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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수를 정식화하는 과정은 곧, 자연의 숨겨진 비밀을 밝혀서 자연을 대상으로 자기의 의도하는 바로 변화시켜 보려는 데 있는 것이다.
또한 자연의 모든 존재를 수의 공식으로 질서를 잡아가는 과정은, 만물의 근원을 알고 그 정체의 본질을 알고자 하는 과정과도 같았다.
이러한 과정에서 드디어 모든 문명의 선지자들은 한가지의 공통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형상들은 원과 선의 기하학으로 비례하며, 실존하는 만물의 모습들은 다양하지만, 그러나 그 존재의 본질에 깊게 접근하자면 결국 하나의 원으로 모아진다는 사실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도형을 다루는 수학분야를 기하학(geometry)이라고 한다.
영어의 'geo-'는 땅을 의미하고 'metry'는 '재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기하학은 땅을 측량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학문이다. 측량을 하는 이유는 경제적 필요성 때문일 것이다. 땅을 사고팔기 위해서는 면적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길이나 각을 먼저 알아야 한다.
또한 집을 짓거나 농사를 지을 때에는 물론 누가 얼마나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필요가 생기게 되고, 또 넓이를 정확히 측정하려면 길이나 각을 알아야 한다.
기하학은 각, 길이, 넓이, 부피 등 도형의 기본적인 요소와 이 요소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알아내는 것이 1차적인 관심사다. 또 기하학의 역사는 바로 이른바 ‘원방’의 이원론적인 철학이 정립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류의 문명사의 출발은 기하학과 대수학의 역사라고 할 수가 있다.
아무튼, 인류는 이미 고대시대에 이미 체계적인 측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측량가운데 삼각측량은 수학적으로 삼각법을 기초로 하고 있는데, 이는 삼각형의 성질을 이용하여 도형을 연구하는 수학분야를 말한다.
이와 관련 공식적으로 확인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서양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탈레스가 처음 삼각법을 사용했다고 전한다. 그는 삼각형의 닮음의 성질을 이용하여 피라미드의 높이를 측정했다. 또 삼각형과 합동의 성질을 이용하여 산으로 가로 막혀 있는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구하기도 했고, 해안으로부터 바다에 떠 있는 배까지의 거리를 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서양문명사에서는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사실 그의 수학적인 업적은 당시의 이집트를 비롯한 동양의 문명 수준에 비하여 아주 변변치 못한 수준이었다.
예를 들면, 그가 응용한 삼각비의 계산법은 이미 수 천 년 전에 이집트인들이 구축한 엄청난 수준의 기하학적인 이론과 비교해보면 별 볼일 없었다.
또 그는 만물의 근원이 바로 물이라고 하였는데, 그 당시보다 수천 년 전에 동양에서는 세상을 현상계와 가상계로 분류하고, 현상계의 존재로 기화수토의 4가지인가 아니면 기화금토수의 5가지인가에 관하여 대논쟁을 하였던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탈레스의 지혜는 기학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보자면, 당시의 동양에 비하여 매우 유치한 수준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철학의 아버지라고 칭송하였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지혜의 수준이 뒤떨어진 탈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로 칭송되었는가?
그 까닭은 현상의 단순화를 통해 자연을 분석하고자 했고, 신화나 그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괴력 대신 자연 그 자체로부터 현상의 인과 관계를 탐구했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문명사에서 의미하는 철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음미해 볼만한 일이다. 사실 철학의 진정성이나 위대함이란, 그 수준이 놀라운 정도로 복잡하고 논리적이며 고차원적이라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철학이란 무엇보다도 우선 현실적인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이치를 따지자면 수학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철학은 현실적이어야 하고 당연히 수학적이어야 한다.
그의 철학적인 관점과 입장이 현실을 수학적으로 보는 세계관이었다는 것이다.
철학에 대한 이러한 관점으로 그의 철학은 오늘날 서양문명이 세계적인 것으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물론 당시의 동양철학은 이미 매우 놀라운 수준의 고차원적이고 깊은 사색에 의하여 구축되어 있었다. 반면에 철학의 아버지라고 칭송되는 탈레스의 철학수준은 그에 비해 매우 유치한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학문은 세계문명사를 선도하고 있는데 비하여, 당시의 이집트철학을 비롯한 동양철학은 현실의 적용력이 비교적 약한 편이고 주관성과 관념성이 강한 편이었다.
