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무르면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동하는 그 시작부터 스토리가 만들어져 가는것 같다.. 하루종일 달리면서 눈으로 들어오는 벌레가 몇 마리인지 조차 스토리가 만들어 진다.. 어디에서 쉬며, 무엇을 보았기에 속도를 줄이거나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핸들을 돌려 되돌아 갔는지 조차 그 모든것들이 나의 스토리가 된다.. 베트남에 온지 어느덧 한달이 지났는데 내 머리속에 기억된 스토리는 이미 한계에 다달아서 어디 다른곳에 저장시켜놓지 않고서는 더이상 입력이 안될 정도이니 여행을 중지하든지 아니면 한층 업그레이드된 또다른 내가 되어 여행을 떠나든지 선택은 하나다..
그래서 오늘은 전자를 택했다.. 여행을 하루 쉬면서 털어낼건 좀 털어내고 가자는 의미에서.. 내 오토바이 킬로수가 3000을 넘어섰다.. 달린 거리만큼 보고 듣고 느낀점이야 수치상으로 표현할수 없을만큼 너무나 많다.. 나의 생각들, 사람, 자연, 삶, 가족, 여행등에 있어서.. 오늘은 베트남에서 나와 만난 사람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바닷가 대도시인 나트랑에서 만 24시간을 못버티고 다시 산으로 향하는 길에 스쳐 지나간 길가의 튀김가게 하나.. 이 땡볕에 나무를 태워가며 고구마와 바나나를 튀겨내고 있는 한 아주머니의 얼굴이 눈에 밟혀 오토바이의 핸들을 꺾었다.. 아니, 아줌마 이 더운데 튀김을 하고 계세요? 라고 말하면서 의자를 찾아 앉으려고 했지만 의자가 없었다.. 눈치챈 아줌마는 자신이 앉아 있는 의자를 건네며 앉으라고 하길래 괜찮다고 나는 그냥 바닥에 앉겠다고 하면서 튀긴 고구마나 달라고 했다.. 그렇게 앉아 먹고 있었는데 길 건너편에 있는 집에서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튀김아줌마와 사람들이 몇마디 주고받는듯 하더니 한두사람씩 튀김가게로 모여들었다.. 한국사람을 처음 보는듯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말을 하더니 한사람 더 왔는데 이분은 영어를 좀 아시는듯 했다.. 왓츠 유어 네임이라 말하길래 대답했더니 주변사람들에게 베트남말로 해석해주는 통역사.. 그런식으로 잠시동안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아이들도 모여들었고 맛있다고 계속 말하니까 사람들도 하나씩 집어들었다.. 더운날이지만 사람들이 찾아와서 말동무도 해주고 튀김도 하나두개씩 먹어준다면 아주머니의 더위도 조금 쉽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산에서 이틀을 쉬고 다시 바다로 향하는 길목에서 부부가 연기를 마셔가며 솥에다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가까이 가봤더니 직접농사한 옥수수를 삶고 있었던 것.. 아줌마 나 이거 먹고 갈게요.. 뚜껑을 열어 잘 삶겨진 옥수수를 하나 끄집어 내어 내 손에 쥐어줬다.. 너무 맛있어서 하나가지고는 만족할수 없어서 다섯개 먹겠다고 했다.. 거리에는 도시로 향하는 대형버스가 빈번했다.. 위험도 했고 무엇보다 먼지가 너무 많아 내가 코막는 시늉을 했더니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해먹과 의자가 있는 마당으로 그들은 나를 안내했다..
잘 팔리는듯 했다.. 삶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그자리에서 사갔다.. 마당에는 옥수수가 담긴 마대자루가 많이 있었다.. 나는 한쪽에서 먹었고 아줌마는 삶을 옥수수를 다듬고.. 아저씨는 내가 목말라 하는것 같아 집안에 들어가 주전자를 들고 나왔다.. 아줌마 폰이 울렸다.. 한참 이야기를 하더니 한국사람 있다며 전화를 화상통화로 바꿨다.. 그러면서 전화기를 나에게로 보여주길래 나는 안녕하세요, 라고 화답을 했다..
다섯개 먹었는데 500원 했다.. 한개당 100원.. 바닥에 떨어진 부스래기며 껍데기가 많았는데, 물이며 장소까지 제공받았는데 500원이라니, 미안해서 청소했다.. 표 안나게 청소 안하는것 처럼 딴짓하면서 최대한 마당을 치웠다..
