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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산악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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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 ♤ 스크랩 용문산 야생화 포토기행
흑장미 추천 0 조회 61 06.07.22 14:3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아침부터 하늘엔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오늘은 오랜 세월 민중미술이라는 한 길을 걸어온 박 건, 이재민, 이운구 작가와 함께 용문산을 오르기로 한다. 민중미술 작가들은 산을 바라볼 때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그들에게 산의 의미는 무엇일까? 간혹 민중계열의 판화가들은 산맥을 통해서 면면히 이어져온 민중들의 역사와 저항정신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오늘 그들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리라.

 

                                                                *용문산 등산지도

 

한국의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용문산은 예로부터 경기의 금강이라 불려온 산으로 1982년부터 관광지가 되었다. 이 산은 정상에서 뻗어내린 수많은 암릉과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계곡이 아름다워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용문산은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과 용문면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용문사 일주문

 

용문면 신점리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등산로가 시작되는 용문사로 향한다. 용문사 입구에는 '龍門山龍門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이 세워져 있다. 오랜 풍상을 겪은 듯 일주문 지붕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일주문 주위로는 아름드리 낙락장송들이 호위병처럼 듬직하게 서 있다.


*용문사길

 

일주문을 지나 용문사로 올라가는 길은 온갖 활엽수와 침엽수들이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어 마치 밀림속에 들어온 듯 한 느낌이 든다.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기품이 있어 보인다. 소나무들의 껍질에 무성하게 붙어 있는 파란 이끼가 세월의 흐름을 짐작하게 한다.   


*용문사 계곡

 

일주문에서 용문사에 이르는 계곡에는 기암괴석들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한 계곡물이다. 수량이 제법 많은 것으로 보아 매우 깊은 계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수국

 

길가에는 아침 이슬에 젖은 산수국이 산길 나그네를 반긴다. 산수국은 화려한 듯 하면서도 청초한 느낌을 준다. 꽃이 아름다워 정원에 관상수로 키워도 좋은 꽃이다. 범의귀과의 산수국은 7~8월에 그 해에 자란 가지끝에 큰 산방화서가 달리며 털이 있다. 그 둘레에 있는 무성화는 꽃받침잎이 꽃잎같고 백홍벽색 또는 벽색이다. 양성의 꽃은 꽃받침잎이 작고 꽃잎과 함께 각각 5개이다. 산수국의 뿌리와 잎, 꽃은 팔선화라고 하여 생약재로 쓴다. 잘 안 쓰는 약재다. 유사종으로 둘레에 있는 꽃이 중성화가 아닌 양성화를 갖는 탐라산수국, 무성화의 꽃받침에 거치가 있는 꽃산수국, 제주도에서 자생하며 잎이 특히 두꺼운 떡잎산수국이 있다.


*함박꽃

 

조금 더 올라가자 이번에는 활짝 핀 함박꽃이 반겨 준다. 하얀색으로 소담스럽게 핀 함박꽃에서 아름답고 고결한 여인의 환한 미소를 보는 듯 하다. 함박꽃은 그 아름다운 자태와 그윽한 향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함박꽃은 한마디로 산중의 귀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꽃이다.

 

함박꽃나무는 목련과의 낙엽소교목으로 목란, 산목련이라고도 한다. 관상용이나 약용으로 쓰이기도 하며, 열매껍질은 향신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함박꽃은 북한의 국화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목란이라고 부른다. 박정희 독재정권 치하에서는 북한의 국화인 진달래를 찬양하기만 해도 잡혀가거나 탄압을 받던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북한의 국화를 진달래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1980년대 초 김일성 주석은 이 꽃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해서 나무에 피는 난초라는 뜻의 '목란(木蘭)'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북한의 국화로 정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북한의 국화는 천연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평양특별시 대성동 중앙식물원에 있는 대성산 함박꽃나무다. 나무나 꽃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은 목란이 목련이나 모란과 이름이 비슷하여 혼동하기도 한다. 또 작약꽃을 함박꽃이라고도 하는데 목란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용문사 대웅전

