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가끔 안암동에서 친구들과 막걸리잔을 나누는게 제겐 큰 즐거움 입니다
그저 편안하다는 느낌과 술값이 여전히 맘에든다 라는 이유로 가곤 합니다
우신향병원뒤 안암분식의 꼴두기 데침 과 병어회 이거 주금 입니다
문득 우리 딸내미가 입학하던 2003년 3월 어느날이 기억 납니다
밤 11시가 넘었는데 딸내미 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읍니다
사발식 하는날이라 무지 걱정 했었습니다
전화를 했지요
-가스나야 지금 어디야
-아빠 나 석계역~ 끄윽~
-그럼 아빠가 창동역으로 가서 기다릴께
- 아빠,~ 끄윽~ , 막걸리를 냉면사발로 ~끄윽~ 주는 그런 무식한 넘들이 어디있어?
- 사발식 가지 말랬는데 니가 간거잖아, 누가 등떠밀었냐?
- 분위기가 안가면 날 지기겠던데 ~끄윽~
- 몇번 토했니?
- 3번
애를 데리고 편의점에 갔었읍니다
포카리xxx 중간병을 샀었구요
- 마셔, 좀 편해질거야
- 이거 마시면 더 취한다는데?
- 아빠는 이게 좋더라, 술 선배가 얘기할때 들어
딸아이는 차 뒤에 누워버렸읍니다
취해서 헤롱대는게 우찌나 구엽던지 나도모르게 웃음이 나왔었습니다
1974년 저도 그렇게 사발식을 했지요
- 야, 너 이누마 그렇게 짤라 마시면 첨부터 다시 시작한다
이번엔 고무신에 따르고, 다음엔 워커에 따를거야.
엄청 토하고 결국은 학교앞 여관에서 1박 했읍니다
공중전화 할 기운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그날 우리 아버지도 날 많이 기다리셨을 겝니다
학창시절부터 술을 마시고 집으로 터덜터덜 가노라면 왜그리 서러움이 많았던지 모릅니다
연세 많으신,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불쌍키도 하고 밉기도 했읍니다
부모가 다 계셨지만 아무도 내게 힘이 되어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었읍니다
차 뒤에서 자고있는 딸아이를 보고있자니 새삼 부모님 생각이 나더군요
나도 그분들에게는 귀여운 아들 이었겠지요?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딸아이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겠다고 다짐 합니다
언제나 그애가 나를 필요로 할때마다 항상 거기에 서 있는 아빠가 되어야 겠읍니다
추신) 우리 딸내미 지금은 소주 1병반 정도 의 주량으로 무장 했습니다. 아주 지깁니다
첫댓글 아빠의 자상함이 눈물 겹습니다 시집 갈 때까지 아니 시집을 가도 든든한 아빠가 되실거라 믿습니다
안암 분식집 한번 가고 싶당~~~~~~
훈이형아 화이팅!!!
그 따님이 벌써 졸업반이 되네요.....시집가기 전에 많이 놀아(?) 주셔야 겠습니다.....부모님은 계셔주시는 것만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아닐까합니다.....
막걸리는 서울막걸리가 맛있다나? 홀짝홀짝 마시는맛이 동동주가 좋던데~ 근데요... 읍니다가 아니구요,,, 습니다 라고 한글개편 된거이 오래인데...ㅎㅎㅎ 읍니다(no) 습니다(yes)ㅋㅋㅋ 공대앞에 고갈비가 맛나던데~~아!!!먹고싶당
센빠이가 읍니다면, 그런가보다 하지 따지긴 고갈비 맛있지 딱 세번 먹어봤삼
엄마와 또다른 아빠사랑!!세월이 흐를수록더커지는사랑!!마니마니듬뿍 주세요* *~
이글읽고나니 바로 울아들 선배 군대간다고 만취되어 자정넘은시각 홍제역에서 날 부르네,,속에서 밀려나오는 거시기를 감당몬하며 선배 지대로 몬보냈다고 날 부여잡고 우는 모습이...그래도 구엽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