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님이 헬라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하는 과정을 <클로로스>의 예를 들어 검증해 드리겠습니다.
아담님은 <청황색 말>에서 <청황색>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클로로스>인데, 이 <클로로스>의 뜻이 녹색을 띤, 초록, 연녹색 이라고 정의하고, 이것은 풀색이며, 풀은 성경에서 백성을 상징한다고 하면서 풀은 마르는 것이니 그러므로 <클로로스>는 <죽은 자>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클로로스>가 녹색을 띤, 초록, 연녹색이라고 정의하더니 이것을 갑자기 <풀>이라고 논리적 비약을 하고, 또 다시 <풀>은 <백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논리적 비약을 하더니, 또 다시 <죽은 자>라고 비약에 비약을 하였습니다.
한글성경이 헬라어를 잘못 번역한 것이라고 장막을 치는 것도 잊지 않으시면서 말이지요!
<클로로스>는 ‘연한 잔디색을 띄고 있는’이라는 의미의 <클로에>에서 유래된 말인데, 식물의 엽록소를 <클로로필>이라고도 하고, 독가스로 사용되는 염소를 <클로로스>라고도 합니다. 모두 다 <연한 녹색>을 띄고 있는 것에서 명명된 것입니다. 엽록소는 생명을 불어넣는 반면 염소가스는 생명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클로로스>는 연한 녹색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색과 대비되는 창백하고 파리한 색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클로로스>는 색깔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풀>을 상징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 근거가 없는 논리적 비약인 <사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풀>이 <백성>을 의미한다는 비약도 <사기>입니다.
<풀은 마르고>라는 말씀에서 <풀>인 <백성>이 <죽은 자>라고 비약하는 것도 <사기>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클로로스>의 바른 뜻은 무엇일까요?
계6:8에서 <클로로스>의 용례는 <푸르딩딩하고 누르팅팅한>색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백한 시체의 색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이블렉스의 <클로로스>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5515 클로로스 chlo-ros
푸른, 누른빛의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형용사 클로로스(Homer. 이래)는 클로에(%743: 연한 푸른 잎이나 풀)에서 유래했으며,
(a) '초록의', 식물들의 '푸른'
(b) '누르스름한, 누른 빛, (건강한 사람과 대조되는) 병든 사람의 색깔'(Hippocr.)을 의미한다.
2. 70인역본의 용법.
형용사 클로로스는 70인역본에서 푸른 풀이나 초목에 대해 사용되었다(창 1:30; 창 2:5; 신 29:22).
3. 신약성경의 용법.
형용사 클로로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클로로스는 초목에 대하여 '푸른'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 막 6:39,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② 계 8: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③ 계 9: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b) 클로로스는 계 6:8에서 말에 대해 '누런 빛을 띤'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병든 자가 누런 빛을 띤 것과 같이 사망이야말로 그러했다: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넷째 말이 등장하면 이 땅의 1/4에 해당하는 생명들이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아담님은 일반인들이 헬라어에 무지하다는 점을 이용하여 헬라어를 가지고 몇 번의 비약으로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개시켜 버렸습니다.
이런 류의 말씀을 살짝 비트는 수의 <사기술>은 은혜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훼방하고 왜곡하고 비틀어서 자기 관념과 신념에 침착하게 만드는 아주 위험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아담님의 말씀에서 예수님이 <풀>과 같은 인생으로 오셨다고 하셨는데요, 예수님은 아담님이 말씀하시는 바처럼 <시들어 죽을 인생>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사망에 메여있을 수가 없으셨기 때문에 3일만에 부활하셨고 그 몸도 썩음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시들어 죽은 인생이 아니셨습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시16:10).”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택한 백성의 모든 죄의 대속물입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속죄제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십자가에서 예수님처럼 죄에 대하여 죄값을 치르기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로 믿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니 자신의 죄성을 발견하였을 때 그 죄성을 처리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찾게되는데, 가장 심각한 방법이 아담님처럼 기록된 말씀을 변개하여 자신의 신념을 우상화하는 방법입니다.
