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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가지 무하마드 작전
1999년 8월 7일, 다게스탄을 침공한 체첸군의 작전명이었다. 바사예프는 다게스탄 전쟁의 '총사령관', 하타브는 '야전 지휘관'으로 이 전쟁을 지휘하였다. 휘하 주요 간부급 중에는 바사예프의 형인 시바니 바사예프, 납치의 대부 아르비 바라예프, 그렌저 텔레콤 직원 참수극의 주모자 람잔 아흐마도프, 구데르메스 와하비 반란의 주동자 압둘 말리크 메지도프 등이 있었다. 한마디로 체첸의 '내란기'에 마스하도프 정부에 도전했던 주요 와하비 군세가 다게스탄에 집중되었다.
압둘 말리크 메지도프. 1차 체첸전부터 주요 전투에 모두 참전하고 2009년 현재까지 생존한 몇 안되는 지휘관
바사예프가 지휘한 총병력은 2천에 달했고, 2대의 BTR-60 장갑차와 수대의 M1111 FAGOT 대전차 미사일, 1대의 T-12 대전차포, 수대의 ZU-23 대공포, 수대의 박격포, 다수의 이글라 미사일을 장비했으며 이동 시에 군용 트럭으로 필요한 물자와 병력을 옮겼다. 공세를 위한 중화기가 턱없이 부족했지만 한명한명이 수차례 내전으로 단련된 일당백의 강병이었다. 다게스탄 국경 지대의 현지 주둔군으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었고 속속 무장해제를 당한 채 거점을 넘겨줬다.
체첸군이 사용한 군용 트럭
체첸군의 1차 목표는 보틀리히 시가지에 있는 러시아 공군 비행장 점령이었다. 이를 위해 베데노를 출발한 바사예프의 주력 부대는 다게스탄 안살타 강 계곡을 따라 안살타, 라하타 마을을 장악한 뒤 동쪽으로 향했다. 조공 부대는 안디 마을을 장악하고 츠마딘스키 지역으로 향했다. 첫날 '이슬람 평화유지군'은 목표였던 안살타와 라하타를 손쉽게 점령한다. 둘째날은 안살타 계곡 주변의 소드로다, 지베르칼리, 탄도 마을을 점령하고, 서쪽의 베르키니, 고도베리, 니즈니 고도베리 마을을 점령한다. 그리고 계속 진격하였다.
보틀리히 전역 지도. 깃발이 체첸군이 점령한 주요 마을
전쟁이 시작되고 5일 뒤인 8월 13일, 바사예프는 다게스탄 내 32개 마을을 손에 넣는다. 험준한 산지라 러시아 연방군의 반응은 더뎠고, 다게스탄 현지 병력으로는 체첸군을 대적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체첸군은 1차 목표를 손에 넣지는 못했다. 현지 주민들의 동조가 예상보다 훨씬 저조했기 때문이다. 비록 다게스탄 평균보다는 와하비 비율이 높은 곳이기는 했지만, 마을 주민 중 불과 10-15퍼센트 만이 와하비였다. (전체 평균 3퍼센트) 대다수의 주민들에게 바사예프와 하타브의 동기는 이해 불가한 것이었으며, 자연스럽게 현지 민병대가 조직되어 체첸군을 상대로 맞서 싸웠다.
츠마딘스키 지역의 다게스탄 민병대. 마을을 지키기 위해 구식 무기를 들고 맞섰다.
기습의 이점은 사라졌고, 러시아군이 반격할 차례가 되었다. 다게스탄 지역 러시아 연방군 사령관 빅토르 카잔체프 상장은 '기존 다게스탄 반군이 장악한 부이나스키와 체첸군이 침공한 보틀리히의 연결 차단이 승리의 열쇠'라고 말했다. 특히 김리 마을의 5킬로에 달하는 터널 확보를 강조하였다. 바사예프는 자신이 점령한 32개 마을 중 7개 마을에 병력을 집중시켰다. 안살타, 라하타, 소드로다, 탄도, 지베르칼리, 벨레디, 아시노 마을이었다.
