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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이대로
【말나눔잔치 차례】 | |
여는 마당 사회(司會/차례지기): 박지미(우학모 총무간사) | |
2:00-2:15 | 여는 말: 구연상(우학모 회장/숙대 교수) ∷∷∷∷∷∷∷∷∷∷∷5쪽 |
풀이 마당 1 | |
2:15-3:15 | 펼치미: 이주영, 이부영, 박용규 오늘의 펼침글 이름: 이오덕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활동과 영향(이주영) ∷∷∷∷∷∷∷6쪽 이오덕이 생각한 교육(이부영) ∷∷∷∷∷∷∷∷∷∷∷∷∷∷∷∷∷14쪽 이오덕의 우리 말글 운동(박용규) ∷∷∷∷∷∷∷∷∷∷∷∷∷∷∷∷26쪽 |
3:15-3:30 | 쉬는 마당 |
풀이 마당 2 | |
3:30-5:20 | 말 함께 나누기: 모이미 모두(전체 자유토론) |
닫는 마당 | |
5:20-5:30 | 닫는 말: 김원명(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문화연구소장) |
펼치미 걸어온 길
<이주영>
학력 및 학위
- 춘천교대,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 경원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육학 석사
-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 기독교문학
(국문학) 문학박사
경력
- 1977년 서울문창초 발령, 33년간 서울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과 살았고, 2011년 서울마포초에서 교장으로 명예퇴임
- 전 초원봉사회 회장,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사장,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 회장, 계간 『어린이문학』 발행인, 도서관친구들 회장, 어린이대공원 초대 명예원장. 경민대학교 독서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국립중앙도서관 자문위원,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자문위원장
- 현 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어린이도서연구회 서울교사지회, 월간 어린이잡지 『개똥이네 놀이터』기획․편집위원, 공동육아협동조합 이사, 어린이어깨동무 운영위원, 서울특별시교육청 도서관정책자문위원장, 서울시교육청 교육인생이모작지원센터 부센터장
-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통합예술치료학과 외래교수
- 경기대학교 대체의학대학원 문학치료 전공 강사
지은책
1. 어른책
* 어린이 해방-그 날로 가는 첫걸음, 우리교육
* 어린이 문화 운동사, 보리출판사
* 책으로 행복한 교실이야기, 아침독서
* 책 사랑하는 아이, 부모가 만든다,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는 어린이책 200선,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이오덕, 어린이를 살려야 한다, 보리출판사
* 비나리시, 고인돌
* 책 사랑하는 아이, 부모가 만든다(전자책ebook), 이펍코리아
* 이오덕 삶과 교육사상(전자책ebook), 이펍코리아
* 이오덕 어린이문학 논쟁사-참된 어린이문학으로 가는 길(전자책ebook), 이펍코리아
* 내 삶에 들어온 이오덕, 단비
* 이오덕 말꽃 모음, 단비출판사
* 김구 말꽃 모음. 김구 글, 단비출판사
*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 웅진출판사
* 교사는 교사다, 천지출판사
2. 어린이책
* 우리말 그림책 “비”, 고인돌
* 삐삐야 미안해, 고인돌
* 아이코, 살았네, 고인돌
*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백범 김구 글 풀이, 현북스
* 토끼불알을 만진 노루, 우리교육
* 장난꾸러기 코피트코, 우리교육
* 1학년 권장 동시집 꽃이파리가 된 나비, 우리교육
* 2학년 권장 동시집 별님동무 고기동무, 우리교육
* 3학년 권장 동시집 우주 자전거, 우리교육
* 4학년 권장 동시집 고구마 순 놓기, 우리교육
* 5학년 권장 동시집 엄마의 장바구니, 우리교육
* 6학년 권장 동시집 모래밭에 그리는 꿈, 우리교육
* 전학년 어린이시 모음 『내 손은 물방울 놀이터』, 우리교육
* 전학년 어린이시 모음 『맨날 나만 갖고 그런다』, 우리교육
* 전학년 어린이시 모음 『아버지 얼굴 예쁘네요』, 온누리
* 전학년 어린이시 모음 『어머니 손가락에』, 온누리
교원 연수 강의
- 에듀니티 원격연수 : 이오덕 삶과 교육사상(30시간)
- 티처빌 원격연수 : 삶을 가꾸는 글쓰기교육(60시간)
<이부영>
학력 및 학위
- 경인교대, 서울교대 졸업
- 한양대교육대학원 졸업(미술교육전공)
- 한국교원대 대학원 수료(초등미술교육 전공)
- 동국대대학원 박사과정(교육사·교육철학전공) 재학 중
- 교육학 석사
경력
- 초등교사 경력 34년
- 프리랜서 초등학교 교사
- 징검다리교육공동체·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
- 각 시도교육청 1정강습·직무·자율연수 강의 진행 중
- 에듀니티·티쳐빌·참교육연구소 원격연수원 강의 진행 중
- 서울시교육청 정책연구와 시민감사관(학사) 활동 중
- 마을학교 경기도교육청 ‘삼시세끼 일놀이공부 꿈의학교’ 운영 중
지은책
*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살림터 등 단독저서 13권, 공저 20여 권
<박용규>
학력 및 학위
-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한국근대사 전공) 졸업
- 문학박사
경력
- 한글학회 연구위원
-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지은책글
1. 도서
* 조선어학회 항일 투쟁사, 한글학회
* 조선어학회 항일 투쟁사, 한글학회, 2012, 10.
* 조선어학회 33인, 역사공간, 2014, 11.
* 북으로 간 한글운동가 이극로 평전, 차송, 2005.
* 우리말 우리역사 보급의 거목 이윤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3, 10.
* 이극로의 우리말글 연구와 민족운동(공저), 선인, 2010.
* 한글보급과 배재학당(배재학당역사박물관 연구집6)(공저), 배재학당역사박물관, 2013, 2.
* 교과서 어휘의 우리말 순화 연구(공저 : 2016 교육부 정책연구과제),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 2016, 12.
* 2015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투쟁 백서(편집), 초등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 엮음, 한글학회, 2016, 3.
* 남저 이우식의 민족 독립운동(공저), 의령문화원, 2017, 1.
2. 주요 논문
* 일제시대 이극로의 민족운동 연구-한글운동을 중심으로, 고려대 사학과(한국사전공) 박사논문, 2009.
* 「민족주의 교육사상가 이만규」, 역사비평22호, 역사문제연구소, 1993.
* 「이만규 연구」, 한국교육사학제16집, 한국교육학회 교육사연구회, 1994.
* 「일제강점·‘해방공간’기 이만규의 기독교 인식」, 한국사상사학제17집, 한국사상사학회, 2001.
* 「1920년대 이극로의 독립운동·독립투쟁과 현실 인식」, 역사문화연구제31집, 한국외국어대 역사문화연구소, 2008, 10.
* 「1930년대 한글운동에서의 이극로의 역할」, 사학연구92호, 한국사학회, 2008, 12.
* 「일제시대 한글운동에서의 신명균의 위상」, 민족문학사연구38호, 민족문학사학회, 2008, 12.
* 「해방후 한글운동에서의 이극로의 위상」, 동양학제45집, 단국대동양학연구소, 2009, 2.
* 「물불 이극로의 한글운동」, 나라사랑제116집, 외솔회, 2010, 3.
* 「조선어사전 저자 문세영 연구」, 사총73, 고려대 역사연구소, 2011, 5.
* 「문세영 조선어사전의 편찬과정과 국어사전사적 의미」, 동방학지제154집, 연세대 국학연구원, 2011, 6.
* 「이희승의 문세영 조선어사전 비판에 대한 검토」, 국학연구제18집, 한국국학진흥원, 2011 봄·여름.
* 「조선어학회 항일 투쟁의 역사적 의미」, 조선어학회 수난 70돌 기념, 조선어학회 항일 투쟁의 역사적 의미와 계승, 국립국어원, 2012, 10, 12.
* 「해방이후 교과서상의 한국 천주교회사 서술과 그 문제점」, 한국 천주교사 연구의 성찰과 전망, 2014, 한국교회사연구소
* 「해방 이후 조선어학회의 정치 지형」, 선도문화제19권, 국학연구원, 2015, 8.
* 「조선어학회 33인의 활동에 대한 총체적 분석」, 조선어학회 선열 추모 문집, 한글학회, 2016, 3.
* 「민족교육자 이만규의 총체적 삶」, 애산 학보43, 애산 학회, 2017, 4.
<우리말로학문하기모임 26차 말나눔잔치 여는 말>
구연상(우학모 으뜸마루(회장)/숙명여대 교수)
아주 늦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늦은 것은 시대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오늘 하고 있는 생각들과 말들은 이미 이오덕 선생님의 긴 그림자였습니다.
“학문(學問)”을 “앎새”로 바꾸자고, 그리고 “융합(融合)”을 “아우르기”로 고쳐야 한다고 외쳤지만,
이 그림자의 샘물이었던 이오덕 선생님을 찾는 일은 늘 게을렀습니다.
우학모 말잔치도 뒷날 우리말글살이에 바른 그림자를 드리우는 밝은 불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말글 바로쓰기’는 ‘우리말답게 바로쓰기’로 깊어질 때가 됐습니다.
저는 이를 한 마디로 “우바!”라고 이름지었습니다.
촛불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과 그 바탕 위에서 세워진 문재인 정부 모두 한 목소리로 “적폐청산(積弊淸算)”을 외쳤지만, 우리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깨닫고 있지는 못합니다.
‘나라다운 나라’를 위한 밑거름이 될 저 외침은 ‘찌든 때 씻어내기’를 뜻했습니다.
피돌이(혈액순환) 운동을 위한 걷기(워킹) 효과로 “밀킹액션(milking action)”이 있는데,
이 말은 ‘우유짜기’ 또는 ‘소젖짜기’를 말합니다.
승자독식(勝者獨食/The Winner-Take-All)이라는 말은 힘없는 사람들을 더욱 힘없게 만드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이긴 사람 다 갖기”, “이기면 다 갖기”, “이기면 싹쓸이”, “진 사람 다 잃기”, “지면 빈 털털”을 뜻합니다. 이 무시무시한 말을 바꿔 보죠^^ 이기면 나누리(더불기, 어우러지기, 서로 살리기)!
우바!
우리말글이 ‘우리말답게 바뀌면’ 삶은 이지고 지는 놀음이 아니라 강물처럼 함께 어우러지는 물결이 됩니다.
‘우바’는 사람과 사람의 모든 사이를 터주고 이어주고 사무치게 해 줍니다.
우리말답게 쓰이는 말글은 ‘우리’의 우리다움과 나라의 나라다움을 서로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게 해 줍니다.
‘우바’는 우리가 이제까지 그 뜻도 모른 채 마치 외우듯 써온 한자 낱말들, 일본어 낱말들, 영어 낱말들을
‘우리말답게’ 바루어 가는 모든 일을 일컫습니다.
외쳐봅시다! ‘우바! 한다!’
우리 모두가 누구나 알기 쉽게 함께 쓸 수 있는 말로 거듭 고쳐 나가고, 바르게 바꿔 나가며, 씻어 가시고, 아름답게 다듬어 나가며, 무엇보다 우리말글에 ‘없거나 모자란 낱말들’을 새로 지어나가는 일,
그 일은 이미 세종부터 이오덕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용암처럼 흘러 이어져 왔던 일입니다.
이 자리 26차 우학모 말나눔잔치에 모신 세 분은 ‘우바’ 횃불을 이어달려 오신 마라톤 달리미들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글 사상과 운동이라는 펼칠거리를 제안해 주시고 발표까지 해 주시는 박용규 선생님과 아울러 이오덕 선생님의 말과 삶을 가르치고 실천해 오신 이주영, 이부영 선생님,
나아가 우학모를 잊지 않고 우리 모임에 뜻을 함께하기 위해 이곳에 와 주신 모든 분께
마음 깊이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구연상 아룀.
이오덕,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활동과 영향
이주영
1. 여는 글
이오덕(1925-2003)은 교육자, 어린이문학가, 교육과 문학 비평가, 우리 말 살리기 운동가,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운동가처럼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이름과 활동은 어린이를 지키고 살리는 교육에 바탕을 두고 있고, 그 바탕 활동이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를 ‘참교육’이라고 하였다. 이오덕은 초중등 교육 현장에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꾸준히 실천하고 연구했으며, 그 성과를 책으로 발표하였다. 처음 펴낸 『일하는 아이들』(1978, 청년사)은 교단과 문단에 새로운 충격과 반성과 희망을 주었다. 나아가 1983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를 결성하는 밑거름이 되었고, 그 뒤 30여 년 동안 나침반이 되어 주고 있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약칭 글쓰기회)는 1983년 8월 19일에서 20일, 과천 영보수녀원에서 결성되었다. 7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그동안 교육현장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글짓기 교육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새로운 방향을 찾으려는 의지가 알선 교사들 사이에서 서서히 높아져 왔던 것이 그 배경이다. 그 중심에 이오덕과 경북글짓기지도회가 있었다.
