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찾아서 - 14. 도난사건 해결과 중간다리가 되는 젠
민서우
- 14.
지금으로부터 6시간 30분 전, 3월 13일 정오.
보헤즈미들스쿨에서는 이번 3월 식비를 통째로 도둑맞았기 때문에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나 있었다. 총무가 짝이라서 가장 큰 의심을 받고 졸지에 용의자가 된 젠. 그는 차분하게 자신이 돈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거로 용의자라는 의심을 벗을 수 있었다.
그런 젠은 지금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다. 4시간 동안 교직원을 포함한 전교생의 사물함과 가방, 책상 서랍을 수색했지만 각 반에서 사라진 급식비는 나오질 않았다.
“범인은 내부인이자 외부인이야.”
“그게 무슨 말인가, 젠?”
담임의 물음에 젠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얘기를 꺼냈다.
“학교를 졸업했거나 전근을 가서 우리 학교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저지른 범행일 확률이 높아요. 지금이 식비를 걷는 주라는 걸 알고 있지 않으면, 전교생의 식비를 모두 훔치는 건 힘들어요. 그리고 반 열쇠를 모두 확인한 결과 지문이 묻어있지 않았고, 교무실 문이 부서진 건 이전에 누군가가 강제로 자물쇠의 열쇠 공간을 비틀어놔서, 열쇠가 맞지 않았기에 문을 억지로 열었음을 의미하죠. 즉 계획범행이라는 거죠. 졸업생이나 전근을 갔던 교직원 중에 한 명인.”
논리를 바탕으로 둔 추리다. 타당하고 허점이 없었기에 모두들 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범인은?”
“…….”
젠은 아니꼬운 시선으로 짧게 물은 총무, 즉 짝을 바라봤다. 범인을 알 것 같으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당장 경찰 찾아가서 “범인은 누굽니다!!” 라고 했지.
“난 방금 내부인이자 외부인이라고 했어. 그 얘기는 용의선상이 학교를 벗어났다는 뜻이 되지. 그 선이 정확히 잡히지 않으면 범인이 누군지 확정을 못 지을 거야. 선생님? 일단 점심은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전 지금 평소 이상으로 배가 고픈데요.”
아침부터 여기 저기 뛰어다녔다. 게다가 오늘은 어머니가 야근을 하고 들어오신 덕에 아침도 못 먹었다. 평소 이상으로 배가 고픈 게 이상하지 않다.
“오! 그럼 밥을 먹어야지. 아, 젠? 용의선상이 잡히면 범인을 잡는 것도 가능하겠지? 식비는!”
“이르면 오늘 안으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젠의 말에 담임과 총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어제 밤에 돈을 훔쳤고 계좌에 넣는다고 해도 어제는 일요일이니까 불가능하죠. 그리고 오늘, 아침 4시간의 틈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다니면 금방 들킬 거라는 것쯤은 범인도 알고 있을 테니, 얼마씩 나눠서 은행에 묶어둘 겁니다. 계좌가 많으면 적은 금액으로 분산이 될 거고, 그렇지 않다면 얼마씩 한 계좌에 넣어두겠죠. 가능성은 여러 가지, 주변 은행을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벌어야겠죠.”
고개를 끄덕인 담임이 교실을 나가려는데 젠이 그를 붙잡았다.
“계좌를 새로 만들 수 있다는 가정(假定)도 배제할 수는 없어요. 입출금이 아닌 적금 방향으로 갈 확률이 조금은 높죠.”
“어, 알았어! 형사님~”
담임은 형사를 찾으며 복도를 누볐다. 그를 잡으려고 뻗었던 손을 접지 않은 채, 젠은 손을 서너 번 쥐었다 폈다.
저기…. 우리 밥은 언제 먹나요? 나 배고픈데….
배를 움켜쥐고 울상을 짓는 젠을 본 급장이 눈치를 채고 통솔을 하여, 젠 반 학생들은 일제히 식당으로 향했다. 점심시간, 젠은 처음으로 밥을 세 공기나 먹어봤다. 그리고 20분 뒤.
“형사님! ++은행에서 수상한 남자가 적금통장을 3개나 만들었습니다!”
“그 놈이다, 가서 잡아~!!”
“예!”
경찰관들 넷과 형사, 그리고 뒤를 젠이 이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며 뛰는 형사에게 말했다. 아싸~~ 내 추리가 통했다~ 후후후후! 이대로 미제사건들을 해결해볼까? 경찰 아찌들 까무러치겠지? 쿠쿠쿠쿡!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젠이었다.