아무튼 고대사회에서 기하학은 우주변화의 기본단위로서의 원의 문제를 방의 비례관계로 파악한 기초가 바로 삼각함수로 정립하게 된다. 그리고 원과 방의 삼각비의 조화는 모든 문명사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되었다.
이른바 사인(sinθ), 코사인(cosθ), 탄젠트(tanθ) 같은 삼각비를 이용하여 삼각형의 변의 길이, 각의 크기, 넓이 등을 구하는 삼각법은 천문학, 점성술, 토지 측량, 항해술과 같은 실생활에 널리 사용되어 그 역사가 대단히 오래되었다.
그런데 서양의 문명사에서 삼각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가장 오래 된 학자는 기원전 150년 전 고대 아시아 지역인 미노아의 니케아에서 활동했던 히파르코스이다.
그는 그리스의 천문학자로, 천체를 체계적으로 관측하고, 그 운동을 수학적으로 풀어 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태양과 달을 비롯한 행성들이 원의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으므로 원의 현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삼각법의 기초이다.
이를테면 그는 지구와 달의 거리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공의 표면과 같은 면, 즉 구면 위의 두 점 사이의 거리와 각의 크기를 잴 필요를 느껴서 삼각법을 연구하고 사인함수표를 제작하였다.
결국 기원전 140년경에 천문학에 삼각법을 응용하여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리를 구했다고 하여 ‘삼각법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모든 천문학적인 계산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삼각비를 잘 이용하여야 했다.
이것은 사인표가 얼마나 정확한 가에 달려 있었고, 사인표의 작성은 바로 각의 삼등분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사인 함수가 처음으로 개념화된 것은 인도인들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9세기경 인도의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알콰리즈미는 사인표를 만든 최초의 아라비아 수학자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알하시브에 의하여 탄젠트표가 만들어졌다.
이후 15세기 독일의 수학자 레기오몬타누스가 ‘삼각법의 모든 것’이란 저서에서 처음으로 천문학에서 분리되었다.
한편 이미 고대문명의 대부분은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삼각법의 비례공식을 측량에 응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기존에는 측량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자연의 모든 것을 측량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면 태양과 달의 거리를 측량한다든지 태양의 움직임을 통하여 시간을 계산하는 것은 삼각법의 비례공식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 인류문명의 지적수준이 단순한 경험에서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 발전하는 것이다.
도형에 관한 기하학의 지식이 실용적인 기술에서 논리적인 학문 체계로 자리 잡게 되는데, 이른바 ‘원방의 우주관’이라고 하는 이원론의 철학적인 세계관이 확립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철학과 수학은 분리될 수 없었다. 우주만물의 존재와 운동 방식 밑바탕에 수학적 질서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중심에 기하학이 있었다.
'신은 기하학적으로 사고한다.'고 말했던 플라톤이 만든 아카데미아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었다거나 유클리드가 ‘기하학에 왕도는 없다.’는 말을 남긴 것만 보아도 당시 기하학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케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종종 지나치게 기하학에 편중되어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가령 무리수를 받아들이지 않고 수를 도형의 길이로 이해한다거나, 방정식의 해조차 작도로 구하는 등 대수학이 거의 발달하지 못했다.
피타고라스는 입체도형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구이고, 평면도형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원이라고 강조하였다. 과도하게 작도에 집착한 이유 역시 이런 기하학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으로 위와 같은 편중된 사고방식은 기하학이 엄청나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유클리드는 원론이란 책을 써서 당시 기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는데, 이 책은 개념 중심으로 사고하고 연역적으로 새로운 사실을 논증해 나가는 방식의 그리스 기하학을 집대성한 것이다.
