나 시내산에 도달했다. 우리가 지도를 펴놓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이끌고 간 진로를 살펴보면 이상한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려는 가나안 땅은 북쪽에 있는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과는 거리가 먼 동쪽으로 이동해 간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모세가 처음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을 때 시내산의 한 봉우리라고 할 수가 있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뵈었다. 하나님은 그 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다.
“모세야,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너는 이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어라.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해 낸 후에 너희는 여기 이 산에서 나를 뵈오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모세는 수백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행진하여 약속한 산 시내산에 도달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이기 전에 할 말이 있었다. 그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내어 이 산으로 오라고 했다.
모세는 홀로 하나님 앞에 올라갔다. 모세가 올라 간 호렙산에는 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두 귀로 들었다. “모세야, 너는 내려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고하라.
내가 어떻게 애굽인에게 행한 것과 내가 어떻게 너희를 구원한 것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이제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순종하면 너희는 내 소유가 되고 너희는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이 약속에 대한 가부를 네 백성에게 물어 다오.”
모세는 내려가서 백성의 장로들을 모으고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했다. 백성의 장로들은 백성들을 모으고 이 말을 전했다. 백성들은 장로들의 말을 듣고 일제히 응답했다.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는 백성들의 뜻을 하나님에게 아뢰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하리라.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로 듣게 하리라. 너는 백성들에게 고하라. 오늘과 내일 사람마다 그 옷을 빨고 몸을 성결케 하며 여자를 가까이 말고 제삼일을 기다리라. 제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시내산에 강림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부터 벽에 부딪쳤다. 모세가 “나는 너희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자라.”고 하자 백성들은 “누가 너를 보냈나?”고 물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냈다.” “증거를 대라.” 모세는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했다. 손을 품에 넣었다 내어 문둥이가 되게 했다. 그러자 백성들이 믿고 모세를 따랐다. 그러나 곧 홍해 앞에서 벽에 부딪쳤다. 그 때 모세는 하나님의 지팡이로 홍해를 갈랐다.
신광야에 이르러 먹을 것이 없게 되었다. 백성들은 모세에게 불평을 토했다. 모세는 하나님께 구하여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였다. 모세는 이렇게 백성들을 설득시켜 가며 시내산 밑에 까지 왔다. 모세 자신도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 밑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모세는 이제 하나님 앞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야 하나님이 이 백성과 언약을 맺으려고 시내산으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의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는 서로 달랐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나님은 언약을 중요하게 보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중요하게 보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하기를 애굽은 남의 땅이요 가나안 땅은 자기 땅이라고 생각했다.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아니다. 전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가나안 땅은 가나안 족속, 헷 족속, 히위 족속, 브리스 족속, 기르가스 족속, 아모리 족속, 여부스 족속 일곱 족속의 땅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저희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려고 하는 참 뜻을 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려고 하셨는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으려는 언약의 내용을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이스라엘아, 너희는 나와 언약을 맺자. 너희가 만일 나의 말을 듣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소유가 되겠고 너희는 나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과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은 구원을 의미하고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은 만인을 구원하는 교회를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구원밖에 더 생각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보다 만인을 구원하는 교회를 창설하는데 더 큰 관심을 가졌다.
구원의 약속과 교회의 약속은 다르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고 교회는 순종으로 세운다. 구원에는 법이 없다. 사랑하는 자는 다 구원한다. 교회에는 법이 있다. 사랑만으로 안 된다. 법을 순종할 때 교회는 세워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만민을 구원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법을 주셨다. 법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은 언약서에 싸인부터 하라고 하셨다. 순종하겠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싸인을 하기 전에 법의 조문을 말하지 않았다. 순종하겠느냐? 순종하겠습니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법의 조문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서에 순종하겠다는 싸인부터 했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언약의 조문은 볼 필요도 없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언약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이 언약의 싸인은 맹목적 무조건적 순종의 싸인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언약서의 조문도 보지 않고 싸인을 했다. 그렇게 할만한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이 어떻게 애굽을 치시고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원해내었는가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경험하여 알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사람들과 분리시켰다. 애굽 사람들의 집에는 파리 재앙이 내렸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파리 재앙이 내리지 않았다. 애굽 사람들의 생축은 악질로 죽었으나 아스라엘 백성들의 생축은 악질로 죽지 않았다.
애굽 사람들이 사는 땅에는 우박이 내렸으나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고센 땅에는 우박이 내리지 않았다. 애굽 사람들의 집에는 장자가 다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에는 장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출애굽의 의미는 애굽에 남은 사람들은 다 멸망을 당하고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 살려낸다는 말이 아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은 죽지 않았나? 60만 장정들이 다 광야에서 쓸어져 죽었다.