조금은 모자란듯 하면서도,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듯 하면서도 쉽게 행동을 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그런 상황이나 그런 모습을 보거나 행동한 적이 있다.. 어떻게 보면 수상할수도 있고 또 달리 도와주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드는 경험을 누구나 해본듯한..
바이크에 휴대폰 거치대를 하나 사고 싶어서 정비소와 악세사리를 함께 운영하는 가게에서 주변을 맴돌았다.. 아마 나를 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것 같다.. 처음에는 수상하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좀 모자라서 도와주고 싶은 연민의 정이 느껴졌지 않았을까 하는..
이유는 이랬다..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고 잠시 일하는 걸 지켜보고 서성이면서 내 오토바이도 좀 봐달라고 했다.. 앞뒤 브레이크랑 체인 봐달라고 했더니 일하는 사람들 웅성거리면서 한사람이 정해졌는지 내 오토바이로 와서 점검하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사이 지금까지 여행다닌 사진과 일정을 간략하게 보여주었다.. 표정이 대단하다는 눈치였다.. 모자란듯 하게 보이는데 오토바이 여행이라니 라고 생각했을지도..
내 바이크 고치는 사람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뭐라고 말하는데 내가 뭘 아나.. 그도 웃고 나도 웃고 그걸 보고 있는 주변사람들도 웃고..
웃음은 모든 장벽을 허물어 버리는 강력한 무기인것 같다.. 이렇게 고쳐주고 하는데도 수고비를 받지 않았다.. 시골의 인심인지 정비사의 인성인지 나의 모자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난 이렇게 베트남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떠났다..
뚜이호아 들어가는 길목에서.. 지도를 보니 산에서 내려오면 곧장 도착하지만 돌아서 가면괜찮은 도로가 나올법 해서 늦은 오후지만 돌아서 가기로 했다.. 도시인데 설마 내 잘곳 없을까 하는 마음과 이 길을 꼭 가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결과는 환상 그 자체였다.. 해변과 해수욕장 그리고 짙푸른 산으로 포장된 해안도로가 있었으며, 비행기 수십대가 이착륙 해도 전혀 무리없을 넓은 평지에 완벽하리만큼 잘 닦여진 아스팔트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운 좋으면 기차와 나란히 달릴수 있는 그런 길을 나는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뚜이호아 시장에서.. 다리가 묶여 움직일수 없는 오리와 닭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보고 있다가 아주머니께 마실 물이라도 자주 주라고 물마시는 행동을 취해줬다.. 알겠다는듯 아주머니는 나에게 웃으면서 반응을 보여주셨다.. 그늘막이 있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에 와서 내가 하는 취미 하나가 생겼다.. 바로 숙소앞에서 이렇게 멍하니 거리를 쳐다보는것..
의자가 밖에 있으면 더 좋고 비를 피할수 있는 공간과 턱이 있어 엉덩이를 편하게 땅에 닿을수 있는 공간이면 어디든 괜찮았다.. 새벽 다섯시부터 온몸을 전부 가린채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론가 급하게 나서는 사람부터 학생들, 직장인들 상인들 각자가 목적이 있어 길을 바삐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활기가 생긴다.. 보고 있노라면 한시간 두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커피와 음악을 곁들이면 오전에 3시간, 오후에 3시간을 보낼수 있다..여기에 달리기까지 곁들이면 나의 하루는 거의 마무리가 된다..
뚜이호아, 이 호텔에서 나는 4일밤을 보냈다..
해안가에서 달리기 하다가 보게 된 살아있는 낙지가 1kg에 3500-4000원 했다.. 운동복 차림이라 돈이 없어 호텔로 갔다.. 호텔 주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낙지 사오면 삶아주냐고 물어봤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얼른 그 장소로 가서 사가지고 와서 사이곤 맥주랑 음료수랑 마시면서 호텔직원들과 작은 파티를 열었다..
꾸이넌에서는 5일밤을 보냈다.. 내가 생각한 멍 때리기 딱 좋은 배치였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달리기를 했고 여기 의자에 앉아 당근쥬스를 마시면서 음악을 들었고 활기 넘치는 거리의 사람들을 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호텔사람은 나더러 런닝맨이라 부르기도 했다..