람잔 아흐마도프와 다게스탄 지휘관 야쿠브, 샤밀 바사예프
1999년 8월 16일, 다게스탄 침공 후 10일 만에 러시아군은 일제 반격을 가했다. 부이나스키에 주둔하던 러시아 육군 136 보병여단과 러시아 내무군 102 여단이 주축이었다. 그 전까지는 보틀리히 공군 비행장에서 출격하는 비행기와 헬기를 통해 주로 공습을 가했지만, 다게스탄 산지 특유의 악천후로 인해 효과를 보기 어려웠다. 거기에 체첸군은 비행장에서 2킬로 떨어진 지점까지 진격한 상태에서 대공 미사일로 견제구를 날렸다. 마을 곳곳에 참호와 방공호를 구축한 체첸군을 쓸어내기 위해서는 공습 만으로는 부족했다.
보틀리히 전역의 체첸군
러시아군의 주 반격 목표는 반군이 장악한 마을 중에 보틀리히 비행장과 가까우면서도 인구가 많은 4개 마을이었다. 안살타, 라하타, 소드로다, 탄도 마을이었다. 다들 험준한 산악지대인데다가 특히 탄도 마을은 다게스탄 아바르족이 사는 마을 중에도 가장 고지대로 알려졌다. 진격한 러시아 공수부대는 30명의 사상자를 냈다.
다음날인 8월 17일, 러시아군 참모총장 아나톨리 크바신은 다게스탄 현지 군 사령관과 내무장관을 소집하여 회의를 주재한다. 현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뒤에 체첸군의 퇴로 차단을 지시한다. 체첸군이 살아서 베데노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카라미 고개를 통과해야 했고, 러시아군은 최단 시간 내로 이 고개를 점령할 것을 주문한다. 러시아군의 공세도 이와 병행하여 체첸군 주력 거점을 우회하여 퇴로를 차단하는 쪽으로 진행되었고, 이날 츠마딘스키 지역의 모든 체첸군 거점이 러시아군 손에 넘어갔다. 바사예프는 급히 체첸 영내로 복귀하여 주요 간부 회의를 소집하고 병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다게스탄 전역의 러시아 헬기
체첸군은 이제 수세에 몰렸지만 아직까지 지형의 이점을 이용해 러시아군의 공격을 버텨냈다. 앞서 언급한 7개 마을은 공세 4일이 지난 19일에도 체첸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1차 체첸전의 악몽을 기억하며 직접 교전을 삼가고 장거리 포격과 공군 폭격에 의지하였다. 하지만 체첸군은 벙커와 방공호를 급조하고 버텨낸 뒤, 러시아군의 진격에는 저격수를 동원하여 저지하였다.
체첸군의 벙커
다음날인 8월 20일, 안살타 마을 인근 고지에 러시아 7 공수 연대가 기습 공격을 가했다. 고지 일부를 장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반군 저격수에 막혀 교착상태가 되어 참호를 파고 은신하였다. 체첸군은 러시아군의 진격이 더딘틈을 타서 보틀리히 마을 동쪽의 무니, 톨로히 마을을 점령하려고 시도하였다. 보틀리히 전역에 들어가는 추가 병력과 물자를 차단하려는 생각이었다.
보틀리히 전역의 러시아 야포 진지
러시아군이 장거리 공격에 의지하고 진입이 더디게 이뤄지자, 현장에서는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었다. 어느 러시아군 장교는 '12월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고, 장병들도 비슷한 생각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온건파인 세르게이 스테파신을 밀어내고 새로 임명된 러시아 신임 총리 푸틴은 체첸군을 쓸어버릴 수 있는 가공할 무기를 전장에 도입한다. 바로 '기화폭탄'이었다.
러시아 공군 기화탄
'기화폭탄' 가연성 물질을 한순간에 폭파하여 그 충격파로 지상의 건물이나 지뢰 등을 파괴하며, 폭발시에는 인근의 모든 산소도 연소되는 가공할 무기였다. 사실상 전술핵에 비견된다는 이 무기를 푸틴은 다게스탄의 마을에 도사리는 체첸군에게 사용할 것을 명한다. 수백년에 걸쳐 러시아에 대적했던 체첸인들로서는 처음 접해보는 엄청난 무기였다.
수상에서 기화탄을 사용했을 때의 충격파
러시아 공군이 투하한 250킬로 기화폭탄의 위력은 엄청났다. 그토록 완강하게 버티던 탄도 마을에 이 무기를 투하하자 체첸군은 인근 안살타와 라하타로 후퇴해버린다. 이에 대한 러시아군의 목격담은 다음과 같다.