글쓰기회는 잘못된 교육 풍토에 편승해서 이지러진 글짓기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첫째, 어른들의 상업주의와 물질중심에 빠진 글짓기 교육이다. 소위 글짓기 능력이 뛰어나다는 일부 어린이를 집중적으로 지도하여 각종 행사나 대회에 나가 상 타오는 데만 치우쳤다. 따라서 많은 어린이들이 글 쓰는 능력을 키울 기회를 잃었다. 둘째, 거짓된 감정이라도 기교로 표현하는 세련된 문장 만들기에 치우쳤다. 그래서 ‘글은 거짓되게 짓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고, 거짓된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글 쓰는 기쁨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셋째, 어른 중심의 이데올로기나 관념에 아부하는 글을 쓰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어른들 말을 앵무새처럼 외우게 하는 교육으로 사고의 틀을 가시철망으로 얽어내어 인간스러운 발전을 억압하고 있다. 이러한 잘못에서 벗어나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란 인간 모두가 가져야 될 권리’다. 따라서 글쓰기 교육은 첫째, 학교에서 문예반이나 재주가 있는 몇몇 어린이가 아니라 전체 어린이가 글쓰기 교육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둘째, 스스로의 느낌과 생각을 참되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인간스런 삶을 키워나가는 것이 바른 글쓰기 교육이라는 생각으로 결성하였다.
고홍수(충북 덕신초), 김녹촌(경북 서벽초), 노미화(서울 고척초), 백영현(부산 감전초), 유인성(서울 문창초), 윤구병(충북대), 이오덕(경북 대서초), 이주영(서울 원당초), 임길택(강원 사북초), 장규일(경기 약대초), 주중식(경남 샛별초), 최교진(충남 대천여중), 천정치(광주교대부초), 채찬석(경기 영증중)이 발기인으로 결성식에는 47명이 참여하였고, 곧 300여 명으로 늘었으며, 경기글쓰기회를 시작으로 전국 시도 글쓰기회가 조직되면서 1990년에는 22개 지회 3,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여름과 겨울에 2박 3일로 전국 연수회를 개최하였고, 달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라는 회보를 발행하였다.
2017년 6월 현재,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256호까지 냈고, 여름과 겨울에 2박 3일 연수를 1983년 결성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하면서 꾸준히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실천하면서, 13개 지회 35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초보다 회원이 줄어든 까닭은 당시 전교조 결성 과정에서 많은 회원들이 전교조 본부와 각 지부 활동가로 옮겨 갔고, 2000년대 이후로는 다양한 교사 모임이 활발해지면서 글쓰기 교육 활동이 교사들의 다양한 연구 모임 가운데 하나라는 정도로 위상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기 교육 활동은 여전히 우리 교육 현장에서 꾸준히 활동하면서 이오덕 글쓰기 교육 정신을 이어가면서 발전시키고 있다.
2. 글쓰기 교육 활동 방향
1) 거짓을 강요하는 글짓기를 참을 쓰는 글쓰기로 바꾼다.
어린이에게 글쓰기를 지도할 때 아직도 많은 교사들이 ‘여러분이 겪은 일을 글로 쓰자’보다는 ‘글짓기를 하자.’고 말하는 사람을 간혹 본다. 30여 년 전인 1983년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가 결성되었고, 제5차 교육과정부터 ‘쓰기’ 교과서가 나왔고, 제6차 교육과정부터는 ‘동시’만 짓기라고 할 뿐 다른 갈래는 모두 ‘쓰기’라고 했고, 제7차 교육과정부터는 ‘동시’마저 ‘시’로 쓰면서 모든 갈래 글을 ‘짓기’가 아니라 ‘쓰기’로 바꾸었다. 그럼에도 아직 ‘글쓰기 하자’보다는 ‘글짓기 하자’면서 ‘글짓기’를 교수-학습 용어로 쓰고 있는 경우가 있다. 아직도 ‘초등학교’라고 해야 할 것을 ‘국민학교’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오랫동안 쓰던 입버릇이 그리 쉽게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아직 많은 교사들이 왜 ‘글짓기’라는 말을 버리고 ‘글쓰기’라는 말로 바꾸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왜 ‘글짓기’를 ‘글쓰기’로 바꾸었을까?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먼저 오랫동안 ‘글짓기’라는 이름으로 교육 현장에서 지도해 온 방법의 문제가 무엇인지 간략히 살펴본다. 글짓기(작문·문예) 지도의 잘못은 다음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① 국어 교사나 문학에 재능이 있는 교사가 표현의 형식과 기교에 치중하여 가르침 - 꼬마 문인 육성
② 글짓는 재주가 있는 학생을 선발해서 글짓기반(문예반)을 만들어 특별 지도를 함 - 다수 소외, 소수 글짓기 선수 육성
③ 대회, 행사에 참여해서 실적을 올리는 데 매달림 - 개인 명예욕, 대외 선전용으로 변질(교육의 도구화)
이러다 보니 어른들 입맛에 맞는 글을 억지로 지어내게 되고, 아래 글처럼 다른 사람이 쓴 글을 흉내 내거나 베끼고, 심지어는 교사나 부모가 대신 써 주어 상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보기글)
짐 수 레
000 3학년
짐수레가 간다. 오르막 길에
수레끄는 아저씨 등이 흠뻑 젖었다.
나는 다가가서 살며시 밀었다.
아저씨께서 뒤를 돌아보시며 씨익 웃으셨다.
내 작은 힘도 남을 도울 수 있구나
나는 수레를 더 힘껏 밀었다. | 짐 수 레
짐수레가 간다 오르막 길에
수레 끄는 아저씨 등이 땀이 흠뻑 젖었다.
가만히 다가가서 수레를 밀었다.
아저씨가 돌아보며 씨익 웃으셨다.
내 작은 힘도 남을 도울 수 있구나
나는 더 힘껏 수레를 밀었다. |
앞글은 소년00일보 독자란에 실렸던 동시이고, 뒷글은 어른이 쓴 동시로 제5차 교육과정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글이다. 이처럼 교과서나 동시집에 실린 글을 베끼거나 조금 바꿔서 흉내 낸 동시가 많았다. 월간 잡지사나 신문 독자 투고란에 오는 어린이들 글 대다수가 이처럼 베끼거나 어른이 쓴 글을 흉내 낸 것이 많았다. 학교에서 써 내는 동시도 비슷하였다. 이런 교육은 거짓말쟁이를 기르는 거짓교육으로 표현력 신장이 아니라 오히려 솔직한 표현력을 억누른다고 볼 수 있다. 이래서 국민의 대부분이 초등학교 이상을 다녔고, 글씨를 쓸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정확하게 글로 쓸 줄을 모르게 된 것이다. 또 이렇게 흉내 내기 재주가 없는 어린이들은 쓰기를 싫어하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 글짓기 교육은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흉내쟁이와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심지어 글은 특별한 사람만 쓸 수 있는 특별한 행위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2)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으로 ‘나’와 ‘우리’를 지키고 살린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은 이와 같은 거짓된 표현 기교에 치우친 지도로 오히려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문제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다. 글짓기로 하는 거짓교육, 껍데기교육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가 지향하는 방향을 요약해 보았다.
① 생명을 살리는 교육이다. - 모든 생명은 억압이나 왜곡이 아니라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통해서 살아난다. 따라서 모든 생명은 자기표현의 욕구가 강열하다. 사람은 다른 어떤 돔물보다도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다. 글을 이용한 자기표현은 사람만이 갖고 있는 방법으로 글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첨예한 도구며, 글쓰기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대머리 (5. 남)
나는 요새
하나님께 하고 싶은
큰 원망이 있어요.
나를 왜 대머리로
태어나게
했냐고요?
② 진실을 지키는 교육이다. - 실제의 삶 속에서 우러난 느낌이나 생각을 찾아 쓸 때 진실한 삶을 지키고, 가꿀 수 있다. 따라서 글쓰기는 머리로 지어내거나 남의 글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귀하게 여겨 쓰도록 해야 한다.
돈 (4. 남)
사람은 참 이상하다
돈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돈 때문에 서로 죽이기도 한다.
개도 안 먹는 돈을 가지고 말이다.
③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 자유롭고 진실하게 쓴 글은 읽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고 감동을 느낀다는 것은 곧 나만이 아닌 남의 삶을 이해하도록 이끌어 준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을 때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만 미워해(3, 여)
엄마는 나만 미워하는 것 같다.
오빠와 내가 똑같이 잘못해도
나만 미워하는 것 같다.
오빠는 밉고 엄마는 얄밉다.
엄마는 똑같이 나은 자식인데도
나만 주워온 것 같고
내 엄마는 새 엄마 같다.
* 글쓰기 교육은 겉보기만 그럴듯하게 보이는 글 한 편을 완성하는 데 있지 않다. 진정이 담긴 글을 쓰려고 힘쓰는 과정에서 착하고 바르게, 사람답게 살아가는 민주시민다운 마음과 태도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민주시민답게 살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와 남, 우리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정의감을 가지고, 남을 해치지 않고, 남의 위에 올라가 짓밟지 않으며, 개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삶을 창조해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3) 글쓰기 교육을 위한 기본 원칙
학교 현장에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하는 방법은 같은 글쓰기 회원이라고 해도 교사들마다 각각 다르다. 다만 그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이오덕 글쓰기 교육론에 따라 몇 가지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가) 쓰고 싶은 것을 입말로 자유롭게 쓰도록 한다.
글을 쓰기 싫어하는 어린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를 탓할 수 없다.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보다 훨씬 더 글쓰기를 싫어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는 잘못된 정치와 교육, 그런 문화를 만드는 사회 때문이다.
사람은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자기 표현욕이 강하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 쓰는 자유를 주면 어떤 어린이도 즐겁게 글을 쓴다. 억압하면 저항하게 되고, 저항을 포기하면 사람다운 생명력이 줄거나 죽어버린다. 곧 글쓰기 교육의 첫걸음은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인정하고, 북돋는 일이다.
① 구 름 (3, 남)
구름이 햇님을 꼭 안고 놔 주지 않았다. 그런데 햇님이 가랭이 쌔로 윽찌로 빠져 나왔다. | ② 구 름 (3, 여)
구름은 구름은 요술쟁이야 토끼도 되고 사슴도 되고 파란 연못 속에 하이얀 양떼 되지요 |
①은 한 순간에 보고 느낀 것을 입말로 쓴 시로 글 쓴 개성과 독창성이 엿보인다. 어린이 마음이 살아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②는 구름에 대해 어른이 쓴 동시를 흉내 낸 시다. 곧 흉내쟁이가 쓴 거짓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 마음이 죽어있는 시라고 할 수 할 수 있다. ①과 같은 글을 잘 쓴 글이라고 인정해 주는 것이 ‘표현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첫 걸음이다.
나)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직접 보거나 듣고, 느낀 것이나 생각한 것을 쓴 글을 귀하게 쓰도록 한다.
곧 대상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게 한다. 조그만 것이라도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아주 귀하게 여기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열등감이 생기지 않고 자긍심을 갖게 된다. 사람은 자신을 존중할 수 있을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성당종이 땡땡 (2, 남)
성당종이 1번 2번 3번 4번
땡땡뗑땡 하고 울리면 성당에 가고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7번 8번 9번 10번 11번
12번 13번 14번 15번
16번 17번 18번
땡땡땡뗑땡땡땡뗑땡땡땡뗑땡땡땡뗑땡땡
하고 울리면
집에 가지요.
‘성당종이 땡땡땡’은 2학년 남자 어린이가 쓴 시다. 지진아처럼 말도 안 하고 공부 시간에 책도 못 읽고, 심지어 미술 시간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어린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글쓰기 시간에 나눠준 종이에 아주 흐릿한 연필로 써낸 글이 위에 보기로 든 시다. 앞부분은 아주 작은 글씨로 깨작거리면 쓰다가 뒤로 갈수록 점점 커지다가 끝에 가서는 종이가 꽉 차서 다시 점점 작게 쓴 글이었다. 이 글을 그날 쓴 글 가운데서 가장 잘 쓴 글로 뽑아서 칭찬해 주었는데, 그 뒤로 책도 읽게 되더니-그동안 못 읽은게 아니라 안 읽은 것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학습 능력도 향상되었다. 이렇게 마음껏 자기 경험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글쓰기를 심리 치료에서도 이용하고 있지만 좋은 글을 쓰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성당종이 땡땡땡' 같은 글을 소중하게 평가할 수 있는 교사가 많아지기 바란다.
