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쨋날(8/28) - 홍고린엘스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한 우리는 바트 보양 스님의 출생지인 바얀달라(부자 바다)라는 마을에 가서 스님이 한국에 오시기 전에 손수 만들었다는 아담하고 예쁜 탑을 구경했는데 그 후로 비슷한 모양의 탑을 많이 보았으니 전형적인 몽골탑 내지 티벳탑인 것 같았다. 우리는 스님이 알려주신 대로 마니차도 오른손으로 오른쪽 방향으로 한 바퀴씩 돌려보았다. 티벳불교에서 유래한 마니차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처음에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신도들을 위해 그런 방편이 생기지 않았을까? 유럽의 교회에도 성경 이야기를 채색 유리그림으로 표현한 스테인드 글래스가 있는 것처럼.
다시 차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갔는데 도착해보니 드무로 스님의 친구분 집이다. 우리는 운 좋게도 집주인의 환대를 받으며 몽골인의 단순 소박한 집을 구경할 수 있었고 점심으로 수테차와 호르차를 대접받았다. 우리가 먹은 음식이 흡사 사골 만두국 같았으나 바트 보양 스님은 한사코 호르차라고 강조하신다. 우리 관념으로 볼 때 국과 차는 분명 다른데, 몽골어의 쓰임새를 전혀 모르니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몽골에서는 손님이 오면 누구라도 반드시 음식을 대접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징키스칸 몽골 시대에는 이 아름다운 풍속을 어길 시 무서운 처벌이 따랐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도 비슷한 풍속을 찾아볼 수 있는데 즉각적인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라 해도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큰 고생을 하게 된다.
다시 이삼백 킬로를 차로 달려가다 보니 전혀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저 푸른 하늘 아래 금빛 모래산이 길게 이어지고 또 그 아래로 녹색 초원이 펼쳐져 흡사 삼색 띠를 두른 것 같은 아주 특이한 지형이 100킬로 이상 계속되었다. 그 희한한 풍경에 감탄하며 우리는 드디어 5대 경관 중의 하나라는 홍고린엘스에 도착했다. 초원이 있는 사막지대에 부는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모래가 움직이면서 모양이 달라진다는 홍고린엘스의 금빛 모래산은 바로 자연이 낳은 기적이었다. 나는 순간 숨이 멎을 만큼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느꼈다.
우리는 여과 없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언덕을 걸어 올라가 보기로 했다. 모래밭에 누워서 하늘을 처다보려니 선글라스로 가리기에는 너무 강렬한 태양 때문에 아예 눈을 감았다. 모래썰매를 가지고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누군가가 등 뒤에서 밀어주면 탄성을 지르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오기도 하고 강강 수월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기도 하면서 우리는 마냥 즐거워 했다.
한참을 신나게 놀다가 시원한 그늘진 정자에 내려오니 너무나 감사하게도 드무로 스님의 동생 부인이 쌍둥이 아들들을 데리고 와서 몽골인들이 보통 저녁식사로 먹는다는 고기가 든 칼국수를 끓여 주었다. 이곳은 사막이면서 초원 지대라 작은 늪지도 있었고 개구리가 살기도 한단다. 우리는 바트 보양 스님을 따라 소리를 크게 내면 동그란 눈알처럼 생긴 조그만 샘도 커지면서 물이 퐁퐁 솟아난다는 누드엥 볼락(눈알 샘물)에 가서 다 같이 소리 높여 노래를 불러봄으로써 자연의 신비한 조화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우리는 여행하는 동안 바트 보양 스님과 친구분인 드무로 스님 덕분에 여러 번 융숭하게 몽골의 토속적인 음식과 차를 대접받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세운 공적은 하나 없으니 오로지 여행을 함께 한 우리 도반님들 덕분에 이 모든 호사를 누리는 것이었다. 재밌는 농담도 잘 하시는 베스트 가이드, 바트 보양 스님의 친절한 안내와 설명 덕분에 우리는 일반 관광여행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몽골의 역사와 문화와 풍속과 종교에 대해 학습도 하고 현지인들과의 만남을 통해 몽골인의 생활을 단편적이나마 체험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저녁에는 다시 게르에서 숙박.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려 게르 앞에 돗자리를 깔고 누우니 하늘에는 온통 크고 작은 별들이 쏟아질 듯 가득 차 있었다. 환하게 빛나는 수많은 별자리 중 북두칠성은 손에 잡힐 듯이 아주 가까이 떠 있었고 동에서 서로 길게 뻗은 은하수까지 보았으니 나는 몽골에 온 두 번째 목적을 달성했다. 낮에는 아름다운 금빛 사막의 모래산에서 한가롭게 쉬며 즐겁게 뛰놀고 밤에는 반짝이는 숱한 별들을 가슴 벅차게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대우주의 신비에 감탄했던 이 날이 나는 잊지 못할 몽골여행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첫댓글 석 성순 국포님이 찍은 멋진 별자리 사진과 이진이님의 여행기를 보노라니
잔디밭에 누워 옹기종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풍경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