 

용문산을 오르기 전 용문사에 잠시 들러서 가기로 한다. 용문사 경내로 들어서자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용문사는 용문산의 남동쪽 기슭에 있는 절로, 경내에는 정지국사부도(正智國師浮屠)와 비(碑, 보물 제531호), 그리고 상원암, 운필암, 윤필암 등의 암자가 있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에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일설에는 경순왕(927∼935재위)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하였다고 한다. 고려 우왕 4년(1378)에는 지천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조선 태조 4년(1395)에 조안화상이 중창하였다.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모후 소헌왕후 심씨를 위하여 보전을 다시 지었다고 하며, 세조 3년(1457) 왕명으로 중수하였다.

성종11년(1480)에 처안스님이 중수한 뒤 고종 30년(1893) 봉성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순종 원년(1907)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자 일본군들이 불태웠다. 1909년 취운스님이 큰방을 중건한 뒤 1938년 태욱스님이 대웅전, 어실각, 노전, 칠성각, 요사 등을 중건하였으며, 1982년 선걸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여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 일주문 등을 새로 중건하고 불사리탑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용문사 지장전

 

대웅전 바로 옆에는 지장전(地藏殿)이 있다. 말 그대로 지장보살을 모시는 불전이다. 지장보살의 산스크리트어인 Kitigarbha는 '땅의 모태'라는 뜻이다. 인도에서는 4세기경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매우 널리 숭배되어온 보살이다. 그는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나쁜 꿈에 시달리는 자 등의 구원자로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벌을 받게 된 모든 사자(死者)의 영혼을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전생에 브라만 집안의 딸로 태어나 석가모니에게 헌신적으로 기도함으로써 자신의 사악한 어머니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 적도 있다. 중국에서 찬술한 '지장본원경(地藏本願經)'에는 효행을 주제로 한 지장보살에 관련된 전설들이 많이 실려 있다. 중국에서 지장신앙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신행(信行, 540~594)이 삼계교(三階敎)를 세우면서부터이다. 그는 당시를 말법 시대로 규정하면서, 그러한 시대에는 지장보살을 숭배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고 하여 말법 사상에 기초한 지장신앙을 널리 전파했다. 한국에서는 신라 진평왕 때 원광(圓光)이 '점찰경(占察經)'에 의거한 신도조직인 '점찰보'를 설치하면서부터 지장신앙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점찰경'이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지장보살에게 예배하여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고쳐나갈 것을 권하는 경전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지장신앙은 윤리적 특성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지장보살은 9세기경부터 널리 숭배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어린이들의 보호자이자 서민들에게 여러 가지 축복을 주는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흔히 삭발한 승려의 모습으로, 머리 뒤에는 서광이 빛나고 두 눈썹 사이에는 백호(白毫)가 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또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고통받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윤회의 여섯 세계, 즉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에 상응하는 6가지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중국 안후이성(安徽省)에 있는 주화산(九華山)은 지장의 성지로서 불교의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지장보살은 사찰에서 독립적으로 세워지는 명부전(冥府殿)의 주존이기도 하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이 주존이기 때문에 지장전이라고도 불리며, 명부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이 있다고 해서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이 법당에는 지장보살상을 중심에 봉안하고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脇侍)로 봉안한다. 그리고 그 좌우에 시왕을 안치하며 그 앞에 동자상을 안치하고, 판관(判官), 녹사(錄事), 장군(將軍) 등의 존상(尊像)을 갖춘다. 또 대개 지장보살상 뒤에는 지장탱화, 시왕상 뒤에는 시왕탱화의 후불탱화(後拂幀畵)를 봉안한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가 입적한 뒤부터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천상에서 지옥까지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다. 특히 지옥중생을 가엾이 여겨 지옥문전에서 항상 눈물을 흘리면서 중생을 제도한다. 그래서 명부전은 사후세계의 소원과 망인의 명복을 비는 곳이기도 하다.