다) 어린이가 쓴 비판이나 의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있다. 어른의 거울이라고도 한다. 어린이들이 쓰는 글 중에는 교사나 부모나 어른들에 대한, 또는 이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원망, 의문이 들어있는 경우도 꽤 있다. 이때 야단치거나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 비판이나 불만이 정당하면 고맙게 받아들여야 하고, 잘못되었으면 그 까닭을 찾아 제거해야하는 게 어른들이 할 일이다. 사실 그 원인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에게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못해서 (3. 남)
나는 공부를 못해서 걱정이다.
집에 가면 맞기만 한다.
내 속에는 죽는 생각만 난다.
이 어린이 시를 읽고, ‘그래? 그렇게 죽고 싶어 환장했냐? 죽을힘으로 공부해 봐라. 으이구 속 터져’ 하고 구박한다면 어린이는 다시는 이렇게 자기 마음이 담긴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마음이 봄눈 녹듯 놀아서 없어질 수 있을까?
글쓰기 교육은 이와 같이 민주적인 환경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글쓰기교육연구회 교사들은 학급과 학교, 나아가 정치와 사회 민주화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것이다. 집에서 글쓰기 교육을 하려면 가정의 민주화가 그 시작이고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어린이들은 진실한 글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라) 쉽고 깨끗한 우리 말과 글을 잘 살려서 써야 한다.
말과 글은 그 말과 글을 쓰는 사람들의 혼을 만들어 준다. 또 그 혼을 나타내는 꼴도 된다. 따라서 우리 겨레의 혼을 지키고, 우리 겨레의 정신을 더욱 드높이기 위해서는 우리 말과 글을 잘 살려서 써야 한다. 한글은 우리 말을 나타내는 글꼴이다. 곧 한글이 우리 겨레의 혼을 지키고 살리는데 큰 힘이 된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우리 겨레가 다른 겨레한테 나라를 빼앗겼을 때 한글을 지키고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고, 목숨까지 걸었다.
수많은 조상들의 노력으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세우고, 독립군을 만들어 전쟁을 하고, 해방을 맞아 우리 겨레말과 한글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 때 공부한 사람들이 일본한자말을 버리지 못하고 자꾸 썼다. 또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를 그대로 들여다가 쓰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래서 점점 우리 말이 사라지고, 한글로만 썼을 뿐이지 일본한자말이나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들이 활개치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린이들도 자꾸만 그런 흉내를 내게 되는 현실이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니 될 수 있는 대로 쉽고 깨끗한 우리 말을 다시 찾아 쓰고, 한자말이나 일본말이나 미국말을 비롯한 외래어를 좋은 우리 말로 바꿔서 쓰도록 해야 한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서 쉽고 깨끗한 우리 말과 말법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고 있다.
3. 닫는 글
글을 마무리 하면서 이오덕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이 우리 교육과 사회에 끼친 영향을 몇 가지만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가) 학급혁명을 이뤄내고 있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들이 전국 곳곳에서 학급혁명을 일궈내고 있다. 아이들한테 배우는 교사,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기는 교실, 아이들과 함께 삶을 가꾸는 많은 교사들이 실천하고 기록한 글쓰기 회보와 책, 무엇보다 그 제자들을 통해서 증언하고 있다. 이오덕과 그 제자들, 임길택과 그 제자들, 황시백과 김종만을 비롯한 많은 교사들과 그 제자들이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나) 민주시민을 길러내고 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정신이 나와 남, 곧 우리가 함께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다. 이오덕은 이 때문에 대한민국 헌법이 한문 투성이로 된 것을 비판하면서 초등학교도 알기 쉬운 한글 헌법을 만드셨다. 국민 모두가 헌법을 읽고 알아야만 헌법대로 나라를 운영하도록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침교육 실천을 통한 민주시민 교육이라면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에서 하고 있는 <손바닥 헌법책> 보급과 ‘헌법읽기교실’은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민주시민 교육이다.
다) 한국 현대 교육이 나갈 길을 밝혀주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통해서 한국 현대 교육을 ‘거짓교육’과 ‘참교육’으로 견주어 볼 수 있는 눈과 방법을 보여 주었다. 2010년 경기도 교육감으로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혁신교육이라는 말이 나왔고, 2014년 세월호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혁신교육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그 혁신교육이 본보기로 삼은 남한산초등학교는 이오덕 교육론을 지향하는 교사와 학부모들이 일궈 놓은 성과였다. 따라서 이제라도 다시 한국 현대 교육의 전환점을 마련했던 이오덕과 성래운이 주장했던 참교육 정신을 되새겨야 한다.
라) 제3의 문체혁명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한글 역사를 볼 때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들고 세 차례 문체혁명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한문 중심에서 언문을 억누르던 때에 조선 중후기를 거치면서 한문 투 한글 소설이 나오기 시작하고, 한문을 쓰던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박지원 열하일기나 이옥처럼 문체를 바꾸던 시기를 제1차 문제혁명기라고 본다. 대한제국 시기에 주시경을 비롯한 한글학자들이 한글을 개혁하고 소설과 신문이 국한문 혼용체로 들어선 시기를 제2차 문제혁명기라고 본다. 1980년 대 『뿌리 깊은 나무』『샘이 깊은 물』을 거쳐 1988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창간, 곧 순 한글 가로쓰기 잡지와 신문과 문학이 나오기 시작한 시기를 제3 문체혁명기라고 본다. 이오덕은 이 무렵 한겨레신문 창간에 직접 참여했고, 이를 계기로 ‘우리글 바로쓰기’ 책을 내기 시작하였고, 이 책은 지금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마) 누구나 글쓰기 주체로 세우고 있다.
이오덕이 끼친 영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나는 ‘어린이를 글쓰기 주체’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어린이는 건국과 민주화와 사회 변혁의 주체였다. 3.1운동, 6.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4.19혁명에서 어린이들이 주체로 참여했다. 박정희 군사반란 이후 어린이들에 대한 분리 정책을 강화하면서 단순 보호 차원으로 사회와 격리시켰지만 2002년 월드컵 응원전, 효순이와 광우병 촛불 집회, 2016년-2017년 촛불혁명 과정을 거치면서 그 주체성과 시민성이 되살아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역사 진행에 이오덕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어린이를 글쓰기 주체로 당당하게 세우는 그 길에서 ‘누구나 글쓰기 주체’로 당당하게 서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오덕이 ‘일하는 사람들이 글쓰기를 써야 일하는 사람이 주인으로 설 수 있다’며 주장한 노동자 농민 글쓰기를 넘어서 유시민과 같은 지식인들 생각과 글쓰기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오덕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은 이처럼 학교 교육을 넘어서 사회 교육, 정치민주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이오덕은 말과 글이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교육이고 경제과 정치를 비롯한 사회 민주화, 우리 삶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쉽고 깨끗한 우리 말 우리 글 살리기를 해야 하는 까닭이다.(4350, 2017, 대한민국 99년 6월 10일, 6.10항쟁 30주년 일에 이주영)
붙임 1. 글을 어떻게 나눌까? -글을 쓰는 주체에 따라 나누자.
시
소설
어른 문학 희곡
수필
평론
논문
어른들의 창작
글쓰기 동요, 동시
어린이 문학 동화, 소설
동극
수필, 논픽션
평론
글쓰기 시, 노래글
편지글
생활글
생활글 쓰기 이야기글
보고문, 기사문
기록문
설명문
일기
논문
시
이야기글(서사문)
느낌글(감상문)
풀이글(설명문)
주장하는 글(논설문)
어린이, 학생의 글쓰기 관찰기록문
조사보고문
편지글
일기글
연극 대본
*이오덕, 글쓰기 교육 길잡이,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2005. 13쪽)
*이오덕,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보리, 2005. 31쪽에 더 자세히 나누어 놓았음.
이오덕이 생각한 교육
이부영
1. 들어가며
나는 1982년 2월에 2년제 교육대학을 졸업한 뒤 그 해 3월부터 강화도 끝에서 또 작은 배를 타고 건너가는 섬마을 학교 교사가 되었다. 살림살이를 배에 싣고 강 같기도 하고 호수 같기도 한 황해바다를 건널 때만해도 내 마음 속에는 학교와 교육, 교사직업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학교와 교육, 교사직업은 내가 생각해 왔던 것과 거리가 멀었다. 새내기 교사가 보기에도 심각한 문제가 많았다. 발령받자마자 학교교육과 교사직업에 대해 실망이 매우 컸다. 새내기 교사라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힘들고 괴로워서 울면서 보내는 날이 많았다.
이렇게는 도저히 교사노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교육대학에 입학했을 때 학보사 선배가 권해서 읽은 이오덕의 ‘삶과 믿음의 교실’이 문득 생각났다. 다시 읽어보니 내가 만난 학교모습이 책에 나온 바로 그 모습이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어서 무작정 저자 이오덕에게 편지를 썼다. 받지 못할 지도 모르는데, 학교가 내가 생각한 학교가 아니라고,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힘들고 괴로워서 학교를 그만둬야 하나보다고,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이런저런 고민들을 빽빽이 써서 보냈다. 답장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하소연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며칠 뒤 답장이 왔다. 이오덕의 상징이다시피 한 닳아서 굵어진 만년필촉으로 꾹꾹 눌러쓴 답장을 보내왔다. 저자 이오덕이 내게 답장을 보내온 것이다. 내용은 ‘얼마나 힘드냐, 선생님 잘못이 아니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거다, 용기를 내라, 그리고 여름방학 때 안동에서 만나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 많으니 꼭 와라.….’ 그 뒤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편지를 썼는데 그 때마다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이오덕의 편지로 위로를 받고 용기와 힘을 얻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오덕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은 교사들이 나 말고도 전국 곳곳에서 아주 많았다. 당시에 전국에 있는 교사들끼리 학교교육 현장에서 부딪히는 어려움과 고민을 편지로 주고받으면서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주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전국에 있는 교사들이 방학 때마다 만나서 서로의 고민을 얘기하고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이오덕을 만난 것은 내게 행운이었다. 이오덕은 학교교육 현장에서 학교와 교육이 바로 가는 길과 어린이가 행복하게 되는 일, 바른 교사의 길, 바른 삶의 길을 몸소 실천과 참여로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를 비롯해서 수많은 교사들이 이오덕을 따르면서, 힘을 합해서 올바른 교육을 하나둘 학교현장에서 실천하면서 문제점 역시 하나둘 바꾸어 나갔다. 이오덕을 만난 덕분에 나는 일찍이 학교와 교육, 어린이와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게 되었다. 바른 삶의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어서 학교와 교육을 혁신하고자하는 혁신학교를 만들어 가는데 그 어느 교육이론과 방법보다 이오덕의 내용과 방법이 많이 도움 되었다.
이오덕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은 생각 밖으로 참 많다. 요즘도 주변에서 올곧은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어김없이 이오덕과 글쓰기교육을 얘기한다. 이오덕은 대한민국 교육 이 갈 길을 알려주는 교육사상가이며 실천가였다. 이오덕이 세상을 떠난 지 14년째인 지금도 그렇다. 이오덕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고 미래다.
그동안 이오덕을 따라왔고, 지금도 이오덕의 교육과 삶에 대한 생각을 실천하면서 앞으로 더 많이 연구하고 펼쳐내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오덕을 알고 실천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조금씩 더 우리 교육과 사회가 그리고 나라가 이오덕이 바란대로 건강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이 글에서는 한 개인의 자리에서 본 이오덕이 생각하는 교육과 뜻을 부족하나마 정리해 보려 한다.
2. 이오덕이 생각하는 교육의 바탕
이오덕은 1925년에 태어나서 2003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오덕은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서 청소년기를 일제 치하에서 보냈고, 스무 살에 해방을 맞이해서 20대 중반에 한국전쟁을 겪었다. 청년기와 장년기에는 혼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속에서 매우 어려운 시기를 경험했다. 2003년 8월에 세상을 뜰 때까지도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한 진통이 계속 되었다. 이오덕은 정치적 혼란기에 가슴 아파하며 늘 역사의 현장에 있었고, ‘교장’직책의 공무원 신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곧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곤 했다.
이오덕이 생각하는 교육의 바탕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기독교 신앙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온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 어린이와 교육을 보는 눈, 자연과 생명을 보는 눈을 갖게 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이오덕(2004)은 어린이가 아니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고 한 그리스도의 말을 믿는다고 했고, 그리스도야말로 동심의 화신이라고도 했다.
둘째는 농촌과 자연이다.
이오덕은 농촌마을인 경북 청송군 현서면에서 태어나서 주로 농촌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교사가 되었을 때도 대부분 농촌지역에서 근무를 했다. 퇴직 뒤에 잠시 과천에서 산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삶을 농촌지역에서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지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농촌마을인 청주 무너미 마을에서 살았다. 일생을 자연과 함께 산 이오덕에게 자연은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는 공부의 공간이자 생명 존중 사상의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연은 어린이에게 언제나 포근하게 안아주는 어머니가 되고, 절대로 속일 줄 모르는 동무가 되고, 한없는 것을 일깨워주는 스승이 된다고 했다.(이오덕, 2011b: 207)
셋째는,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만난 어린이들이다.
