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쇼군토탈워 2 DLC인 사무라이의 태동을 몇 번 했는데 하다가 생각난 것들 위주로 적었습니다.
인세이(원정)
헤이안 시대 일본은 덴노의 황권이 약화되면서 기존 외척인 후지와라의 섭관정치가 이어지다가, 70대 덴노인 고레이제이가 후사 없이 죽자 모후가 후지와라가 아닌 동생이 고산조 덴노로 즉위하면서 후지와라의 외척 독식이 깨지게 됩니다. 고산조 덴노는 재위 4년만에 아들인 사다히토에게 양위했고, 사다토가 시라카와 덴노로 즉위하는데 상황으로 물러난 건 후지와라의 복귀 가능성에 대비해서 미리 양위를 해서 아들에게 황위를 확실하게 보장해 주려고 해서였습니다.
부황보다 재위 기간과 수명이 길었던 시라카와 덴노부터 인세이가 자리잡기 시작하는데, 즉위 초만 해도 고산조 덴노의 모후만 후지와라가 아니었을 뿐(아예 인지도 없던 가문은 아니고 황족이지만 어쨌든 모후가 후지와라 사람은 아님) 아직 후지와라의 세도는 살아 있었습니다. 시라카와 덴노가 재위 12년 만에 양위하고 아들 호리카와 덴노가 즉위한 뒤 1011년에 당시 관백이던 후지와라 모로자네가 죽고 가주가 된 모로미치가 젋었기 때문에, 예전에 출가해서 불교세력의 지지를 얻은 시라카와 법황(출가한 덴노)보다 권위가 밀리자 손자인 도바 덴노의 후견인을 맡는다는 명복으로 법황의 권한이 강해지게 됩니다.
이후 도바 덴노도 할아버지에 의해 형인 스토쿠 덴노에게 양위한 뒤 상황+법황이 되며, 자기 아들인 나리히토를 형의 양자로 넣은 뒤 형을 퇴위시키고 나리히토를 고노에 덴노로 추대해서 할아버지를 본받게 되며 도바 덴노의 손자인 마사히토도 고시라카와 덴노로 즉위하면서 선황들을 본받아 섭정에 맛을 들이게 되는데 무사세력의 등장과 함께 이후 정치 구도가 바뀝니다.
사무라이의 출현, 호겐의 난과 헤이지의 난
헤이안 시대 일본은 지방마다 영지를 가진 호족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호족들이 영지를 지키려고 고용한 무사집단이 교토의 조정에도 용병으로 불려가게 되면서 사무라이라 불리게 되며 훗날 겐페이 전쟁을 벌이게 될 겐지(미나모토)와 헤이지(다이라)가 성립됩니다. 사무라이가 경호 외에 내전에도 쓸모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1156년(일본 연호로 호겐 원년)에 일어난 호겐의 난이었습니다.
호겐의 난은 고노에 덴노가 후사 없이 죽자, 스토쿠 상황은 자기 아들인 시게히토를 후계자로 밀었으나 도바 덴노가 자기 아들 중에서 마사히토를 고시라카와 덴노로 추대하자 내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명분은 스토쿠 덴노가 앞섰는데, 마사히토가 황태자나 황태제로 추대받는 절차 없이 바로 즉위한데다 정상적인 계승 순서라면 고노에 덴노의 양자인 나리히토가 앞서는데 도바 덴노측에서 스토쿠 덴노의 인세이를 막으려고 멋대로 마사히토를 추대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바 덴노 진영에서는 힘이 곧 정의라는 논리를 내세워 스토쿠 덴노 측의 주장을 일축했고 결국 스토쿠 진영의 선제공격으로 호겐의 난이 일어납니다.
교토의 공가와 무가가 정확히 반씩 나뉜 이 내전에서 겐지는 미나모토 요시토모, 헤이지는 다이라 기요모리가 가세한 도바&고시라카와 진영이 스토쿠 진영을 축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후 1159년에 고시라카와 덴노가 아들인 니조 덴노에게 양위하고 법황이 되면서 이번에는 법황파와 덴노(천황)파의 2차 내전이 벌어지는데 바로 헤이지의 난입니다. 여기서 천황파인 기요모리가 이기면서, 법황파인 요시토모는 도망치다가 배신한 부하에게 죽게 되며 기요모리의 헤이케 정권이 출범합니다.
헤이케 정권
태정대신이 된 기요모리는 집권 후 요직에 자기 가문 사람인 이세 헤이지 사람들을 앉히면서, 처제인 시게코를 법황의 후궁으로 보낸 뒤 그 후궁의 소생인 노리히토가 다카쿠라 덴노로 즉위하자 자기 딸인 도쿠코를 황후로 보냈습니다. 도쿠코 소생인 외손 도키히토가 1178년에 태어나자, 1년 뒤인 1179년에는 다카쿠라 덴노를 퇴위시키고 도키히토를 안토쿠 덴노로 즉위시키면서 법황이 설치한 원을 폐지합니다..
