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지정 기념물 제 39호인 기장향교는 교리초등학교를 오른쪽에 ' 기장 빛 물 꿈 종합사회복지관' 을 왼쪽에 둔 차성로를 200여 m를 직진하면 막다른 도로에 있다.
주소는 기장읍 교리다. 동래 향교가 있는 곳이
明倫洞 이듯이
校里라는 마을에는 기장 향교가 있다.
기장향교 뒤로 보이는 산은 일광산의 일부가 아니라 고려말에 흙을 쌓아 만든 토성인데, 나무가
자라 현재의 숲을 이룬 것이다. 향교 정문,洗心門에서 왼쪽으로 돌아올라가면 기장농업기술센터에서 세운 차나무 군락지 안내문이 있다
그 뒤편 산으로 올라서면 시원하게 자란 대나무 숲이 보이고 대나무 숲 주위로 자라는 키 작은 나무가 바로 차나무다.
차나무 사이로 난 길을 지나면 울창한 소나무숲이 펼쳐진 오솔길이 일광산을 오르기 위해 많은 분들이 오르내리는 산길이디
향교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교리근린공원으로 조성된 성터불산 산자락에서 공원 내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기장고읍성'터로 올라서고 몇 발짝 더 이동하면 봉긋한 성터불산 정상(57.0m)이다. 이 공원은 깨끗하고, 잘 가꾸어진 숲 속에 천천히 걸어도 1바퀴 도는데 30분정도 걸리는 산책길이 아주 잘 만들어져 있는데 냦은 정싱도 정상이라
마누라와 나는 매일 정상에 올랐다.
機張鄕校는 1440년(세종 22년) 조정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지방 유생들의 유학교육과 지역민을 교화하기 위해 지어졌다
철종 6년 1855년 聖廟重修記에 의하면 기장향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17년(광해군 9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경내의 주요 건물들 또한 이때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향교의 바깥 담을 따라 세워진 열몇 개 돌계단 솟을대문 위에 洗心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출입 문루가 대문의 역할을 함께하는 다른 향교와 달리 바깥 대문을 따로 두었다.
공덕비가 서 있는 담을 따라 돌아서 기장향교
유림회관이 있다. 길 건너 여섯 가구가 울타리없이 사는 공동생활터가 이채롭다.
‘지역의 풍속을 교화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風化樓는 기장향교 정면에 세운 한식 목조 기와집,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중층 건물이다.세심문과 명륜당 사이에 위치하여, 기장 향교로 들어가는 문루 기능을 한다.
교육을 위한 공간의 중심이 바로 明倫堂이다
明倫이란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으로 孟子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하는 것은 모든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 라는글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명륜당 앞 좌우로 유생들의 숙소와 학습장소인 東薺와 西齋가 있다. 東薺에는 양반의 자제가 거처하였으며 西齋에는 평민의 자제가 묵었다고 한다
내삼문 역할을 하는 신삼문을 지나면 선현들의 제사를 모시는 文廟 기능을 하는 大成殿이 있다
향교는 대부분 조정에서 學田과 學奴婢라 부르는 밭과 노비를 하사하였으며 지역의 지방관에게 향교 운영의 책임을 맡겼는데 기장향교 또한 그러하다
기장향교 뒤에는 기장군 야생 차나무 군락지가 있고 앞에는 흙시루와 교리초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 도서관 이름이 독특하게
'사서삼경관'이다.
학교 축구장과 트랙은 전부 인조 잔디로 덮혔있다. 이 학교 옆에는 기장종합복지관이 개관했는데 3층에 교리도서관이 새롭게 꾸며져 있다, 이 복지관이 세워지기 전 공터였을 때 이곳에 내가 텃밭을 가꾸어 작물을 심었다.
일반적으로 향교라 함은 성균관과 함께 우리나라 교육 중추를 맡아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한 곳으로 오늘날 국립고등교육기관으로 지방의 국립학교라 할 수 있으며
書院 역시 향교와 더불어 유교 이념에 입각한
지방 교육을 담당했던 교육기관으로 조선 중기
이후 士林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운영기구이다.
서원이 성립하게 된 배경은 조선 초부터 계속되어온 사림의 향촌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사림들은 향촌 사회에 있어서 자기 세력 기반 구축의 한 방법으로 일찍부터 社倉制 ·鄕飮酒禮 등을 개별적으로 시행하여왔다. 특히 정계진출이 가능해진 성종 이후는 이를 공식화하여 국가정책으로까지 뒷받침받고자 하였다.
첫댓글 교리근린공원이 성터불산이었구나~
한 번 가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