이오덕은 잠시 중등교사와 교감직책을 맡은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교사 노릇을 초등학교에서 했다. 이오덕은 아이들과 40년 가까이 같이 지내면서 어린이에게 많이 배웠고 어린이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이를 가르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아이들을 믿고’,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오덕, 2004b: 315-319) 또한 학대받고 폭력을 당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어린이를 보면서 어린이의 삶을 존중하는 어린이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넷째는, 초등학교 교육 현장이다.
이오덕이 경험한 학교는 군사문화에 젖어있고, 체벌이 있고, 비민주적이고, 어린이를 어른들의 출세에 이용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학교였다. 이오덕은 민주 교육을 주장하면서 민주주의를 교실에 심어야한다고 했다.(이오덕, 2010a:102-123)
다섯째는 이원수이다.
이오덕이 사회에 나와서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은 아동문학가인 이원수다. 이원수에게 문학 창작과 문학 비평을 하는데 영향을 받았고, 이원수가 죽은 뒤에는 이원수의 문학관과 문학교육관을 이어받아 발전시켰다.(이주영, 2011: 53-54)
여섯째, 다양하게 많이 한 독서다.
이오덕은 그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 책 속에서 만나 영향을 준 사람이 많고, 새로운 사상을 받아서 발전시키기도 했다. 읽은 책의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어린이는 물론 청소년, 일반인이 쓴 글도 많이 읽었다. 신문은 물론, 사보같은 월간지, 동네 생활정보지까지도 꼼꼼하게 살펴 읽었다.
일곱째, 일제강점기의 잔재와 분단 현실, 그리고 군사독재 정치 상황이다.
이오덕의 생각하는 교육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는 바탕에 빠질 수 없는 것이, 해방 뒤 50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 그리고 남북 분단 상황, 군사독재 정치와 군사문화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시대 상황은 고스란히 교육과 삶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오덕은 교육과 삶에 나쁜 영향을 주는 시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노력했다.
여덟째, 그 밖에도 이오덕이 생각한 교육에 영향을 준 바탕에는 치열한 삶의 현장 곳곳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도 많이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 이오덕의 어린이와 어린이 마음
이오덕의 어린이에 대한 생각은 기독교와 천도교의 어린이관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한 가정 배경과 어린이 문학을 하면서 이원수를 통해 방정환의 천도교동심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이주영, 2011:198)
이오덕은 ‘어린이의 순진한 마음은 바로 하느님 마음이요, 우주의 마음이다. 어린이가 되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든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하는 말은 결코 어린이란 존재를 어른의 머릿속에서 공상으로 미화시켜 한 말이 아니고, 현실 속에서 숨 쉬고 있는 어린이들의 살아있는 마음을 보여주는 말(이오덕, 1986:60)’이라고 했다.
이오덕(2011a)은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깨끗하고 참된 사람, 정직하고 처음부터 헛된 욕심이 없으며, 약삭빠르게 행동하지 않고, 동정심이 많은데, 아이들이 갖는 정직함과 계산하지 않음과 동정심 이 세 가지는 아이들 마음의 본성이요, 어른들이 잃어버린 마음의 본바탕이라고 보고 있다. ‘어린이는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존재로서 인간의 이상적 원형(이오덕, 1986:55)’이라고 보았다.
아이들을 하늘처럼 섬겨야하고, 아이들한테 배울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이오덕, 2004)고 하였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 마음을 잃지 않아야한다고 하였다. 어린이 마음은 지키고 키워가야 할 가장 깨끗하고 착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세계이며, 어린이가 지닌 순진하고 사심 없는 마음, 자기와 남을 하나로 보는 마음을 언제까지나 고이 간직해 나가도록 하는 데서만 지성이 발달하고 창조력이 뻗어나고 인간성이 제대로 피어난다고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해야 하며, 아이들에게 어떤 지식이나 교훈이나 생각을 자꾸 쑤셔 넣어 주려고 하지 말고, 그들과 같이 놀고 일하는 동안에 함께 이치를 깨닫고 지혜를 얻고 삶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즐거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아이들을 지키는 참교육(이오덕, 1990:196)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순수한 원형을 잃지 않도록 지키고 키워갈 때 우리 겨레와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보았고, 교육과 문학이 이러한 동심을 지키고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오덕(1987:27)은 어린이를 열네 가지로 나누어 보면서, 공통되는 목표를 짧게 말하면 ‘자유를 지키고, 평화를 사랑하고, 평등을 염원하는 어린이’라고 했다.
- 참된 민주적 삶을 실천하는 어린이
- 어린이다운(사람다운) 감정, 사고, 행동을 가진 어린이
-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파악하고, 참 이치를 생각하는 어린이
- 겸손하고, 양보할 줄 알며, 남을 도와주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어린이
- 역한 자, 불행한 자의 편에 서는 어린이
-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감을 갖는 어린이
-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높이 보고, 일하면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어린이
- 물욕에 사로잡히지 않는 어린이
- 어려운 일을 참고 이겨내는 어린이
- 창조적 태도를 가진 어린이
- 자기의 느낌과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어린이
- 사치하지 않고 검소한 어린이
-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어린이
-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린이
4. 이오덕이 생각한 교육의 목적
이오덕은 모든 교육의 근본은 사람이 자기 생명을 지켜갈 수 있는 힘과 슬기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보고, 자기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짓을 흔히 하도록 버려두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요, 참된 자유와 창조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이오덕 2011a:18) 또 교육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워가는 일’이라고 하면서, 몸에 병이 없는 사람, 사람을 슬기롭게 하는 지식을 가진 사람, 사람다운 넉넉한 감정을 가진 사람, 도덕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 이 네 가지를 다 갖춘 사람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오덕. 2011a:39)
이오덕은 특히 글쓰기교육을 강조하였는데,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는 목적은 아이들의 삶을 참되기 가꾸어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하는데 있다고 했다. 글쓰기가 삶을 가꾸는 수단이 되어야 참 글쓰기가 되고, 살아있는 글이 씌어 진다면서 삶을 떠난 글쓰기, 글을 위한 글쓰기 지도에서는 결코 살아있는 글이 씌어 질 수 없으며, 거짓 글, 병든 글, 죽은 글이 씌어 진다고 보았다. 삶에 등을 돌리도록 하는 글쓰기는 속임수의 교육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글쓰기 교육의 목표를 아홉 가지로 얘기하면서 이것이 곧 삶의 ?향이라고 밝혀놓고 있다.(이오덕, 1993:70-75)
- 어린이 마음을 지켜 주고 키워 간다.
- 일하기를 즐기는 사람이 되게 한다.
- 흙의 사상을 가꾼다.
-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생각을 키운다.
- 민주주의로 살아가게 한다.
- 진실을 찾게 한다.
- 생명의 존엄함을 깨닫게 한다.
-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쓰게 한다.
- 깨끗한 우리말을 쓰게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종합해 보면 이오덕이 생각한 교육은 이오덕이 스스로 말했듯이 삶을 위한 교육, 인간교육이다.
5. 그동안에 연구해서 밝혀놓은 이오덕 교육사상의 갈래
이 장에서는 이오덕을 연구한 사람들의 글에서 이오덕이 생각한 교육의 갈래를 정리해 보려 한다. 이오덕을 연구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느낀 점은 이오덕이 생전에 해 온 일에 비하면 이오덕에 대한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이오덕 관련 논문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이오덕의 문학 쪽 내용이고, 이오덕의 교육사상을 연구한 것은 두 편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이주영의 ‘이오덕의 교육사상 연구(2004)’이고, 또 하나는 이인사의 ‘이오덕의 초등교육사상 연구(2016)’다. 이주영(2004)은 이오덕의 교육사상을 민주 교육, 민족 교육, 인간 교육, 일과놀이 교육, 생명 교육의 다섯 가지 틀로 나누어서 정리했다. 이인사(2016)는 이오덕의 교육관과 초등교육관, 초등교사관 세 가지 틀로 나누어서, 이오덕의 교육관으로 일하기 교육, 나라사랑 교육, 목숨 아끼기 교육, 민주교육으로 보았다. 이를 다시 초등교육관으로 표현 교육, 국어 교육, 예체능 교육, 환경 구성 교육, 책 읽기 교육, 사람 교육, 일·놀이 교육으로 나누어 보고 있다. 그러면서 초등교육을 위해 이오덕 교육사상이 주는 의의를 아이들을 바르게 바라보기, 민주교육 하기, 표현교육 하기, 삶을 교육하기, 어린이 문화 가꾸기로 밝혀놓고 있다.
<이오덕 교육사상관 관련한 두 연구 결과의 비교>
이오덕의 교육사상 연구 (이주영, 2004) | 이오덕의 초등교육사상 연구 (이인사, 2016) | ||
이오덕의 교육사상 | - 민주 교육 - 민족 교육 - 인간 교육 - 일과놀이 교육 - 생명 교육 | 이오덕의 교육관 | 일하기 교육 / 나라사랑 교육 / 목숨 아끼기 교육 / 민주교육 |
이오덕의 초등교육관 | 표현 교육 / 국어 교육 / 예체능 교육 / 환경 구성 교육 / 책 읽기 교육 / 사람 교육 / 일·놀이 교육 | ||
이오덕의 초등교사관 | - 아이들의 참되고 아름다운 삶을 어떻게 하면 잘 가꾸어 갈 것인가, 아이들의 창조력을 어떻게 뻗어나게 할 것인가를 의논하고 연구하는 교사. - 말로만 가르치지 않고 직접 행하면서 몸으로 보여주는 교사 - 무엇을 하든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교사 - 아이들을 존중하고 아이들과 같이 오히려 아이들 밑에서 아이들을 아껴주고 위해주어야 할 존재로 보는 교사 - 교육의 모든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 민주적인 삶을 도와주고 학생과 함께 의논하고, 민주적인 삶을 함께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교사 |
이주영과 이인사의 연구결과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이오덕 교육사상 하나를 꼽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민주교육’을 으뜸으로 뽑을 것이다. 이 민주교육은 특히 우리나라 학교교육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인데, 학교현장 경험으로 봤을 때 나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는 바로 학교가 비민주적인 것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있다. 이오덕도 학교에서 교실에서 그 어떤 교육보다 가장 먼저 살리고 심어야할 것이 민주주의라고 했다.(이오덕, 2010a:102-133)
6. 이오덕이 생각한 교육: ‘참교육’, ‘민주교육’, ‘생명 해방의 표현교육’,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는 공부’, ‘삶을 가꾸는 교육’
나는 이오덕의 교육을 말할 때, 참교육, 민주교육, 생명해방의 표현교육, 일과놀이가 하나가 되는 공부, 삶을 가꾸는 공부,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섯 가지는 한 몸이다. 민주교육은 참교육과 삶을 가꾸는 교육을 받쳐주는 든든한 뼈대이고, 생명해방의 표현교육과 일과놀이가 하나가 되는 공부는 몸을 이루는 살과 피가 되겠다. 나는 위 두 연구에서 이오덕의 교육사상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참교육’과 ‘삶을 가꾸는 교육’이 빠진 것을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1) 참교육
이오덕은 교육을 말하면서 ‘참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참교육’은 이오덕 교육사상의 시작이자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참교육’은 전교조가 내세우는 말이 되었는데, 그동안 ‘참교육’이라는 말을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으나 연구결과 가장 먼저 사용한 사람은 바로 이오덕이다.(이상준, 2015:24)
이오덕은 ‘참교육’이라는 말보다 먼저 같은 말인 ‘참된 교육’, ‘참 교육’을 사용했다. 이오덕이 말한 ‘참된 교육’을 얘기하면서 대비되는 ‘베껴쓰기 교육’(획일화), ‘타락한 학교 교육’(입시 준비), ‘식민지 교육’(열등감 주입, 황민화), ‘그릇된 교육’(식민지 학교생활)을 얘기한다. ‘참 교육’을 비인간화의 해결수단으로 언급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이 인간이 기계화되고 획일화되어 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교육마저 관리와 통제를 수단으로 하여 한층 더 인간의 비인간화를 촉진하고 있다. 여기서 교육이 참 교육이 되려면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입은 비인간적 기계화의 해독을 풀어 주는 역할을 맡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참교육을 하려면 획일적인 사고, 기계적인 동작을 배제하고 용납하지 않는 창조적 작업(놀이·학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이오덕, 1978:216). ‘참 교육’은 비인간화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며 그것은 창조적 작업(놀이·학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창조적 작업으로 이오덕은 ‘글짓기 교육’을 제시한다.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느낌과 생각의 소중함, 생활의 귀중함을 깨우치는 글짓기 교육이야말로 이 나라 아이들을 살리고 지켜가는 ‘참 교육’이라고 믿는다(이오덕, 1978:164).
