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제8편 - 1300년의 시간, 발걸음이 떨어지질...

충청도가 고향인 분은 이 느낌 더더욱 잘 아실 것 같아요.




조금 늦게 올라오신 팀들..


충남 부여가 고향이신 분께 이 사진 보여드리니 정말 충청도 어디쯤 되어 보인다고 하세요.




일본에서 느끼는 정감 넘치는 풍광. 첨은 아닌데 특별히 강렬하네요.


다음 일정이 빡빡하게 기다리고 있어서 다시 버스로 돌아갑니다.




휠체어도 올라올 수 있는 이 길 덕분에 눈물을 흘린 분이 계셨다지요?




단체로 여행오신 일본 여행팀입니다. 어디를 가는지 참 궁금했어요.
저쪽으로는 특별한 유적지는 없는데 말이지요.


아스카 들판에서...

아스카와 나라의 중간쯤 되는 곳에 있는 법륭사(호류지) 가는길.
고층 건물이 적은 일본의 지방도시는 참으로 평화로워 보입니다.

법륭사 남대문입니다.

법륭사(호류지)의 남대문은 570년 전 건물로 국보로 지정된 고격 넘치는 건물입니다.
처마선의 곡선이 왠지 한반도의 것과 닮아 있는 것 같지 않나요?
우리나라에서 570년 된 목조건물이라고 하면 대단히 귀히 여길테지만
법륭사는 아시다시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출물인 오중탑과 금당이
1300년 역사 속에서 건재하기에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게 평가되는 듯 합니다.
문 사이로 보이는 중문은 현재 수리중이어서 덮개로 가려져 있습니다.

4번째 세계유산: 법륭사(호류지)에만 총 48개 건물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됨.
사진은 왼쪽의 쪽문으로 입장한 법륭사 서원가람의 중심인 오층탑과 금당입니다.
아, 어떻게 1300년 세월을 목조건축물로 풍파를 견디어 냈을까요?
저는 그 무엇보다도 번개로 인한 화마를 어떻게 피했을까가 불가사의해 보입니다.
일단 화재에 대한 궁금증은 뒤로 하고, 목조건축물이 어떻게 천년 넘게 견딜 수 있는지를 말씀드려볼께요.
목조건축물은 30년에 한번씩 부분적인 보수를 해서 서까래나 지붕 등의 보수 등을 진행합니다.
그러면서 썩은 부재들은 드러내고 새로운 목재들을 끼워 넣는 작업들을 하지요.
또 200~300년에 한번씩 완전히 해체하여 재조립을 하는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합니다. 이때 많은
부재들이 교체되게 됩니다. 못을 쓰지 않고 끼워넣는 결구 방식으로 건축하기에 가능한 방법이지요.
그러는 보수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목조건축물은 수명이 무한하다고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양한 건축기술이 대를 이어서 전해지고 발전되는 장점도 있다고 합니다.
200~300년 주기로 대대적인 해체 보수를 하다보니 큰 목조건출물 공사를 할 때는
가까운 산에 삼나무, 편백나무, 느티나무 등을 심어 200~300년 후의 목재로 쓸 재료를 대비합니다.
(법륭사 건축은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중심입니다. 느티나무는 목질이 강해서 좀더 후대에 사용됩니다.)
법륭사 오중탑의 중심기둥인 심주는 서기 594년에 벌채된 것으로 연대측정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 외의 오중탑과 금당의 나무 부재는 서기 650~690년대에 벌채된 것이라고 하네요.
즉, 601년 쇼토쿠태자가 이곳에 아카루가 궁을 지으면서 시작된 법륭사는
일본서기에 의하면 670년에 화재가 나서 모두 불타고 710년 경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법륭사에 화재가 나서 많은 전각들이 불탔지만 다행히 서쪽가람의 오중탑과 금당은 화재를
피할 수 있어서 지금까지 고고한 아스카 시대의 문화를 전하고 있네요.

탑과 금당 촬영을 하다 고개를 돌린 순간, 저는 아! 했습니다.
유홍준 선생이 칭찬해 마지 않던 바로 그 회랑의 아름다운 가림막이었습니다.
다가가면 열리고, 물러나면 닫힌다던...