 

용문사 지장전의 벽화로 그려진 '부모은중경도(父母恩重經圖)'는 중국풍을 벗어나서 한복을 입은 한국인의 모습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불교미술은 종교화로서의 제약이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장전의 벽화는 전통적인 불교미술의 틀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그려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용문사 지장전 벽화는 시대적 문화현상을 반영하고자 애쓴 화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도록 가르치는 경이다. 경문을 보면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품고 지켜주는 恩惠),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출산의 고통을 감내한 恩惠),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恩惠). 연고토감은(咽苦吐甘恩,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는 恩惠),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는 恩惠),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젖 먹여 길러주시는 恩惠), 세탁부정은(洗濁不淨恩, 손발이 다 닳도록 씻어주시는 恩惠),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먼 길 떠날 때 걱정하시는 恩惠),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자식을 위해 나쁜 일까지 서슴지 않는 恩惠),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시는 恩惠) 등 열 가지로 되어 있다. 부모의 은혜는 이토록 가이없다.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할 부모의 은혜가 아닌가 생각된다.


*관음전 지붕 너머로 바라본 용문산 능선

 

요사채를 겸해서 쓰고 있는 건물인 관음전 지붕 너머로 용문산을 바라보니 안개가 온산을 뒤덮고 있다. 대웅전 아래 왼쪽에 있는 관음전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172호인 금동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의 조성양식적인 특징으로 볼 때 고려후기 보살상 양식을 계승한 조선초기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용문사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올 때까지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를 맞으면서 산행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 잠시 망설임이 인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발길을 돌린다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는 일! 비를 맞더라도 산을 오르기로 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도 하거니와 다음에 언제 또 올지도 모르기에..... 역사는 저지르는 자의 몫이라고 했겠다.

 

*용문산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

 

용문사 앞에는 엄청나게 큰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나이가 무려 1,100년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높이가 60m, 둘레가 14m에 이른다. 동양에서 유실수로는 가장 크다고 알려진 이 은행나무는 현재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은행나무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세자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다가 심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꽃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자랐다고도 전해진다. 거듭되는 병화와 전란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던 나무라하여 천왕목이라고도 불렀고, 조선 세종때는 정삼품 이상의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고종이 죽었을 때는 큰 가지가 부러지는 등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미리 알려주는 영험함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흔히 과장된 것이 많아서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용문산으로 오르는 계곡길과 능선길 삼거리

 

용문사 바로 뒤에 있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비는 여전히 구죽구죽 내리고 있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서 답답하게 느껴진다. 습도가 높은데다가 땀을 흘려서 옷이 축축하다. 용문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곡길과 능선길이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타난다. 주위의 경치를 보려면 아무래도 능선길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표지판 왼쪽으로 나 있는 능선길로 오르기로 한다.


*용각바위(?)

 

능선길은 가파르기도 하거니와 곳곳에 암릉이 도사리고 있어 힘이 든다. 그러나 능선길은 기암절벽과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잘 어우러져 있어 경치가 뛰어나다. 중간쯤 올랐을까 갑자기 햇빛이 쨍하고 들면서 마술처럼 안개가 사라진다. 안개속에 숨어 있던 용문사 계곡과 그 건너편 능선이 웅장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저 앞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가 용각바위가 아닐까 생각된다. 용문사에서 계곡을 따라 2km 정도 올라가면 산중턱에 용의 뿔을 닮은 용각바위가 있다고 했다. 용각바위에서 1km 더 올라가면 마당바위가 있다는데...... 마당바위는 100여명이 앉아서 쉴 수 있을 만큼 크고 평평하다고 한다. 다음에 용문산에 다시 오게 되면 계곡길로 올라서 확인을 해봐야겠다.


*용문산 정상길과 계곡길 삼거리

 

용문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과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삼거리의 평평한 곳에는 부부로 보이는 등산객이 점심을 먹고 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이제 1km 정도 남았다.  