이오덕은 1979년 경북글짓기교육연구회 회장을 맡고 한 달 정도 후에 출판된 ‘교육과 문화의 길(1979)’에서 ‘참교육’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다.
이오덕은 아이들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꿈꾸지 않으며, 단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서, 어린이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자신의 삶을 알뜰히 살아가며 남을 위해 힘쓸 수 있는 일을 하는 교육을 ‘참교육’이라고 하였다. 출세를 해서 이름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교육하지도 받지도 않으며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농사를 짓든, 노동을 하든, 장사를 하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이웃과 정을 나누며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다운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기르기 위한 교육을 ‘참교육’이라고 했다.
참교육이 뭐냐? 아주 쉽게 말해서 아이들이 착하고 바르게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착하고 바른 것이고, 그런 삶의 교육방법은 무엇인가?
오늘날 이 땅에서 우리 아이들이 착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반민주, 반민족, 반인간, 반생명 교육을 물리쳐야 하며, 입신출세를 목표로 하는 살인 망국교육을 씻어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아이들이 민주스런 삶을 창조하면서 통일로 나아가는 자유인이 되게 해야 한다. 곧, 교육하는 방향을 아주 크게 바꾸어서 새로운 지표를 뚜렷하게 세워야 하겠다. 새 교육의 방향이 세워졌으면 좀 더 구체 목표를 세워야한다. 민주·민족의 참사람을 위한 국민교육의 목표를 나는 다음에 드는 여섯 가지로 생각해 본다.
첫째, 남과 같이 살아가는 태도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이제 앞으로는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입고 기분 좋게 살아가려고 해서는 도무지 살 수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둘째, 일하는 사람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일하는 삶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가르쳐야한다.
셋째, 우리 겨레가 살아남으려면 공해를 없애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하고, 스스로 공해를 일으키지 않으며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넷째,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는 마을을 가지게 하고, 벌레 한 마리도 까닭 없이 죽이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섯째, 우리말과 글, 그 밖에 우리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한다.
여섯째, 가난한 삶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중간 생략)
어느 학교 어느 교실에서도 적용해야할 참교육 방법을 세 가지만 들어본다.
첫째, 모든 교육을 삶을 부대끼면서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삶을 주어야 하며, 모든 교과 지도는 삶을 부대끼며, 삶과 관련지어서 해야만 참교육이 될 수 있다.
둘째, 모든 교육이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하며 이뤄져야 한다. 표현하는 자유 없이 참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
셋째, 아이들이 삶을 억누르지 말고 스스로 나서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습도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도록 해야 한다.(이오덕, 2005:299-301)
이오덕의 참교육 사상은 전교조 결성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전교조가 내세우고 있는 ‘참교육’은 이오덕이 말하는 ‘삶을 위한 교육’이고,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은 ‘참교육’의 세 가지 측면이라고 밝혔다. 전교조가 내세우고 있는 참교육은 이오덕의 ‘참교육’ 사상이 뿌리인 것이다. 전교조 참교육운동은 20여 년간 교과수업의 혁신, 통일교육과 환경교육 등 새로운 가치교육의 창출, 학생활동 중심의 학습운영 혁신, 학생 자치활동과 동아리 활동의 활성화를 이루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한만중·이장원, 2009: 33-34)
이후에도 이오덕의 ‘참교육’은 이후에 대안학교 운동과 폐교직전의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의 핵심이 되었고, 2009년 경기도교육청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혁신학교 정책의 기본철학이 되었다.(이부영, 2013:258-271)
2) 민주교육
이오덕은 ‘참교육’을 하는 방법으로 민주교육의 방법을 이야기 했는데 민주교육은 아이들을 민주의 눈으로 보고, 민주의 교육목표를 세우고, 민주의 삶을 가르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보면서 먼저 교사 자신이 민주의 삶을 살면서 아이들이 민주의 삶을 살 수 있게 창조적인 인간으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민주교육을 하려면 네 가지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아이들을 민주의 눈으로 보는 것, 둘째는 민주교육의 이념과 목표를 세우는 일, 셋째는 민주의 삶을 가르치는 일, 넷째는 교사들이 스스로 주인 됨을 찾아가는 일이다. (이오덕, 2010a:126)
이오덕은 ‘민주의 삶은 함께 살아가기다’라고 말했다.(이오덕, 2010a:107)
민주교육은 교육을 보는 생각을 바꾸는데서 출발해야한다고 하면서 교육은 정치하는 사람, 행정을 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교육을 하는 교육자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라면서 오직 어린이들을 바르고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교육은 주변에서 너무나 옳고 환한 상식을 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교육체제가 행정인→교육자→어린이, 이렇게 내려오던 것을 거꾸로 어린이→교사→행정가, 이렇게 올라가는 체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전제교육에서 민주교육으로 교육틀을 바꾸고 옮겨가는 기본 관점이라고 했다.(이오덕, 2005:307) 민주사회에서는 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된다면서 더욱이 교직사회에서는 교원들의 풀뿌리 연구활동 모임이나 단체가 많이 생겨나서 그야말로 백 가지 꽃들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고 했다.(위 책: 308)
3) 생명 해방의 표현교육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에서 시작한다. 이오덕은 한 국가와 사회가 그런 것 같이, 학교와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표현의 자유 없이 학습사회의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아이들을 해방하는 표현교육은 아이들 하나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동시에 그 사회와 국가 전체를 살리는 기본이요 원천이 된다(이오덕, 2010a:166)고 했다.
억눌린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그들의 정서와 창조적 재능이 온각 형태로 피어나도록 하는 표현 중심의 교육이 모든 교육에 앞서도록 하고, 또 그런 교육 방법이 모든 교육에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끌려가고만 있었던 아이들 잡는 노예교육, 살인교육의 길을 거부하고, 크게 방향을 바꾸어 아이들 살리는 참교육의 길을 찾아가자면 생명을 가두지 말고 풀어놓아 주어야 한다고도 했다.(위 책:167) 결국 생명 해방의 표현교육은 생명 해방의 참교육이며 생명 해방의 민주교육이다.
4)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가 되는 공부
이오덕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삶의 목표가 있다면 ‘즐겁게 일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고(위 책:33) 일하는 사람을 멸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고 일하는 사람을 높이 보고, 일하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소중한, 나라 살리는 교육이 없다고 했다.(위 책:38쪽) ‘일을 해야 사람이 된다’면서 일하기 교육을 강조하고 ‘일하기 중심의 교육과정’까지 자세히 정리해서 밝혀 놓고 있다.(위 책: 221-249) 일·놀이·공부가 하나가 되는 교육도 바로 ‘참교육’이다.
교육이 정말 참사람을 키우는 교육이 되자면 아이들에게 몸으로 하는 일을 시켜야 한다. 몸으로 일을 해야 머리도 바로 쓰게 된다. 사람은 일을 해야 사물의 참모습을 알고 이치를 깨닫게 되며, 사람다운 감정을 가지게 되고 올바른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사람은 일을 해야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거나 책을 읽고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결코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아이들은 온 몸을 움직이는 삶으로 자라나는 생명 아닌가.(이오덕, 2010a:44)
아이들에게 ‘놀이’와 ‘일’이 아주 다른 것이 아닙니다. 또 놀이와 일이 같은 것이 되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놀고 일하는 가운데서 재능이 싹트고, 창조력이 뻗어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그러니 ‘놀이’ ‘일’ ‘공부’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되는 것이 참교육의 길입니다. 이런 삶의 교육을 해야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학문을 바로 할 수 있고, 대학에 가지 않고 초등학교만 나와도 건강한 사람으로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이오덕, 2010c:16)
5) 삶을 가꾸는 교육
이오덕이 생각하는 교육에 사용한 말 중에 하나가 ‘삶을 가꾸는’ 이라는 말이다. 이오덕은 ‘모든 교육의 근본은 사람이 자기 생명을 지켜갈 수 있는 힘과 슬기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이오덕, 2011:18)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자기 삶을 바로보고 정직하게 쓰는 가운데서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게 하고, 생각을 갖게 하고, 바르게 살아가도록 하는 교육’을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교육’을 이라고 했다.(이오덕, 2010b:349) ‘우리가 하는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바르게, 건강하게 키워 가는데 있다.’고 했기 때문에 ‘삶을 가꾸는 교육’은 곧 ‘참교육’이자, ‘민주교육’이고, 곧 교육의 근본 목표가 된다. 이오덕은 아이들을 참된 인간으로 길러가는 데에 글쓰기가 가장 훌륭한 방법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1984년에 글쓰기 교육에 대한 내용을 모아 책으로 엮어내면서 책 이름을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한길사)’이라고 했다. 여기서 ‘삶을 가꾸는 교육’이 곧 ‘글쓰기 교육’만을 뜻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글쓰기 교육’은 ‘삶을 가꾸는 교육’의 한 부분일 뿐이다. 모든 교육이 아이들의 ‘삶을 가꾸는 교육’이어야 한다.
7. 이오덕 교육사상이 교육에 끼친 영향들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지금까지 이오덕이 밝혀놓은 교육에 대한 생각들이 교육계는 물론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다.
첫째는, 방정환 뒤를 이은 어린이 문화 운동가로서 어린이가 차지하는 자리와 어린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관점이 많이 퍼졌고, 우리 사회에서 어린이 인권존중 의식이 많이 높아지는데 기여했다.
둘째는, 국어교육의 변화다. 국어과 영역 중 ‘말하기·듣기’가 ‘듣기·말하기’로 자리가 바뀐 것이다. 또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남이 써 준 것으로 과장된 몸짓과 연기 위주의 ‘웅변’과 ‘동화구연’대신에 자연스럽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하기로 바뀌었다. 어린이가 쓴 시와 어른이 어린이를 위해서 시를 모두 ‘동시’라고 했던 것을 어린이가 쓴 시는 ‘시’, 어른이 아이들을 위해서 쓴 시는 ‘동시’로 구분했다. 무엇보다 ‘글을 아름답게 꾸며서 지어낸다.’는 뜻인 ‘글짓기’라는 말이 사라지고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글쓰기’로 바뀌었다. 이오덕의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으로 ‘강아지도 알아먹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쓰기가 널리 퍼졌다.
셋째는, 민주적 학급 운영이 이루어 졌다. 학급운영이 교사주도가 아닌 아이들이 중심이 되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급운영’, ‘학급경영’이라는 말도 ‘학급 1년 살이’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학생들의 자치활동과 동아리활동이 활성화 되고 있다. 또한 민주적이고 인권친화적인 학교만들기에 노력한 결과 회의 내용이 아이들의 관심내용 중심으로 바뀌고, 회의방법도 과거 학급 대표만 참여하던 대의체제 형식에서 전체 아이들이 모여서 하는 다모임 형태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아침에 교문에서 학생들의 머리와 옷을 검사하는 주번제도도 대부분 없애고 있다.
넷째, 이오덕이 책에서 밝혀놓은 참교육, 민주교육, 삶을 가꾸는 교육, 생명해방의 표현교육, 일과놀이가 하나가 되는 교육들이 교육현장에서 실현하려는 노력들이 늘어나서 이는 전교조의 핵심내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90년대 말에 확산되기 시작한 대안학교와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 2009년부터 시작한 혁신학교를 만들어 가는데 핵심 내용이 되고 있다.
남들이 원하지 않는 폐교직전의 농촌지역 작은 학교에 솔선해서 찾아가서 학교를 살려낸 남한산초등학교, 거산초등학교같은 사례에서 주축이 된 교사들은 전교조 조합원이면서 이오덕이 중심이 된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소속 교사들이었다. 교사·학생·학부모가 주인이 되어서 민주적인 학교 운영과 교육과정과 수업의 혁신으로 공교육을 새롭게 바꾸고자하는 혁신학교를 처음 만들어간 사람들 역시 전교조 조합원과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교사들이다.
