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ad to the Forgotten Kingdom
철의 문화, 가야의 실체
낙동강 유역의 변한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세력이 뭉쳐 출발한 가야는 당시 한반도에서 있던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철기 문화를 가진 선진국이었다.
그러나 완성된 국가의 틀을 이루지 못하고 문헌 자료가 많지 않아 고구려, 백제, 신라 중심의 삼국사에 가려졌다.
가야가 한국사에 동장한지 2000여년이 지난 지금 가야의 문화를 보여주는 유물이 속속 발굴되면서 잊힌 왕국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황금 알을 보며 귀족들이 '구지가'를 부르자 수로왕을 비롯해 6가야의 임금이 태어났다는 가야의 탄생 설화가 전해진다.
학자들은 이 '구지가'가 기원 후 42년 수로왕이 즉위하기 이전부터 김해지역에 토착 세력과 제철기술을 가진 신진 세력이 서로 결합해 살고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국립 김해 박물관은 경남 김해에 자리했던 가야 연맹체의 맹주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잊힌 가야사를 복원하는데 초점을 맞춘 전문 박물관이다
가야 문화가 본격적으로 생성되기 이전 선사시대의 유물부터 전시하고 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자루를 달아 도끼로도 사용하고 화폐로도 쓰인 것으로 보이는 덩이쇠와 쇠도끼. 쇠낫 등의 농기구. 철갑을 위시한 무기류 등 철기 관련유물이다.
철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숙련된 기술과 고도의 문화를 가졌다는 의미이다.
특히 철갑은 뛰어난 가야의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4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가야의 철갑은 현재까지 70여 벌이 출토됐는데 한반도에서 출토된 철갑의 90퍼센트를 차지한다.
옛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갑옷은 대부분 판갑옷이다. 두께가 1밀리밑쯤 되는 철판을 재단한 다음 이를 인체의 굴곡에 맞춰 못으로 접합하고 입고 벗기 편하게 경첩까지 달았다.
그뿐 아니라 가야의 옛 무덤에서는 갑옷과 더불어 목과 다리, 팔뚝을 가리는 가리개와 머리에 쓰는 투구 등 갑옷 일체가 나왔다
사진上: 함안 말이산에서 출토된 수레바퀴 모양 토기
사진下: 김해 양동리에서 출토된 청동 세발솥. 북방 유목민족 특유의 오르도스형 청동 유물이다.
가야인의 일상이 묻어나는 토기
뛰어난 제철 기술과 철기 제작 기술을 가졌고 신라도 두려워했던 기마군을 갖췄음에도 여러개의 작은 국가로 불리되어 있던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틈바구니에서 점차 힘을 잃어갔다.
5세기에 들어서자 3국과의 전쟁에 휘말렸고 6세기 중반에는 점차 신라의 영향권아래들어갔다. 가야의 세력이 약화되고 신라의 영향력이 거진 증거는 일상 기물에서도 드러난다. 대표적인 유물이 바로 토기다.
강력한 왕권이 없던 가야에서는 지역마다 다양한 토기가 만들어졌다. 금관가야에서는 굽다리접시의 입구가 밖으로 꺾인 양식이 유행했고 함안에 세워진 아라가야의 접시에는 굽다리에 불꽃무늬 구멍이 뜷려있다.
대가야가 들어선 고령에서는 오늘날의 머그컵처럼 한쪽에 둥근 손잡이가 달린 굽다리 접시가 많이 출토되었다
또 가야가 세력이 강성했을 때는 얇고 넓적한 접시에 다리 부분이 굵은 가야계 굽다리 접시가 유행했지만 점차 신라의 영향력이 커진 후대로 가면
그룻 부분이 투박하고 두툼한 굽다리 접시가 많다. 고대주방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토기도 눈길을 끈다.
신선로 모양의 토기, 부뚜막 모양의 토기와 시루등이다. 동물을 숭배하는 에니미즘. 혹은 장례나 의례 등에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이형 토기도 상당수다.
특히 오리 등 새를 본뜬 토기가 가야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그림 上: 퇴례리에서 출토된 판 갑옷. 박물관 대표유물인 이 판갑옷은 무려 27개의 철조각과 80개의 못으로 만들었다
그림 下: 합천 옥천에서 출토된 금동 장식 투구
동북아를 연결했던 왕국
박물관 전시품 중에는 가야의 유물로 보기 어려운 것도 상당수 있다.
김해 양동리와 대성동 고분에서 출토된 몽골의 오르도스식 청동 솥은 중국 황허 강 이북에 있던 북방 유목민족이 사용하던 것으로 한반도에서는 출토된 바가 없다.
또 일본에서 만들어진 야요이 토기가 가야 고분에서 출토 되었고 일본 고분에서 발견되던 바람개비형 방패 꾸미개가 가야 고분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유물은 철 교역의 부산물로 가야가 철을 바탕으로 동북 아시아의 중새 무역항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인접 국가와 활발히 교류했음을 말해주는 증거품이다.-2009. 04. Asiana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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