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란님, 기획서에 있는 철기는 “철로 만든 기구”가 아니라 철갑기마대를 뜻하는 철기입니다. 그리고 물론 고구려의 철기대는 태왕 이전 고구려 건국 초기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태왕의 철기는 드라마틱한 극적 흐름을 위한 소도구로서 채택한 내용일 뿐입니다.
권미란님이 답답해하시는 부분에 대해 설명 드리기 전에 권미란님의 이해를 구하고 싶은 점은 드라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드라마는 다큐가 담아내는 사료들을 재해석해서 사람의 냄새와 의식과 사람을 둘러싼 시대의 공기까지 불어넣어 현시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구성해 내야하는 작업이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료와 드라마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거리에 대해 이해해 주시면 더욱 좋겠습니다.
태왕사신기를 집필하시는 송작가님은 현재 보조작가 팀을 구성해서 최근 출판된 20여종의 고구려관련 서적을 탐독했습니다. 서점에 가보시면 최근 출판된 고구려관련 서적이 모두해서 약 20여종이라는 것을 확인하시게 될 겁니다. 송작가님을 위시한 작가팀이 탐독한 출판서적 대부분이 일반 독자를 상대로 한 상식을 제공하는 수준에서 기획된 책들이어서 권미란님이 바라시는 만큼 그 시대를 드라마 상에 용이하게 구성해낼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들은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60여 편의 해당시기 관련 논문을 구했고 읽어본 상태입니다. 보조 작가팀에 사학과 출신이 없는 관계로 간신히 드라마를 구성할 수 있을 수준의 그 시대 의상이나 건물, 생활도구, 축성술, 먹었던 음식, 장신구, 배 만드는 방법 등의 자료는 구했으나 권미란님이 말씀하신 그 시대의 말투는 구할 길이 없군요.
고구려에 인접한 선비나 거란, 말갈이 퉁구스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고 서로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었다는 사료 정도 있을 뿐입니다. 고구려어는 퉁그스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현재의 언어가 퉁그스어보다는 알타이어에 가깝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말갈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주어는 거의 소멸되었고 아시다시피 선비나 거란의 말은 종족과 함께 소멸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어 역시 최근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알타이어 계통이 아니라 현재 언어계통학의 줄기에 없는 새롭게 규정해야 하는 언어라고 합니다. 태왕 당시의 일본은 여러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어 딱히 일본어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한반도와 교류가 무척 깊었던 대화국(야마토)는 변질된 백제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여 지고 백제어는 고구려어와 같기 때문에 당시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데는 영어를 배우듯한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국내에 만주어를 전공한 학자의 논문을 구해서 읽었으나 그 학자가 논문의 서두에 밝혔듯이 매우 초보적인 내용이고 이 또한 드라마에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관련 사료가 있으시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권미란님, 보조 작가팀은 좀 더 그 시대의 문화와 생활환경과 언어에 대해 상세한 문헌적 고고학적 자료에 대해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권미란님께서는 역사학도이니 보조 작가와 자료조사팀이 구할 수 있는 사료보다 좀 더 내실 있는 자료에 접할 기회가 많으실 터이라 믿고 싶습니다. 그런 자료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님께서 추천하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한글 해석본은 이미 가지고 있고 관련기사들은 이미 다 탐독했습니다. 그 책의 저자가 어떤 성장과정을 거치고 어떠한 위치에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 이 책을 기록했는지에 대해 해석한 몇 가지 자료들도 이미 탐독했습니다. 환단고기의 내용과 최근 재야사학을 중심으로 발표되고 있는 새로운 시각이나 진보적 시각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내용들에 대해서도 부지런히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각 사료들의 해석이 서로 충돌하는 부분에 대해 우리는 어떤 시각을 택할 것인가? 에 대한 논의에 종지부를 찍고 어떤 사료가 더 드라마적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중입니다. 상이한 해석은 각 해석을 내놓은 사학자들의 토론과 연구의 과제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권미란님 보조작가팀은 목이 마릅니다. 태왕당시의 생활사적 자료 문화사적 자료들이 한 편의 드라마를 구성하기엔 너무 부족한 편입니다. 부디 사학도로서 자료에 대한 말씀을 주신만큼 그러한 자료들을 접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송작가님은 역사적인 사료 그 너머에 존치시킬 내용을 추출하는데 시간을 쓰고 계십니다. 권미란님의 빠른 회신을 기대합니다. |
첫댓글 앗, 권미란님 이름이 저와 거의 비슷하시군요. 순간 제가 저 글을 쓴 줄 알았다는...^^ 그나저나 예전엔 작품에 대한 욕심때문에 보조작가를 안 쓰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이번엔 구성을 하셨나 보군요. 하긴 혼자 하시기에는 힘든 작업이기는 하지요. 다 뒤져봐야 20여종이라는 고구려 관련 서적중에
바람의 나라는 당연 없었겠지요? 이건 개인적으로 순수히 안타까운 부분입니다만 만일 이런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바람의 나라는 상상력이든 학술적 사료로서의 가치이든 태왕사신기 측에 아주 훌륭한 참고 텍스트가 되어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일부러 배제하고 만드시려면 참 힘드시겠습니다. 이건 딴지 아니고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촬영이 1년남짓 남은 드라마라면 이미 연구등은 끝내고 집필에 들어가야 하는 시기 아닌가요? 최소한 촬영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본이 완성되야 일관성 있는 연출이 가능 할텐데요. 태왕사신기는 그날 촬영 당일 집필 끝내고 대사만 외워 촬영 들어가는 드라마 류가 아니지 않습니까?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의 경우 미리 많은 부분 촬영이 끝나고 방영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면 대망의 경우 대본이 무척 늦어졌었죠. 대망의 실패에는 그런 부분도 한몫 했다고 봅니다. 아직까지도 연구중이시고 역사관이 확립되지 않으셨나요? 그런데도 당당하게 새로운 고구려는 이야기하는 출발점에 서있다고
자신할 수 있으십니까? 역사적 오류에 대한 염려를 무조건 딴지라고 받아 들인대서야 이거참 무서워서 진심어린 조언이 가능 하겠습니까. 권미란님 글중에 예민하게 생각하실 부분이 있었다는 것은 이해하겠습니다만 그것을 꼬투리로 저리 취급된다면 저 같으면 무서워서 한마디도 못하겠습니다. 사건 초기 김진님 쪽이
넉넉하게 받아들일 정도의 여유도 없나보다(많이 힘든가 보다) 하신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만 솔직히 여유는 태왕사신기 측이 더 없어 보입니다. 어려울 거란거 당연히 알았지 않습니까? 그 정도의 어려움도 없이 작품을 만들려고 했나요? 아마도 무지해서 작가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시겠지만
고뇌없이 작가질, 어떻게 해먹으시려구요? 말이 지나쳤습니까? 하지만 작가라면 평생 싸안고 가야 하는 친구 아닙니까. 게시판 분위기 지나님 찬양으로 이루어지는것 뻔히 알면서 저런 말을 할 정도의 용기라면 내치지 말고 싸안아야 하지 않나요? 신경이 날카로와 지셔서 넉넉함이 많이 사라지신듯 보여 안타깝네요.