혁신학교에 대한 정의를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하고 있지만,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처음으로 서울형혁신학교를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으로서, 혁신학교는 곧 이오덕이 생각했던 교육인 ‘참교육’, ‘민주교육’, ‘삶을 가꾸는 교육’, ‘생명해방의 표현교육’, ‘일과놀이와 하나가 되는 공부’를 실현하는 학교다.(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 2011)
혁신학교는 이오덕이 말한 대로 위에서 아래로 지시했던 방식이 아닌 어린이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민주교육으로 자치와 동아리활동을 활성화하고 있다. 전국 13개 시도교육청에서 혁신학교 정책을 펴서 2017년 현재 혁신학교 수가 1000개가 넘는데, 이 중에서 혁신학교 철학을 제대로 운영하는 학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동안 자세히 살펴본 결과 혁신학교가 본래 목적과 철학에 맞게 잘 운영되고 있는 학교는 전교조 조합원이 주축이 된 학교이고, 그 중에서도 더 내용이 알차게 안정적으로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학교는 조합원이면서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회원인 교사가 주축이 된 학교다. 왜 그러느냐하면 이미 80년대 초부터 이오덕에게 ‘참교육’, ‘민주교육’, ‘삶을 가꾸는 교육’, ‘생명해방의 표현교육’, ‘일과놀이가 하나가 되는 공부’를 배우고 익히고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혁신학교에서 동료교사들과 했던 민주적인 학교 운영, 교사회의, 학습전문공동체로서 교사공부모임운영, 아이의 삶이 중심이 된 교과통합 교육과정 재구성, 표현교육, 예술교육, 자치와 동아리활동, 학급 1년 살이... 는 모두 80년대부터 이오덕에게 직접 배워서 실천해 온 것들이었다. 그래서 어느 학교보다 혁신학교 철학에 맞게 혁신학교를 운영할 수 있었다. 이오덕의 ‘참교육’, ‘민주교육’, ‘삶을 가꾸는 교육’, ‘생명해방의 표현교육’, ‘일과놀이가 하나가 되는 공부’는 혁신학교 철학이고 그 속에 혁신교육 내용과 방법이 다 들어있다.
8. 닫는 말
최근 교육과 관련한 글과 발표 내용에 거의 꼭 들어가는 말이 ‘제4차 산업혁명’과 ‘미래교육’이다. 내세우는 말만 바뀌다 뿐이지, 필자가 초등교사로 있었던 지난 34년 동안 수없이 있어 온 일이다. 특히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말이 도배하듯이 나타나다가 정권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는 말, 말들…. 그러다보니 정작 학교현장에서는 ‘또 저러다 말겠지’ 또는 ‘누구 업적 새우려고?’, ‘누구 돈 벌게 해 주려고 저러나?’하면서 무감각하다. ‘제4차 산업혁명’과 ‘미래교육’을 요란하게 내세우면서 학교교육에 강조하는 것은 과거에 해왔던 그 모습 그대로 ‘소프트웨어 교육’과 ‘코딩교육’뿐이다. 최근 ‘제4차산업 혁명’시대라는 말을 앞세우는 모습을 보고 조상식(2017)은 ‘담론의 과잉’라고 하기도 했다.
‘미래교육’이라는 말도 말만 외치고 있지, 학교는 여전히 4,50여 년 전 옛날 모습이 많다. 오래 전에 바뀌었어야 할 교육 내용과 철학은 옛날 그대로인데다 학교교육에 남아있는 관료주의 탓에 새로운 방법만을 들여온다.
이오덕의 교육은 과거가 아니다. 이오덕의 ‘참교육’, ‘민주교육’, ‘삶을 가꾸는 교육’, ‘생명해방의 표현교육’, ‘일과놀이가 하나가 되는 공부’는 지금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교육이다. 이오덕의 교육사상이 갖는 의미를 다시 새기고, ‘삶을 가꾸는 교육’이 갖는 뜻은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이오덕은 과거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다.
아이들을 살리는 교육이 바로 민주교육이라 했습니다. 민주사회를 창조하는 아이들을 키워가는 교육이 90년대 우리 겨레교육에서 가장 큰 과제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지난 40년의 분단교육은 반공과 안보를 위한 교육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민주교육을 외치고 민주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하지 않고는 교육자 노릇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참교육의 방법을 모든 교육자들이 탐구하고 실천하고 돌아보고 창조하면서 이것을 또 다른 교육운동으로 넓혀가고 밀어가는 것이 우리 교육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오덕, 2011: 151-152)
이오덕이 말한 민주교육을 연구하고 실천할 90년대는 이미 이십여 년 전에 지나갔다. 아직도 우리나라 학교에서 민주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없다. 혁신학교는 이오덕이 생각한 참교육, 민주교육, 삶을 가꾸는 교육을 실현하는 학교다.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학교다. 문제많다는 대한민국의 학교와 교육을 바꾸어내기 위해서 이오덕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기에 더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 그리고 일반 국민이 이오덕이 생각한 교육을 더 많이 연구하고 공부해서 실천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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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준(2015). ‘참교육’ 용어의 해체.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이부영(2013).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살림터
이오덕(1977).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청년사.
이오덕(1978). 삶과 믿음의 교실. 한길사.
이오덕(1979). 교육과 문화의 길. 청조사 편집부 (편). 내가 걷는 길 (149-165쪽). 청조사.
이오덕(1986). 이 땅에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지식산업사.
이오덕(1987). 삶·문학·교육. 종로서적.
이오덕(1990). 참교육으로 가는 길. 한길사.
이오덕(1993).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보리.
이오덕(2004a).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보리.
이오덕(2004b).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도서출판 길.
이오덕(2010a). 민주교육으로 가는 길. 고인돌.
이오덕(2010b). 우리글 바로쓰기 1. 한길사.
이오덕(2010c). 어머니들에게 드리는 글. 고인돌
이오덕(2011a). 교사와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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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의 우리 말글 바로쓰기 운동이 가진 의미
박용규
1. 왜 우리 말글을 바로 써야 하는가?
민주국가에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체제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의 민주화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와 보통선거의 실시에서 구비된다. 경제의 민주화는 빈부차이의 해소에서 이루어진다. 사회의 민주화는 신분제도가 없는 사회, 기회 균등이 보장되는 사회, 성차별이 없는 사회에서 이루어진다. 문화의 민주화는 국민 대다수가 문화의 주체가 되어 참여하고, 말글 생활에서 차별이 없어진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국가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의 민주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말글생활에서 차별이 있는가? 없는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답은 말글 생활에서 차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학에서는 영어로 강의를 하고 있고, 공공기관은 어려운 한자어를 한글로만 쓰고 영어를 한글로만 풀어서 국민에게 홍보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매체는 영어와 어려운 한자어를 섞어 보도하고 있다. 길거리 간판은 영문으로 뒤덮여 있다.
대학생은 영어 강의로 인해 학습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은 관공서의 홍보물을 이해할 수 없다. 대중매체의 영어와 한자어의 남용은 국민을 소외시키고 있다. 길거리의 영어 간판에서 국민은 위축된다. 이처럼 온 국민은 말글생활에서 차별받으며 힘겹게 살고 있다.
온 국민이 말글생활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아야 민주국가라고 할 수 있다. 봉건왕조시대나 비민주국가(후진국가)에서는 지배층의 말글과 피지배층의 말글이, 특권층과 비특권층의 말글이 구분되어 있었다. 필리핀과 인도의 경우도 영어를 아는 계층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 고유어만을 아는 계층은 고급 문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언어의 차별과 소외는 정치·경제·사회의 차별을 가속화시킨다.
조선왕조에서도 지배층은 한자말과 한문으로 말글 생활을 하였다. 이들은 이것을 무기로 경제적 우월과 정치적 우월을 누렸다. 반면에 피지배층의 대다수는 문맹상태에 있었다. 우리말만 사용하였지 문자생활에서 차별받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소수의 농민들만이 우리말과 한글로 말글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이들도 한자말과 한문을 제대로 알지 못해 말글생활에서 차별받았다.
일제시기에는 일본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영구 지배를 위해 조선인에게 일본어와 일한혼용체의 일문을 익히도록 강요하였다. 소수의 조선인들은 일본어를 익혀 지배체제에 편입하였다. 그러나 대다수의 조선 민중들은 문자생활에서 차별 받았다. 우리말만 사용하였지 한글과 한자와 일문을 읽을 수 없는 문맹의 상태는 지속되었다. 문맹상태의 지속은 조선인의 지적 수준을 향상할 수 없도록 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인은 의무교육으로 문맹에서 일찍 해방될 수 있었다. 문맹의 탈피로 국민의 지적 수준도 향상되었다. 그런데 국민 대다수의 지적 수준 향상을 방해하는 행위가 기득권층에서 제기되었다. 대학과 신문의 국한문혼용체 문장의 일반화가 그것이다. 기득권층은 어려운 한자어의 한자 표기와 영어와 영문 표기로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를 고수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문화의 민주화에 역행하는 처사였다.
대학과 신문의 국한문혼용체에 대한 반대는 한글학회 등 민간학술단체의 노력으로 한글전용이 실현되었다. 한자어의 한글 표기만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민 대다수가 모르는 한자어는 사라지지 않았다.
기득권층과 지식인들은 어려운 한자어를 남발하여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데 앞장섰다. 이들이 말글의 민주화를 방해하였다. 예로 들면 돈봉투를 ‘촌지’로, 이중장부나 거짓 회계를 ‘분식회계’로, 뇌물 검사를 ‘떡값 검사’로, 뇌물 주고받음을 ‘금품 수수’로, 사영화를 ‘민영화’로 표기하여 사용하였다. 이런 말들은 진실을 은폐하는데 사용되었다. 진실의 은폐는 민주국가의 보위에 방해되는 공공의 적이다. 공공의 적은 국민의 힘에 의해 소탕되어야 하고, 제압되어야 한다.
최근에 한국의 기득권층은 영어를 남용하여 자신들의 우월함을 드러내고 있다. 외국어를 남용하여 자국민을 차별하는 자는 민주시민의 자질이 없다. 외국어의 사용은 외국인을 만났을 때 사용하면 그만이다. 또는 외국과 무역을 하는 담당자라든지 외국에서 학술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들은 필요할 때 외국어를 사용하면 된다. 민주 국가에서는 국민 누구나 자국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누구나 말글생활에서 차별받지 않기 때문이다.
한자어와 일본말식 한자어를 우리 말글에 혼용하자는 주장은 봉건 잔재와 식민주의 언어학의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증거이다. 더구나 자국어의 사용과 표기에 외국어인 영어와 영문을 사용하자는 주장은 사대 노예근성이 사라지지 않은 현실의 반영이다.
해방 이후 한국의 경우 문자생활에서 국한혼용 선호 세력과 한글전용 세력의 대립은 1980년대 후반 후자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한글 전용운동에 앞장선 민간학술단체가 한글학회였고, 한글전용 실현에 국어학자 최현배의 노고가 컸다. 문자생활에서 한글전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후 국어기본법 등의 제정을 통해 국민의 문자 생활 차별을 해소하였다.
그러나 문제도 발생하였다. 어려운 한자어를 한글로 쓰게 되다 보니, 한자어는 그대로 남고 우리말이 죽는 결과를 가져왔다. 알기 쉬운 한자어 가운데 우리말이 된 한자어는 그대로 쓰되, 어려운 한자어는 우리말로 풀어써야 할 과제가 남겨졌다. 더 큰 문제는 영어와 영문 표기가 그대로 사용되든지 한글로만 표기되어 사용되는 현실이다. 영어가 우리말을 질식시키는 현실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앞장선 인사가 이오덕(1925-2003)이었다. 그는 우리 말글 바로쓰기 운동을 말글의 민주화 운동이고 민주 사회의 실현에 기여하는 운동이라고 인식하였다. 모든 국민들이 우리말과 한글을 제대로 말하고 읽고 쓸 수 있어야, 정치가 바로잡히고 산업도 일어나며 외국의 문물도 제대로 수용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그의 말글의 민주화 인식에 대한 요체이다. 문화의 민주화의 핵심인 말글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정치·경제·사회의 발전과 민주화도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말글의 민주화를 위해 이오덕은 한자어, 일본말식 한자어, 영어의 사용을 배제하고, 쉬운 우리말의 사용을 주장하였다. 글은 쉬운 우리말을 한글로 쓰도록 권유하였다.
2. 이오덕의 우리 말글 인식
우리말에 대한 이오덕의 관심은 1960년대 초부터 시작했다. 이오덕은 우리말을 쉬운 말로 쓰자는 생각을 가졌다. 본격적인 관심은 1986년 학교를 퇴직한 뒤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퇴직한 뒤 그는 어른들이 말이 많이 오염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 말글을 바로 알고 쓰는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가 “살아있는 말을 지키고 가꾸는 일이 글쓰기”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글쓰기 교육을 지도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말을 지키고 살리는 작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필자는 본다.
우리말을 살리고자 그는 1988년 5월에 한겨레신문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직접 냈다. 광고의 글귀는 “우리말 우리혼 한겨레 만세!”라고 되어 있다.
다음은 그가 밝히고 있는 언어관이다.
우리의 말은 우리 민족의 피요 생명이다. 우리의 민족 정신을 기르는 교육은 이러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 이외에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말이 살아야 겨레가 산다.
배달말은 배달 겨레의 생명입니다.
