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두이
이제니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라면 굳이 떠날 필요가 있을까. 공원은 자란다. 무럭무럭 자란다. 공원 밖은 공원, 공원 밖은 공원, 공원 밖은 공원. 언제부터 우린 이곳에 갇혀 있었던 걸까. 너무 넓어 갇힌 줄도 모르겠구나.
눈을 감으면 슬픈 노래처럼 두이의 목소리가 어른거린다. 두이, 내 검은 망막의 스크린 위에서 뛰노는 진회색의 작은 털뭉치, 오래전 잃어버린 갈색의 책,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는 어두운 다락방. 떠나기 전 두이는 소심하게 몇번 공중제비를 돌았다. 두 귀를 날개처럼 펄럭이면서. 마지막이라는 신호로. 나는 작고 진실하고 잘 우는 것들에만 귀가 열린다. 우린 너무 가까워 들리지 않는 귓속말 같구나.
비밀의 사람 같은 얼굴로, 라일락이 돋아난 얼굴로,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두이의 벤치에서 두이가 바라봤던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인생이란 결국 두 개의 의자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일. 이 의자에서 저 의자로, 저 의자에서 이 의자로. 네 목소리 위에 내 목소리를, 내 목소리 위에 네 목소리를 덧입혀보는 일.
이제 남은 일은 말하지 못한 말들을 삼키거나 뜻 없는 문장들의 뜻 없는 의미를 뒤늦게 알아차리는 일뿐. 공원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하염없이 걸으면서. 울적하고 피로한 제자리걸음으로. 공원 밖은 공원. 공원 밖은 공원. 공원 밖은 공원. 무럭무럭 지상의 공원들이 자라나는 밤. 닿을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두이라고 부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