여기는 내가 겁이 났다.. 운동할수 있는 최적의 요건, 괜찮은 사람들, 만족할만한 물가, (참고 하자면 돼지고기 500g에 1600원, 남성 이발료 500원, 바게트 빵이 안에 야채 넣고해서 250~500원, 쌀국수 500~1500원, 캔맥주 500원, 일반 모텔비가 5000~7500원선이었다..) 혼잡하지 않은 도시의 분위기 등이 마음에 들어서 내가 눌러 앉을 생각까지 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떠나는날 아침, 처음 봤을때 경계의 눈빛을 끊임없이 보내왔던 개가 어느덧 내 품에 안겨왔다.. 개주인도 말했다.. 이렇게 쉽게 마음 주는 개가 아니라고..
이곳 숙소에 자주 놀러오는 사람과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맺었다.. 머무는 동안 같이 밥도 먹고 오토바이도 탔고 커피도 마시면서 정도 들었나 보다.. 내가 여기 더 있으면 안된다고 설명을 해야 하는데 그 이유가 정때문이라는걸, 정이라는 말이 영어로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막연했다.. 나 떠나고 4일이 지났는데 하루에 한번씩은 연락하고 있다..
여행하면서 느낀게 하나 있다.. 회사를 정리하고 한국을 떠나올 때 나는 욕심을 다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 욕심 버린건 아직까지 변함이 없는데 나에겐 또다른 욕심이 있다는걸 알아차렸다.. 그건 바로 사람과 풍경에 대한 욕심이 나에겐 있었던거다.. 좋은 사람들 두고, 좋은 곳 두고 어떻게 내가 떠날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틀이고 삼일이고 한곳에 계속 머무를 때면 겁이 났던거다..
어쩌면 여행자는 무서운 사람이다.. 난 아직 그럴 용기가 부족하다.. 난 아직 그런 욕심을 버릴만큼 익숙하려면 멀었다..
수백년을 거슬러 옛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육체는 볼수 없지만 그들이 여기에서 숨쉬고 땀흘리고 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무덤이든 건물이든 옛것을 접했을때 마음이 차분해지고 숙연해지는건 아마도 그들의 영혼이 함께 있어서가 아닐까..
꾸이년에서 10킬로 떨어진 외곽의 나지막한 구릉지에 세워진 banh it champa tower 이다.. 일부 유명 유적지는 입장료가 7500원이 넘는곳도 있지만 나는 여기를 오토바이 주차료 포함해서 500원 주고 입장했다.. 주변에 탑도 4개 있으니 사람도 없고 편안하게 관람하는데 옛것 관람하는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망설임 없을듯하다..
내가 너무 심취해 있었을까.. 아니면 한쪽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었을까.. 그들이 나를 향해 자기들 있는 곳으로 불렀다.. 여러차례 거절했지만 내가 나머지 탑들을 구경할려면 이 장벽을 넘어야 가능했다.. 그래서 마지못해 다가가서 그들과 어울렸다.. 그들이 부른건 내가 너무 자세하게 그리고 관심있게 구경하는것을 보고 맥주 한잔 주고싶다고 불렀던것..
an lao 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지도상에 분명 나와 있는 길이었고 나는 이날 이 마을에서 자고 다음날 계속해서 이어진 길을 따라 이동할 생각이었다..
첫만남은 늘 그렇듯이 주객으로 만났다.. 방을 안내받고 에어컨은 사용하지 않을테니 깎아달라고 했다.. 그래서 천원을 깎은 6500원에 하루밤을 묵게 되었다.. 외진곳이라 숙소를 찾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방에다 짐을 풀고나니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다.. 숙소에서 파는 맥주와 과자 한봉지를 사서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어쩌다보니 과자 네봉지가 되었고 몇봉지 더 늘어났고 들고다녔던 음료수까지 다 꺼내놓았다.. 혼자 떠돌아 다니는 데다가 도저히 찾아가기 힘든 그런 낯선 곳에 있는 나를 수상히 여기지도 않는 아이들이 무척 좋았다..
다음날 아침 숙소를 떠나서 지도가 알려주는데로 이동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길은 좁아지고 비포장이었고 진흙탕이었다.. 심지어는 개간하고 있는 산으로 향하기 까지.. 이미 17km나 달려왔는데 어떻할까를 고민하다가 지도상에 5km만 더 가면 넓은 길이 나온다는 알수 없는 길보다는 한번 지나온 길이 그래도 낫겠다 싶어 다시 숙소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미 오토바이는 엉망이 되었고 운동화와 바지까지 젖어버렸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숙소 도착해서 이야기 하고는 바이크 세척과 개인용품 세탁하느라 남은 둘째날을 보내게 되었다.. 저녁에 시장에서 소고기 500g을 5000원에 사서 숙소로 들어가는데 주인이 저녁 같이 먹자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반찬으로 소고기를 건냈다..