점, 선, 면, 선분, 직선, 각, 직각 등등과 같은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정의, 공리체계의 도입, 증명을 통한 명제정립과정을 거치면서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수학적 특성들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그리스시대 완성된 기하학을 논증기하학이라고 부르는데, 그리스시대 완성된 기하학 체계는 이후 2000년 동안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이제 인류역사에서 모든 문명사에서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와 컴퍼스로 만들어 질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이러한 사고방식의 철학적인 표현인 원방의 철학이 완성되기에 이르며 이후의 이원론 혹은 이분법의 철학적인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
결국 모든 종교에서 신은 의욕이나 생각으로만 세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자와 컴퍼스로 세상을 작도하듯이 창조한 것이라는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신앙체계가 형성 된다.
물론 그 구체적인 완성의 시점에 관하여 동서양이 차이가 있는데, 오히려 동양이 서양보다 적어도 천년이상 앞서있었다.
다음 두 개의 그림 중에서 왼쪽의 그림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복희여와의 그림이라고 하는데, 7세기의 중국의 고창국의 묘지인 이른바 영원히 잠든 묘지라는 의미의 ‘아스타나’ 묘실천장에 부착되어 있던 것이다.
마치 남자 신인 복희는 왼손에 ㄱ자 모양의 자를 들고 있고, 여자 신인 여와는 오른손에 컴퍼스를 들고 있다. 둘 다 모두 하반신이 뱀의 모습이다. 둘이 균형을 이루며 서로 꼬고 있는 것은 세상의 조화와 만물 생성을 상징한다.
즉 자와 컴퍼스는 조물주가 세상을 대상으로 하여 작도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미 중국을 비롯하여 남방의 여러 나라에서 황실의 전승되는 보물로 자와 컴퍼스의 형상으로 보아 서양의 것보다 1000년 이상 앞서서 자와 컴퍼스와 유사한 물건이 있었다.
물론 자와 컴퍼스가 이처럼 천지창조의 도구로 상징화된 것은 비단 동양사회에서만 한정된 것도 아니다.
위 오른쪽 다음의 그림은 천지창조와 관련하여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블레이크(1757~1827)는 혼자서 왼손에 컴퍼스를 들고 우주를 작도하고 있는 신의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천지창조와 관련하여 이 두 그림이 전달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우주가 수학적으로 설계된 것을 암시한 것은 아닐까?
세상은 하나의 점에서 출발하고 이는 점점 커지면서 직선과 곡선으로 양분되며, 결국은 다시 하나의 커다란 원으로 통일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잘 정립한 사람이 헬레니즘문화의 철학적 대변자인 피타고라스이다. 그는 모든 수의 합은 원이라고 하였다. 원이라 함은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태양도 원의 모양을 하고 있고, 달도 별도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모두 원을 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주도 원을 그리며 돌고 있다.
별과 달과 해 그리고 이 땅이 모두 원을 그리며 돌고 있기 때문에, 또 언젠가는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되어 있다.
모든 물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영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모든 영혼은 반드시 원을 그리며 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마련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도 언젠가 돌고 돌아서 다시 사람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상은 결국 생명존중 사상을 낳게 되고, 또 '우주가 곧 나'라는 물아일체 사상을 낳았다. 이것이 신이 만든 조화의 법칙이다. 피타고라스는 이 모든 조화가 이룩된 세계를 이른바 '코스모스'라고 규정했다.
고대 기하학의 대부인 유클리드는 원이란 평면상의 어떤 점에서 거리가 일정한 점들의 집합이라고 정의하면서 세상의 모든 형체를 원 하나로 정립할 수가 있다고 선언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중국의 묵가도 원에는 중심이 있어, 거기서 원주 상의 어느 점까지든 그 거리가 동일하다고 하였다.
중심은 핵심과 같아서, 거기서 시작하여 원주 상의 어느 지점까지 움직이는 점은 모든 경우에 같은 거리를 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은 모두 하나의 원으로 수렴된다는 인식은 점차 원의 형상을 우상숭배하게 되고, 결국은 왕이란 세상의 중심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이른바 황극사상을 낳게 되었다.
중국 사람들은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하는 이른바 황극사상으로 물들게 된다.
지구를 포함한 우주는 하나의 커다란 원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만물을 통칭하여 방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정립한 것이다.
즉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원이고, 그 속에서 직선과 삼각형 사각형 다각형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러한 원방의 우주관을 서양의 경우 숫자로서 정립한 사람이 바로 피타고라스이다.