*암릉지대

 

삼거리를 지나 용문산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지나온 길보다도 더 자주 가파른 암릉길이 나타난다. 까딱 잘못해서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낭떠러지로 추락할 위험이 있어서 조심해야 할 판이다. 험한 산을 오르다가 사소한 부주의로 큰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몇 년 전 겨울인가 내가 도봉산에 갔던 그날도 암벽길을 오르던 산악인이 추락해서 죽었다. 산에서는 절대로 무리를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나는 등반은 무모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잘 파악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산을 다니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을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니잖은가!   

 

*암벽길

 

곳곳에 로프가 매어져 있는 가파른 암벽길이 나타난다. 로프가 매어져 있지 않다면 땀을 쏟으면서 릿지등반을 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구간이 많다. 로프를 설치한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세상에는 이처럼 드러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축복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닐까? 


*금마타리꽃

 

암벽길을 오르는데 바위틈에 노오란 금마타리꽃이 피어 있다. 산행에 지친 나를 위로하기라도 하려는 듯 빵끗 웃고 있다. 힘든 순간에도 얼마나 반가운지..... 이름도 예쁜 금마타리..... 노란색의 작은 꽃들이 귀엽다. 금마타리는 어찌하여 기름진 평지를 버리고 높은 산 그것도 바위틈에 보금자리를 틀었을까? 

 

마타리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금마타리는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꽃은 5~7월에 피는데 원줄기 끝에 산방상으로 달린다. 화경과 소화경 안쪽에 돌기같은 털이 밀생한다. 화관은 종형으로 끝이 다섯 개로 갈라진다. 꽃이 아름다워 정원에 심어도 좋다. 유사종인 마타리는 한방에서 패장이라고 하는데 청열해독, 소종배농(消腫排膿), 거어지통(祛瘀止痛)의 효능이 있어 종양의 소염제, 해열제, 배농성 이뇨제, 정혈(淨血)해독, 부종의 이뇨제, 코피가 나거나 토혈시 지혈제로 이용된다. 주로 뿌리를 이용한다. 임상에서 종종 쓰이는 한약재다.


*돌양지꽃

 

암벽의 바위틈에는 노오란 돌양지꽃도 활짝 피어 있다. 꽃잎의 노란색이 선명하다.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돌양지꽃(Potentilla dickinsii Franch. & Sav. var. dickinsii)은 해발 5백미터가 넘는 산지의 바위에 붙어서 잘 자라기에 바위양지꽃이라고도 부른다. 꽃은 6~7월에 피는데 화탁에 백색털이 밀생한다. 정생 또는 액생하는 취산화서에 여러 개의 꽃이 달린다. 꽃받침잎은 끝이 뾰족하며 좁은 난형이고 부악편은 피침형이며 꽃밥은 넓은 난형이다. 한국에 자생하는 potentilla 속 식물은 20여종에 이르는데 돌양지꽃과 같이 고산성식물은 한라산 1,500m 이상에서 자생하는 좀양지꽃(P. matsumurae)과 백두산에 자생하는 은양지꽃(P. nivea)이 있으며 둘 다 돌양지꽃의 유사종이다. 또 수과 밑에 있는 털이 수과보다 훨씬 짧은 참양지꽃, 잎의 맥 위에만 털이 있고 뒷면이 회청색이 아니며 울릉도에서 자라는 섬양지꽃도 유사종이다.


*꽃며느리밥풀꽃

 

밧줄이 매어져 있는 암릉길을 또 만난다. 밧줄을 잡고 용을 쓰는데 바로 머리위에서 꽃며느리밥풀꽃이 방긋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은가! 꽃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예쁘다. 그런데 예쁜 이름을 놔두고 꽃며느리밥풀꽃이라고 했을까? 그 유래는 이렇다. 

