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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강산이 너무 싫다 ―왜 문학판이 이렇게 싸늘한가? 이 승 하 1. 적막강산이 되고 만 새 천년 '새 천년'과 '21세기'를 너나없이 외치며 맞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어언 2005년이다. 한국 시단에는 이제 '시의 위기'에 대한 담론마저 사라지고 없고, 시인 이형기의 시집 제목 그대로 적막강산의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어디를 봐도 마찬가지다. 시대가 주는 고통을 담은 거대 담론도, 다양성과 개별성을 인정한 미시 담론도 보이지 않는다. 대가의 졸작에 대한 비판도, 특정한 사안에 대한 논쟁도 없다. 침묵이 아니면 칭찬이요 덕담이 아니면 잡담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문학평론가는 권력을 선점한 몇몇 계간지와 출판사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고, 그도 아니면 군웅할거식으로 나타난 문예지의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2000년대 우리 시단이 지금과 같이 적막강산이 되고 만 이유 중 하나는 상호 논쟁과 애정 어린 비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부 문학평론가는 문예지별로 담을 쌓고 들어앉아 담 밖의 작품에 대해서는 오불관언, 담 안쪽의 작품에 대해서만 해설하고 상찬한다. 표나게 하는 경우도 있고 교묘하게 눈속임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문학평론가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해설과 비평이다. 해설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이며, 비평은 작품을 엄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이다. 이 두 가지 일을 균형감각 있게 하지 않으면 그는 '주례비평'이니 '골목비평'이니 하는 욕을 먹게 된다. 이런 욕마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 우리 평단의 현실이 아닐까? 2000년대에 접어든 지도 어언 6년째인 지금, 문예지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괄목할 만한 시인을 만나고 있는가? 괄목할 만한 시집은 갖고 있는가? 괄목할 만한 비평서를 읽고 있는가? 특히, 토론이나 논쟁이 없어 너무나 적막한 시단이다. 비평도 없고 비판도 없다. 그 대신 이 어른, 저 대가를 추켜세우기에 급급하다. 문학평론가가 매달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는 작품을 읽고 검증하고 선별하고 분석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누가 한단 말인가? 시단에 논쟁이 없으니 화제가 없고, 화제가 없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져 버렸다. 시단의 침체는 독자 부재로 이어져 대형서점 시집 코너의 대폭 축소 현상을 가져왔다. 물론 이 이유만으로 시집 코너가 축소된 것은 아니지만 시집의 판매 부수 저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 있다. 이제 시리즈로 100권 이상의 시집을 간행한 몇 개 유명 출판사를 통해서 낸 시집이 아니면 서점의 서가에 꽂히지도 않는다. 시집은 서구 제국과 일본에서 그러하듯 자기 주변 사람들한테만 돌리는 동인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 현대 시단이 맞닥뜨린 악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영상매체와 인터넷 전성시대로 접어든 이후 독자가 도무지 시집을 사 읽기 않는다. 베스트셀러 시인 사인방 류시화·원태연·용해원·이정하의 시집 외에, '내가 읽은 좋은 시' 따위의 가벼운 읽을거리 시집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한 권의 시집에 시인의 고뇌와 노역이 담겨 있지 않으면 그 시집은 무가치한 것이기 십상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상하게도 대다수 독자는 출판사와 시인이 야합, 상업적 의도로 낸 시집을 더 좋아한다.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지는 작고 시인과 기성 시인의 작품 수가 하루에만 해도 수백 편에 이른다. 