또한 교토 주변에 자리잡은 기존 세력인 황족, 공가, 사찰 세력의 영향력이 덜한 곳에 새 수도를 마련하려고 후쿠하라(고베)를 세우고 천도했지만, 반발이 거세서 교토로 환도하게 됩니다. 기요모리 생전부터 헤이케 정권에는 여러 불안요소가 남아 있었는데, 우선 뒷방 신세였지만 그래도 영향력은 남아 있던 법황이 있었고 요시토모의 아들인 요리토모, 요시쓰네 및 겐지의 다른 분가 출신인 미나모토 요시나카였습니다. 1177년에는 승려 슌칸의 저택에서 법황파가 기요모리를 몰아낼 음모를 꾸미다 발각된 시시가타니 사건이 일어났고, 1180년에는 법황의 셋째아들인 모치히토왕이 전국의 겐지에게 헤이케를 타도하자는 격문을 보내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우지 강변에서 헤이케군에게 토벌당하게 됩니다. 모치히토왕의 거병 자체는 금방 진압됐지만, 격문을 보고 요리토모와 요시나카가 유배지인 이즈 국와 시나노 국에서 궐기하며 겐페이 전쟁이 시작됩니다.
겐페이 전쟁
전쟁 초반에 기요모리가 1181년에 병사하고, 아들인 무네모리가 정권을 물려받지만 그는 아버지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겐지군에게 밀리게 됩니다. 요리모토와 요시나카 중에선 요시나카의 교토 입성이 빨라서, 호쿠리쿠에서 북쪽으로 돌아서 진군한 요시나카가 교토에 도착하자 무네모리와 안토쿠 덴노는 황권의 상징인 삼종신기를 챙겨 아직 헤이케 세력이 강했던 서일본으로 도주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헤이케가 추대한 안토쿠 덴노를 대신할 다음 천황을 내세우자는 거까진 의견이 맞았던 법황과 요시나카가 다음 덴노를 누구로 앉힐지를 두고 마찰을 빚게 됩니다. 요시나카는 모치히토왕의 아들을 추천했지만 법황은 안토쿠 덴노의 이복동생인 다카나리를 고토바 덴노로 즉위시킵니다. 그 외에 발생했던 문제는 요시나카 군대의 규율과 교양이었는데, 요시나카는 머리가 좀 굵을 때 유배를 간 요리토모 및 요시쓰네와 달리 교토 기준으로 교양이 모자란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요시나카는 법황이 그를 대신할 다른 겐지로 점찍어둔 요리토모가 보낸 요시쓰네의 군대와 싸우다가 죽게 됩니다.
한편 서쪽으로 후퇴한 헤이케는 요시나카의 겐지군을 해전에서 막았지만, 요시쓰네의 병력은 막지 못하고 패전을 거듭하다가 시모노세키 남쪽인 단노우라에서 남은 병력이 전멸하고 안토쿠 덴노를 따라온 헤이케 일가가 파도 속에 있는 도읍을 찾아 떠나며 무너지게 됩니다.
전후 요리토모는 직계 승계를 목적으로 요시쓰네를 포함해 자신이 속한 카와치 겐지 일가를 숙청하지만, 막상 후계자가 된 아들인 요리이에와 사네토모는 골육상쟁을 벌이다가 외가인 호조 가문에게 실권을 뺏기고 요리토모의 자손은 손자 대에서 끊기게 됩니다. 요리토모의 장인인 호조 도키마사의 아들인 호조 야스토키는 후지와라의 섭관과 비슷한 집권(싯켄) 체제를 세우고, 명목상 추대한 쇼군을 대신해 실권을 행사하면서 상황이 된 고토바 덴노로부터 받은 도전인 조큐의 난을 진압하면서 덴노는 명목상 지도자로 추락하게 됩니다.
관련 군키
<호겐모노가타리(保元物語)>: 호겐의 난
<헤이지모노가타리(平治物語)>: 헤이지의 난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 헤이케의 몰락을 다룬 군키. 2000년대 초반에 <헤이케 이야기>로 전체 10권짜리 한 질로 번역됨. 2022년에 일본에서 11화 분량 TV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함.
<기케이키(義経記)>: 미나모토 요시쓰네의 일대기를 다룬 군키. 2005년쯤에 국내에도 <요시츠네>로 번역됨
첫댓글 겐페이전쟁의 교훈 : 후환은 남기지 말고 다 죽여버려야 하지만 진짜 다 죽여버리면 큰일난다
요리토모가 그렇게 살아나서 그런지 정적들을 숙청할 때 사정을 봐 주지 않았죠. 고후쿠지&도다이지를 불태운 다이라 시게히라를 처형할 때를 보면 별다른 저항없이 생포했음에도 처형을 택했고 오슈 후지와라의 수장인 야스히라가 요시쓰네를 손절했음에도 그냥 밀어버렸죠. 야스히라의 아빠인 구니히라가 생전에 이 사태를 예견하고 요시쓰네를 받아주면서 같이 가라고 했건만... 자기 혼자 살겠다고 귀담아듣지 않았죠. 그 요리토모가 봐준 헤이케가 한명 있긴 한데 자기를 구명해준 사람 아들이라서 봐 줬고 그 헤이케는 조용히 살다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가까운 친척을 진짜 다 죽여서 요리토모의 아들대에서 정말 큰일나게 됩니다. 요리이에는 외가인 호조의 발호를 막지 못해 암살되며 사네토모는 정치가 말고 시인을 했으면 대성했을 텐데 쇼군이 될 시점에 이미 바지사장이었고 조카(요리이에의 아들 구교)에게 암살되면서 요리토모의 자손은 손자 대에서 끊깁니다. 그러자 처가인 호조 가문에서 적당한 공가 사람이나 황족을 바지 쇼군으로앉히고 쇼군의 대리인인 집권(싯켄)으로 실권을 잡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