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도 비교적 어렵지 않고 그냥 한 번 정도 읽어 본다면 사진을 찍는데 약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옮깁니다.
미국의 사진가 스테판 쇼어(Stephen Shore)는 <사진의 문법The Nature of Photographs>에서 좋은 사진을 위한 카메라 구사, 좋은 사진을 위한 사진의 문법을 다음과 같은 3가지 차원에서 말한다.
1) 물리적 차원(physical level)
2) 묘사적 차원(depictive level)
3) 정신적 차원(mental level)
카메라의 물리적 본성, 혹은 ‘시각적 언어(visual language)’로서 카메라의 속성을 가장 자연스럽다고 했을 때, 그 자연성이 물리적, 묘사적, 정신적 3가지 차원의 결합으로부터 나온다는 뜻이다. 스테판 쇼어의 “좋은 사진 만들기” 위한 3가지 차원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가 어떻게 물리적 차원으로부터, 묘사적 차원을 거쳐 정신적 차원까지 이르러 마침내 좋은 사진이 될 수 있는가를 명료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기술서들이 말하는 “좋은 사진 만들기”와 너무도 구별된다. 좋은 카메라, 좋은 렌즈가 좋은 사진을 만들고, 좋은 기술이 좋은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카메라, 렌즈, 기술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미학적 근간이 되는 물리적, 묘사적, 정신적 차원과 연결되었을 때라는 것이 스테판 쇼어의 생각이다.
설명을 조금 더 하자면, 쇼어의 “물리적 차원”은 사진 찍는 사람은 사진이 언제나 이차원적 평면이라는 사실을 지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3차원 공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도 3차원 공간일 거라는 생각이나, 혹은 사진이 어떤 차원인지 전혀 생각을 안한다는 것이 공히 사진의 본성, 사진의 차원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본성과 차원을 모르면 물리적 차원에서 “좋은 사진”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카메라, 렌즈와 같은 물리적 도구로부터 건져 올리는 사진이 2차원 평면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를 적절히 상황에 따라 활용할 때 좋은 사진이 될 수 있지, 단순히 좋은 카메라, 좋은 렌즈로 찍었다고 좋은 사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쇼어의 말이다.
또 하나 사진적 본성이자 차원으로서 “묘사적 차원”은 사진의 형식적 차원이다. 쉽게 말해 사진은 사진의 물리적, 광화적, 화학적 요소들에 의해 나타나는 묘사의 차원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며, 사진이 가지는 주요 묘사적 차원을 알고 찍는 것과 모르고 찍는 것 사이에 ‘좋은’ 내용과 구조를 경정한다는 것이 쇼어가 말하는 좋은 사진을 위한 묘사적 차원이다. 쇼어는 카메라를 통해서 알아야 할 대표적인 묘사의 차원을 다음과 같은 4가지로 규정한다.
1) 평면성(flatness)
2) 테두리(frame)
3) 시간성(time)
4) 초점(focus)
이 4가지 사진의 묘사적 차원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사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을 보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는 4가지 차원이지만 그것을 알고, 이해하고, 적용하여 찍기는 어렵다.
먼저 쇼어가 말한 “평면성”이란 앞서 물리적 차원에서 말한 바 있는 모든 사진은 2차원 평면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사진은 이 같은 평면성을 극단적으로 역이용할 때 시각적으로 극적인 변화를 얻을 수 있다는 전경, 중경, 원경의 관계성을 말한 것이며, “테두리”로서 프레임은 사진이란 필연적으로 어떤 것을 다 넣지 못한 부분이 잘린 4각의 테두리의 안쪽과 바깥쪽을 가지며,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넣고, 자를 때 나타나는 프레임이야말로 사진의 본성이자 묘사적 차원이며 이를 역이용하여 어떤 의도로서 자신 앞에 펼쳐진 피사체를 적절한 테두리에 가두거나 배치할 때 극적인 이미지가 된다는 것이다.