출애굽의 의미는 한 민족을 다른 민족 중에서 구별하여 분리시키는데 있다. 왜 분리시키나? 구별한 민족과 언약을 세우고 그 민족에게 법을 주어 제사장 나라로 삼아 만인을 구원하는 교회를 세우는데 있었다.
또 한가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내용을 보지 않고도 하나님과 순종의 서약을 맺을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내었다는 것이다.
독수리 날개로 업어내었다는 말은 단순히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독수리는 새끼를 날개 위에 업고 벼랑 끝 낭떠러지 위로 날아오른다. 거기서 어미 독수리는 등에 업힌 새끼 독수리를 내어던진다. 새끼 독수리는 죽을 힘을 다해 퍼덕거린다.
새끼 독수리가 힘을 잃고 바위돌에 부딪치려는 순간 어미 독수리는 쏜살같이 내려와 새끼 독수리를 등에 업고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공중에 높이 솟아서는 또 새끼 독수리를 내동댕이친다. 새끼 독수리가 바다에 빠지려는 순간 또 어미 독수리는 또 번개같이 내려와 새끼 독수리를 받아올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와 같은 독수리의 등에 업혀 훈련을 받으며 애굽을 떠나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어떠한 법을 주시더라도 결코 버리지 아니할 것이요 힘이 없어 쓰러질 때에는 또 다시 힘을 주어 날게 하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의 조문을 보지 않고도 순종하겠다는 싸인을 할 수가 있었다.
오늘 제가 신년 벽두에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있다. 새 천년을 맞이하여 21세기에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제사장 나라는 누구일까? 주전 1,500년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른 민족 중에서 구별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과 불속에서 언약을 맺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언약의 조문을 펴 들고 불같은 시련 속에서 율법에 순종했다. 그 결과로 메시야가 세상에 오시고 메시야로 말미암아 교회가 땅위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교회를 설립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다시 언약을 맺었다. 그것은 피로 세우는 언약이었다. 하나님은 이 새 언약을 통하여 유대인과 남은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신다.
누가 이 마지막 시대에 제사장 나라가 될까? 우리 민족은 단일 민족이었다. 우리 민족은 다른 민족에게서 분리되었다. 우리는 우리 민족 중에서 또 분리되어 외국에 살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독수리 날개에 업혀 미국에 까지 왔다. 우리가 어디서 살든 구원 얻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가 북한에 살았더라도 믿는 자는 구원을 얻고 남한에 살았더라도 믿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우리가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다르다.
우리가 이 미국 땅을 내 나라 같이 여기며 이 땅에 와 사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말세에 제사장 나라를 삼으시려는 뜻이 계신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았던 것 같이 하지 말자. 이 땅에 와 사는 것만으로 우리의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여기지 말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 언약을 지키는데 우리가 이 땅에 살려고 온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말세 교회에 제사장 나라로 삼으실 뜻이 있어 우리를 이 땅으로 인도했다면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가 여호와의 명하신 것을 다 준행하리이다.”고 하는 순종의 서약서에 싸인을 하자. 하나님이 우리를 다른 민족 중에서 구별하여 독수리 날개로 업어 온 것이 확실하지 아니한가?
모세는 백성들의 서약을 하나님께 전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내용(율법과 계명)을 받을 준비를 했다. 백성들로 하여금 옷을 빨게 했다. 몸을 씻게 했다. 여인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다. 제사장들을 성결케 했다.
그리고 시내산 일대에 사면 경계를 정하고 사람이나 짐승이나 아무 것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여호와의 산에 접근하는 자는 사망을 당하리라고 경계했다. 그리고 나팔소리를 듣거든 백성들로 하여금 각각 자기 장막에서 나와 산 아래로 모이라고 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과 계명을 받는 절차요 준비요 자세이다.
하나님이 불러 세운 자는 산속으로 들어가고 백성들은 옷을 빨고 산 앞에 모여 기다릴 때 언약의 말씀이 우리 귀에 들려진다. 백성들은 죄를 씻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산으로 들어가야 한다.
오늘 현대 교회는 목사는 산에서 내려와 대중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의 멧세지는 들을 수 있을 지 몰라도 하나님의 멧세지는 들을 수가 없다. 목사는 하나님의 산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교인들은 목사가 들어간 하나님의 산에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교인들은 모여 기도해야 한다. 목사가 들어간 산에 호기심 영웅심 자만심 시기심을 가지고 접근을 하면 만사를 그르친다.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제사장 나라가 되려면 하나님께로 세움을 받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산에 올라가야 한다. 교인들은 옷을 빨고 몸을 씻고 산밑에서 기다려야 한다. 함부로 목사가 올라간 산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목사가 목사의 위치를 지키고 교인이 교인의 자세를 바로 할 때 불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다.