옆으로 걸으면서 보면 바깥 풍광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정말 아름다운 회랑의 가림막이었습니다.

1300년 세월을 딛고 앉은 까마귀 한 마리.
죽음의 징후를 미리 안 다는 까마귀와 오중탑이 왠지잘 어울려 보입니다.
까마귀만큼 전세계 신화에 강력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새도 없을 겁니다.
서양에서는 우선 태양의 신 아폴론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중국을 포함한 한국, 일본 등의 얄타이계통에서도 태양의 새로 '삼족오'로 신성시 되지요.
죽은 시체를 먹기에 시체 주변을 맴도는 모습은 죽음의 사신 같이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삶과 죽음의 중간에서 지상세계와 하늘을,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이지요.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를 만든 것도 바로 이 녀석들이었으니까요.
음양오행 사상에 의하면 모든 생명은 북방의 물에서 탄생한다고 하는데요.
최근 한창 이야기가 나온 오방색 중에서 북쪽을 상징하는 색은 검은색입니다.
검은색은 모든 색이 합쳐졌을 때 나오는 색이므로 세상 만물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의미를 담습니다.
한때 까마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살펴본 적이 있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까마귀=태양'이란 공식을 갖고 있어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학자는 까마귀의 상징성을 들어 동서양의 고대문명 교류를 설명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랬거나 말았거나 까마귀 촬영하느라 쭉 당겨서 찍은 사진덕분에 법류사 오중탑의 디테일에
다시 한번 감탄합니다.

서원가람의 강당입니다.

강당에 모셔진 약사불입니다.
고대에는 부처님을 모신 금당은 마루바닥이 아니라 흙바닥이었다고 알고 있었어요.
단순히 부처님을 모시기만 했지 스님들이 앉아서 불경을 외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 후에 격식이 바뀌면서 마루바닥을 놓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책으로만 알고 있던 내용인데, 법륭사 금당과 강당에서 그리고 교토의 몇몇 오래된 사찰에서
그 흔적들을 보게 되어 참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은 책으로만 자주 보던 곳들을 직접 가보게 되어 신비로왔습니다. ^^

법륭사의 가람배치(건물의 배치: 특히 탑과 금당 중심)는 정말 특이합니다.
당시 스타일이던 고구려, 신라, 백제와 모두 다르거든요.
굳이 따지자면 백제 1탑 1금당 방식과 가깝기는 한데 말이지요. 백제는 금당 탑이 일직선상에 있는데
법륭사 서원가람의 금당과 오중탑은 동서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 독특합니다.
사실 격으로 보자면 탑이나 금당이나 똑같이 부처님을 뜻하는 것이니 동격이긴 합니다.
법륭사 금당과 오중탑은 겉으로 드러난 부피가 비슷하게 느껴져서 대비가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일본이 불교문화를 받아들인 후 자기화 하는 과정에서의 자신감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가람배치를 개발하여 선보인 것이라고도 합니다.(유홍준 샘)

저 금당에 모셔진 청동삼존불은 아스카사의 대불을 만든 도리불사가 제작한 것이라고 하는데요.

금당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포스터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아스카사 대불과 하관이 긴 것이 같은 분이 만든 것이 맞는 것 같죠? ^^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인 도리불사가 만든 불상이 딱 두 개 전하는데,
바로 이 법륭사 삼존불과 아스카사 대불이랍니다.

오중탑의 각 사면에는 소조상으로 만든 장면들이 있는데요. 북쪽, 그러니까 여자분이 서 있는 곳의
우는 부처 라는 작품이 특히 유명세가 있습니다. 너무 어둑해서 잘 보이지 않았는데, 현지
해설사 분이 강력한 플래시로 비춰가며 일본분에게 설명할 때 운 좋게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드는 생각이 당시 미륵환생 이라고까지 했던 쇼토쿠 태자 사후에 재건된 그를 위한
사찰이었으므로 혹시 그 부처는 쇼토쿠태자를 모델로 하여 만든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중탑의 각각 사면은 마치 석굴사원과 같은 어둑어둑한 분위기의 소조상 으로 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동쪽으로는 대승경전 초기인 유마경에서 부처님의 명을 받아 문수보살이 유마거사를 병문안
가서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을 나타내고 있고요.
서쪽은 부처님 사후의 사리배분 장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남쪽은 미륵부처가 여러 부처님과 모셔져
있답니다. 모두 법륭사가 재건된 710년경 작품입니다.