"멀리서 봐도 섬뜻하기 그지없었다. 네이팜탄 따위와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었다. 어떠한 은신처, 어떠한 참호, 어떠한 방호벽 속에 있더라도 이 공격 속에 살아남을 수 없었다. 최초 충격파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공기가 달궈져서 문틈이나 참호틈 사이를 파고들어 사람을 태워버렸다. 이 폭탄이 사용된 자리에 살아남은 생물체는 없었다."
기화탄의 사용에 힘입어, 러시아군은 체첸군을 다게스탄에서 축출하는 데 성공한다. 8월 23일, 바사예프는 체첸군 철수령을 하달하였고, 3일이 지난 8월 25일에 안샬타와 라하타를 비롯한 주요 거점이 러시아 연방군의 손에 넘어간다. 20일에 걸친 작전에서 러시아군의 사상자는 공식 발표에 의하면 276명이었다. 체첸군은 첫번째 작전에서 실패하고 물러났으며, 샤밀 바사예프는 '가지 무하마드 작전을 종료하고, 감자트 벡 작전을 준비한다'고 공언하였다.
1999년 8월 27일에 보틀리히를 방문한 신임 총리 푸틴
드디어 그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외부의 적을 물리친 다게스탄 정부는 이제 내부의 적을 처리하기로 하였다. 체첸군을 본국으로 밀어냈지만 아직 중부 부이나스키 지역에는 와하비 해방구가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들이 향후에도 체첸 강경파와 연결하여 다게스탄에 전쟁을 도모할 수 있었다. 8월 27일에 다게스탄 전역 지휘권은 육군 상장 빅토르 카잔체프에서 내무군 상장 오브치니코프에게 넘어간다. 보틀리히 지역의 체첸군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부이나스키의 다게스탄 반군을 상대하는 것을 좀 더 수월하다고 보고 내무군에게 작전권을 넘긴 것이었다.
다게스탄의 러시아 내무군
하지만 1999년 8월 31일, 부이나스키 지역 작전을 시작한 오브치니코프는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틀리히 체첸군은 자신들이 점령한 마을에 급조된 참호 속에 휴대한 무기로 러시아군을 상대했지만, 부이나스키의 다게스탄인들은 이미 1년에 걸쳐 콘크리트로 방공호를 건설하고 마을 모든 주택과 주택을 연결하는 참호를 팠으며 장기적으로 버틸 수 있는 무기, 탄약, 식량을 비축하고 기다린 것이었다. 결정적으로 중부 다게스탄에서 도망갈 곳도 없었다. 자연히 부이나스키의 500명의 와하비 반군들은 완강하게 버텼다.
부이나스크 전역의 작전 지도
처음 작전 시작할 때 불과 3일이면 정리될 것 같았던 부이나스키 전투는 오래 끌었고, 반군들은 3개 주요 마을에 병력을 집중하였다. 카라마키, 차반마키, 카다르 마을이었다. 여기에 서쪽 차반산과 두랑 마을을 점령하여 체첸군과의 합류점으로 정했다. 그리고 차반산의 거점에서 아프시, 아르카스 마을에 박격포를 날렸으며 연방군의 군사 행동을 방해하였다. 작전 개시하고 5일 정도 지나자 러시아 내무군에서 12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거기에 계절성 폭우로 인해 공습 효과도 기대 이하였다. 아무래도 내무군 지휘관이 상대하기에는 코카서스 반군들은 만만치가 않았던 것이다.
생각했던 것과 일이 다르게 돌아가자 러시아 수뇌부는 지휘권을 조정하였다. 1999년 9월 4일, 다게스탄 수도 마하칼라에서 러시아군 참모총장 아나톨리 크바신은 현지 러시아군 지휘부와 다게스탄 정치 요인들과 회담을 갖고, 내무군에서 러시아 국방군으로 작전권을 넘긴다. 다게스탄 카다르 전역 지휘를 북코카서스 러시아 국방군 사령관인 소장 제나디 트로체프에게 넘기고, 그를 내무군까지 지휘할 수 있는 통합 연방군 사령관 (OGF)로 지정한다. 지휘권 문제를 해결하고 심기일전하여 카다르의 다게스탄 반군 척결에 전력할 것을 주문한다.
