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대강절 전 한 주간 주님과만 지내는 시간을 가
지려고 혼자 조용히 기도할 수 있고 호젓이 걸을 수
있는 산이 있는 곳에 머물다 오곤 합니다.
올해는 처음 가보는 가평의 필 그림 하우스라는 곳에
서 한 주간을 지냈습니다.침묵과 묵상으로 영적 순례
의 길을 걷는 영적 순례자들을 위한 집입니다.
매일 오전에는 관상 기도실에서 내내 침묵으로 기도하
고 말씀을 묵상하고는 오후에는 수덕산 산책길을 천천
히 묵상하며 두 시간쯤 걸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겨울 산을 깊은 고요 속에서 온전히 주님
과만 동행하는 것 같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수요일에는 눈이 내렸고 목요일은 날씨가 맑고 화창해
서 산의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정상까지 올라갈 마음을 먹고
등산복과 등산화로 무장을 하고 산행에 나섰습니다.
온 마음을 주님께 집중하고 고요 중에 들려주실 주님
의 말씀을 기대하면서 산길을 걷고 있는데 산 중턱쯤
에 길이 어지럽게 파헤쳐져 있었습니다.
왠지 불안한 마음으로 산을 올라가는데 그리 멀지 않
은 곳에서 짐승이 짖어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곧 가까운 곳에서 나무 가지들이 꺾이는 소리
와 상당한 무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짐승을 보지도 않고 그냥 멧돼지라고 판단했습니다.
주님과만 대화하며 누리던 내적 고요와 평안은 사라지
고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엄습했습니다.짖어대는 소리
와 발자국 소리에 마음이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두려움으로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고요와 침묵
가운데 드리던 기도는 내던져 버리고 " 주님 지켜주세
요.도와주세요." 울부짖듯이 이런 기도를 하면서 미끄
러지고 넘어지면서 길도 아닌 곳으로 미친 듯이 내려
오는 길을 찾아 달려 내려왔습니다. 참 부끄럽고 수치
스러웠습니다. 짐승을 본 것도 아니고 그냥 흔적과 소
리만 들었을 뿐인데 이렇게 안정과 평안을 잃고 두려
움 가운데 빠져버리는 것이 제 영적인 수준인 것을 확
인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삶에서 고난이라는 짐승을
만나면 더 허둥대고 두려워하겠지? 싶어 믿음 없음에
대한 부끄러움 이었습니다.
첫댓글 진솔하신 목사님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