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의 ‘일기’
나는 승모승천 축일 며친 전에 가족과 함께 로마로 왔다. 우리 가족은 이탈리아인 대다수가 휴가를 떠나는 이 습관을 몰랐다. 로마 시민 대부분이 도시를 빠져나가 도시 전체가 멈춰 있을 때 우리 가족은 삶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려 했다.
우리는 줄리아 거리에 아파트를 얻었다. 아주 우아한 거리인데 8월 중순이라 한산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덥고 햇살은 따가웠다. 장을 보러 나가면 두 걸음을 걷다 그늘로 들어가서 잠시 쉬어가곤 했다.
로마에 온 지 둘째 날 토요일 저녁, 집으로 다시 들어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전엔 문제없이 열렸는데 말이다. 몇 번이나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열쇠가 자물쇠 안에서 돌아가지 않았다.
건물에는 우리 말곤 사람이 없었다. 우린 신분증도 없었고, 아직 전화도 개통하지 않았다. 로마에는 아는 친구도 없었다. 나는 건물 맞은편 호텔에 도움을 요청했다. 호텔 종업원 두 명도 문을 열지 못했다. 집주인은 칼라브리아에서 휴가 중이었다. 당황한 데다 배도 고팠던 아이들은 울면서 당장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결국 열쇠 수리공이 와서 2분 만에 문을 열었다. 자물쇠를 다시 만든 것도 아닌데 출장비로 200유로로 넘게 받아갔다.
이 트라우마가 내게 불에 덴 경험,일종의 세례가 된 듯하다. 소소하지만 짜증스러운 장애물이 몇 개 더 있었다. 우리는 분리수거 쓰레기를 어디다 버려야 하는지, 대중교통 이용권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 버스가 어디서 서는지 몰랐다. 모든 걸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로마 시민 세 명에게 길을 물어보면 각자 다른 대답을 했다. 나는 혼란스러웠고, 종종 의욕을 잃었다. 로마에 산다는 사실이 가슴 벅찼음에도 모든 것이 불가능하고, 이해할 수 없고, 헤쳐 나갈 수 없는 듯했다.
로마로 이사 온지 일주일 후, 문이 잠겼던 잊을 수 없는 그 토요일 저녁을 보내고 두 번 째 맞는 토요일 나는 우리의 고난을 적기 위해 일기장을 펼쳤다. 그날 나는 생각도 못한 낯선 행동을 했다. 이탈리아어로 일기를 쓴 것이다. 자동적으로 술술 이탈리아어 일기를 썼다. 손에 펜을 쥐었을 때 머릿속에서 더는 영어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던 그 시기에 나는 언어를 바꿔 일기를 썼다. 내가 새로이 경험했던 모든 것을 보다 의욕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난 시들고 어색한 엉터리 이탈리아어로 일기를 썼다. 단어를 찾아보지 않고 사전 없이 충동만으로 마치 어린아이처럼 글을 잘 모르는 사람처럼, 더듬더듬 써나갔다. 난 그렇게 쓰는 것이 부끄러웠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생겨난 이 미스터리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난 마치 왼손, 글을 쓰지 않았던 미숙한 손으로 글을 쓰는 듯했다. 위반, 반항, 어리석은 짓 같았다.
로마에 이사 온 처음 몇 달 동안 내 이탈리아어 비밀 일기는 날 위로하고 날 안정시킨 유일한 것이었다. 종종 한 밤중에 불안한 잠을 깨면 책상으로 가서 이탈리아어로 몇 단락을 썼다. 아주 비밀스러운 계획이었다. 누구도 내가 이탈리아어로 일기를 쓰리라 예상하지 못했고 알지 못했다.
영어와 비슷하지만 새로운 언어로 이런 일기를 쓰는 인격체가 내게 있을 줄 몰랐다. 나의 가장 순수하고 연약한 부분이라는 걸 안다.
로마로 이주하기 전 나는 가끔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곤 했다. 마드리드에 사는 이탈리아 친구에게 편지를 써 보거나 이탈리아어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몇 번 시도했다. 인위적인 형식적인 연습일 것이다. 내 목소리가 아닌 듯했다. 미국에서는 이탈리아어로 내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로마에서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는 건 여기에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유일한 방법인 듯하다. 특히 작가로서 이탈리아어와 연결되는 유일한 방식, 비록 완전하지 않고 실수 투성이지만 새로운 일기는 내 혼란을 명확히 보여 주었다. 급격한 변화, 그런 가운데 가득한 당혹스러운 마음 상태를 반영해 주었다.
이탈리아로 오기 몇 달 전 나는 또 다른 글쓰기 방향을 찾고 있었다. 새로운 접근 방법을 원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몇 년 동안 조금씩 공부했다. 그 언어가 결국 내게 새로운 방향을 알려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난 노트 한 권을 다 쓰고 또 한 권을 새로 펼친다. 두 번 째 은유가 떠올랐다. 나는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산을 오르는 것 같았다. 살아남기 위한 문학적 노력이다. 난 이탈리아어로나 자신을 표현할 단어를 많이 알지 못한다. 일종의 결핍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난 자유롭고 가벼운 느낌이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다. 필요에 의해 글을 쓰지만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느꼈던 기쁨을 다시 맛보았다. 누구도 읽지 않는 노트에 단어를 적어넣는 기쁨 말이다. 나는 문장을 다듬지 않고 투박하게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 그리고 계속 불안한 상태다. 맹목적이지만 진실한 믿음과 함께 나 자신을 이해받고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