 

옛날 어느 산골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혼기가 찬 아들은 이웃마을의 아리따운 처녀에게 장가를 들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에 은근히 질투심을 품고 미워했다.아들은 장가를 든 지 얼마 안 되어 이웃마을로 머슴살이를 떠났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며느리는 저녁밥이 다 되어 갈 무렵 뜸이 잘 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밥 한 숟가락을 떠서 씹어 보았다. 그 모습을 본 시어머니는 어른이 먹기도 전에 밥을 먼저 먹었다고 욕을 하면서 매질을 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며느리는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듣고 머슴살이를 떠났던 아들은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이듬해 아내의 무덤가에는 이름모를 풀들이 자라나서 자주빛 붉은 꽃을 피웠다. 그런데 이 꽃들은 모두 며느리의 입술처럼 붉은 데다 하얀 밥풀을 입에 물고 있는 듯한 모습이 아닌가! 이 꽃을 본 사람들은 착한 며느리의 넋이 한이 되어 피어난 꽃이라 여겼다. 그 후 사람들은 이 꽃을 꽃며느리밥풀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꿩의다리꽃

 

좀더 높이 올라가자 산기슭에 하얀 꿩의다리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용문산은 지금 꿩의다리꽃이 제철인가 보다. 하얀색의 실이 방사상으로 펼쳐진 것처럼 보이는 꽃이 특이하다. 꿩의다리는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아시아 및 유럽의 온대에서 아한대에 분포한다.이른 봄에 어린 잎과 줄기를 데쳐 나물로 먹기도 한다. 꽃은 7∼8월에 흰색 또는 보라색으로 피고 줄기 끝에서 산방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꽃받침조각은 타원형이며 피기 전에 붉은 빛이 돌고 꽃이 피는 동시에 떨어져 나간다. 꽃잎은 없다. 수술은 많고 수술대는 윗부분이 주걱 모양이며, 꽃밥은 넓은 줄 모양으로 노란빛을 띤 흰색이다. 민간에서 감기나 두드러기, 설사, 장염, 이질, B형간염, 결막염, 종기 등에 약으로 쓰기도 한다. 실제 임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용문산 정상길과 장군봉길, 용문사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산기슭이나 바위틈에 피어난 꽃들을 보면서 산길을 걸으니 별로 힘든 줄도 모르겠다. 어느덧 용문산 정상과 장군봉으로 가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이제 5분 정도만 더 올라가면 용문산 정상이다. 삼거리에 설치된 평상에는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다. 좁은 공간에 인구밀도가 꽤나 높은 편이다. 용문산의 산세를 보려면 정상에 올라야 하는 법. 서둘러 정상으로 향한다.

 

*점나도나물꽃

 

삼거리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가에 점나도나물꽃이 한 송이 피어 있다. 다른 꽃은 다 지고 이 녀석만 남았다. 그런데 잎이 다 떨어지고 줄기도 말라가고 있다. 병이 든 것일까? 석죽과의 두해살이풀인 점나도나물은 한국이 원산지로 어린 순은 식용한다.  5~7월에 흰색 꽃이 원줄기 끝에서 발달하는 취산화서에 달린다. 소화경은 꽃이 핀 후 끝부분이 밑으로 굽는다. 꽃받침은 다섯 개로 갈라지는데 긴 타원형이며 뒷면에 털이 있고 가장자리는 막질이다. 꽃잎은 다섯 개로 꽃받침과 길이가 거의 같으며 깊이 두 개로 갈라진다. 원줄기에 밑을 향한 2줄의 털이 밀생하는 북선점나도나물과 전체에 잔털이 많고 선모가 있는 큰점나도나물은 유사종이다.


*큰뱀무꽃

 