백성들이 산밑에서 기다린 지 제삼일이 되는 아침이었다. 시내산 상봉에 구름이 빽빽하게 모였다. 구름 가운데서 뇌성이 나고 번개가 쳤다.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솟아올랐다. 여호와 하나님이 불 가운데서 시내산에 강림하셨다. 하나님은 모세를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하나님은 음성으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제일은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제이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거기 절하지 말라.
제삼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지 말라.
제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
제오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제육은 살인하지 말라.
제칠은 간음하지 말라.
제팔은 도적질하지 말라.
제구는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
제십은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백성들은 두려워떨었다. 모세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그 내용은 알아듣지 못했으나 하나님이 모세에게 음성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오늘 우리는 십계명을 읽을 때 이것이 불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제사장 나라의 언약을 맺는 것이 된다.
우리 다 같이 신4:32-40와 신5:1-33를 읽어보자.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끝)
필요한 광야 생활
출 19: 1--25
광야생활 1단계가 원망제거, 2단계 일용할 양식 약속, 3단계 말씀훈련이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절대 간섭하신다.
(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애굽적인 삶의 방식 청산과 이스라엘적 삶의 방식 적응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삶을 다듬어 가야 한다.
1, 시내산에서 주신 말씀(출19:1-6)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뜻 -- 관계유지의 근본
(5)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1) 말씀을 받기 위한 준비(출19:1-25)
말씀을 받고 지킬 것을 원해야 한다.
(8)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말씀을 받기 위해 스스로 성결해야 한다.
(10)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14) 백성으로 성결케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
(15) 제 삼일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말라 하니라
(22)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말씀이 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11)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지경을 범하지 말라
(12) 산에 오르거나 그 지경을 범하지 말지니 산을 범하는 자는 정녕 죽임을 당할 것이라
(13) 그런 자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거나 살에 쐬어 죽임을 당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무론하고 살지 못하리라
2) 십계명(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기본법)(출20:1-21)
하나님 편 -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이다.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복 되게 하신 날이다)
사람 편 - 주신은혜 감사하고 서로 돕고 살아야 할 관계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지니라.
(14) 간음하지 말지니라.
(15)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이웃의 모든 것)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다듬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듬어질 때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출처: 포항 은석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일곱천사
19장 시내산에 오른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출애굽한지 2개월만에 시내산에 도착하게 된다. 시내산에 이른 이스라엘은 이방국가와 같은 모습과 체제로 국가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창세기 12:1-3에 언급된 그 복의 근원이 이제는 국가라는 형태로 지상에 등장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시는 나라는 세상에 산재해 있는 이방 국가, 나라와 같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언약의 나라이다. 그 언약의 나라는 6절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제사장 나라”이다. 이 특이한 나라는 유지되는 방식도 특이하다. 그 방식은 언약이라는 방식이다. 언약을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즉 언약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대한 분명한 성취를 위해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는 상태로 몰고 가신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아브라함 언약에 의해 출애굽하였고 아브라함 언약에 의해 출애굽하였다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여기서 또 언약을 맺으셔야 하는가?
그것은 국가를 세울만한 능력을 가진 존재를 국가 설립자로 인정하고 그분을 위한 그분의 나라로 만들기 위한 조치이다. 즉 하나님의 뜻에 의한 하나님의 소유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언약에 의해 출애굽하였다고 하나 아직 아브라함 언약의 정신을 소유한 나라는 아니었다. 하나님 편에서 보자면, 아브라함 언약의 정신을 가진 나라로 이스라엘을 만들려고 할 때에 바로라는 이방 왕이 방해하였다.
그 때문에 발생된 사건이 유월절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란 언약국가는 철저하게 비애굽적이고, 반애굽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한 유월절을 통해 보여준 어린 양의 희생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브라함 언약 때문이었다. 그 아브라함의 언약이 구체화 된 것이 어린 양의 희생으로 드러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로 존재하려면 하나님의 거룩성 안에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역시 시내산까지 오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철저히 보여주었듯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성 안에 거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도 보여주고 있듯이 이스라엘은 결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함부러 나갈 수 없는 더러운 존재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에 죽음이 임할 수박에 없는 것이다(12절).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거룩성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죄에 대한 처리가 있어야 한다. 즉 누군가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지고 동행하게 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모세 언약이다.
이런 점에서 모세 언약은 두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인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의 말씀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씀에 의해 진노를 받아야 할 존재임을 십계명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절대적인 말씀의 진노를 덮어주는 희생의 피를 보여주는 제사제도이다. 그 제사제도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근거가 된다. 그것을 받기 위하여 이제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이에 서게 된다. 즉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이스라엘을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끌어가야 한다. 그 거룩의 의미는 희생의 거룩이다. 이제 이러한 모세 언약의 구체적인 의미가 19장 이하를 통해 차츰 밝혀지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게 된다.
