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본 영화이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며 너무나도 뻔하다. 영화를 보고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면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나온다. 그리고 끝이다. 나 또한 그랬다. 감독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새삼스럽게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깊이있게 들어가보면 이 영화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할은 원래 예쁘고 잘 빠진 여자들만을 찾아다니는 남자다. 그러나 번번이 채이고 우연히 최면을 받은 후에 예쁜 여자들이 그에게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이때 나타나는 여자가 마리로즈이다. 할의 눈에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예쁘고 잘 빠진 몸매에 고맙게도 착하기까지하다. 실제로 그녀는 140Kg의 거구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바는 이렇다. [그녀는 몸은 뚱보이지만 마음은 비단결같다. 할은 마음의 아름다움이 보이도록 최면에 걸렸다. 그래서 그에겐 그녀가 기네스 펠트로처럼 이뻐 보인다.] 하지만 이면에는 여전히 외면의 이데아가 존재한다. 그녀의 이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 기네스 펠트로의 얼굴과 몸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네스 펠트로의 얼굴과 몸매가 로즈마리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가. 어쩌면 이런 발상 자체가 내면의 아름다움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패럴리 형제들은 오류를 범한것일까? 실수를 한 것일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자라는 것일텐데,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정작 세계적인 미인인 기네스 펠트로를 주연으로 한것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들은 선입견에 도전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선입견에 빠져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분명 아름다움과 추함이 존재한다. 미의 기준은 조금씩 변한다 할지라도 존재한다. 사람들은 본 모습의 기네스 펠트로는 아름답고 뚱뚱해진 기네스 펠트로는 추하다고 느낀다. 이것은 현실이다. 선입견이라는 단어 자체는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지만 선입견을 타도하는 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럼 외모 지상주의를 논하는데 내면의 아름다움이 항상 따라오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나는 인간의 이분법적 사고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 사람의 외모를 살핀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외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는 것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닌데 태어나보면 자신의 얼굴은 벌써 정해져있다. 물론 성형이라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한계가 있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성형을 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또 조금 더 예쁘고 조금 덜 이쁜 사람으로 나뉘어 진다. 또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기 어렵다. 조금 더 코가 오똑하길 바라고 눈썹이 더 잘생기길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외면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사람마다 미의 기준은 틀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외모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획일적 기준에 사로잡힌 속물적인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주위에 할과 같은(할보다 더 심하게 오직 외모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모르는 속물이라고 비난받을 것이다. 기네스 펠트로가 예쁘고 버블시스터즈가 못생겼다는 인식은 누가 만든 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태어나보니 이렇게 생긴 사람을 예쁘고 멋있다고 하는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졌다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다 괜찮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형상은 제대로 생각해 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본래 이미지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윤리라는 것이 있고 이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인간은 외모에만 집착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인간에게는 미를 추구하려는 본성이 있다. 나는 이것을 본성이라고 해두고 싶다.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 아름다움을 구하려 하는데 외면이 아니면 내면이다. 곧 정신적인 것이다. 이것을 이분법적 사고라고 한다면 용어를 잘 못쓰는 것인가? 아까도 말했듯이 이성이 있고 윤리라는 이념이 있기에 이런 이데올로기로 사람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살펴보자는 데에는 모두들 동의한다. 외면의 아름다움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은 잘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고 숨기거나 꾸미려고 마음먹으면 "가식"이나 "위선"이라는 말이 있듯 그럴 수도 있다. 내면의 아름다움이나 그것에 대한 판단이란 것은 대단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서 이 사람에게는 천사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악마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훨씬 더 주관적이고 기준을 긋기 힘든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내면의 아름다움을 논하는데 기네스 펠트로가 나오는 이유라고 한다면 어떨까?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내면이 아름다운 건 무엇인가. 흔히들 말하는 착하다는 건 무엇인가. 배려한다는 건 또 무엇인가.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윤리이고 개념이고 이념이다. 그래서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어렵고 곤란하다. 그렇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외면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빌려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외면의 아름다움은 드러나는 것이고 사람들은 예쁘고 추함이 극단적으로 나뉘어질 때에는 그것을 판단하기 쉽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세계의 미인이라 할 수 있는 기네스 펠트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사람들이 추하다고 대표적으로 느끼는 뚱보 거구를 영화의 주요소로 사용했던 것이다. 나는 이를 외면의 아름다움이 내면의 아름다움에 투영된다고 표현하겠다. 그래서 외모지상주의를 부정하면서도 끝내 그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 실제로는 뚱보인데 할의 눈에 잘생겨 보이고 예뻐보이는 예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쁜데 할의 눈에 추남 추녀로 보이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감독은 정신적인 것은 추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정신적인 것이 늘 아름답다는 것에는 동의 할 수 없다. 사람들이 정신적인 것이 늘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신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인간이라면 완벽하지 않고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에 정신적인, 내면적인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뭐라고 단언하기는 힘들지만 정신적인 추함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내면의 무게와 외모의 무게가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예쁘고 잘생긴 것들은 얼굴 값한다고들 말한다. 그렇지만 이것도 하나의 선입견이지 않을까? 아까 '이분법적 사고'라는 용어를 썼듯이 외모와 정신은 완벽하게 하나가 아니다. 예쁘면 싸가지가 없을 것 같고 못생기면 마음은 착하겠지라는 것도 우리의 선입견이다. 아니 심리학적으로 후광효과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예쁘면 마음까지 착할 것 같고 못생기면 다른 모든것들도 별로일것 같은 생각을 한다고 한다. 이것은 심리학적인 연구라 내가 뭐라고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외모로 내면까지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 본다.