또 하나, 계6:5 말씀에 나오는 <저울>은 아담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저울에 달아보아 주님께 미치지 못함을 알게 하려는 저울이 아니고, 넘치지 못하게 정밀하게 재는 저울입니다. 부족함을 달아보려는 저울이 아니라(단5:27), 넘침을 감시하는 저울인 것입니다(레26:26).
네 생물이 예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는 것이며, <테타르토스>, 1/4을 땅 전체를 말한다고 하는 것이며......
다 아담님의 개인적 사상에 불과한 것이며 기록된 것과는 아주 상반되는 것들입니다.
아담님!
아담님의 도전은 참으로 위대합니다만, 나의 죄를 자각하고 그 죄를 대적하고자 하는데는 유익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것이 너무나 한심스러워 보일 것입니다. 믿으면 되는데 믿지 않고 다른 방법을 찾고 있으니 말이지요!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사망의 자식에게서 생명의 자식으로 옮겨졌습니다. 완전한 신분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또 강조하셨던 바입니다.
나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죽을 수도 없고 설령 죽는다 하여도 나의 죄가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죄악의 구렁텅이로 더 끌려 들어갈 뿐입니다. 사람의 사상과 행위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골2:23).”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자기의 유익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버리시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려 봅니다.
첫댓글 사53:2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삼상2:3 >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단5:25 >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
계6:5의 저울의 용도는 아담님이 제시하신 저울의 용도가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계6:5에 나오는 저울의 용도는 레26:26 말씀에 나와있으니 그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레26:26)."
검은색 말이 등장하면 이 땅에 엄청난 기근이 임합니다.
그래서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의 시기가 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 1데나리온은 장정 1사람이 하루 일하고 받는 품삯을 말하고,
한되, 석되 하는 "되"는 <코이닉스>로서 1사람의 하루 식량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대기근의 시대가 오면 장정이라도 겨우 자기 목숨 연명할 정도의 식량 밖에 얻을 수 없게 된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식솔이 딸린 경우 한 사람의 식량으로 그 식솔들이 나눠 먹으려면 저울에 달아서 나눠먹어야 할 것입니다. 배부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밀이나 보리를 파는 자들도 코이닉스로 달아서 넘치지 않게 주려면 저울을 잘 사용하여야 할 일입니다.
셋째 인이 떼어지면 등장하는 검은 말은 이토록 혹심한 대기근이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데나리온도 얻지 못하는 자들은 자식을 잡아먹는 끔찍한 일도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나를 달아보아 주님께 미치지 못하는 것을 재어본다? 그런 저울이 아닙니다.
앞의 (3)의 글에서 보니 <쥐고스>, 저울도 저울이 아니라 멍에라고 아예 변개를 하셨군요!ㅎㅎㅎ
자신의 사상을 위하여 헬라어의 사전적 의미를 마음대로 가져다 붙이고는
한글 성경의 번역이 틀렸다고 하시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섣부르게 헬라어를 보신 것 같습니다.ㅠㅠ
@crystal sea 님의 말대로라면 청색 황색 같이 쓰엿으니 쥐고스도 저울 멍에 같이 써야 되는것 아닌가요
자신의 사상를 위하여 헬라오의 사전적 의미를 마음대로 가져다 붙이고는 님은 맞고 다른 사람은
틀리다 하면 일관성이 잇겟습니까 .. 이거이야 말로 곡학아세..전형적인 내로남불 아닙니까
도데체 어쩌자는 것입니까 참으로 답답하도소이다 사돈 남말하듯 그러면 되겟습니까 날씨도 더운데..
성경 어디에 검은 말이 등장하면 엄청난 기근이 온다고 나와 잇습니까
그렇게 성경을 유추하고 그럴것이다해서 짜 맟춰야 되겟습니까
이런 것을 두고 가상 소설을 슨다고 하는 것입니다..저울에 달아서 나눠 먹는다니 기가 맥힙니다
@아담 <클로로스>의 색이 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단색>이 아닙니다. 푸르딩딩 누르딩딩한 색을 <클로로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쥐고스>는 멍에라는 의미로도 사용이 되었고, 저울이라는 의미로도 사용이 된 단어입니다.
히브리어 <모즈나임>을 번역한 <쥐고스>는 척도, 저울의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한 저울을 사용하라고 하기도 하셨습니다(레19:36).