전에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에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불러낸다고 하셨다(3:2). 출애굽 할 때에도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고 말씀하셨다(8:1). 그 섬기는 방식이 어떤 것인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언약으로 지켜야 하는 이스라엘이 희생의 피 안에서 화목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거룩한 백성으로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희생의 피를 흘리는 한 인격 안에 있는 것이 거룩임이 밝혀지고 있다. 오늘날 신자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고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에 의해 진노를 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그 진노를 십자가가 가리우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신자가 행하는 모든 것은 십자가의 희생정신, 그 피의 정신으로 행하는 것이 될 때 그것이 거룩이고 여호와의 소유된 백성임을 알아야 한다. 피의 정신, 십자가의 희생 정신이란 철저히 애굽과 같은 세상을 거부하고 정죄하는 것과 동반되어진다는 것도 또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피의 정신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은 비거룩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이란, 우리가 이 비거룩에서 탈출하여 십자가의 정신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 출애굽이요 언약 안에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된다.
출처: 천성을 향하여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 군대
■ 출애굽기 19장
이스라엘은 출애굽한지 2개월만에 시내산에 도착하게 된다. 시내산에 이른 이스라엘은 이방국가와 같은 모습과 체제로 국가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창세기 12:1-3에 언급된 그 복의 근원이 이제는 국가라는 형태로 지상에 등장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시는 나라는 세상에 산재해 있는 이방 국가, 나라와 같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언약의 나라이다. 그 언약의 나라는 6절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제사장 나라”이다. 이 특이한 나라는 유지되는 방식도 특이하다. 그 방식은 언약이라는 방식이다. 언약을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즉 언약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에 대한 분명한 성취를 위해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는 상태로 몰고 가신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아브라함 언약에 의해 출애굽하였고 아브라함 언약에 의해 출애굽하였다는 것은 아브라함 언약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여기서 또 언약을 맺으셔야 하는가?
그것은 국가를 세울만한 능력을 가진 존재를 국가 설립자로 인정하고 그분을 위한 그분의 나라로 만들기 위한 조치이다. 즉 하나님의 뜻에 의한 하나님의 소유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아브라함 언약에 의해 출애굽하였다고 하나 아직 아브라함 언약의 정신을 소유한 나라는 아니었다. 하나님 편에서 보자면, 아브라함 언약의 정신을 가진 나라로 이스라엘을 만들려고 할 때에 바로라는 이방 왕이 방해하였다. 그 때문에 발생된 사건이 유월절 사건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란 언약국가는 철저하게 비애굽적이고, 반애굽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또한 유월절을 통해 보여준 어린 양의 희생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브라함 언약 때문이었다. 그 아브라함의 언약이 구체화 된 것이 어린 양의 희생으로 드러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로 존재하려면 하나님의 거룩성 안에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역시 시내산까지 오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철저히 보여주었듯이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성 안에 거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도 보여주고 있듯이 이스라엘은 결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함부러 나갈 수 없는 더러운 존재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에 죽음이 임할 수박에 없는 것이다(12절).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거룩성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죄에 대한 처리가 있어야 한다. 즉 누군가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지고 동행하게 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모세 언약이다.
이런 점에서 모세 언약은 두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인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의 말씀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 말씀에 의해 진노를 받아야 할 존재임을 십계명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절대적인 말씀의 진노를 덮어주는 희생의 피를 보여주는 제사제도이다. 그 제사제도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근거가 된다. 그것을 받기 위하여 이제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이에 서게 된다. 즉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이스라엘을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끌어가야 한다. 그 거룩의 의미는 희생의 거룩이다. 이제 이러한 모세 언약의 구체적인 의미가 19장 이하를 통해 차츰 밝혀지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게 된다.
전에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에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하여 불러낸다고 하셨다(3:2). 출애굽 할 때에도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고 말씀하셨다(8:1). 그 섬기는 방식이 어떤 것인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언약으로 지켜야 하는 이스라엘이 희생의 피 안에서 화목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거룩한 백성으로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희생의 피를 흘리는 한 인격 안에 있는 것이 거룩임이 밝혀지고 있다. 오늘날 신자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고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에 의해 진노를 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그 진노를 십자가가 가리우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신자가 행하는 모든 것은 십자가의 희생정신, 그 피의 정신으로 행하는 것이 될 때 그것이 거룩이고 여호와의 소유된 백성임을 알아야 한다. 피의 정신, 십자가의 희생 정신이란 철저히 애굽과 같은 세상을 거부하고 정죄하는 것과 동반되어진다는 것도 또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피의 정신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은 비거룩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이란, 우리가 이 비거룩에서 탈출하여 십자가의 정신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 출애굽이요 언약 안에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된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