그는 우주는 이른바 ‘조화수열’로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은 점-선-면-체와 이들의 원과의 비례 비율로 모두 환원될 수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오늘날 피아노의 7음계를 정립한다.
또 이러한 관점은, 기원전 430년 경 아테네에서 유명한 소피스트인 안티폰에 의하여 더욱 발전된다. 그는 정다각형의 변수를 계속 늘려 가면 결국엔 원이 된다고 생각했다.
원이란 직선으로 혹은 사각형이나 삼각형의 합으로 모두 구성된다고 볼 수가 있다.
즉 이와 같은 그의 사고방식은 이른바 미분적분의 출발을 알리는 것이었다.
특히 그는 원의 면적과 같은 다각형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의 이른바 ‘제곱화’ 실험은 매우 중요한 용어인 ‘무한분활성’을 착안한 것인데 미분적분의 원리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원에 내접하는 사각형을 만들어 점차 다각형과 면적이 같은 정사각형을 작도하면, 이 정사각형은 원과 같은 면적을 가진다. 결국 무한분할하게 되면 정사각형의 면적과 같은 원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관점은 수학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그는 곡선은 직선으로 비례관계로 할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곡선은 직선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이는 원의 세상을 사각형의 세상으로 본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며, 곡선은 직선과 일치한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미 그러한 주장은 현실적이지 못한 궤변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마치 실제의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제론의 역설’ 과도 같은 궤변이라는 것이다.
사실 현실에서 원의 둘레는 지름과 같이 직선과 같이 감지되고 확정되지 못하는 수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비례관계로 환원하여 본다.
이미 BC 1600년경 고대 이집트의 수학자인 아메스는 파피루스에 지름이 9인 원의 면적은 한 변의 길이가 8인 정사각형의 면적과 같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원과 방의 관계가 비례관계로 환원 된다고 본다.
한편 인류의 문명사에서 원방의 우주관은 필연적인 것처럼 보였다.
서양의 경우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원과 방의 조화로운 비례관계로 보는데, 이러한 사고방식은 미분과 적분의 수학을 낳게 하는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현실에서는 결코 원을 방으로 환원 될 수 없는 존재임을 15세기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곡선은 분명하게 직선으로 환원 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수학적으로 과학의 검증을 통하여 정립 되는 데는 천년의 세월이 필요하였다.
15세기 독일의 신학자 니콜라우스는 아무리 변을 늘려도 원이 될 수는 없다는 사상으로 반박했다. 정다각형은 아무리 무한수열로 원에 가깝게 한다고 해도 결국은 원이 아니며 원과는 다른 것을 의미한다.
사실 세상을 원 하나만으로 대변 할 수가 없다. 원과 방은 서로 종속적인 것이 아니라 병렬적인 관계이다. 이러한 사실을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방이란 기하학으로 말하자면 사각형이고, 이 사각형은 아무리 자기변신을 해도 원이 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세상은 원과 직선의 관계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원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극적인 세계관을 갖게 하는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결국 15세기에 이르러서야 세상은 간단하게 직선과 동그라미로 모두 표현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양극론의 세계관은 선지자들에게는 고대부터 인정되었으나, 민생들에게 광범위하고 신앙심으로 확립된 것은 바로 근대에 이르러서부터이다.
한편 고대인들은 우주를 신화적인 설명보다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천체들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기하학적인 우주 모델을 고안하였다.
우선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천문학을 살펴보자면, 지구는 움직이지 않으며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다고 보았다. 특히 지구를 중심으로 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우선 수메르 인들은 다음과 같이 고대 천문학에서 가장 발달, 하늘은 둥근 천장 모양이고 땅은 편평하다고 생각하였다.
< 바빌로니아 > <수메르 > <(이집트> < 그리스>
이집트인들은 편평한 땅, 별들이 매달려 있는 하늘은 몇 개의 높은 봉우리로 받쳐 있다고 보았다. 또 그리스인들은 지구는 평지라고 생각하였고, 그 위에 하늘과 지하세계가 있다고 믿었다.
