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마음으로
어디에도 주눅들지 않을 삶을 살자하였건만
그들이 떠난 빈자리에서
아직 당신들의 그 모습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해 속내만 끓이고 있답니다.
경기대학 박 수경 교수의 글을 옮기면서...
나와 나라
이용호(당시 35세) 씨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분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청년 문화'를 꽃피워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나라'가 많이 늙었다. 늙음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늙음은 그 연륜을 후손들에게 자양분으로 내어주고 스러져야 한다. 스러질 때 스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꼴이 우리 '나라' 사람들의 꼴이다. 스러질 때도 아닌데 스러질 것 같은 것이 또한 우리 '나라' 사람들의 꼴이다. 그러니 '나라'가 늙었다. 늙으신네들은 '어르신'이 되지 못하고 '어린 아이'처럼 다툰다. 젊은네들은 푸른 기상을 갖지 못하고 싹이 노랗다.
그래픽디자이너였던 이용호 씨가 그리고자 했던 그래픽은 푸른 정신이었다. 푸른 '나라', 푸른 기상의 '청년'이 그가 디자인하고 싶었던 '나라'와 '나'의 모습이었다. 이용호 씨와 술을 마시고 다투었던 일이 있었다. 그 푸르름을 이루는 방법론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었다. 나는 학문과 교육을 통한 개개인의 각성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이용호 씨는 '청년 문화 운동'의 방식으로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돌이켜보건대, 양자는 상보적이어야 한다. 이론과 실천이랄 수 있다. 우리의 바람은 '푸르른 데'서 어울려 놀았다.
이용호 씨가 찾고자 했던 발해는 푸르른 나라였고, 푸른 기상이었다.
이덕영(당시 49세) 선장님은 후발대로 오셨다. 장철수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분에게서는 농부의 내음새가 났다. 들꽃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꽃씨를 뿌리는 마음, 꽃을 가꾸는 마음, 그 꽃을 내가 보지 않아도 누군가 그 꽃향기를 맡도록 땅에 씨앗을 뿌리는 마음이 농부의 마음이다. 이덕영 선장님에게 나라는 '땅'이다. 땅에서 나서, 땅에서 자라, 땅으로 돌아가는 '나'를 찾아주셨다. 땅은 땅만 땅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 있는 '나'가 있는 곳은 어디나 땅이라고 일러주시는 듯하다. 그래서 바다도 땅이고, 하늘도 땅이다.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은 무슨 꽃을 심어 무슨 냄새를 풍기고 있는가? '들꽃'이라고 하셨다. 이름 없는 꽃이라도 저 홀로 피었다 지는 그 생명이 수수천년 이 땅을 지켜온 동포들이다. '남'에게 땅을 내어주어도 꽃들에게는 국경선이 없다. 이덕영 선장님은 우리에게 '나라'와 '나'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생명을 살리는 마음으로 온누리에 퍼져나가라고. 그윽한 들풀 같은, 들꽃 같은 냄새를 만방에 피워내라고. 그 땅이 모두 내 나라가 아니겠느냐고.
농부는 남의 땅을 빼앗지 않는다. 농부는 제 땅을 소중히 지킬 줄 안다. 생명을 기를 줄 모르는 이에게 땅을 함부로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 독도가 그렇다. 지켜야 하는 것은 땅이기도 하지만, 생명을 기를 줄 아는 마음이다. 농부의 마음, 농부의 냄새를 지니기를 그 분이 당부하시는 것만 같다.
이덕영 씨가 그린 발해는 생명을 기를 줄 아는 나라였고, 생명을 기르는 노동의 땀 냄새가 나는 사람들의 나라였다.
장철수(당시 39세) 선생님을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하루는 발을 절며 내 방에 찾아오셨다. 발목을 삐신 게다. 다급한지라 어쩔 도리가 없다. 침을 놓아드리겠다고 했다. 송곳을 망치로 두들기고 불에 달구고 하여 억지 침을 만들어 놓아드렸다. 또 며칠이 지나서는 팔에 깁스를 하고 오셨다. 뗏목 작업을 하던 중 밧줄에 손가락 마디뼈를 다치셨단다. 그 분의 털로 덥수룩한 모습이 떠오르고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박 선생님, 나라꼴이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지요?"
"어디 하루 이틀의 일이었겠습니까?"
그 분은 박현 선생의 <한반도가 작아지게 된 역사적 사건 21가지>(두산동아, 1997)라는 책을 읽고 계셨다. 해상왕국이었던 백제의 멸망, 청해진의 폐쇄, 발해(대진국)의 멸망으로 인한 해상지배권의 상실을 안타까워 하셨다. 21세기는 우리 '나라'가 해양국가로 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그 분에게 발해는 그 해양국가의 꿈을 간직한 우리 겨레의 역사였다.
"어찌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이리 저리 갈라져서 싸우고 있는지 한심스럽습니다."
"인류가 쏟아놓은 온갖 쓰레기가 한반도에 그득하지요."
"그래서 이번 항해에 모두 뗏목에 싣고 떠나렵니다. 모든 쓰레기들 동해에 묻어버리고 발해의 기상을 싣고 돌아가렵니다."