정상부에 거의 다 올라가자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는다. 철조망에는 '군사지역 민간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달아 놓았다. 할 수 없이 철조망을 따라 옆으로 난 길을 걸어가는데 노란색 큰뱀무꽃이 피어 있다. 큰뱀무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지라 어딜 가나 눈에 잘 띈다.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인 큰뱀무는 6~7월에 황색꽃이 줄기나 가지끝에서 취산화서로 피어난다. 열매는 타원형으로 생긴 수과로 황갈색털이 밀생하고 꼭대기에 갈고리모양의 암술대가 달려 7~8월에 익는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큰뱀무는 뱀무와 비슷하지만 소화경에 퍼진 털이 있고 과탁의 털이 짧은 것이 다르다. 뿌리를 포함한 전초를 한방에서 오기조양초(五氣朝陽草)라고 하는데 거풍제습(祛風除濕), 활혈소종(活血消腫)의 효능이 있어 민간에서 요퇴비통(腰腿痺痛), 이질, 붕루(崩漏), 백대(白帶), 타박상, 옹종창양(癰腫瘡瘍), 인통(咽痛), 나력, 소아경풍(小兒驚風), 급성유선염(急性乳腺炎)을 치료하는데 쓰기도 한다. 한의사들은 거의 쓰지 않는 한약재다.


*용문산 정상

 

철조망 곁으로 난 길을 조금 더 가자 용문산 정상 바로 밑에 있는 전망대에 세워 놓은 표지판이 보인다. 용문산 정상은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9부 능선 쯤 전망이 좋은 곳에 표지판을 세워 놓은 것 같다. 정상을 밟지 못한 등산객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배려가 아닌가 생각된다. 전망대에서 정상을 바라보니 안테나를 비롯한 각종 시설들이 많이 보인다. 정상부의 상당히 넓은 면적이 군사시설 지역으로 되어 있다. 아마도 통신기지나 레이더기지가 아닐까 추측된다. 정상을 밟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전망대에서는 용문산의 남쪽만 보이지만 정상에서는 북쪽까지도 훤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용문산 정상의 안테나

 

해발 1,157m인 용문산은 중원산(中元山, 800m)과 백운봉(白雲峰, 940m), 도일봉(道一峯, 864m) 등과 함께 연봉을 이루어 광주산맥의 일부를 형성한다. 산정은 평탄하며, 급경사를 이루는 남동쪽 사면은 용계 등 깊은 계곡과 폭포, 기암괴석이 어울려 경치가 아름답다. 경사가 완만한 북서부의 갈현과 두명안 마을에는 고위평탄면이 나타난다.   


*용문산 전망대에 설치된 정상 표지판에서

 

용문산 전망대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본다. 용문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가는 능선들과 깊은 계곡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용문산 정상을 제외하면 아마도 여기가 가장 전망이 뛰어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용문산은 경기도에서 화악산(1468m), 명지산(1267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일 뿐만 아니라 산세가 우렁차고 계곡이 깊어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산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문산의 동쪽 능선

 

용문산 동쪽으로 능선 하나가 뻗어가다가 동북쪽 능선과 동남쪽 능선으로 갈라진다. 동남쪽 능선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용문봉이다. 용문봉 능선을 타고 가면 용문사로 내려갈 수 있다. 하늘에서 한가로이 흘러가는 뭉게구름이 산등성이 여기저기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짙은 초록색의 옷을 입은 용문산의 능선과 계곡에서 청청한 기운이 느껴진다. 용문산의 청청한 기운에 내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맡기자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요한 기쁨이 찾아온다.



*용문산 정남쪽으로 뻗어간 능선과 계곡

 

용문산 정남쪽으로 능선 하나가 기세도 좋게 뻗어 내려간다. 바로 내가 올라온 능선길이다. 능선의 왼쪽이 용계라는 계곡이다. 일면 용문사 계곡이라고도 부르는..... 능선 너머로 용문사와 용문산 관광지 그리고 용문면 신점리 마을이 아스라이 보인다. 


*용문산 정상부의 암릉지대

 

이번에는 용문산의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을 보려고 시선을 돌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서쪽 능선은 암릉지대에 가로막혀 전혀 볼 수가 없다. 정상에 서면 훤하게 다 보일 텐데 아쉽다. 인간은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라 어쩔 수가 없다. 호기심이 있었기에 인류는 문명을 일으킬 수 있었고, 달나라에까지 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코앞에 있는 용문산 정상까지도 못 보고 가다니 안타깝다. 누구에게 허가를 받아야 용문산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달래며 용문산 서쪽 능선에 솟아 있는 장군봉으로 향한다.