인도인들의 우주관은 아래 그림처럼 엄청나게 큰 코브라 위에 거북이가 올라 타있고, 그 위에 세 마리의 코끼리가 인도를 중심으로 바다에 둘려 싸인 원반 모양의 대륙을 떠받치고 있으며, 다시 그 위를 네 마리의 코끼리가 올라 타 있으며 그 위의 주변에 태양, 달 그리고 별들이 돌고 있다고 했다. 그 위엔 신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다.
구약성서의 우주관은 육지의 여러 나라를 포함하는 대지는 전체적으로는 평탄하지만 국부적으로는 산, 계곡, 강 등에 의한 변화가 있고, 육지의 주변은 바다로 둘러 싸여 있다.
그 지상 세계는 원형이며, 중앙엔 팔레스티나가 있고, 다시 그 중심부에 예루살렘이 있다고 유태인들은 믿었다.
< 인도> <구약성서> <중국>
고대 중국의 우주관은 우선 이른바 ‘개천설’이라고 하는데, 하늘은 둥그스름한 우산처럼 되어 있고, 그 아래에 평평한 땅이 있다는 것으로, 기원전 2~3세기 때 형성됨으로써, 주비산경에 소개되어 있다. 다음으로, 후한의 천문학자이며 과학자인 장형의 혼천설이 있는데, 이는 하늘은 달걀 껍데기와 같고, 땅은 가운데의 노른자위와 같다고 보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른바 원방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우주와 자연의 변화하는 이치를 수로 환산하여 계산하기 시작하였던 바, 이를 수학으로 정립한 것이 바로 주비산경인데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기원전100년경에 작성된 것이라고 하는 주비산경은 내용은 짧으나 고대의 우주관과 천문과 역법에 대한 수학적 배경을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의 상권 1장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의 내용이 나온다.
옛날에 주공(周公)이 상고(商高)에게 물었다.
“은밀히 듣자하니 대부께서 수(數)에 밝으시다고 하던데, 옛적에 복희씨가 어떻게 하늘의 움직임의 도수를 정했는지요? 하늘이란 되(升)로 재어볼 수도 없고 땅이란 자로 재어볼 수도 없는 데, 어찌 숫자로 환산했단 말인지요?”
이에 상고가 대답했다.
“수(數)의 법칙이란 원과 네모에서 나왔지요. 원은 네모에서, 네모는 구(矩: 곱자, 모 ?)에서 나왔습니다. 또 구(矩)는 구구단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구(矩: 모, 조각)로 나누어보면 밑변(굽은 쪽)의 폭이 3이며, 높이(넓적한 쪽)가 4이고, 지름(기운 쪽)이 5입니다.
이윽고 그 바깥 길이로 네모로 만들고 한 조각을 한모라고 할 때, 다시 그 기반이 3, 4, 5를 이루고, 양 모가 각각 25인데, 이 숫자는 조각을 모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왕이 천하를 다스린 바탕이 이 숫자로부터 비롯했습니다.”
또 주공이 말하길 ‘숫자를 말함이 큽니다. 묻건 데 구(矩)를 쓰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묻자
이에 상고가 대답하기를,
“ 곧은 노끈으로 평탄한 길이를 재고, 비스듬한 길이로 높이를 재며, 뒤집어진 길이로는 깊이를 재며, 누운 길이로는 원근을 압니다. 둥그런 길이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거리를 합하여 네모를 만듭니다.
네모는 땅에 속하며, 동그라미는 하늘에 속하니,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서리가 집니다.
네모난 수는 전(典)이며, 네모에서 원이 나옵니다. 머리에 쓰는 갓으로 하늘을 본뜹니다.
하늘은 푸르고 흑색이며, 땅은 누렇고 붉습니다. 하늘을 숫자로 본뜬 것을 갓이라 하고, 푸르고 검은 것을 겉으로, 누르고 붉은 것을 안으로 하여 하늘과 땅의 위치를 묘사합니다. 이런 까닭에 땅을 아는 자를 지혜롭다 하고, 하늘을 아는 자를 성스럽다고 합니다. 지혜는 삼각형의 밑변에서 나오고, 삼각형의 밑변은 구(矩 : 거리 또는 모)에서 나옵니다.
대저 구(矩는 수에 불과하지만, 만물을 재단하고 통제하니 생각해야 할 바입니다 ”
그러자 주공이 탄성하기를 ‘아름답도다!’ 라 하였다.