"동해가 오염되겠군요."
"허허허, 그렇게 되나요?"
그나마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
"모두 싣고 떠나서 가지고 들어가세요.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나라를 항해하는 것이겠지요. 우리 나라의 모습을 있는 대로 보고, 탈난 곳을 바로 알아내서, 스스로 고쳐내야지요. 그리고 그 힘으로 병든 세상을 고쳐주는 민족이 되어야겠지요."
"맞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에서 많은 것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실학의 의미를 다시 보게 되었고요. 실학사상을 다시 일깨워야겠어요."
"예, 실사구시 해야지요. 이용후생도 해야하고요. 그 뗏목에 '동학'(東學)을 함께 싣고 떠나주시면 어떠할는지요? 제가 이곳 러시아에 오면서 달랑 들고 온 것이 '동학'이랍니다."
"그렇군요. 실학과 동학이라!"
장 선생님은 서른 아홉 해를 온몸으로 사셨다. 1998년 1월 21일자 그 분의 마지막 항해 일지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6:10 추위로 바다의 즐거움은 덜하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시작하자. 그래야만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다를 마음껏 안고 싶던 내게 부상은 30대의 마지막을 정리시키고 있다. 빨리 탈출하고 싶다. 갑자기 눈보라가 치고, 주위는 이내 깜깜하다. 파도가 또다시 발광을 한다. 방황했던 30대. 벌거벗고, 갖은 땟자국을 이 바다에 던지고 싶다. 사랑했던 30대. 잘 가시오.'
장 선생님은 그 기록을 피로 썼고, 나는 그 글을 눈물로 읽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공동의 善>이라는 그의 글에서 그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인간에게 3가지 고귀한 액체가 있다. 피는 생명이자 눈물은 사랑, 땀은 노동으로 상징된다. 피는 자신을 지탱하는 원천이자 이를 지키기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고, 눈물은 감정의 표출로 투쟁하는 것이자 감정의 표출로 문화를 빚어 만드는 삶의 옹달샘이며, 땀은 신성한 노동의 대가로 인간의 가장 빛나는 가치인 것이다.'
피는 생명이라 했다. 이덕영 선생님의 생명이다. 눈물은 사랑이라 했다. 이용호 씨의 문화이다. 땀은 노동이라 했다. 임현규 씨의 실천력이다.
임현규(당시 27세) 씨는 아프리카를 비롯해 여러 나라를 단신으로 여행한 탐험가이다. 나는 그를 처음 본 순간 그의 독특한 매력에 이끌렸다. 단단한 체구에 길게 묶어서 엉덩이까지 늘어뜨린 머리채가 눈에 선하다. 그의 말버릇이 하나 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는 생사를 건 항해 도중 무선 교신을 하면서도 늘 바다가 '아름답다'고 했단다. 참으로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출항을 하기 이틀 전이다. 12월 28일 임현규 씨와 밤새 술을 마셨다.
"박 교수님, 세상은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현규 씨가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시는 게지요. 현규 씨와의 만남을 아름답게 새겨 두렵니다."
"박 교수님, 제가 머리카락을 왜 안 자르는지 아십니까? 이 머리카락이 이만큼 길렀을 때는 어디서 무엇을 했고, 이만큼 자랐을 때는 또 무엇을 했고 하는 일들이 머리카락에 아로새겨져 있답니다.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랍니다. 박 교수님을 뵈니까 너무 아름다우신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보여주시는 모습이나, 혼자 하시는 일이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고국에 돌아가셔서도 그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학생들을 이끌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학생들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도록..."
아름다운 청년 임현규 씨는 내게 그와 같은 당부의 유언을 남긴 셈이다. 우리는 팔뚝을 서로 힘주어 잡으며 다짐을 했다. '아름다운 나라와 나를 꿈꾸며'
다시 배를 띄우며
네 분은 동해에서 생의 노정을 마감했지만, 네 분의 혼령은 우리의 저마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 이제 우리가 다시 배를 띄워야 할 차례다. 푸르고 향기롭게 아름다운 나라를 바라면서. 장철수 선생님의 <애국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옮기며 이 글을 맺는다.
'아버지가 자식을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 그것을 사랑이라 합니다. 자식이 아플 때 고통스런 마음, 내가 아끼는 생명체와 하나되는 마음을 사랑이라 합니다. 그것이 나라로 옮길 때 애국이라 하고, 행하는 사람을 애국자라 하며 우리는 그들을 추앙하고 따르고, 그들의 행적을 아끼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분단되어 혼란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반쪽이면, 나도 반쪽이며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나 역시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나와 나라를 일치시키는 행위, 그것을 애국이라 하고 진정으로 고통스러움을 몸으로 표출하여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애국의 길? 그것은 먼 곳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학생은 학교에서 직장인은 직장에서 아내는 가정에서 모두가 하나되는 참 사랑의 길이 애국이겠지요. 바로 그것은 여러분과 내가 하나되는 참사랑의 길입니다.
첫댓글 해달뫼님 애 쓰시네요. 우리 모두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일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