시집을 사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등단 절차를 상관치 않는 아마추어 시인들의 습작품이 하루에 수천 편씩 인터넷 사이트에 오르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문예지가 너무 많은 탓에 일정한 수련의 기간을 거치지 않고 손쉽게 등단하여 시인 행세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진 것도 안 좋은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개별 시인과 작품에 대한 비평이 필요하며, 문학평론가 상호간의 논쟁도 필요하다.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시급하다. 2. 한국 문단의 활력소였던 논쟁들 우리 문학사 혹은 문단사를 살펴보면 재미있는 논쟁이 많다. 최초의 문학 논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학사 전개에 있어 아주 초기의 논쟁으로 1920년대 후반기의 '소설건축설' 논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923년부터 우리 문단에 프로 문학이 열풍처럼 몰아쳤지만 좋은 작품이 도무지 나오지 않자 김기진은 박영희의 [철야]와 [지옥순례]를 평하면서 프로 문학의 허점을 "소설이란 한 개의 건축이다. 기둥도 없이 서까래도 없이 붉은 지붕만 얹어놓은 건축이 있는가?"라는 말로 정확히 꼬집는다. 박영희는 김기진의 지적에 발끈하여 "프롤레타리아의 작품은 군의 말과 같이 독립된 건축물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 소설로서 완전한 건물을 만들 시기는 아직은 프로 문예에서도 시기상조한 공론이다."라고 맞받아 친다. 이 논쟁은 다시 김기진의 [무산문예작품과 무산문예운동]과 박영희의 [문예비평의 형식파와 맑스주의]로 재연되고, 우리 문단은 창작의 내용과 형식 문제를 논하면서 논쟁의 회오리바람, 그 한복판에 들어서게 된다. 논쟁을 계속하면 프로 문학의 자멸을 볼 것 같자 김기진이 항복 문서를 발표하면서 설전은 끝나지만 소설건축설 논쟁은 카프 진영이 해산될 때까지 '대중소설론', '농민소설론', '창작방법론' 등을 이끌어내며 30년대 평단의 주요 논점이 된다. 광복 이후, 이른바 '해방 공간'에서는 본격문학의 수립을 주장하는 김동리와 계급문학의 기치를 높이 올린 김동석 사이에 좌우익논쟁(일명 민족·순수문학 논쟁)이 전개된다. 이 논쟁은 수많은 문인의 월북·월남을 통한 문단 자체의 분열과 6·25의 발발로 중단되고 만다. 50년대에는 신문연재소설 [자유부인]으로 말미암아 작가 정비석과 서울법대 황산덕 교수 사이에 논쟁이 전개되어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50년대 후반 김동리와 이어령 사이에 전개된 실존주의 논쟁은 '참여문학론'에 대한 논의로 발전하는데, 논쟁의 열기가 문단 전체를 뜨겁게 할 정도로 치열하였다. 두 사람에 의해 촉발된 참여문학론은 60년대에 순수·참여문학 논쟁을 거치고, 70년대 민족문학론으로 이어진다. 50년대에서 60년대로 이어진 '전통논쟁'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60년대 후반 시인 김수영과 문학평론가 이어령 사이에 불붙은 이른바 '불온시 논쟁'이라고 일컬어진 문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에 대한 논쟁도 있었다. 백낙청은 [시민문학론]을 발표한 이후 70년대에 들어 순차적으로 민족문학론→민중문학론→제3세계문학론을 전개하는데, {문학과 지성} 쪽 평론가들에 의해 많은 공격을 받는다. {창작과 비평}을 중심으로 모인 평론가로는 백낙청 외에 염무웅·김병걸·구중서 등이 있었고, {문학과 지성} 쪽 평론가로는 김현·김병익·김치수·김주연 외에 오생근과 김종철이 있었다. 80년대 비평은 백낙청의 후예인 최원식·윤지관·황광수 등과 김현의 후예인 정과리·홍정선·성민엽·권오룡·진형준 등이 나타나 자기 논리를 활발히 펼치고 때때로 논쟁도 전개한다. 이 두 진영 사이의 논쟁은 상호 존중의 밑바탕 위에서 전개되었기에 80년대 문단의 가장 멋있는 부분에 속한다. 양대 진영에 속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길을 걸으며 비평활동을 전개한 이로는 김윤식·김용직·김우창·유종호·천이두·이상섭·이승훈 등이 있었고, 80년대에 활발히 활동한 최동호·이동하·남진우·임우기 등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실로 기라성 같은 면면이었다. 원론비평이든 현장비평이든 주옥같은 저서가 속속 출간되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강단비평 유의 글이 많았고 논쟁적 글쓰기가 별로 안 보였다는 것 정도일까? 아니, 민족·민중문학론과 노동문학론을 전개한 소장 비평가들이 80년대 문단에는 별동대처럼 포진해 있었다. 채광석·김명인·조정환·현준만·백진기……. 