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호구(十界互具)
우리들은 지옥계로부터 불계까지의 십계 하나하나의 생명 경계를 배워 왔습니다.
실은 지옥계이든 아귀계, 인계, 보살계이든 일단은 인간은 인계, 개나 고양이는 축생계라고 하듯이 따로따로입니만, 또 같은 인간의 생명에도 십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십계호구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그 '십계호구'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십계'의 각각에 십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십계호구의 뜻입니다. 다음에 좀더 상세하게 검토해 보겠습니다.
먼저 '십계'란 말할 나위도 없이 지옥계ㆍ아귀계ㆍ축생계ㆍ수라계ㆍ인계ㆍ천계ㆍ성문계ㆍ연각계ㆍ보살계ㆍ불계를 말합니다.
'호구(互具)'란 '서로 갖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심한 공복을느껴 먹을 것을 필사적으로 구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생명 전체가 아귀계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진수성찬을 대접받게 되었다면 그 음식물을 연으로 하여 기쁨의 생명이 솟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앞서 굶주림에 시달린 생명은 온데간데없고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그 맛이나 냄새나 혀의 감촉을 즐겁게 음미하면서 먹을 것입니다.
"좋아서 어찌할 수 없다." 오체는 활기를 띠고 조금전까지의 굶주림으로 인한 괴로움은 꿈과 같습니다. 그 사람의 생명은 이제 천계로 올라가 있습니다.
도대체 이 기쁨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다름아닌 자기 자신의 흉중에서입니다. 그리고 또한 앞서 아귀계는 없어지고 천계가 생명 전체를 덮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귀계는 없어지고 말았을까요.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굶주림은 또 올 것이고 뭔가 원하는 것을 연으로 하여 다시 아귀계는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불법에서는 이것을 '명복(冥伏)'이라고 합니다.천계에도 아귀계는 명복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구계도 명복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연에 의해 지옥계 혹은 축생계가 나타난다. 즉 천계에도 십계가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천계를 인용했습니다만, 지옥계이든 인계이든 각각 십계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들의 십계는 지옥계로부터 불계까지 세로로 나란히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가로로 나란히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위로부터 아래로 겹쳐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혼연일체가 되어 한 개의 생명에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니치렌 대성인의 어서 속에서 십계호구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는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법화경이외의 사십 여 년의 諸經에는 십계호구가 없다」(어서 67쪽)
이전경에는 설해 있지 않고 법화경에는 십계호구가 설해 밝혀져 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전경에서는 어떤가 하면 「번뇌를 끊고 구계를 싫어하고 부처가 되려고 원함」(어서 403쪽) 이라고 구계를 싫어하여 버리고 불계만을 추구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만약 번뇌에 덮인 미혹의 구계를 단절해 버리고 불계를 획득하려고 한다면 나의 마음과 몸을 없애는 이외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불계를 얻었다고 해도 가공의 부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범부인 우리들에게 불계의 생명이 갖춰져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대성인은 <관심의 본존초>에서 「십계호구의 불어(佛語)는 분명하니라. 그렇지만 우리들의 열심(劣心)에 불법계(佛法界)를 갖춘다는 것은 신(信)을 취하기 어려운 일이니라」(어서 241쪽)는 설문을 하시고,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들은 만민에게 있어서 편파가 없으니 인계의 불계의 일분(一分)이로다」(어서 242쪽) 「실달태자는 인계로부터 불신(佛身)을 이루었으니」(어서 242쪽)라고 하셨습니다.
즉 중국 고대의 요왕, 순왕은 만민에게 대해 평등하게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그것은 인계에 불계를 갖추고 있는 일부분의 나타남이다. 또 인도의 실달태자(석존의 어린시절의 이름)는 불도를 수행하여 부처가 되었다. 이러한 현실적인 증거를 가지고 인계에 불계가 갖추어져 있다는 점을 믿어야 한다고.
니치칸상인은 자동녀장자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일념의 심중에 이미 지옥과 부처를 갖춘다"라고 지옥계의 동녀에게도 불계의 생명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다른 구계도 추측하여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인간이라도 성격이라는 것은 모두 다릅니다. 예를 들어 보면 화를 잘 내는 사람, 욕망이 강한 사람, 동정심이 깊은 사람 등등... 말하자면 생명의 경향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같은 외계의 연에 닿아다고 해도 지옥계의 경향성이 강한 사람은 금방 남을 미워한다든가 원망한다든가 할 것입니다. 천계의 사람은 웃고 말아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 생명의 경향성을 육도(六道)에서 사성(四聖)으로(그 중에서 불계로) 향상시켜 간다 ---거기에 불도수행의 목표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불법이 목표로 삼은 성불이란 불계의 생명에 입각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구계중 육도에 분동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파도타기를 즐기듯이 유유히 보람있게 이용해 가는 경애로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니치렌 대성인은 「십계완연(十界宛然)의 만다라」(어서 757쪽) 등 여러 어서에서 南無妙法蓮華經의 근원의 불계를 중심으로 한 십계호구의 당체(當體)는 본문계단의 대어본존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범부인 우리들이기는 합니다만, 어본존에게 연을 맺고 어본존을 신수하여 받들어 찬란하게 빛나는 불계의 생명을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알기 쉬운 교학 1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