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얇은 책자엔 세 편의 우리 고전이 실려있다. 운영전, 영영전, 백학선전이 그것이다. 어느 학교의 중3필독서라길래 읽어 보았더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흔히 고전하면 좀 딱딱한 고어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이 책은 내용이 지금의 우리가 읽어도 어색하지 않은 연애소설이다.
가장 재미있는 작품은 무협지의 전기적 요소가 다분한 백학선전이다. 춘향전보다 더한 여인과 남자의 정조가 다소 부자연스러지만 자신들의 결합이 운명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러한 극단적인 행동이 나올수 있으리라. 결국 여인의 갑작스런 홍길동으로의 변신이 모든 환난을 잠재우고 해피엔딩 스토리를 이끈다. 서양고대희극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신이 나타나 끝내주는 것)와 별반 다를바 없다.
이에 비해 운영전과 영영전은 보다 현실적이다. 물론 등장하는 인물이 다소 중복되는 경향이 있어 작품의 정체가 의심스럽지만 내용은 각기 차별성을 띠며 전개된다. 운영전은 운영이란 궁녀와 소년진사와의 애틋한 사랑이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반면에, 영영전은 김생이란 진사와 영영이란 여인의 사랑이 이승에서 행복하게 실현된다. 특히 운영전은 고전소설에서 보기 힘든 비극적 결말을 보이는 데서 의의가 있는 작품이란다. 그러나 죽어서도 이들이 계속 만나 시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보면 이들에게 삶과 죽음이란 경계가 그리 큰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다. 운영전에선 한시를 자유자재로 짓는 여인들과 안평대군, 성삼문 등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시 하나하나가 출중한 작품인 듯 한데 그 와중에서도 품격이 매겨지고 있다. 한문학에 관한 기본 소양이 많이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운영전에 비해 영영전은 남녀의 애틋한 모습이 더욱 성공적으로 형상화되었다. 김생이 영영을 갈구하는 모습이 여러가지 형태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미인은 용감한 자가 차지하는가 보다. 김생은 이후 과거에 장원급제한 이후에도 영영을 못 잊어 죽을 지경이 되었으니, 그 사랑이 신분이나 시간을 뛰어 넘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그들은 둘다 상사병에 걸려 죽을 뻔하다(까딱 잘못했으면 운영전 꼴 날뻔 했다.)김생의 친구가 도와줘 둘의 사랑은 이루어진다.
이 책은 앞으로 우리고전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의지를 북돋워주었다. 우리 고전이 이렇게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앞으로 읽을 작품들의 목록을 헤아려본다. 한중록, 열하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