이들이 있어 80년대는 문학의 시대가 될 수 있었고, 비평의 시대가 될 수 있었다. 90년대의 비평 논쟁은 예전처럼 활발하게 전개되지도 않았지만 감정에 치우쳐 인신공격조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튼 신세대 문학·문화 논쟁, 비평의 기능에 대한 논쟁, 근대성에 관한 논의, 문학권력에 대한 논쟁 등이 90년대 비평계를 수놓게 된다. 그런 와중에 맞이하게 된 2000년대―지금 우리 평단과 시단에서는 어떤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어떤 논쟁이 전개되고 있는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3. 2000년대는 논쟁 부재의 시대인가 시단에서 논쟁이 사라지고 만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법하다. 필자 나름대로 몇 가지를 짚어본다. 첫째, 지금 이 시대에 시에서는 특별히 이슈로 삼을 만한 것이 없다. 둘째, 문학이, 특히 시가 문화를 선도하지 않고 있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셋째, 문학평론가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논쟁적 글쓰기를 하려 들지 않는다. 넷째, 논쟁적 글쓰기는 지면 얻기가 쉽지 않다. 다섯째, 문학평론가는 교수이든 강사이든 대학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들은 '업적 평가' 때문에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려고 한다. 즉, 점수가 안 되는 평론은 '잡문'으로 인식, 가급적 쓰지 않으려 든다. 써도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있는 해설류의 글을 주로 쓴다. 가장 큰 문제는 둘째, 시가 문화를 선도하지 않고 있기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시'라는 것보다는 영화·스포츠·웰빙·게임·애니메이션·만화·여행 등에 월등 관심이 많다. 연륜과 전통을 자랑하는 모 계간지가 아무리 열심히 특집을 꾸미고 책 내용을 참신하게 개편하여 시중에 내놓는다고 해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 김이 새게 된다. 독특한 방식으로 편집을 했던 {문학정신} {BESTSELLER} {파라21}의 폐간이 참으로 아쉽다. 게다가 논쟁이라니, 긁어 부스럼 만들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우리 문단에 널리 퍼져 있다. 시집을 시리즈로 내고 있는 유명 출판사가 있다. 시리즈의 성격이 꽤 개성이 있어 많은 시인이 그 출판사에서 시집 내기를 소망해 왔다. 그런데 근년에 들어 시리즈의 성격이 완전히 무너져 시집의 수준이 중구난방이 되었고, 얼토당토않은 시집이 턱하니 시리즈 번호를 달고 나오기도 했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어떤 문학평론가가 시집 출판의 결정권을 쥐게 된 이후 자신과 친소 관계에 있는 시인을 위주로 하여 시집을 내주게 됨으로써 그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딱 어느 시점부터 시집 출간의 기준이 무너졌고, 사람들의 말 그대로 그 문학평론가의 주변 인물들이 시집의 일련번호를 좍 점하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와 작품의 탄생을 위해 조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문학평론가가 권력을 쥐 이후 권위 있는 시집 시리즈 출간의 엄정성을 흐트러뜨렸으니, 그는 우리 시단의 암적 존재이다. 시집을 내고 싶어하는 시인들이 여럿 그에게 와서 술을 사거나 밥을 샀다는 말도 들리고…….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이런 문학평론가일수록 권력 지향적이다. 모 계간지의 편집위원으로 일할 때였다. 바로 그 문학평론가에게 계간평 청탁을 하였다. 마감일을 넘겨서 온 원고는 놀랍게도 문학과지성사에 나온 어느 한 권 시집에 대한 서평의 글이었다. 연락이 잘못되어 그런 원고를 썼나 싶어 확인을 해보았더니 지난 계절에 발표된 시 가운데 언급할 값어치가 있는 것이 없었고, 때마침 대단히 훌륭한 시인이 오랜만에 시집을 냈기에 계간평을 대신해 그 글을 썼다는 것이다. 나는 그 지면을 펑크낼 수 없어서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그 서평을 계간평의 자리에다 실어야만 했다. 지금 우리 문단에 계간지가 얼마나 많이 나오고 있으며 3개월 동안에 발간되는 월간지의 수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 가운데 논할 값어치가 있는 시가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고 엉뚱한 글을 써 결국은 그 출판사에서 평론집을 낸 그 문학평론가의 후안무치에 나는 치를 떨었다. 