이 영화에서 할은 로즈마리뿐 아니라 로즈마리의 옛 남자까지 잘생겨 보인다. 이 영화는 너무 외모와 내면을 반비례식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로즈마리의 옛남자도 소위 말하는 추남이었던 것이다. 감독은 예쁘면서 마음씨도 착한 여자와 못생겼는데 성질까지 더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정한 사랑이란건 무엇일까? 할의 최면이 풀리고 로즈마리의 실체를 알게된 할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결국 그녀를 진정 사랑하게 되고 둘은 잘 먹고 잘산다는 뻔한 엔딩이다. 유치하고 뻔하긴 하지만 이런 것이 사랑이 아닐까. 이 영화의 제목인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140kg의 거구로 보여도 내 눈에는 기네스 펠트로처럼 보이는 그런 것 말이다. 나에게는 그 사람이 제일인 것이다. 사랑을 하게 된 동기가 그녀의 잘빠진 몸매이든 천사같은 마음씨든 그것은 상관없다.
사랑에 빠지면 그녀의 잘빠진 몸매에 천사같은 마음씨가 플러스되고 천사같은 마음씨에 빼어난 외모가 더해진다. 최면에 걸린 할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장동건이 온다고 해도 그 사람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내리는 사랑의 정의가 가볍고 유치할지도 모르지만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를 보면서 나는 사랑을 이렇게 보고 싶었다.
잠시 우리나라의 미스코리아를 잠시 생각해보자. 그녀들은 하나같이 큰키에 훤칠한 몸매에 얼굴이 예쁘다. 얼굴과 몸매만 보기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인터뷰를 하기도 하지만 그 잠깐의 인터뷰가 그들의 내면을 드러내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녀들의 잘 빠진 다리를 즐길뿐이다. 부러워할 뿐이다. 안티 미스코리아가 아직 열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는 할머니부터 아이들 심지어 애기를 밴 아줌마까지 나온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미스코리아가 안티미스코리아 참여자보다 아름답다고 , 안티 참여자들은 미스코리아와는 비교도 안되게 추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할머니에게는 인생을 살아온 경륜과 지혜와 깊은 생각이 있고 아이에게는 순수함이 있다. 임산부 아주머니에게는 모성애와 사랑이 있다.
나는 이제까지 이런 문제에 대해 항상 이렇게 말해왔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되고 내면을 봐야 하는 거라고. 이제는 식상하게까지 들리는 이 말을 나는 이 영화를 보고나서 다시금 되씹어 본다. 그래. 어쩌면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자는 것은 소위 외모가 딸리는 사람들이 내세울 수 있는 아니 바라는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이 여전히 진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인간이니까. 사고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동물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말이다. 우리에게 단순히 눈만 있다면 외면을 볼 수 밖에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내면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주어졌으니까. 설사 어떤 이는 이 능력을 전혀 쓰고 싶어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래서 이 영화는 그런 능력을 쓸 줄 모르고 쓰려하지 않는 이들에게 충고하고 있는 듯 하다.
실제로 기네스 펠트로는 뚱보분장을 하고 거리에 나다니며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꼈다고 한다. 주제에 벗어나는 이야기인지는 몰라도 이 영화가 그들의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계기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도 그들의 내면을 인정해줄 할이 나타날 것이다.
나는 최대한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깊이 생각하려 노력은 하였지만 잘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점은 큰 소득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학기동안 열강해주신 교주님 감사합니다
교주님의 수업은 매번 재미있었습니다. 진실로!^^*
첫댓글 매번 참여하였겠지만, 열심히 한 학생들이 많았구요. 이해해주시죠? 시간이 부족한 탓인지 필수문제가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과제물도 그럭저럭 괜찮았구요. 저 미워하시지 않을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