다음날 아침 방값을 지불하고 떠나려는 나에게 가볼때가 있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5000원만 방값으로 받았다.. 이러면 안되는데 싶어 내가 밥을 사겠다고 했다.. 시장에 가서 쌀국수를 먹었는데 국수값을 대신 내줬다.. 외국에 와서 현지인들로부터 값을 치러 얻어 먹은 두번째 순간이었다..
이후 커피 한잔씩 하고 그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어제의 상황을 알고 돌아가려는 나에게 그는 자기 마을의 숨겨진 비경을 구경시켜 줄 거라는걸 느낌으로 알아차렸다.. 마치 어제 그 일로 실망하지 않고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산 정상 부근에서 더이상 길이 나 있지 않은 막다른 곳.. 그곳에서 집을 짓고 살아가는 베트남의 오지 마을이었다.. 그는 나를 가는곳 마다 사람들께 소개시켜 주었다.. 식당에서, 커피숍에서, 이곳 마을에서, 지나가다 만난 사람들에게도.. 요란하거나 가볍지 않게 그러면서도 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면서..
구경을 다 하고 내려오는데 그는 나에게 밥먹고 가라고 말했다.. 이미 오전의 절반은 지난 시간이 되어 갈 길이 바빴지만 이른 점심 먹는다 생각하고 조금 망설임 후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번에 간곳은 그의 본가였다.. 부모님이 계신 가정집이었는데 여기서 아침에 만들어 놓은듯한 따뜻한 음식들을 대접받았다.. 내가 한그릇 다 비우자 그는 조금 더 먹어라면서 내 빈그릇을 들고 가서 밥과 죽순을 가득 채워서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면서 집을 계속 짓고 있는 건축가이기도 했다.. 이 숙소 뒤로 계속해서 집을 짓고 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 반나절 동안 그는 나와 함께 있었다.. 숙박업을 해서 사는 것만 봤을때 나를 손님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남긴 이윤은 없다.. 먹은 음식이며 오토바이 기름, 반나절이라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그는 확실히 손해보는 장사를 한것이다.. 왜 그랬을까.. 난 이제 떠날 사람인데..
자전거 뒷바퀴만 살짝 보이고 나머지는 모두 짐이다.. 저렇게 하고서도 운전이 될까..
세상의 부모 마음은 한결이다.. 베트남은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방과후에는 이렇게 교문앞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다.. 비교적 시골길이기에 이정도이지 약간 도심이라도 가면 한쪽 차선은 막혀버린다.. 참고로 학교가 참 예쁘게 잘 지어놨다.. 어디를 가도 학교 안에 놀이터와 벽에 귀엽고 예쁜 그림들로 가득하다.. 학교 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그나저나 바이크로 여행하면 돈이 많이 든다.. 나는 김치찌개 먹을래 짬뽕 먹을래 물어본다면 특별하지 않으면 김치찌개다..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했을때 특별하지 않으면 나는 산이다.. 그래서 가는 길도 산쪽으로 기우는 편이다.. 걱정이 되는것은 나는 혼자이고 저녁이 되었는데 주변에 인가도 없고 바이크도 고장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멘붕이 찾아온다.. 게다가 지금은 우기철.. 언제 폭우가 쏟아질지 모르는..
안전이 최우선이기에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점검 들어갔다.. 바이크 샀을때부터 앞바퀴가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타다보니 괜찮았고 또 흔들렸다 하는 현상이 반복되었었다.. 큰 산을 오르기전에 정비소를 들러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랬더니 현상 체크후 바퀴를 빼고 느슨해진 바퀴살의 너트를 돌려가며 조이는 작업이 이어졌고 나는 하는김에 앞 타이어도 교체해 달라고 했다.. 좋은걸로..
사진을 찍는데 사람들이 웃는 모습이다.. 사실 내가 이곳 정비소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웃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었다.. 깎아달라는 나와 안된다는 아주머니 사이에.. 하도 안된다고 하니 내가 파란색 티를 입고 있는 아저씨한테 가서 조르기도 하고 아주머니 어깨를 토닥거리며 천원 깎아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옥신각신 하는 모습에 길 건너편 가게 사람들도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우리쪽을 쳐다보기도 했다..