논쟁이 없는 한 문학은 답보상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고 만다. '노벨문학상을 탈 만한 한국문학'이라는 명제를 생각해보면 우리 문학은 2000년대에 들어와 몇 걸음 뒤로 물러선 느낌이 든다. 2000년대 우리 문단에는 상업주의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잘 팔리는 책이 곧 훌륭한 책이라는 인식이 지금보다 더 설득력을 얻었던 시대가 없었던 듯하다. 대중성이 있으면 책 출간이 쉽고 반대로 대중성이 없으면 책 출간이 어렵다. 문학의 순수성을 상업주의가 밀쳐버렸으며, 시는 더더구나 설자리를 잃고 말았다. 이런 점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으면 좋겠는데, 문예지들은 예나 지금이나 수수방관하고 있다. 4. 한국 평단의 세 평론가 이런 암담한 시대에 값진 글을 쓴 문학평론가가 두 사람 있다. 오세영과 장석주다. 장석주는 '김춘수 시 다시 읽기'라는 부제를 붙인 [언롱의 한계와 파탄]({시경}, 2004. 상반기)을 쓰고 나서 이 글을 보완하는 [도피와 유희―김춘수론]({시경}, 2005. 상반기)을 쓴다. 김춘수는 시적 경향을 '순수'와 '참여'로 대별할 때 순수문학의 대부격으로서 수많은 헌사를 받아온 시인이다. 김수영이 이승을 일찍 떴기에 영광을 누렸다면 김춘수는 장수하였기에 영광을 누린 시인이다. 장석주는 순수문학 진영으로부터 영면하는 그날까지 추앙의 대접을 무한정 받아온 김춘수의 시를 정면에서 공격한다. 장석주는 [언롱의 한계와 파탄]에서 시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동잎] [처용단장, Ⅰ의 Ⅰ] [구름] [꽃] [시 Ⅱ] 등을 엄밀하게 분석한 뒤 이런 결론에 이른다. 김춘수 시의 한계와 비극은 인간 조건의 정직한 인식을 향해 있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가려 한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중략) 김춘수의 시들이 체험적 진실을 머금지 못하고 헛된 관념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관념이란 허상이다. 그것은 현실과 무관한 위조된 현실, 가공의 낙원에 지나지 않는다. 김춘수는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시단의 대가임에 틀림없는데, 이상하게도 비판적인 평가는 거의 받은 적이 없었다. 김춘수를 다룬 석·박사 논문의 수는 실로 엄청나다. 일종의 '계관시인'으로서 온갖 영광을 다 누린 김춘수는 말년에(정확히 말해 2003년 11월 1일이었다) 한국시인협회 주관 '시의 날' 행사에서 '이 땅에는 그만그만한 시인은 많은데 큰 시인은 없다'는 요지의 강연을 한다. 한국 시단이 T.S. 엘리엇 같은 큰 시인을 배출하지 못해 한심하다고 개탄하는 시인의 말 속에는 김소월과 한용운, 정지용과 백석, 서정주와 김수영, 그리고 지금 활동하고 있는 모든 시인을 폄하하는 뜻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말 속에는 자기야말로 이 땅의 큰 시인이라는 뜻이 숨어 있었다. 시인 스스로 우상화에 앞장선 데에는 이 땅 문학평론가들의 직무유기가 한몫을 한 셈인데, 장석주는 작품 분석을 통해 김춘수의 아우라를 벗겨내는 작업을 한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장석주가 시인 살아생전에 이런 글을 써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전개되었더라면 하는 것이다. 아무튼 제아무리 대가일지라도 완전무결할 수는 법이다. 우리에게는 문인의 실체를 작품을 통해 평가하려고 하지 않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광휘에 눈이 멀어 엉뚱하게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문학평론가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권위에 대한 도전이요, 편견과의 싸움이다. 장석주는 바로 그 일을 한 사람이다. 오세영은 2005년 1∼3월호 {현대시}에 [우상의 가면―김수영론]을 발표한다. 그는 1998년 조선일보사의 특집 기획 기사를 상기시킨다. 조선일보사에서는 대표적인 문학평론가 50인에게 설문 조사를 하여 해방 이후 한국의 대표 시인 50인을 선정, 순위를 정했는데 1위를 차지한 시인이 바로 김수영이었다. 그만큼 한국 시단과 평단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시인이 김수영이었고, 후배 시인들은 그의 시를 경전처럼 읽어왔으며, 대학 석·박사 논문 또한 수백 편이 씌어지게 했다. 오세영은 '김수영 신화'가 왜 잘못된 것인가를 정밀한 작품 분석을 통해 행한다. 