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그렇게 취해 있으면 시는 도대체 언제 써요? 라고 어떤 분이 물었다.
나는 말없이 또 한 병을 비우며 혼자 조용히 천장을 바라봤다.
파리똥 무늬가 고요했다. 술 안 마실 때에만 골라 쓰느라
18년 만에 시집을 냈다는 걸 말해 주기 싫었다.”(25쪽)
선글라스를 낀 국방색의 남자 밍규는
커피를 마시러 다방에 가는 길이었고, 나는 라면 사러 가는 길이었으므로
그냥 그렇게 길 위에서 그럭저럭 헤어졌다.
나는 또 속으로 아, 밍규가 돈을 좀 많이 벌어야 할 텐데…
하면서 그의 건승을 진심으로 빌어줬다.
선글라스를 낀 국방색 남자는 지가 소설가 박민규라고 말했다.”(18쪽)
‘기찻길은 왜 슬픈가
문득 울고 싶어질 때마다 기차가 지나가서
내 막막한 눈시울 위에 간이역을 짓는다
우체국은 문을 닫고 돌아보니 아아, 오늘은 토요일
아무도 오지 않는다
기차는 지나간다
울고 싶어질 때마다
울고 싶어질 때마다 지나간다.’(53쪽)
분위기 있는 표지에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라는 부제까지 달았다.
흔히 생각하는 ‘시인의 격’에 맞는 고즈넉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다.
하지만 책을 펼치면 ‘꽃들이 자꾸만 암내를 풍기는데,
시답잖은 시 읽으며 시가 오지 않는 강의실에
시 팔러 가야 하는 나도 참 조낸 시시한 인생이다. 시바’(125쪽)
와 같은 글들이 독자를 마중한다.
그는 사투리인양 ‘조낸’과 ‘시바’를 꾸미는 말과 마치는 말로 즐겨 사용한다.
‘냉소’와 ‘풍자’는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의 개성이자 매력이다.
신파·삼류·저급·B급 등 기성 주류 문화에 대한 반항의 지위를 자처하는 시인은
자기부정·자기풍자·자기조롱을 감행, 독설과 비유로 세계의 모순을 까발린다.
문단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과의 에피소드는 덤이다.
박후기, 황종권 시인 등 독자들에게 익숙한 문인들이
‘소금 장수’ ‘전직 이종격투기 선수’로 새롭게 불리며 즐거움을 전한다.
소설가 이외수, 정영문, 박민규 등과의 일화들도 류근의 방식으로 회자된다.
소설가 이외수는 “아니 이런 개 같은 시인이 아직도 이 척박한 땅에 살아남아 있었다니.
나 언제든 그를 만나 무박 삼일 술을 마시며 먹을 치고 시를 읊고,
세상을 향해 우람한 뻑큐를 날리고 싶네”라며 발간을 축하했다.
류근 『상처적 체질』 너무 아픈 사랑 중에서
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는 없는 것
다만 사랑만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
류근 『상처적 체질』 너무 아픈 사랑 중에서
4.MAY.2015 정효(JACE)
FOEM:류근 『상처적 체질』 너무 아픈 사랑 중에서
류 근 詩 / 김광석 曲 / 테너 지춘섭
첫댓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