*산일엽초

 

전망대를 내려가는 길은 위험할 정도로 가파르다. 암릉지대의 응달진 곳에는 이끼류와 함께 산일엽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잔고사리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풀인 산일엽초는 온대성 양치류에 속한다. 산일엽초의 엽병은 중륵 밑부분과 더불어 흑갈색이고, 엽신은 선상 피침형으로 짙은 녹색이지만 흑색 점이 있다. 잎의 뒷면은 백록색으로 양끝이 좁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중륵은 도드라져 뚜렷하지만 측맥의 그물맥은 보이지 않는다. 포자낭군은 엽신 윗부분의 중륵과 가장자리 중앙에 달리고 둥글며 황갈색이고 두 줄로 배열되며 포막은 없다. 근경은 옆으로 뻗으며 끝부분에 인편이 밀생하고 잎이 드문드문 나온다. 인편은 근경에 밀착하는데 삼각상 난형이고 끝이 뾰족하며 흑갈색이다. 유사종으로 일엽초, 다시마일엽초, 애기일엽초가 있다.

 

산일엽초의 전초를 한방에서 사계미(射鷄尾)라고 하는데 거풍(祛風), 이뇨, 지해(止咳), 활혈(活血)의 효능이 있다. 청열(淸熱), 풍습동통(風濕疼痛), 소변불리(小便不利), 해수(咳嗽), 월경부조(月經不調), 타박상, 질타박상(跌打傷腫)을 치료한다. 또 경풍(驚風), 정신병 치료에도 응용할 수 있으며, 특히 근경은 이뇨에 효능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터리풀꽃

 

밀림처럼 숲이 우거진 비탈길을 지나 바위너덜지대에서 분홍색의 작은 꽃이 솜처럼 뭉쳐서 피는 터리풀(Filipendula glaberrima (Nakai) Nakai) 군락지를 만난다.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인 터리풀은 한국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속명 Filipendula는 라틴어 filum(絲(사))과 folium의 합성어로 잎이 실처럼 가늘다는 뜻이며, 종명의 glaberrima는 털이 없음을 나타낸다. 유사종인 단풍터리풀(F. multijuga Max.)은 주로 북부지방에서 자생한다. 꽃은 양성으로서 7~8월에 백색 또는 연분홍색으로 피는데 가지끝과 원줄기 끝의 취산상 산방화서에 밀생하여 달리고 털이 없다. 꽃받침열편은 나중에 뒤로 젖혀지고 꽃잎은 둥글며 밑부분이 짧게 뾰족해진다. 수술이 꽃잎보다 훨씬 길며 많고 심피는 다섯 개로서 앞뒤에 털이 있다.


*산제비란꽃

 

용문산은 야생화의 보고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산의 높이에 따라서 그리고 음지와 양지에 따라서 참 다양한 식생을 보이고 있다. 우거진 숲의 응달진 곳에 산제비란꽃이 이제 막 피어나고 있다. 꽃색이 연한 녹색이어서 언뜻 보아서는 꽃같지 않아 보인다.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산제비란은 북반구 온대 지방에 약 백여 종, 한국에는 여섯 종이 분포한다. 유사종으로 꽃부분이 보다 짧은 짧은산제비난, 키가 작은 애기제비난이 있다. 꽃은 5~7월에 피는데 열 개 내외의 작은 꽃이 줄기 끝에서 느슨하게 수상화서를 이룬다. 중앙부의 꽃받침잎은 넓은 난형으로 세 개의 맥이 있고, 측열편은 긴 타원형이며 젖혀지고 역시 세 개의 맥이 있다. 꽃잎은 사란형(斜卵形)으로 끝이 갑자기 좁아지면서 길어지고 육질이며 중앙부의 꽃받침잎과 길이가 비슷하다. 순편은 넓은 선형이고 끝이 둔하며 거(距)도 끝이 둔하고 뒤로 길게 굽는다. 꽃술대는 편평하며 꽃가루덩이는 담황색이다.  

