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지킴이 안용복 장군의 얼을 되살리자!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안용복 장군 포럼> 개최
6월 호국의 달을 맞아 울릉도·독도를 수호해온 안용복(安龍福) 장군을 주제로 한 ‘안용복 장군 포럼’이 지난 6월 16일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총재 오동석) 사무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부산 출신인 안용복 장군의 얼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안됐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안용복 장군의 나라사랑 바다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한 특강에서 “부산시가 동북아 해양수도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독도지킴이 안용복 장군의 기개와 정신 되살리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날 ▲기념사업회가 중심이 돼 가칭 ‘안용복 장군 나라사랑 포럼’을 열어 범시민운동으로 확대해 시민 회원을 많이 확보할 것 ▲부산시가 기념사업회를 적극 지원할 것 ▲부산시가 안용복 장군 기념관 조성 및 동구 좌천동 안 장군 생가 복원에 적극 나설 것 ▲안 장군과 함께 도일(渡日)한 박어둔(朴於屯) 공 등 다른 지사들에 대한 연구와 선양사업을 적극 지원할 것 등을 제안했다.
안용복은 17세기 말 울릉도와 독도가 명백한 우리나라 영토임을 주장해 일본으로부터 확약을 받은 민족의 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숙종(재위 1674~1720년) 때 동래 어민 출신으로 좌수영 수군으로 들어가 능로군(노꾼)으로 복무했지만, 왜인들에게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약받는 등 큰 업적을 세워 장군으로 추앙받았다. 그는 1693년에 일본 본토에 가서 막부의 고위 관료 앞에서 당당하게 독도가 우리 땅임을 주장하여 일본이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2차 도일 후 조선 조정은 안용복이 함부로 벼슬을 사칭하고 양국 간에 외교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하려 했다가 격론 끝에 유배형으로 감형했다. 안용복이 165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할 경우 40세 때의 일이었다.
유배형에 처해진 뒤 그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안용복은 비록 조선의 현실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이었으나 이미 기개 있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것이다. 안용복은 독도 문제가 다시 불거진 1960년대 와서 재조명됐다. 1967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은 “국토를 수호한 공로는 사라지지 않을 것(國土守護, 其功不滅)”이라는 휘호를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이날 주제 강연 후 회원들의 질문과 소감이 이어졌다. 조나연 사단법인 국가원로회의 부산시 부의장은 “국가원로회의 차원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에게 안용복 장군을 추앙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을 적극 전달하도록 하겠다. 지역 언론도 안용복 장군에 대한 기획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판조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회장은 “예전에 기념사업회가 부산시와 위원회까지 구성해 안용복 장군 기념관을 만들려고 했는데 결국은 부산시의 무관심으로 대상 부지가 아파트 단지로 바뀐 것은 너무 안타깝다”고 말하며, “앞으로 안용복 장군 포럼을 활성화해 보통 사람의 위대한 리더십을 널리 알리는 데 지혜를 모아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참석자들은 포럼에 앞서 한국전통무예단체협의회 명의로 안용복 장군 진혼제 축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동해를 지키시는 안용복 장군이시여! 장군께서 온몸으로 지켜왔던 동해바다 동쪽 끝에 있는 우리의 섬, 독도에서 대한민국 국운이 상승하여 다시는 어느 누구라도 우리 영토를 넘보는 일이 없도록 보살펴주시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하옵나이다.”
/ 김영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