그날 밤, 정확히 9시 45분에 부이나스크에 주둔한 러시아 육군 136 보병 여단의 5층 높이 아파트에서 엄청난 폭발이 발생한다. 누군가가 멜론 트럭으로 위장한 2톤이 넘는 폭탄을 막사 아파트 주차장에서 터트린 것이다. 64명이 죽고 174명이 부상을 입었다.
엄청난 규모의 테러였다.
부이나스크 폭탄 테러
그리고 폭발의 충격이 미처 가시기 전인 1999년 9월 5일 새벽 4시, 2천의 체첸군이 다게스탄 중부 노보라스키를 침공한다. 바사에프가 보톨리히를 후퇴하며 공언했던 두번째 국면이 시작되었다.
'이맘 감자트 벡' 작전이 시작되었다.
출처 : http://en.wikipedia.org/wiki/Russian_apartment_bombings
http://en.wikipedia.org/wiki/Invasion_of_Dagestan_(1999)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library/report/2000/p30-cwb.htm
http://globaljihad.net/view_page.asp?id=1351
Paul Murphy의 The Wolves of islam
Moshe Gammer의 The Lone Wolf and The Bear
Sebastian Smith의 Allah's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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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 첫빠다 신선한 와 역시 푸간지 푸틀러 장난아닌 한방...그런대도 역시 체천군들 근성 乃
한번 실패했다고 물러설 사람들이 아니죠
기화탄이 무섭긴 무섭군요 -_-;;
얼마 전에 가자 지구에서 문제가 됬던 백린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제 지옥의 시작이군요. 늑대들이 좀 강하긴 하지만 이번 상대는 북극곰이군요...
늑대들도 자기 영역을 벗어나서는 힘을 쓰지 못했죠
이제 푸틴의 시대로군요 ... 철혈의 수상 .
사실 옐친이 후계자로 생각한 자는 세르게이 스테파신 총리였지만 이 문제를 확실히 정리하지 못해서 강경론을 주장한 푸틴에 의해 밀려납니다. 체첸인을 토벌하기 위해 혜성처럼 나타난 신임 총리입니다.
짜르 푸틴 등장 하자마자 기화폭탄 사용-_-;;;; 이 뭐.... 불쌍하다...
지난 전쟁의 승리로 러시아군을 너무 얕봤다는 말도 있더군요.
조.....좋은 화력이다.
저걸 거주 지역에 사용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 지 상상도 안됩니다.
이미 예전부터 러시아는 기화탄 덕후가 되어서 -_- T-72 베이스의 근거리 멸살★포격☆ 기화탄 다련장이라던가 알라봉 시리즈용 기화탄두도 있습니다.
TOS-1 Burantino 220mm 다연장 기화탄 로켓발사기도 2차 그로즈니 전투 당시 사용됬다는 설도 있더군요. 러시아 군 공식 발표는 부정하는 듯 하지만
아직까지도 죽지않고 살아남은 2천~3천명대는 체첸독립군들이 잉구셰티아,다게스탄을오가며 게릴라전을 펼치며 저항을 멈추지않고잇다죠 그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독립을향한 체첸인들의 끝없는 피의투쟁에 경의를표합니다
현재는 잉구세티야, 다게스탄 주변에 활발한 편인데 체첸인들이 아니라 체첸인 도쿠 우마로프를 수장으로한 조직의 지역세포 조직으로 현지인들이 활동하는 것입니다
왜 체첸은 이렇게 싸움을 잘 할까요 한번 연구해 보고 싶군요
걸음마를 막 시작할 때부터 총기를 만지게 하고 커가면서 무기 사용법을 익히고 러시아에게 투쟁한 위대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해준다고 합니다. 성장하는 과정부터가 이미 정신무장이 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역시 군인들의 나라
하토브를 중심으로 시바니 바사예프. 납치범 바라예프. 참수자 아흐마도프. 반란자 메지도프등이 라인업을 구성했네요... 다케스탄 현진 주민들이 와하비 반군에 그리 협조적이지 않은점에 놀랐습니다... 민병대까지 조직하다니... 그래서 체첸과 다케스탄의 운명이 바뀌었군요...
푸틴과 기화탄의 등장으로 전세가 확 바뀌어 버리네요... 이번 전투에서는 체첸군이 신무기에 의해 힘을 못쓰게 되고... 의외로 작은 와하비 공화국이 힘을 쓰는군요...
푸틴의 화려한 등장입니다..그리고 기화 폭탄의 위력도 대단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