송지나씨는 둘째치고, 저런 질문에 저런 답글을 다는 드라마다 회원들이란 어떤분인지 참으로 궁금하군요. 질문하신분도 꽤나 머뭇거리시며 쓰신 듯 한데...--;;; 내부 팬들마저 내치는 분위기란.....
아트바크/'마녀사냥' 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지 않소이까?
.....저는 그리 고상하지 못한.... "집단다굴"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던.....
윗글에 대한 답변을 리플로 송작가님이 하셨고, 그아래에 다른분 두분이 답하신것에 대해 '집단다굴'이라 표현하시면, 윗글을옮긴 이곳에 님들 다섯분이 외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신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하면 불륜입니까? 더구나, 답변을 해도 뭐라고 하고 안해도 뭐라고 하고, 님들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만족하시는?
푸른들판님, 저는 개인적으로 권미란 님이 누군지 모릅니다만,송지나 씨의 답글은 그래도 꽤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답하실말만 차분히 하고 계시죠. 하지만 밑의 다른 회원분들은 권미란님의 질문글에 과민반응을 보이고 계십니다.[아무리봐도 질문하신 분은 팬의 입장인 듯 보이는데요]
저런 궁금증에 대한 내부 회원분의 글에 적대시하는 답글이 달리는 건, 적어도 저희 분위기와는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건 그런 게시판 분위기에 대한 저희쪽의 '평가'가 되겠죠. 하지만 '집단다굴'은 해명군도 말했듯 '고상한 표현'은 아닌게 맞습니다.
흠, 하지만 전성일 님의 토로에는 이유가 있는 듯 하군요. 보조작가 중 한분이신가 봅니다. ^^* 당연히 저희들보다 송지나 님에 대해 잘, 많이 아시겠네요. 제발좀 여쭤봐달라고 부탁해 주실래요? 신시를 찾아야하는게 우리민족의 염원이라는 이야기가 대체 어디 어떤 자료에 나오는지? ^^*
아시는데로 신시는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할때의 중심이죠. 물론 환인의 아들 환웅이 내려왔다고 말해지는 신단수가 있는곳! 따라서 신시를 찾는다는 것은 고조선의 옛영광에 대한 상징적 의미도 있다고 봅니다. 고대 제정일치 사회에서 신단수가 가지는 의미는 제정의 근원지로서 삼한시대 이후로도 꾸준히 우리민족에게
내려오고 있으며, 강화도에 있는 참성단도 단군이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아시는 데로 이곳은 조선조의 역대왕들도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단군의 고조선 이후로 신시에 대한 역사적 회복은 실행되지 못했을 망정, 그러한 곳의 회복에 대한 꿈조차 잊었다고 도데체 누가 그러던가요?
환웅과 신단수는 분명 관계가 있지만 적어도『삼국유사』에서 단군의 '탄생'은 몰라도 '건국'과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신시와 평양이 같은 곳이라는 증거도 없거니와 굳이 '신시'라는 지명을 거론하지 않아도 '고조선의 부활'이라는 명제는 이미 고구려 초기부터 굳건하게 자리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정작 문제는 신시라는 곳이 과연 오늘날의 어느 곳으로 지명 비정할 지에 대해 강단이든 재야든 명확한 합의가 없다는 점이지요. 이 설 저 설이 분분하고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많은 수단들을 두고 굳이 '신시'로서 고조선을 대변하는 표현을 삼은 바가 저로서는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그러한 사상을 최초로 읽은 것 자체가 바람의 나라라 전 익숙하긴 합니다만, 그게 우리 민족의 '당연한 꿈'이란 말에 익숙한 사람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군요. [역시 적곡 마로님의 전문분야인가] 이걸 좀더 자세하게 파고들면 좀 복잡해질것 같은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중국 동북공정까지 이어질거 같은데...
앗, 늦은 댓글이지만...푸른들판님. 단지 저 한 게시물의 리플들만 보고 들은 생각이 아닙니다. 이전에도 말 꺼냈다가 고생하신 분들이 계신 것을 보아서요. 기억은 쌓이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다섯명이 아니고 세 명입니다. 저와 해명태자님의 댓글만이 아트바크님의 댓글에 대해 단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핀트가 빗나가는 말인 건 아는데.. 목이 마르면 물을 드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