그런데 사실 고대중국의 문명사에서 유교적인 철학자들은 원방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기하적인 우주모형을 가지고 수학과 과학적인 셈법으로 탐구한 전통은 매우 드물었다.
주로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원방의 세계관을 구축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일상적으로 관계되는 농사일과 하늘의 변화관계에 조차 점성술적인 방법이나 그야말로 주술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이거나 숙명론적인 운명론으로 대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일시현상이나 월식현상을 나라의 장래운명과 연결 지어 설명한다든지, 사건과 사고와 관련하여 설명하는데 이용하는 것이다.
더나가서는 백성들의 각자의 자기의 사회적인 신분이나 운명적인 것과의 관계식으로만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으로 이해할 뿐이기에, 그러한 현상을 통하여 농사일에 관련하여 과학적인 대비책으로 계산하지 못하였다.
우주가 도대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에 대하여는 그들이 전혀 연구하거나 관심가지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위의 주비산경은 고대 중국에 있어서 이 방면의 유일한 예외로 가치가 있다.
아무튼 주비산경을 통하여 우주가 원방의 기하우주모형의 개천설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 개천이라는 우주모형의 구조는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하고 대부분은 스스로 수치를 가지고 있다.
한편 고대인도의 우주모형에 대한 기록은 주로 푸라나스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인도의 성전이며 동시에 고대의 역사 서적이고, 백과사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구체적인 완성연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 안의 우주모델에 대한 개념은 학자들이 베다시대 즉 기원전1000년 전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매우 신기한 점은 중국의 주비산경의 개천우주모형은 상당히 조악한 수준이지만, 개천우주모형의 8개 특징은 모두 고대인도의 우주모형의 특징과 일치한다는 점이다.
고대인도의 우주모형은 주비산경의 개천우주모형과 놀랄 정도로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점에서 거의 모든 곳이 일치한다.
이를테면 주비산경은 태양광선이 사방으로 비치는 극한은 167,000리로 하였는데, 불경인 이른바 ‘입세아비담론’에서는 태양광의 경도는 7억2만1천2백 유순이며 주위는 21억6만3천6백 유순이라고 하였는데, 태양광이 비치는 반경이 유한한 고정수치를 지닌다는 점은 놀랄 정도로 일치한다.
이와 같이 인류의 각 문명사에서 참으로 신기하게도 숫자까지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그렇다면 지구가 태양둘레를 돌고 있는 것인 진실인가 아니면 태양이 지구둘레를 돌고 있다는 것이 진실인가는 별로 의미가 없다.
마치 오른손잡이를 진실로 보느냐 아니면 왼손잡이를 진실로 보느냐, 아니면, 시계방향을 오른쪽으로 하는 것이 과학이냐 왼쪽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 과학이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입장이 아니라 돌고 도는 과정에서 돌아가는 행로의 둘레가 얼마이고 그 각도는 어느 정도이고 그 돌고 도는 주기 시간은 얼마가 되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사실 지동설의 입장은 인류문명사에서 처음부터 견지하고 있었다.
다만 천동설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기만이고 거짓인가를 세상에 드러내 내보이며, 그 속내와 사고방식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가 폭로되었을 뿐이다.
이 말은 우주운행의 이치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사물을 자기중심적으로 보지 않는 것이고 항상 객관성을 견지하였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처음부터 천동설과 같은 입장을 가질 수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들은 중세의 천주교에서는 이른바 천동설을 사활적으로 고집했다고 하는 것으로 배워왔다. 그래서 당시의 진리를 발견한 코페루니쿠스는 천주교의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으며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진실을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며 오히려 천주교성직자들은 우주의 객관적인 법칙을 알고자 원하였던 것이고, 코페루니쿠스의 연구를 물심으로 지원하였다.
가장 과학적인 관점은 누구를 중심으로 누구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관계식으로 정립하느냐가 핵심적인 관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지동설과 천동설은 둘 다가 과학적인 관점이 아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지구의 갈 길을 가는 것이고, 태양은 태양의 갈 길을 가는 것이 정확한 답이라고 볼 수가 있다.
한편 오늘날의 모든 나라의 돈 혹은 화폐의 언어학적인 어원과 그 상징기호를 보자면, 신기하게도 원과 작대기의 형상인 이른바 원방의 철학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다.