우리의 한옥건물 처마는 곡선의 상승미가 참으로 아름다운데,
일본은 직선미의 안정감을 미감으로 삼는 것이 명백하게 두드러집니다.
반면 법륭사 서원가람보다 700년 뒤인 무로마치 시대에 지어진 법륭사 남대문은 우리나라 처마가
갖는 곡선의 상승미를 보여주고 있지요. 즉, 시대에 따라 혹은 지은 사람에 따라 일본에서도
다양한 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직선으로 쭉쭉 뻗은 일본 고건축의 아름다움도 참 좋네요.

처마 밑에 덧댄 이중처마는 쌍계라고 하는 일본 특유의 것으로 최초에는 없던 것을 나중에 덧댄 것이라고 합니다.
저 상계를 빼고 보면 정확하게 백제 정림사지탑과 비례가 일치해 보인다고 하네요,.

꿈인지 생시인지 했습니다. 1300년이라니...

동글동글한 단면을 가진 우리의 서까래와 달리 일본은 네모난 단면이 서까래의 주류를 이룹니다.
일본의 고건축 관련된 책을 읽다 알게 된 것인데, 우리나라처럼 서까래를 동글동글하게 사용하는 게
궁궐이나 사찰건축에서는 훨씬 더 손이 많이 가고 목재도 많이 소모된다고 하네요.
예전에는 둥근 목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네모나게 단면을 다듬고, 이것을 다시 육각형으로
다듬고, 최종적으로 모서리를 깎아서 둥글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목재소모와 공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다고 하네요.
헌재 이런 건축방식이 결과적으로 그 국민들의 국민성과도 닮은 건축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재미지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문화유산을 오래도록 보존해주길 소망합니다. 일본은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쉬 발걸음을 떨어지지 않던 곳입니다.
다음에는 정말정말 오래오래 머물며 기둥 하나 서까래 하나하나 다 눈에 새겨넣고 싶어요.

어디 하나 버럴 것이 없는 작품들입니다. 와당 무늬는 완전히 백제방식이네요.

오랜세월 처마를 받치느라 정말 고생하는 코끼리입니다.
멀리서 보곤 사자인줄 알았는데, 좀 크게 보니 불교의 성물인 코끼리네요.
이런 화려함의 용이나 코끼리상은 한참 후대인 에도시대 때 작품이라고 합니다.
에도시대 건축은 화려함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우리의 조선 중기부터 후기까지에
해당되는 시기입니다.
고대의 건축은 오로지 선과 면을 통해 미학적인 면을 보여주는데 반해 중세로 올수록
화려함의 기교가 많이 삽입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도시대 때 지붕에 나타난
당파풍(장군 투구처럼 둥근 지붕 입구)가 대표적인 형식이지요.

바람부는 날 오중탑의 풍경소리가 아름답게 들릴 것만 같아요. (소리가 나는 지는 모르겠지만서두... ^^)

우리나라도 경복궁 가면 많이 뵐 수 있는 자원봉사 나오신 해설사 분께 일본관람객들이 설명을
듣고 있습니다. 저도 슬그머니 이분 옆에서 어두운 곳을 강력한 플래시로 비춰가며 사진과 함께
설명하는 것을 잠깐 들었는데 참 좋더라고요.
덕분에 오중탑 사면의 부조 중에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우는 부처'를 이분 플래시 덕분에 자세히
볼 수 있었어요. 그냥 보면 어두워서 거의 안보이거든요. ^^

