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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고, 정소성이 자기 생일에 오신 분들에 대해서 아무런 이야기가 없어서 내가 전화를 해 보았더니 과연 내가 어째 자신의 생일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나 하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 형을 대신해서 내가 몇 줄 적어본다. 또한 내가 재작년(2002)에 갑년을 맞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제일 먼저 축사를 하라고 해서 갑년 생일 파티는 절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자주 자주 모이고 술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우정의 술을 많이 마실 수 있지 않겠나. 회갑이 뭐 어째서 숨기고 하나, 참으로 알 수 없다. 회갑은 축하의 자리다. 뭘 우물쭈물하나. 그것은 가장 당당한 인생의 훈장이 아닌가. 인생에 있어서 그만한 훈장이 어디에 있나. 당당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회갑연을 갖도록하자. 그러나 검소하게 친구들과 함께. 그러지 않으면 위축되고 쓸쓸해진다. 고독과 위축은 스스로 깨자. 가슴에 열정을 가지자고 일갈을 했다. 동기생인 내가 선배가 된 기분이었다. 사회는 노정이가 했다. 내가 제일 먼저 축사를 했고, 여성을 대표해서 김숙자 동문이 축사를 했다. 그리고 김영문 동문이 초등학교 동기생으로 축사를 했고, 사학과 김선리 동문이 중학교 일년 후배로 축사를 했고, 이홍윤(정치) 동문이 고등학교 일년 후배로서 축사를 했고, 대학교 동기생으로는 불문학과 동기생이 아무도 오지 않아 불문과와 가장 가까운 영문과의 안광윤 동문이 축사를 했다. 안광윤은 학생 때 검은 군복을 걸치고서 더럽게 큰 안경을 끼고
정구장 앞 의자에 앉아 있던 청년 정소성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정소성은 대구에 있는 경북대학교 사대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옛 대구사범이라고 한다. 이어 한약방 하는 김영길이 금반지를 만들어와서 정소성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김영길이 부인을 동반하여 이런 모임에 참석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부부가 오신 분들이 축가를 불렀는데, 김숙자 곽명규부부와 최갑순 김명숙부부, 안광윤 김명자부부가 노래를 불렀다. 김영길부부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김영길이 느닷없이 전립선 이야기를 했다. 다들 웃었다. 전동성이 부부는 다른 약속이 있다면서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내빼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그럴만한 위인이 절대 아니다. 동성이는. 그리고 김숙자 동문이 <여학생 모임>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흰봉투를 전했다. 다들 손벽을 쳐서 축하하였다. 여학생들(!)이 네 분이나 오셨는데, 그 귀하고 귀한 여학생들이 네분(김숙자, 이옥배, 김선리, 문명숙씨)이나 오신 것은 처음 보았다고들 했다. 정소성이 기분이 째지는 듯했다. 안광윤 부부가 세 병의 샴페인을 가지고 와서 터뜨렸다. 한병 한병 터질 때마다 박수로 환영했다. 역시 안광윤 동문이 마련한 케익을 절단했다. 그리고 테너 겸 작곡가인 곽명규의 굵은 목소리 선창으로 해피 벌스 데이 투 유를 합창했다. 정소성 부부가 붉은 초를 태우던 불꽃을 하나 하나 불어서 껐다. 갑자기 소란스러움이 사라지고 엄숙함이 깃들었다. 이어서 오늘의 주인공인 정소성이 부부가 답사를 했다.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정소성은 축하하러 온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큰 절을 했다. 