결국 나는 깎지도 못하고 갖고 있던 장갑 마저 빼앗겨 버렸다.. 왜냐하면 바퀴를 고치는 사람이 맨손으로 일하고 있는데 장갑끼고 하라고 말했는데 장갑이 없다고 하길래 가방을 열어 한켤래 줬다.. 아주머니가 받더니 자기 오토바이 탈때 쓸거라고 하면서 안준댔다..
이렇게 글만 보고서는 내가 바가지 엄청 당하고 바보된 줄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분위기는 정반대다.. 난 그저 500원, 1000원 깎으려는 마음에 장난을 친거고 내 마음을 읽은 사람들이 그렇게는 못한다고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던것..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과 당사자들은 단조로운 일상속에서 뜻하지 않게 느껴보는 즐거움이랄까.. 장갑도 그렇게 유용하게만 쓰여진다면 더 바랄게 없다고 생각했다.. 난 그저 기분 좋게 일해서 고쳐진 내 오토바이가 잘 달려주길 바랄뿐이었다..
오토바이를 싣고 가는 오토바이.. 오토바이 운전실력에 있어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봐도 손색이 없다.. 아무리 단단하게 고정했다 하더라도 유격이 있을진데 두 바퀴로 가는 오토바이가 좌우의 무게 균형을 맞춰서 방향전환과 감속, 가속을 한다는건 정말이지 대단한 운전기술이다..
감탄을 금할수 없어서 위험하지만 나도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따라다니면서 몇장 찍었다.. 속도가 빨라서 내가 따라잡을수 없었다.. 운좋게도 앞에 비교적 큰 차가 가로막고 있어서 간신히 쫒아갈수 있었다..
어둠이 세상을 거의 집어삼켜갈 무렵에 길거리에 있는 야자수 열매를 파는 가게에 멈춰서 한개를 주문해서 마셨다.. 오늘 밤 보내는 숙소도 잡아 놓았고 국도 626번 도로를 타면서 베트남의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엄청난 풍경도 보았으니 오늘은 정말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그런 밤이었다..
자리를 뜨고 계산을 할려고 물어보았다.. 20000동.. 내가 여태껏 달리면서 본게 8000동에서 9000동이었는데 이 아줌마 내가 외국인이라는걸 눈치채셨나 했다.. 그래, 오늘 기분도 좋은데 좀 쓸게.. 다음엔 이러면 안되요.. 여기 안올거야, 그럼..
이밖에도 mdrak 마을에서 아침밥을 시장에서 먹고 출발하려는데 200여미터 뒤에서 오토바이 타고 달려오는 아주머니.. 나 줄려고 생수 1.5리터 짜리 물통을 사가지고 왔다.. 밥 먹는데 옆자리에 앉아 내 이야기를 엿들은 아주머니인데 여행 잘하라고 이렇게 하신거다.. 라오스에서, 태국에서, 그리고 이전까지 베트남에서 내가 현지인들로부터 받은 첫번째 선물이었다.. 너무 놀라서 답례를 하려는데 절대 안받는다고 하셔서 겨우 가방에 있던 마스크 하나 드렸다..
나트랑 시장에서 쌀국수 먹는데 야채를 잘 먹는 나를 보고 젓가락질 두번해서 내 그릇에 가득 야채를 건네주셨던 할머니..
kham duk 시장에서 쌀국수에 이것 저것 넣어 먹어보라고 권했던 아저씨..
cam ranh 마을 시장에서 빵을 파시던 아주머니, 내가 아줌마 예쁘다고 하니까 내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같이 여행해도 되겠냐고 하시면서 나의 농담을 곁에 있는 상인들 모두를 웃게 해준 분위기 메이커 아주머니..
여행 한달째이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고 다시는 들리고 싶지 않은 가게도 있었지만 나의 바램이 있다면 사람냄새 나는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고싶다는 생각을 바이크 여행하면서 많이 들었다..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성격도 상황도 같은 사람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것 같다.. 그저 조금씩 이해하면서, 양보하면서,아무렇지 않을 만큼 손해보면서 그렇게 어울려 살다보면 내 주위에는 좀 더 좋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서로 앙숙인 저 개와 고양이도 함께 있지 않은가....
|
댓글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