“앞을 제대로 보고 뛰셔야죠, 형사님. 제 추리대로 흘러가서 다행이네요.”
“꼬맹이! 지금 어디 가나?”
“제가 가설을 세운대로 해서 범인이 잡힌 거 아닌가요? 그러니 검거 현장을 직접 한 번 보고 싶은데요. 그리고 훔쳐간 돈도 찾아와야 하고요.”
“훗. 꼬맹이, 너무 거만한 거 아닌가?”
형사의 말에 젠은 씨익 웃으며 자기를 소개했다.
“전 젠 매리아라고 합니다. 천잰데 이 정도는 기본이죠.”
“오~ 15살의 천재 프로그래머가 바로 꼬맹이 너였군!”
젠은 다시금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 를 그려보였다. 잠시 후 도착한 ++은행. 형사는 젠을 조금 멀리서 볼 수 있게 해두고 범인의 손목에 은색 수갑을 채웠다. 범인은 젠이 예상했던 바와 같이 내부인이자 외부인, 전근을 간 한 남선생이었다. 그가 계좌에 넣으려 했던 식비를 모두 되찾을 수 있었다.
젠은 형사에게 식비를 받아서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학교로 돌아왔다.
식비 도난사건, 무사히 해.결.~
다시 6시간 30분 후 보헤즈하이스쿨 별관 2층 학생회의실.
“풋!”
학생회 회원들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나오던 하나와 유미는 밖에서 기다리던 리유를 보자마자 작게 웃었다. 두 여학생이 키득거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아직도 안 빠졌니?”
“그 붓기 참 오래간다, 그치~”
어제 야식으로 먹었던 라면 때문에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것이다. 얼굴에도 살이 안 찐 리유이기에 부은 정도가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반면 윌은 얼굴에 살이 좀 있어서 그렇게 큰 표가 안 난다.
하나의 말에 이어 유미도 옆에서 거든다. 특히 유미는 하나를 보며 그녀와 함께 “그치~”에서 입을 모아, 리유의 미간을 좁히는데 일가견을 했다. 콰직! 오른손에 들려 있는 돌돌 말린 흰색 A4용지가 살짝 구겨진다. 리유의 열이 살짝 오른 걸 알면서도 하나와 유미는 그를 놀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장난삼아 놀릴 때 반응이 나오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서 더 하다.
“윌은 점심 때 보니까 그런대로 빠졌던데, 어떻게 리유 너만 아직도 퉁퉁 부어있어?”
“벌한테 집중사격 당한 얼굴 같지 않아, 하나?”
“같이 안 논다.”
화난 얼굴이 거의 울상으로 변해 간 리유는 씩씩대며 계단을 내려갔다. 하나와 유미는 다시금 깔깔깔 웃은 뒤에 리유 뒤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삐삑. 윌, 리유, 유미와 함께 한참 저녁을 먹고 있는데 PT가 신호음을 울린다. 하나는 잠시 젓가락을 놓고 우물거리며 주머니의 PT를 꺼냈다. 짧은 신호음은 문자가 도착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 젠한테 왔다! 오~ 오늘 젠이 다니는 보헤즈미들스쿨에서 식비 도난 사건이 있었나 봐. 근데 그 사건의 범인 행보를 젠이 미리 예측을 해서, 사건 발생 확인한 지 약 5시간 만에 범인을 검거하고, 식비도 모두 되찾아서 완전 하늘을 날아가나 봐.”
“오~ 잘 했네! 그 녀석, 프로그램만 잘 만드는 게 아니었나 봐?”
옆에 앉은 유미의 말에 하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PT 화면을 아래로 하나 둘 움직였다. 오른쪽의 스크롤바가 아직 문자가 끝나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추신이 있다.”
꾹꾹 누르던 하나는 이내 웃음기를 거두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추신의 내용은 그만큼 조금 많이 복잡했다. 추신을 보는 순간 하나의 머릿속에 한 달 전에 받았던 젠의 문자와 그 날 오후의 일이 떠올랐다.
역시 그 때의 언니의 말과 젠의 말. 확실히 농담이 아니었어. 언니는 젠과 내가 끼어드는 게 싫다고 했지만 난 그럴 수가 없어. 왜냐면 언니는 진심이고, 오빠는 80%가 장난이니까. 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오빠를 직접 만나봐야겠어.