말을 잃으면 얼을 잃은 것이요 허수아비가 된 것이다. 우리말을 살리지 않고는 우리가 살아날 길은 절대로 없다. 우리말을 살리는 일은 겨레를 살리는 모든 일이 제자리에서 제대로 되게 하고, 모든 일의 뿌리가 되고 바탕이 되는 가장 중대한 일이고 가장 앞서야 하는 일이다.
겨레의 넋이 담긴 말이 남의 말글로 죽어가고 있다.
말을 지키는 것은 마음을 지키는 것이고, 혼을 지키는 것이다. 겨레의 혼을 지키고 이어가는 데 글쓰기만큼 중요한 수단이 없는 까닭이 이러하다.
말이란 게 민족의 생명인데, 말로 민족이 이뤄지는데, 말로서 사람의 감정, 생각, 사상이 전부 이뤄진다. 더구나 민족이 둘로 갈라져 있는데, 민족이란 것은 영원한 겁니다. 이건 운명입니다. 벗어날 수 있다는 건 완전히 관념입니다. 우리가 모든 세상사람들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이바지한다고 해도 그 지역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이상과 같은 이오덕의 언어관은 민족과 결합되어 있다. 그에게 말은 혼, 얼, 마음이었고, 우리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혼이요 생명이었다. 우리말을 잃는 것은 민족의 멸망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민족 구성의 요소 가운데 언어를 핵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처럼 그는 언어민족일체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오덕의 언어관은 주시경 이래 조선어학회의 학자들(최현배, 이극로)이 주장해온 민족주의 언어관 즉 언어민족일체관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의 뿌리가 우리말, 민중의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글 바로쓰기의 학문적 근거가 뭐냐는 장호상의 질문에 그는 외국 학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내 생각의 뿌리는 나 자신이고, 내가 알고 있는 우리말이고, 말을 하면서 살아온 백성-민중들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1990년 5월 4일자 일기에서 이 대화를 다시 기술하면서, “나는 우리가 글을 쓸 때 일반 민중들이 말하는 그 말을 따르고 그 말을 살려서 써야 한다는 신념뿐입니다. 학문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 생각의 바탕과 뿌리는 민중의 삶이고 민중의 말입니다.”라고 말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우리말은 그의 사상의 중심 주제였다.
3. 이오덕의 우리 말글 바로쓰기 운동 실천
1) 우리 말글 바로쓰기 운동에 나서게 된 배경
그는 일제 식민지 시기와 분단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오면서 우리 말글이 멸시되고 오히려 외국어가 우대되는 현실을 목도하였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우리 말글 연구에 나서게 하였다.
그는 우리 말글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봉건과 일제의 잔재, 그리고 분단의 현실에 기인하고 있다고 인식하였다. 우리나라 말글 생활에서 봉건시대에는 지배층은 한문과 한자어를 썼고, 일제식민지 시대에는 일본말을 우리 민족에게 강요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기득권세력들이 영어를 숭상하면서 우리말과 글밖에 모르는 사람들을 지배하여 왔다.
그가 판단하기로는 한자어, 일본어식 한자어, 영어의 숭배와 범람에서 우리 민족이 우리 말글을 제대로 말하고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겨레의 말과 글이 한자말과 일본말과 영어에 시달리는 ‘삼중고’를 당하였다는 것이다.
이오덕은 일제의 식민주의 언어 정책 때문에 특히 우리 말글이 붕괴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일제의 언어정책이 일본어 상용과 조선말 말살, 그리고 한자말 우대에 일관하였다고 파악하였다. 일제가 그리한 이유가 조선민족이 겨레말의 알맹이를 잃게 하고, 겨레의 넋을 박탈하고자 함에 있었다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그가 일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으로 필자는 본다.
분단시대에도 우리 말글이 멸시받게 된 이유를 그는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 그는 우리말이 외국의 말과 글에 짓밟힌 까닭으로 첫째, 일하는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 있지 못하기에, 둘째, 외국의 침략과 이에 편승한 반민족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여 왔기에, 셋째, 남의 나라 글과 말을 높이고, 우리말과 글을 멸시하게 되는 못된 습성에서 우리 겨레가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기에 그렇다고 진단하였다.
우리 민족이 외국어를 숭배하는 사대 노예근성에서 탈피하지 못한 상태에 있기에, 우리 말글이 외국어에 제압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97년에 닥친 경제난국도 우리 것 즉 우리말과 글을 학대해서 빚어졌다고 진단하였다. 국민의 정신을 바로 잡아야 정치 경제 교육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 정신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그걸 바로잡나? 정신이 곧 말이고, 말이 정신이다. 깨끗한 말, 누구든지 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말을 하고 글을 쓰면 우리사회는 저절로 밝아지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될 것이라고 경제 난국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말글의 민주화가 사회의 민주화를 가져오고 모든 것을 정상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말글을 바로 잡는 주체로 그는 관료나 지식인이 아니라고 보았다. 민중(백성)들이 우리 말글을 바로 잡는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우리말을 찾아 쓰는 일도 어디까지나 일반 백성들이 해야 할 몫이다.”라고 밝혔다. 그 민중 속에 이오덕 자신이 포함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가 뜻이 같은 동료들과 우리 말글을 살리는 모임을 결성하여 나서게 되었다.
2) 우리 말글 살리는 각종 모임의 결성과 활동
우리글 바로 쓰기(1989) 출간 이후 이오덕은 우리말과 글을 살리는 일을 사회운동으로 전개하고자 하였다. 책 출간 이후에도 신문과 잡지에 나오는 글이 우리말이 살려지는 방향으로 고쳐지지 않는 현실을 보고서 그는 사회를 향해 우리말 살리는 운동을 펼치고자, 뜻있는 사람들과 모임을 결성하기로 결심하게 하였다. 1991년 1월 28일 첫 모임을 가졌다. 같은 해 7월 13일에는 모임의 임시 이름을 ‘우리말 사랑 겨레 모임’으로 정하였다. 같은 해 7월 19일에는 이오덕이 취지문을 작성하여 회원들과 함께 읽었다.
취지문에서 그는 “우리말은 우리 겨레의 피요 생명입니다.”, “말을 살리는 일이 겨레를 살리는 일입니다.”, “말 살리는 일이 곧 민주주의와 통일을 앞당기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습니다.”라는 주장을 담아, 우리말이 한자말과 일본말과 서양말에 짓밟힌 현실을 타개하자고 주장하였다.
같은 해 9월 14일에 열린 창립대회에서 모임의 명칭이 ‘한말글 사랑 겨레모임’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같은 달 9월 30일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모임의 명칭 가운데 ‘한말글’이라는 새말이 들어 있는 것이 곤란하기에, 자신은 사퇴한다는 입장을 밝혀 물러났다.
그 뒤 그는 1993년 ‘우리말 살리는 모임’을 결성하여 회장을 맡았다. 이 모임의 회보로 우리말 우리글를 발간하였다. 회보에 우리말 바로쓰기 기준을 발표하였다.
1998년 7월에 그는 ‘우리말 살리는 겨레 모임’을 결성하였다. 이 모임이 결성된 배경으로는 1997년에 닥친 경제난국도 작용하였다. 김영삼 정권은 경제난국을 불러들였을 뿐만 아니라 영어와 한자의 조기교육을 내세워 국어를 위태롭게 하였다. 그는 이대로·김경희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았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우리말 우리얼이라는 회보를 발간하였다. 이 모임의 취지문과 목표, 우리말 바로 쓰기의 원칙과 기준을 작성하였다.
문자생활에서 한자의 혼용과 병기를 주장하는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는 1998년 9월에 발기하였고, 같은 해 11월 17일에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초등학교에서 한자교육의 실시, 모든 교과서의 한자혼용, 공문서와 표지판과 간판의 한자 병기할 것 내세웠다. 이러한 주장은 ‘한글전용법’의 폐기를 노린 것으로, 우리나라의 한글전용 정책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주장이었다.
이에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에서는 우리말 우리얼이라는 회보에 이 단체의 주장을 비판하는 특집을 마련하였다. 이오덕은 여기에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의 주장을 비판함」, 「북한의 한문글자 교육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 한자교육 자료1에 대한 비판」, 「이런 말을 쓰기 위해 한문글자를 가르치다니! : 한자교육 자료2를 비판함」, 「한글로 써서 알 수 없다면 우리말이 아니다 : 한자교육 자료3을 비판함」, 「속임수가 있기에 어려운 말과 글을 쓴다」, 「어린이들에게 한문글자 가르쳐야 한다는 억지와 속임수」, 「한문글자는 우리말과 우리 민족을 죽이는 암이다」 들을 게재하여 이 한자파의 주장을 낱낱이 비판하였다.
1998년 2월 18일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의 주장에 동조하여 국회의원 박원홍이 동료 의원 151명의 서명을 받아 ‘한글전용법 폐기 청원’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에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은 한글학회와 전국국어교사모임 등 한글단체와 함께 이를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1998년 12월 이오덕은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의 주장을 제압하기 위해, ‘한글전용법 지키기 천만인 서명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이 조직체에서 본부장을 맡았다. 그는 「‘한글전용법 지키기 천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면서」라는 글을 발표하여,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글을 지키는 일이 우리 민족이 해야할 독립운동이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하였다. 그는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는 기쁨과 자랑」, 「‘한글전용법’을 폐지하면 이런 글 세상이 된다」라는 글을 발표하여 국회의 한글전용법 폐지 청원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마침내 국회의 한글전용법 폐기 청원은 추진되지 않고 사라졌다.
1999년 2월 10일 김대중 정부는 공문서와 도로 표지판에 한자를 병기하고 주민등록증에 한자 이름을 더불어 쓰도록 하는 한자병용정책을 발표하였다. 이에 한글 관련 단체는 전부 나서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였다.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도 여기에 참여하였다. 겨레모임의 이오덕은 1999년 6월 23일 ‘한자병기정책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그는 정부부터 한글전용법을 지키고, 이런 정책을 강행하는 책임자를 사퇴시키라고 호소하였다. 계속해서 그는 정부의 한자병기정책을 비판하고자 「이 무슨 독재정권이 하는 짓이냐」라는 글을 발표하여 국민에게 호소하였다. 1999년 7월 2일에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김성재에게 편지를 보내 공문서의 한자병용을 하지 말도록 주장하였다.
그는 겨레모임의 회보인 우리말 우리얼에 우리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한자와 한자어를 쓰게 되면 우리 말글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여러 편의 글을 기고하였다. 「한문글자를 쓰면 우리말이 죽게 되는 까닭」, 「한자말을 쓰지 말아야 하는 까닭」(1)-(7)이 그것이다.
3) 우리 말글 살리는 각종 대안 제시
(1) 우리말 살려 쓰기 주장
이오덕은 1993년 10월 한겨레신문 기고한 「언제까지 중국글 섞어쓸 것인가」에서, 문자생활의 글쓰기에서 3가지 주장이 맞서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국한문혼용체, 한글전용체, 우리말 살려 쓰기라고 정리하였다. 그는 국한문혼용체와 한글전용체의 논쟁을 극복하는 차원에서 우리말 살려 쓰기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그는 한글전용을 하되, 한자어를 한글로만 적어놓으면 뜻이 통하지 않으니, 한자어를 우리말로 쓰자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보기로 들면, 문자생활에서 한자어 油價·株價·豪雨·冷水로 써서는 안 되고, 한자어인 유가·주가·호우·냉수를 우리말인 ‘기름값’, ‘주식값’, ‘큰비’, ‘찬물’로 쓰자는 것이다.
일본어식 한자어인 ‘야채(野菜)’, ‘인상(引上)’, ‘개시(開始)’, ‘역할(役割)’ 대신에, ‘나물’, ‘올림’, ‘시작’, ‘할 일’로 쓰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한글전용법 지키기 천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면서」라는 글에서 잘 나타나 있다.
우리 말글에서 ‘-에 있어’, ‘-에 있어서’, ‘-에 있어서의’, ‘-에의’, ‘-로의’, ‘-에로의’, ‘-에로’, ‘-으로부터’, ‘에서의’, ‘와의’, ‘-마다에’, ‘보다’(“보다 나은” 따위), ‘그녀’와 같은 일본말법을 쓰지 말자는 것이다.
서양어(‘커미션’, ‘레크레이션’, ‘슬로건’ 따위)와 서양말법(‘먹었었다’, ‘갔었다’, ‘했어야 했다’)을 쓰지 말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그가 1998년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을 결성한 뒤, 우리말 살리는 겨레운동을 전개하면서 제시한 것이었다.