자, 아쉽지만 이제 서원가람을 나와 동원가람 사이에 있는 대보장전으로 향합니다.
아, 대보장전에는 일본의 문사들치고 찬탄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백제관음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제 곧 대보장전에서 백제관음을 친견하실 분들입니다. ^^
후기는 9편으로 이어집니다.
첫댓글 발견이님! 아는 만큼 보일뿐 아니라, 찍을수 있네요 !
건성 지나간 것을 이렇게 세세히 찍어서 설명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자세한 설명 또한 감사합니다..... 꾸벅!
다녀와서 다시 공부하면서 알게된 것도 참 많습니다.
가기 전의 공부도 좋지만 다녀온 후의 복습이 더 쏙쏙 잘 들어오는 것 같아요.
역시 역사는 유물로 기억을 해야 오래 가는 것 같아요. ^^
@발견이(윤문기)
맞아요! 다녀온 후의 복습이 더 쏙쏙 잘 들어와요!
제대로 알고,보자면....가지 전 공부하고, 가서보고.
갔다와서, 다시 공부하면서 놓친것 첵크해서, 다시 가 보아야 제대로 알 수있을것 같군요 ㅎ
이번 여행지가 그랬읍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ㅠㅠ
일본 여행 다시 가는 기분이예요.
생생하게 그때의 느낌을 되살려주는 사진들 정말 감사합니다.
맘에 드는 사진들 어여 퍼가세요. 퍼가도 계속 남아 있음이 감사한 일입니다.
아, 다시 가고 싶네요. 그때는 숲향기님과 함께... ^^
지나쳤던 아름다운 회랑의 가림막을 사진으로 다시 담습니다..
다가가면 열리고, 물러나면 닫힌다던...표현도 아름다운~~
그 회랑을 본 순간! 맞다! 저것!
우리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큰 감동을 느끼는 참으로 대단한 능력을 지녔더라구요... ^^
아스카사가 내려다 언덕 참 좋았어요.
가는 길도 좋았고,
그언덕도 좋았고,
내려다 보는 경치도 즣았지요.
나름 기대를 많이 하고 갔던 법륭사.
찬찬히 돌아볼 시간이 안되었던게 많이 아쉬웠어요.
나무 창살로 된 회랑,
그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
나무를 둥글게 다듬어 쓰는 우리와
네모 반듯하게 다듬는 일본의 차이...
법륭사(호류지)는 정말 역사 교과서에나 나오던 전설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기분이었어요.
도록과 사진으로 보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정말 오래 머물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라도 다시 가야겠어요. ^^
아스카사의 언덕이 이렇게 아름다웠군요~~
교과서에서 배운 곳을 찾아가는 여행..진짜 구웃~~~!!
사랑스러운 언덕이었지요.
고운 님과 함께 하셨으니 얼마나 좋으셨을까... 다들 부럼부럼... ^^
언제나
해외여행은 시간이 좀더
넉넉했었더라면.....
라는 아쉬움이 남아서
그 아름다운 기억의 절대가치를
더 업업업시키는거 같습니다
아스카사에서도
법륭사에서도
좀더 머물면서 음미하지
못했던게 아쉬워요
나름 여유롭게 잡았음에도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이 거대한 유산의 의미를 가보고서야 깨달은 때문이겠지요?
이런 위대한 유산을 한번만에 다 알려 했던 것도 역시 욕심임을 깨달아봅니다.
전 10년만 딱 투자해보려구요. 물론 우리나라의 문화유적도 더 자세히 살펴 그 뜻을 더 넓혀야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
백제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천천히 누리고 싶었던 순간들 때문에
꼴찌를~`..ㅎㅎ
멀리서 바라보면 그 실체가 더 환하게 보이게 되는 이치가
이 아스카사 언덕에서 바라보는 그낌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어요~..ㅎㅎ
호류지 아름다운 가람막에서
발견이님을 발견하고
가림막과 사람과 풍경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그림이 만들어진
그 순간들도 참으로 감사해요~~..
사진으로 만나는 오층탑은 내 눈보다
더 실감나게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게해주고..
참..감사한 시간입니다~~
저 가림막 두장의 사진 중에 밑에 사진은 그야말로 사람이 직접 보는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 50mm로 촬영했나 보네요.
사람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카메라 렌즈로 치면 딱 50mm거든요.
우리가 두 눈으로 본다는 것은 사실 온 몸으로 느끼는 것이니 사진 같이 두 눈으로 보는 건 상대가 안되지요.
아, 일디보 콘서트 보고 시퍼... 그들의 월드투어도 엊그제 끝났답니다. T.T
곧 그들의 이번 공연 DVD가 나온다니 그걸 기대해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