저울의 뜻으로 사용이 되어야 할 곳에서 멍에라고 변개하시면 안됩니다.
저울도 사용되는 용도를 바르게 적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밀 1코이닉스에 1데나리온이요.... 하는 말씀의 뜻이 대기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장정이라도 자기 품삯으로 자기 양식밖에 살 수 없는......
@아담 한가지는 알려 주어서 감사합니다 님의 "클로로스는 연한 잔디색을 띄고 잇는
의미의 클로에"에서 유래가 되엇다는 말로 더욱 제 글에 확신을 갖게 되는 군요
@아담 그렇지요~!
연한 잔디색에는 누르딩딩한 색이 들어있음을 부러 보지 않겠죠?
이것을 성경은 강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시81:12)."
@crystal sea 그렇습니다 바르게 적용을 하여야 합니다 바로 셋째인서 처럼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님처럼 성경에 나와 잇지도 않는 말로 혹세 무민 하면 안됩니다 공상 소설은 혼자 머리속으로
상상하고 그래야지 공개적으로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것입니다 대 기근이 온다는 말이 성경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말이 없는데 자기가 그럴것이다 가상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면 되겠습니까
@아담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계6:6)."
저울을 가진 자가 장정 한 사람이 하루 품삯으로 자기 하루 양식 밖에 살 수 없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담님은 <쥐고스>를 <명에>라고 해석을 하시니 대기근이 안보이게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울도 주님께 미치지 못하는 것을 달아보는 저울이라고 보시니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빵 하나를 구워다가 저울에 달아 나눠먹는데 배부르지 아니할 것이다(레26:26) 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울림을 주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대기근을 지우고 새로운 성경이 씌여지는 것입니다.
아담성경이 등장하는 것이지요!
@crystal sea 제가 유래가 궁금햇습니다 주님의 연한 순같이 오셨다는데 궁금햇었지요
그런데 님이 그것을 확실하게 의미부여를 햇다는 것입니다 푸르딩딩이 아니라..
연한 풀 같이 오신 주님이지 성경은 푸르딩딩하게 오신 주님이라고 나오지 않앗지요
자꾸 성경을 외곡하실려고 그러는데 이제는 주님이 오신것도 푸르딩딩하게 오셧다고 하면
되겟습니까 아무리 헬라어를 잘 안다고 해도 제대로 알아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담 그러면 연한 잔디순이라고 해야 겠네요? ㅎㅎㅎ
연한 풀이 아니라 연한 포도나무 순 같이 나셨다는 뜻입니다.
앞서 (2)편에선가? <알로스 힙포스>도 <붉은 다른 말>을 <다른 붉은 말>이라고 말을 바꾸었던데 의도적인건가요 실수인건가요?
말(馬)은 말(馬)인데, 다른 색깔의 말(馬)이라서 <알로스 힙포스>를 쓴 것입니다.
말은 말인데 다른 말이라는 뜻이죠!
이 둘은 본질상 추구하는 바가 같은 것이 아니라,
흰말은 정복과 승리를, 즉 전쟁을,
붉은 말은 화평을 제하는 일, 즉 미움과 다툼을 일으키는 일로
서로 맡은 일이 다릅니다.
이렇게 변개해서 한글성경이 삼천포로 빠졌다고 주장을 하시니 의도적인 건가요? 실수인 건가요?
@crystal sea 님과의 대화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더 이상 애기해봐야 서로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겟습니다 이쯤해서 나갑니다 끝으로 한말슴 드린다면 성경은 복음입니다
때 문에 성경은 복음으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쁜 소식이 됩니다
때문에 계시록도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합니다 복음으로 계시록도 풀어져야합니다
님에게는 처음 듣는 생소한 글 일 것입니다 그래서 님의 것을 내려 놓기가 어려울줄
압니다마는 부디 제 말을 흘려버리지 말고 다시 한번 되새겨 보기를 간곡히 권면합니다
님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하심이 잇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게십시요
@아담 아담 성경을 쓰셔야 할 지경이시더군요!
이단은 그렇게 탄생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따라가는 것이죠!
역쉬 크리스탈님 정곡을 찌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