놓았던 젓가락을 입에 물고 깨작거리던 하나는 밥 먹던 속도를 높였다. 수업은 착실히 따라가고 있으니 외출증 끊어달라고 하면 끊어줄 것이라 여기며. 욕실에서 양치를 하며 PT로 페이버에게 문자를 보낸 하나는 오케이 사인이 담긴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오후 7시 10분 경. 학교 근처의 생과일 전문점. 서둘러 왔는데 페이버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는 하나가 들어서는 걸 보고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어, 여기야!”
“빨리 왔네, 오빠?”
“응. 집에 있었으니까. 근데 왜 보자고 한 거야?”
그의 물음을 들으며 하나는 자리에 앉았다.
“못 본 사이 조금 급해진 것 같다?”
“음, 뭐….”
말끝을 흐리는 페이버였다. 그에 대한 원인이 궁금했지만 예측이 되었기에 하나는 따로 묻지 않았다. 하나의 주문 아래 과일빙수가 도착하고, 그녀는 딸기 하나를 집어 적당히 베어 먹으며 물었다.
“조금 전에 젠한테 이상한 문자를 받았어. 오빠, 크레아 언니하고 헤어졌어?”
페이버는 파인애플을 하나 콕 찍어 먹으며 반문했다.
“헤어지고 자시고도 없지 않나? 난 크레아랑 연애를 하던 게 아니었으니까.”
“오빠는 그럴 지도 모르지. 하지만 언니는 그런 게 아니었다면?”
“무슨 소리야?”
그의 물음에 하나는 딸기를 다시 베어 먹으려다가 멈췄다.
“정말 몰랐단 말이야, 언니의 감정은 진심이었다는 걸?”
하나의 말을 듣고서야 페이버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페이버가 몰랐다는 것을 확인한 하나는 한숨을 살짝 내쉬며 딸기를 마저 먹었다.
“사실은 약 한 달 전에. 오빠의 상담을 들어줬던 그 날로부터 정확히 1주일 후에. 젠이 크레아 언니를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었어.”
젠이 대신 주문해준 음료를 마시며 크레아는 어렵사이 말문을 열었다.
“페이버 말이야, 나와 헤어질 뒤의 미래를 이미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모양이야.”
“예?”
전혀 의외의 말에 젠은 되물으며 눈을 껌벅였다. 자신이 이제 15살밖에 안 되고 첫사랑도 아직 없지만 지금 들은 그 형의 말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연애할 때 미리 헤어질 각오를 하고 연애하는 사람도 있나? 아니, 그럴 여유가 있나? 상대에게 푹 빠져 있을 텐데 이별 뒤의 아픔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나도 아직 사랑이라는 걸 겪어보지는 못 했지만 그건….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
순간 크레아와의 시선이 부딪쳤다. 슬픔과 아픔이 한데 어우러진 그 눈빛에 젠은 잠시 입술에 힘을 줬다.
“그건 사랑이 아니에요. 좋아하는 감정도 아니에요.”
이 얘기를 하는데 내가 왜 힘들지? 대체 왜?
“그건 나도 알아. 일주일 전에 너와, 그리고 그 녀석의 사촌 동생과 친구들과 만나고 난 뒤에, 따로 둘이서 만났을 때 그 녀석이 이러더라.”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내가 너에 대해서, 네가 나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단계 아냐? 한 번 두 번 만나다보면 좋아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고, 또 그러다가 마음 안 맞으면 헤어질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까. 아직 완전하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냐. 난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거든.”
크레아의 말에 젠은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린다.
“페이버 형 바보네요.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해요? 그래서 누나는 어떻게 했어요?”
“실망했다는 말만 하고 나와 버렸어. 그런 남자 좋아할 필요도 없다는 걸 그 때 알았어. 무지하게 후회해. 그런데도.”
“?”
젠은 음료를 마시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크레아는 탁자 위에 팔짱 끼듯 팔을 올리며 말했다.
“쉽게 안 되네. 처음 만난 이상형이라서 그런 가봐.”
“첫사랑인가요?”
“20살인데 첫사랑일 리가 있겠니. 나로서는 3번째야. 오빠는 아직 여자를 전혀 만나본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 그래서 납득하려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봐도 어려워. 내 감정이, 내 마음이 그 정도밖에 안 되나봐. 아프다. 많이.”
크레아는 웃었다. 하지만 젠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울고 있다.
<푸핫~ 후담이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럼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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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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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보고갑니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