특히 대표적인 참여시인으로 그가 거론되어온 것이 잘못이었음을 상론하고 있는데, 놀라운 분석력과 비판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오세영은 제목 그대로 우상의 가면을 벗겨내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 장문의 글을 썼다. 혹자는 오세영의 이 글을 두고 인신공격조의 글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수박 겉 핥기 식의 인상비평이 아니라 엄정한 작품 분석에 의한 평가여서 충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 김수영론을 준비하는 대학 석·박사 과정 학생이라면 반드시 이 글을 읽어야 할 것이다. 글의 마지막 부분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상략) 다만 그의 시의 난해성과 무의미가 그의 문학을 논란거리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으리라는 추측만큼은 다시 한 번 지적해두고 싶다. 시의 진정성을 떠나서 별 의미 없는 난해성이 이처럼 별 의미 없는 시의 문제거리가 되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지만…… 그러한 관점에서 김수영은 60년대 한국시의 한 해프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수영을 향해 "60년대 한국시의 한 해프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우리는 그 동안 갖지 못했다. 우리는 김수영의 시를 읽지 않고서 김수영에 대한 풍문을 믿어왔던 것이 아닐까. 너도나도 김수영을 외치니까 나 또한 올바른 판단력을 잃은 채 김수영의 시를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 문단의 병폐는 길고 긴 50년 세월 동안 김수영 시의 허실에 대해 논한 사람이 없었다는 데 있다. 물론 김수영이 위대한 시인 중 한 사람일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그의 시가 지닌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김수영을 우상으로 만들어온 것일까. 문학평론가는 우상 숭배자가 아니라 가면을 벗기는 사람이어야 함을 일깨운 글이 오세영의 [우상의 가면―김수영론]이다. 오세영은 수많은 김수영 추종자의 거센 반발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을 썼을 것이다. 나는 그 용기가 존경스럽다. 2000년 봄호를 창간호로 발간하여 지금까지 22호를 낸 계간 시전문지 {애지}의 주간 반경환은 한국 문단의 우상을 파괴하는 데 혼신의 열정을 쏟고 있다. 그 동안 반경환이 이 지면을 통해 직접 평가절하를 시도한, 아니 평필을 휘둘러 무섭게 비판한 이는 김현·정과리·고은·신경림·김용택·이문열·황동규이고, 외국의 다른 이의 논문과 유사한 대목이 있다면서 함께 제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비판한 이는 김현·유종호·김윤식·김우창이다. 장르에 구분 없이 1급의 문인들이 망라되어 있는 셈이다.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이는 대개 문단의 대가들인데, 반경환은 이들이 허명을 누리고 있으므로 독자에게 이들의 실체를 알려주고, 이들 작품의 실상이 이렇게 형편없소, 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가를 거꾸러뜨려 한국 문단의 판도를 뒤흔들려고 하는 반경환의 집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논리가 좀더 정치했으면, 작품 바깥보다는 작품 안에서 논의를 진행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작품이 아니라 사람을 공격하면 글의 목적성이 진정성을 무화시킬 수 있다. 어떻든 간에 침체일로에 있는 우리 문단에 이런 논쟁적인 글은 많이 나오면 많이 나올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암담했던 일제 강점기 때도, 4·19혁명을 부른 이승만 정권하, 10·26사태를 부른 유신정권 시대 때, 5·6공화국 군사정권 시절에도 정치적 폭압에 문학이 맞섰고, 그 문학의 힘은 풍요로운 담론과 날카로운 쟁론에서 나왔다. 작품을 실어주고 책을 내주고 하는 작은 권력 행사에 문예지와 문학평론가가 나설 것이 아니라, 문예지는 좋은 특집 마련에, 문학평론가는 좋은 신인 발굴에 나섰으면 좋겠다. 물론 작품은 엄선해서 실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대단한 권력인 양 휘두르며 해설과 비평, 혹은 연구와 저술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계간 <리토피아>(200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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