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얻은 즐거움 2023.04.14
평소에 조그만 일로 기뻐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런 일은 좋은 습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을 온전히 해야 하는데 절반쯤만 해 놓고 이만큼이라도 했다고 자족하는 일이 있으니 그런 점은 약점입니다. 어떤 때는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일로도 무언가를 했다고 즐거워하니 좀스럽지 않은가 스스로 반문할 때도 있습니다.
생각을 고쳐먹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재활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의 일입니다. 차도가 나타날 정도의 효과를 얻으려면 긴 시간 노력을 해야 하는 병이지만 실의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게 해 준 동기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작은 결과’에 기뻐하는 일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병의 초기에 다섯 손가락이 굽어 있었습니다. 치료 시간 외에도 틈만 나면 왼손으로 오른 손가락을 바깥 방향으로 잡아당겼습니다. 몇 번씩 해도 당기던 손을 놓으면 손가락은 여전히 굽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며칠 사이에 몇 밀리미터는 펴진 것 같아” 하며 힘을 내곤 했습니다. 그런 생각 덕분인지 손가락은 의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펴졌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결과’를 확인하고 더 큰 결과를 기대하는 일은 과거엔 말만으로 주위 사람에게 강조했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은 실행을 했고 그 후로 작은 일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더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살고 있는 은평구의 평생 학습관에서 ‘내일 살롱’이란 제목으로 하는 강연회의 안내를 접하였습니다. 안내를 처음 접했을 때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은평구에 오랜 세월 살았으면서 이 지역에서 무슨 활동을 한 일은 없었다는 인식을 하던 중이어서 ‘작은 일’에라도 참여하자는 생각으로 강연 듣기를 선택했습니다.
다섯 달 동안 매달 한 번씩 갖는 프로그램인데 첫 순서는 지난달 30일 과학 이야기를 주제로 열렸습니다. 최근까지 국립과학관장을 지냈다는 이정모 강사가 서두 부분에서 "은평구와의 유일한 인연은 본적지가 불광동 270번지"라는 말을 하자, 머리를 스치는 잊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나는 1960년대에 불광동 214번지에 살았는데…’ 신기했습니다. 어찌해서 수십 년 전 살던 곳의 번지가 갑자기 생각났는지. 잠시 옛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쨌든 강사와 마음으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듯합니다.
두 시간 동안의 강연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내게는 ‘의심하기’로 요약되었습니다. 과학 정신은 기존의 지식에 대해 의심하기라는 말입니다. 주변의 이웃, 친구, 뉴스를 비롯한 각종 매체, 서적 등에서 많은 정보를 접합니다. 강사는 그 모든 것들 중에 옳지 않은 게 많다고 실례를 들며 말했습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의 발명, 발견도 의심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했습니다. 또 그들이 정립한 지식 중에도 후대에 수정 보완된 것들이 많습니다.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의심해서 가능해졌답니다. 강연을 듣다 보니 20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 중의 한 명인 파인만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논문을 쓰면서) 자료를 인용할 때에는 직접 실험해 보고 확인한 다음에만 인용하겠다.” 그가 인용했다가 나중에 옳지 않다고 발견한 일이 있은 후에 갖게 된 생각입니다.
그러고 보니 살아오면서 상식이나 주변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회사 생활하는 동안, 또는 주위 사람들에게 말할 때 ‘사실에 의한 근거(fact base)’를 강조한 일은 옳다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과학은 ‘생각하는 방법’이라는 이 전 관장의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니 과학은 인문학이라고 했고, 인문 소양을 쌓으면 생각하는 힘이 는다고 한 말에 공감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기업 사회에서 인문학 열풍이 분 것도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당연한 현상이라고 여겼습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그 밖에도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되고 상상도 하게 되었습니다. 강연이 흥미로우니까 끝난 뒤 질의 응답 시간에도 제일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평소 발언에 소극적인데 그날엔 그랬습니다.
동네 가까운 곳에서 하는 강연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했다가 여러 생각을 떠올렸으니 기대 이상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작더라도 즐거움을 얻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 이상의 소득을 얻은 셈입니다. 소확행(小確幸)이란 말도 이런 경우에 적용될는지요. 어쨌든 작은 일에 긍정적 생각으로 참석해서 즐거움을 얻었으니 만족합니다. 삼사십 명의 소규모 모임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음 강연이 기다려집니다. 앞으로는 지역 사회에 더 가까워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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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