부인 김갑영씨도 가뿐히 내려 앉아 역시 큰 절을 했다. 아름다와 보였다. 정소성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했다. 정소성이 옆 자리에는 김병일이, 장석준이, 임운봉이 가 보내준 화분에서 꽃과 난이 향기를 뿜어 실내가 향기로왔다. 오늘의 주인공인 정소성이 부부, 최근에 맞춘 듯 색갈이 고운 한복을 갖추어 입어서 환갑을 맞은 부부의 원숙함같은 것이 느껴졌다. 특히 김갑영씨는, 본홍색 저고리에 짙은 커피색 치마를 받쳐 입으셨는데 젊고 우아하고 기품있어 보였고, 공주에서 맞추었다고 하면서 분홍색 보따리를 끌르고 한과를 한 접시씩 담아 내놓았다. 우리는 한과를 먹은 것이 아니라, 김갑영씨의 정성을 먹었다. 우리들이 마구 노래를 하라고 해서, 정소성이 부부는 <그 집 앞>을 불렀다. 정소성이 이 노래에 읽힌 사연을 소개했는데, 전라도 광주에 있는 전남대학교에서 대학선생으로 첫발을 내디딜 당시 처녀 교수 김갑영씨의 하숙집 봉창 밑에서 불렀다고 했다. 서른 네살의 노총각이었다나. 다들 웃었다. 곽명규가 말하기를 정소성이 이 노래 부르는 것을 적어도 열번 이상은 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음정과 멜로디가 조금씩 틀리더라고 했다. 다들 웃었다. 그런데 오늘은 좀 제대로 부르는 것 같다고 했다. 많은 분들이 준비해 가지고온 선물을 정소성에게 주었다. 정소성은 정말 놀라고 당황해하는 표정이었다. 자신은 그저 회갑생일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정을 주고 받으며 사는 대학 동기생들에게 저녁이나 한끼 대접하려고 오시라 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정말 당황해 하는 눈치였다. 행사가 끝나고 다들 안광윤이 내오는 순두부와 잘 빚은 돼지 머리를 안주로 해서 술을 많이들 마셨다. 다들 취했다. 정소성이도 취했다. 이 자리 저 자리를 돌면서 무리지어 사진을 찍어댔다. 문명숙 여학생이 제일 늦게 왔는데, 정소성에 대한 고 박종철의 우정을 전했다. 다들 숙연해 했다. 6시에 시작한 모임이 9시쯤에 끝이 났다. 다들 집으로 가고 역시 안광윤의 초청으로 한 열명이 남아서 노래방으로 가 노래를 불렀다. 신동오는 무슨 회합에 갔다가, 노래방으로 직접 나타났다. 그러나 와주어서 고맙다고 정소성이 감사했다. 내가 기억나는대로 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보겠다.(무슨 방명록 같은 것이 없어서 혹시 빠뜨릴 수도 있다.)
김숙자 곽명규부부, 유인성, 최동우, 노정, 구대열, 안광윤부부, 김홍윤, 문명숙, 김선리, 김영문, 신한철, 이옥배, 최갑순 김명숙부부, 권무일, 김동필, 최현근, 김영철, 이맹복, 이우용, 신동오, 변상근, 이홍윤, 송종환, 차진도, 박승표, 이기성, 김영길 부부, 정동성 부부, 조성호로 기억된다.
모두 서른 네분이 오셨다. 정소성이가 나에게 전화를 해서 위에 적은 분들 이외에도, 이동렬, 고혜령, 김병일, 오세영, 노영인, 임운봉, 이대영, 임돈희, 권무수, 두진만, 허선, 장석준, 박영훈, 천명섭, 강두수, 유희근, 이길원, 임용철, 이인재, 이명순, <여학생 모임>의 여러 여학생제씨에게 감사를 전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모든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해 달라고 했다. 특히 대구에서 비행기 타고 온 김영문과 남양주에서 온 유인성이, 평택에서 올라온 이맹복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몇달 전 사고로 보행이 불편한 전동성이가 부인이 모는 차를 타고 왔는데 깊은 감사를 표했다. 물 흐르듯이 조용히, 그러나 알 수 없는 흥분과 감동이 격조 높게 줄곧 전신을 감아온 그런 모임이었다. 다들 자신이 곧 맞을 갑년 생일을 생각하는 눈치들이었다. 나는 정소성이와 같은 동네(성동구 옥수동)에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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