이를 테면, 동양사회에서 화폐 단위의 어원은 바로 원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화폐 단위인 원은 한자 圓의 ‘둥글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며, 일본 엔(円)과 중국의 위안(元)도 같은 한자를 기반으로 기본 화폐 단위를 삼고 있다.
과거 한때 사용했던 '환'(圜)이라는 화폐 단위도 의미상으로는 '둥글다'라는 뜻으로 圓과 뜻이 상통한다.
그런데 화폐의 상징기호는 ₩인데 이는 원의 소리를 영어음절로 ‘WON’에서 ‘W’의 글자를 취하고 여기에 땅을 의미하는 작대기를 그은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는 반달모양의 두 개가 모인 것을 형상이다.
또 미국화폐인 달러의 어원은 영어대문자 D의 두 개가 되는 기호표시로 $의 상징으로 하고 있다. 즉 달러도 역시 원 과 작대기로 상징되고 있다.
한편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그의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신의 존재 없이 우주가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이 불붙었다.
그는 ‘우주를 창조한 빅뱅이 신의 개입으로 이루어져 있다기보다는 중력의 법칙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며, 우주는 무(無)로부터 스스로 창조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그가 의도한 진정한 의미는 창조론을 버리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론과 진화론의 통일 혹은 통합을 강조한 것이다.
즉 그를 포함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꿈꿔 온 '대통일이론'수립이 좀 더 다가왔다는 자신감의 선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는 우주의 생성과 변화를 단일한 원리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지금까지 인류문명을 대표하며 원방의 우주관을 기초로 한 이분법적인 세계관은 고대의 철학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하나의 관점에서 보는 원초적인 일극론으로 회귀하는 듯하다.
19세기 초 프랑스 물리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신이라는 가설은 필요치 않다'고 선언했다. 상대성이론을 창시한 아인슈타인도 1954년 한 철학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게 신이란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이들은 만물의 정확한 위치와 상태를 안다면 그 이치를 풀 수 있는 법칙도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런 연유로 우주의 원리를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우주와 관련해 가장 불가해한 부분은 우주가 완전히 이해 가능하게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라는 명언으로 요약했다.
호킹의 주장 역시 이런 과학적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그가 새 책에서 '신이 없다'며 내세운 근거는 태양계가 우주의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1992년 태양계와 흡사한 행성시스템들이 발견되면서, 지구가 인간을 위해 설계됐다는 기독교식 천지창조론의 근거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만일 신의 의도대로 우주가 창조됐다면, 인간이 살기 적합한 환경을 조성한 태양계와 유사한 태양계가 수백 개나 우주에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빅뱅이 중력의 법칙에 의한 필연적 결과이듯 인간과 지구는 신이 창조한 유일하고 독특한 세계가 아니라, 중력 등 몇 가지 물리적 법칙이 미묘하게 어우러져 만들어낸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핵심은 결국 이른바 ‘발가락이론’이라고 하는 논리이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이란 바로 모든 사물의 공통된 이치를 의미하며, 그 이치는 물리학적인 법칙이며 그 핵심이 바로 중력으로서 우주대통일이론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의 철학적인, 혹은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논리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검증하기에 앞서서 참 재미나고 신기한 일은, 그의 주장은 이미 3 천 년 전의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한 이른바 일자론과 매우 일치하는 관점이라는 점이다.
사실 파르메니데스의 일극론은 그의 제자인 제논에 이르러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궤변적인 것이라고 파산선고가 내려진 것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극론의 본질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소망하는 우주 대통합의 이론적인 접근과 일치하는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주대통일 이론과 같은 일극론의 과학적인 관점과 입장은 올바른 것인가?
현실은 유일한 절대성을 강조하는 신도 스스로가 홀로서기를 거부하고 삼위일체로 존립하고 있는 것이고 보면 아직도 생소하고 어색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과연 우리 선조들이 세계사에서 유래가 드물게 오랫동안 독자적인 문명과 문화를 구축하고 세상을 선도해오면서 세계인들에게 내놓을 만한 독창적인 우주관은 있기는 한 것인가?
우리의 궁금한 점은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