또 쇼어가 말한 “시간성”의 차원이란 카메라의 물리적 노출의 시간이 어떤 이미지 변화를 일으키는지 보아야 한다는 것과, 피사체가 시간 속에서 어떤 포즈, 동작, 제스처의 이미지로 영원한 시간의 이미지로 동결되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진의 시간성은 적정노출의 시간성이 아니라 사진 속의 이미지의 시간을 결정할 뿐 아니라 그 주체의 모습에 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셔터의 시간을 충분히 인식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쇼어가 말한 “초점”의 차원이란 카메라 렌즈의 초점이 항상 피사체에 맞추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맞춰야 할 때와 맞추지 않을 떼가 있고, 그 차원이 어떻게 피사계 심도를 결정하고, 또 어떻게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실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를 출현시키는가를 충분히 인식할 때 “좋은 사진”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좋은 사진을 위한 사진술
스테판 쇼어가 말한 묘사적 차원이 일반적으로 사진가들이 말하는 기술이다. 의미와 맥락이 다르지만 일반 사람들이 행하는 사진의 기술은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focus), 노출을 위해 조리개치와 셔터 속도를 결정하고(시간성), 또 망원렌즈, 광각렌즈를 이용하여 심도 및 화면의 깊이(평면성)를 결정하고, 또 렌즈에 의해, 혹은 앞뒤로 움직이면서 상하좌우, 알맞도록 피사체의 크기, 면적, 위치를 재는 구도(프레임)를 잡는다. 그리고 그것들이 적절하게 보이고, 사람들이 괜찮다고 말하면 “좋은 사진”으로 평가한다. 이 정도만으로도 일반 사람들은 큰 사진기술로 받아들인다. 그 옛날 노출을 수동으로 조작해야 했을 때는 노출 적정으로 맞추는 사람이 큰 기술로 뽐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런 경우가 멋진 사진술의 예이다.
그러나 스테판 쇼어가 좋은 사진을 위한 3가지 차원으로서 마지막에 “정신적 차원”을 갖다 둔 것은 이 정신적 차원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사진의 질적 판단의 최종 기준이고, 또 궁극적으로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그것이 시각적(혹은 현실적), 기술적(혹은 물리적) 차원을 넘어서 마지막에 정신적 차원으로 규정된다는 이른바 예술이론과 미학의 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은, 또 저명한 사진가들은 진짜 사진이 어려운 것은 카메라 작동법이나 묘사의 기술이 아니라 어떻게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고 또 어떻게 표현하고 연주해야 마음을 움직이고 깊은 공감을 얻어내는 정신의 차원임을 안다.
예컨대 흔들린 사진이 분명 물리적으로, 묘사적으로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선명한 것보다 오히려 좋다고 말하거나, 카메라 구사를 잘못하여 얼굴이 테두리에서 잘려나가고 초점 또한 불분명한 사진이건만 사람들이 오히려 멋지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신적 차원에서 작동한 어떤 결과다. 이런 사례는 사진에서 너무도 많고, 늘 경험하고 갈등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좋은 렌즈로 정확한 초점, 정확한 노출, 중앙에 세워 멋진 포즈를 찍었는데 사람들이 시큰둥했다면 그 이유는 상당부분 정신적 차원인 경우다.
좋은 사진을 위한 사진술로서 물리적 차원, 묘사적 차원, 정신적 차원은 사진의 본성과 차원의 기본적 사항에 속한다. 3가지를 결합시켜야 한다거나 모두를 통과해야 좋은 사진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어느 한 가지만으로 좋은 사진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자, 세 가지 아는 것이 오직 한 가지만 아는 것보다 나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있다.
사진은 물리적, 형식적 속성들을 통해서 세상에 나타난다. 따라서 어떤 사진 한 장이 누군가에게 좋은 사진이 될 수 있는 근간은 일차적으로 카메라이고 렌즈다. 이때 좋은 카메라, 좋은 렌즈란 비싸거나 화질 좋은 카메라 렌즈라기보다 그것들로 만든 사진들이 유효 적절히, 용도에 부합하고, 사람을 마음을 잡아끌고 마음을 움직일 때이다. 값비싼 카메라가 결정하는 문제도, 화질 좋은 렌즈가 결정하는 문제도 아닌 것이다.
첫댓글 읽을수록 단맛이 나다가도, 모든 잡지식을 무장해제 당하는 막막한 느낌도 드는..... [사진의 평면성에 대한 이해와 응용, 촬영의 기술적 문제, 감각과 서정과 철학의 문제를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요약을 잘 한 것 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