그는 남북의 말을 통일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우리말을 쓰면 해결된다고 주장하였다. 남의 ‘상호’, ‘왕래’와 북의 ‘호상’, ‘내왕’ 대신에, ‘서로’, ‘오고 간다’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의 주장을 비판함」이라는 글에서 “어려운 한문글자말을 한글로 적어도 안 되고, 한문글자를 그대로 적어도 안 된다. 바로 한문글자로 된 어려운 말을 안 쓰고 그 대신에 우리말로 써야 한다. 우리말이니까 모두 잘 알고, 우리말이니까 어려운 한문글자가 필요 없고, 한문글자를 쓸 수도 없다. 한글만 쓰느냐, 한문글자를 섞어서 쓰느냐 하는 문제는 이렇게 해서 시원스레 풀린다. 그리고 이 길밖에는 절대로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이 없다고 본다.”라고 다시 정리하였다.
그의 주장은 어려운 한자어를 한자나 한글로만 적어서도 안 되고, 쉬운 우리말로 고쳐 한글로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이 그의 말글 쓰기의 핵심이었다.
그의 우리 말글 살리는 주장은 어려운 한자어, 일본식 한자어, 일본어식 말법(문법)과 서양말(영어)와 서양말법(영문법)으로 말하거나 쓰지 말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잘못된 말과 글을 사용하면 우리말과 글이 죽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최현배의 주장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었다. 최현배는 1947년 5월 「우리말을 깨끗이 하자」라는 글에서 일본어를 몰아내고 우리말을 쓰자고 하면서, 일본어를 대신할 우리말을 제시하였다. 몇가지 예로 그는 ‘벤또’ 대신에 ‘도시락’을, 취체 대신에 단속을, 수속 대신에 절차를, 상호 대신에 호상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어법 ‘보다’(보기 보다 높은, 보다 좋은) 대신에 우리 말법 ‘더’(보기 더 높은, 더 좋은)를 써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군정에 참여한 최현배(문교부 편수국장)는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국어정화위원회의 심사위원들과 함께 942개 일본어 단어를 뽑아 우리말 단어로 대체하여 제시하였다. 문교부는 이를 1948년 6월 우리말 도로 찾기라는 책자 60만 부를 발간하여 학교와 일반에 보급하였다.
최현배와 이오덕의 공통점은 한자어의 한글 표기, 일본말을 쓰지 말고 우리말을 쓰자 라는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최현배의 주장에서 더 발전된 이오덕의 주장은 우리 문장에서 어려운 한자어를 찾아내어 쉬운 우리말 표기를 실천한 점, 우리글에서 일본식 한자어를 찾아내어 우리말로 고쳐준 점, 일본문법으로 된 글을 찾아내어 우리글로 고쳐준 점, 영어와 영문법으로 된 글을 찾아내어 우리글로 고쳐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그는 수많은 잘못된 말과 글을 찾아내어, 잘못된 말과 글을 고치는 작업을 평생 실천하다가 서거하였다. 그 결과물이 5권 저서 우리글 바로쓰기와 1권의 저서 우리문장 쓰기로 나왔다.
이와 같은 주장은 궁극적으로 신문, 잡지 글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1988년에 창간한 한겨레신문을 제외한 여러 신문들이 국한문혼용체로 발간하고 있었다. 이들 신문들이 1990년대에 들어가 한글전용신문으로 바뀌었다. 이오덕의 우리 말글 바로 쓰기 주장들이 신문에도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2) 우리 문장에서 한자 섞어 쓰지 않기 주장
그는 1995년경에도 「식민지 문화로 가는 길」이라는 글에서도 국한문혼용체 주장과 어린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자는 주장에 대해 비판하였다.
1998년 12월 그는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의 국한문혼용론과 초등학교 한자의무교육 주장을 비판하고자, ‘한글전용법 지키기 천만인 서명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이 조직체에서 본부장을 맡았다. 그는 곧바로 회원들과 함께 우리 말글을 지키자는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1999년 2월 18일자 한겨레신문에 「한자병용 왜 문제인가」라는 글을 게재하여, 한자병용을 비판하였다. 같은 달 22일자 한겨레신문에 「한자병용 왜 문제인가 전문가 좌담」에 참여하여 서울대 송기중 교수와 대담을 하였다. 같은 해 3월에 그는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의 공동대표로써 8개 한글단체 회원들과 함께,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정부의 한자병용정책에 반대하는 항의 집회에 참여하였다.
1999년 5월 이오덕은 한글전용법 지키기 천만인 서명운동의 본부장을 맡아 거리서명운동을 펼쳤다.
이 무렵 그는 많은 글을 발표하여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의 주장을 낱낱이 비판하였다. 「속임수가 있기에 어려운 말과 글을 쓴다」, 「얼빠진 속임수는 걷어치워!」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3) 영어말법 쓰지 않기 주장과 영어공용어론 반대
그는 우리글 바로쓰기(1989)의 ‘제3장 서양말 홍수가 졌다.’라는 부분에서 쓰지 말아야 할 서양말의 예문을 들어 상세히 설명하였다. 영문법을 따라 ‘-었었다’를 쓰고 있는 우리 글쓰기 현실을 비판하였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은 우리말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였다.
아울러 그는 영어공용어 주장에 대해 비판하였다. 박성래 교수는 「언어의 적자생존시대」(한겨레신문, 1994, 11, 24)라는 글에서, 21세기에 영어가 인류 공용어로 정착할 것이기에, 우리도 영어를 제1외국어라 아니라 제2국어로 해야 국제 경쟁에서 유리하니, 영어를 충실히 익힐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이오덕은 「겨레말을 없애자는 어이없는 망언」이라는 글을 통해 이를 비판하였다. 영어를 국어로 해놓고는 우리 배달말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것이다.
1998년 7월 조선일보의 영어공용어 논쟁 가운데 실린 복거일의 책 내용을 소개한 기사에 대한 반박 글을 발표하였다. 그는 영어공용화론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복거일의 주장을 비판하였다. 영어공용어 주장은 망국 망족으로 이끄는 것이라며, “배달말은 우리 민족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목숨줄이다.”라고 밝혔다.
4) 우리 말글 바로 쓰기를 알리고자 각종 잡지 기고와 책 발간을 통한 활동
인생의 후반기에서 그는 우리말을 살리는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88년 5월 15일(1회)부터 같은 해 8월 25일(18회)에 걸쳐 「우리말을 살리자」라는 글을 한겨레신문에 연재하였다.
1990년에서 1994년에 걸쳐 그는 월간 말에도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지면을 단독으로 46호(1990, 4)에서 95호(1994, 5)까지 50회 연재하였다. 1993년에도 그는 ‘이오덕의 우리말쓰기’라는 지면을 확보하여, 우리교육35호(1993. 1)에서 중등용 우리교육45호(1993, 11)까지 11편을 게재하였다. 이외 주간조선의 연재를 비롯하여 여러 잡지에 우리글 바로쓰기를 홍보하는 글을 방대하게 발표하였다.
그의 우리 말글 바로쓰기 운동을 알리는 결정적 기여는 저서의 발간을 통해 이루어졌다. 1989, 1992, 1995년에 걸쳐 나온 우리글 바로쓰기1, 2, 3권과 1992년에 발간한 우리문장 쓰기가 그것이다. 서거 이후에 우리글 바로쓰기4, 5권이 2009년에 나왔다. 이상의 6권의 저서는 우리 말글 바로쓰기의 지침서로 우리민족에게 그가 남긴 최대 업적이었다.
이들 책은 저자가 식민지와 분단시대를 거치며 우리 말글이 민족의 정신이요 생명이라는 자각 속에서 나온 국어 연구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출간은 그를 국어학자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어떤 단어 가운데 한자어인지 아닌지를 모르고 우리 국민들은 무심코 사용한다. 저자는 해박한 한문과 일본어 지식을 바탕으로 이를 지적하고 시정하여 주었다. 일제 식민지 시기 전후에 배출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학자도 저술하지 못한 작업을, 중등학교(영덕공립농업실수학교)를 졸업한 그가 해내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민족사의 쾌거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오덕의 투철한 소명의식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무한한 우리말 사랑 정신과 민족 사랑과 나라 사랑 정신에서 찾을 수 있겠다. 그의 우리 말글 바로 쓰기와 관련된 저서는 우리 말글 연구의 마르지 않는 샘물 노릇을 할 것을 확신한다.
4. 우리 말글 바로쓰기 운동이 남긴 의미
1) 우리 말글의 민주화가 우리나라 전체 민주화에 기여한다.
이오덕은 말과 글을 바로 잡는 것이 민주사회의 실현에 지극히 큰 노릇을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는 “우리말을 살리는 것은 바로 우리말을 민주로 한다는 것이고, 우리말을 민주로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민주로 만든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말과 글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의 의식과 삶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보았다. 모든 국민들이 우리말과 한글을 제대로 말하고 읽고 쓸 수 있어야, 정치가 바로잡히고 산업도 일어나며 외국의 문물도 제대로 수용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상과 같이 그는 말의 민주화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였다.
말글의 사용에서 전 국민이 차별이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말글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말글 사용에서 온 국민의 차별과 소외가 없는 상태는 어려운 한자어, 외국어의 사용 남발에서 이루어 질 수 없다. 우리말과 한글의 사용을 통해서만 말글의 차별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러면 국민은 쉬운 말글의 사용과 습득을 통해 고등 지식을 얻게 되고 국민의 지적 수준도 향상될 수 있다. 국민의 수준 향상은 민주주의 나라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 즉 말글의 민주화가 민주국가건설의 초석이 된다는 주장이다. 이게 이오덕의 말글 인식의 요체였다.
이처럼 그는 말글을 바로 써야 민족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말글의 자주성 확보, 이것이 그의 우리 말글 연구의 시발점이었고 종착점이었다. 말글의 자주는 외국말 좋아하는 사대 노예근성(그의 표현은 종살이 노릇, 종살이 본성)의 청산에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일본말 흉내 내는 것도, 근사한 한자말 쓰고 싶어 하는 것도, 말장난을 즐기는 것도 다 제정신을 가지지 못한 까닭이다. 속은 비었는데 겉모양만 남의 흉내를 내어 번드레하게 꾸며 보이려는 이 얼빠진 종살이 버릇을 그만두지 않고서는 언론이고 출판이고 문학이고 교육이고 정치고 산업이고 어느 것 아나도 제대로 안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계속해서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쓰기 좋아하고 한자말 쓰기 좋아하는 것은 같은 정신 상태라고 하면서, “우리 것은 무엇이든지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한 그 얼빠진 정신 상태가 언제나 힘센 외국만 쳐다보는 꼴로 되어 버렸다. 이래서 길가에서 나물을 놓고 파는 할머니까지 “신토불이 밤이요!”, “오리지날 고사리요!” 하는 판이니, 이 기막힌 종살이 본성(노예본성)부터 뜯어 고치지 않고는 절대로 우리 역사를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쉬운 우리말과 우리글 살리는 운동이 “어려운 말을 몰라서 세상을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어려운 말을 몰라서 죄를 짓게 되는 일이 없게”하는데 있다고도 밝혔다. 이를 위한 실천으로 그는 1993년 그는 헌법의 조문을 쉬운 우리말로 고치자고 주장하였다. 그게 참다운 민주정치이라는 것이다. 같은 해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창간호(1993, 2, 3)에 대한민국 헌법의 한자어 투성이의 조문 가운데 ‘앞글’(전문)과 ‘으뜸 강령’(총강)을 우리말로 풀이하여 게재하였다. 1994년에도 판사의 판결문도 짧고 쉽게 쓰자고 호소하였다. 그는 1987년에 제정된 대한민국의 헌법 조문 전체를 우리말로 고쳐 놓았다. 어려운 조문을 우리말로 풀어서 서술하였다. 그는 쉬운 우리말로 적은 헌법을 다시 국회에서 통과하기를 염원하였다. 국민이 법망에 걸려들어 고통 받지 않게 하려는 그의 민주 정신의 발로라 하겠다.
그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 국민 누구든지 알 수 있는 쉬운 영어로 모든 공문서를 쓰라고 연방 정부의 관리들에게 지시했다는 기사를 인용하면서,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우리말을 살리기 위해 주장해 온 말 그대로다.”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말 우리글로 공문서를 쉽고 바르게 쓰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우리가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에서 어려운 영어를 남발하여 공문서를 작성하여 국민에게 고통을 준 것과 대비된다.
2) 민족 통일을 앞당기는데 기여한다.
그는 “남북의 말을 통일하는 길도 우리말을 찾아 쓰는 것밖에는 절대로 어떤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라고 1993년 10월 11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인 「언제까지 중국글 섞어쓸 것인가」에서 밝혔다.
우리 말글 바로 쓰기 운동이 “우리 얼을 찾아 가지는, 말 살리는 일이 곧 민주주의와 통일을 앞당기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습니다.”라고 ‘우리말 사랑 겨레 모임’(1991)의 취지문에서 밝혔다.
계속해서 그는 우리말 살리기 운동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온 국민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한 마음으로 정답게 살아가는 참된 민주 통일의 나라를 세우는 바탕을 다지는 데 목표를 둔다.”에 있다고 밝혔다.(박용규 논문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