 

*푸른박새


*푸른박새꽃

 

키가 훤칠하게 큰 푸른박새도 꽃이 활짝 피었는데, 산제비란과 마찬가지로 꽃색이 연록색이어서 언뜻 보아서는 꽃이 핀 것인지 잘 구분이 안 된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인 푸른박새는 1.5m까지 자란다. 꽃은 7~8월에 연록색 또는 황백색으로 피는데 넓은 깔때기모양이고 원줄기끝에서 큰 원추화서가 발달한다. 화서지(花序枝)에 꽃이 총상으로 달리며 화서축에 잔털이 있다. 화피는 여섯 장으로 가장자리는 톱니모양이고 화피밑에 V형의 짙은 녹색의 꿀샘이 있다. 수술은 여섯 개다. 푸른박새의 뿌리를 한방에서 여로(藜蘆)라고 하는데 용토풍담(湧吐風痰), 살충의 효능이 있어서 중풍에 가래가 끓는 증(中風痰湧), 풍간전질(風癎癲疾), 황달, 오래가는 학질, 설사와 이질, 두통, 후두염, 편도선염, 비식, 옴, 악창 등을 치료한다. 그러나 유독성 약재이므로 한의사의 처방이 없이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기린초꽃

 

어디서나 잘 자라는 기린초도 노란 꽃이 활짝 피었다. 기린초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려면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그러면 별처럼 생긴 기린초꽃이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지 알게 되리라.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인 기린초는 6~7월에 원줄기 끝에서 산방상 취산화서로 노란색 꽃이 핀다. 근연종으로 섬기린초와 가는기린초, 속리기린초가 있다. 관상가치가 높아 바위틈이나 화단에 많이 심는다. 기린초의 어린 순을 살짝 데치면 담백한 나물이 된다. 기린초와 속리기린초 전초를 말린 것을 한방에서 백삼칠(白三七) 또는 비채(費菜)라고 하는데 활혈해독(活血解毒), 이습소종(利濕消腫), 지혈(止血), 영심(寧心)의 효능이 있어 타박상이나 각종 출혈증, 심계(心悸), 옹종(癰腫) 등을 치료한다. 임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나도 기린초를 처방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갈퀴나물꽃

 

기린초가 자라는 바로 옆 자리에 자주빛이 도는 연보라색의 갈퀴나물꽃도 피어 있다. 콩과의 여러해살이 덩굴성 식물인 칼퀴나물은 산과 들의 습윤한 풀밭이나 관목림에서 자란다. 6~9월에 홍자색으로 피는 꽃은 접형(蝶形, 나비모양)으로 포가 작다. 화경은 액생하고 화서는 한쪽으로 치우쳐서 많은 꽃이 총상으로 달린다. 꽃받침은 종형으로서 다섯 개의 불규칙한 조각으로 갈라지며 밑부분의 것이 가장 길고 꽃받침통보다 짧거나 같다. 기판과 익판은 길이가 같고 용골판은 익판보다 짧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으며, 목초나 밀원식물로도 가치가 있다.

 

중국의 동북지방에서는 갈퀴나물의 줄기와 잎을 '투골초(透骨草)라고 하여 풍습관절통이나 염좌상을 치료하는 데 쓴다. 갈퀴나물, 등갈퀴나무, 큰갈퀴의 줄기와 잎을 한방에서 산야완두(山野豌豆)라고 하는데 거풍습(祛風濕), 활혈서근(活血舒筋), 지통(止痛)의 효능이 있어 류머티즘, 섬좌상(閃挫傷), 무명종독(無名腫毒), 음낭습진(陰囊濕疹) 등을 치료한다. 한의사들은 거의 쓰지 않는 약재다.

 

*큰잎갈퀴꽃

 

큰잎갈퀴는 용문산에 많이 자생하고 있다. 아직 꽃이 활짝 피어나지 않고 꽃망울만 맺혀 있다. 큰잎갈퀴는 꼭두선이과의 여러해살이 덩굴성 식물로 산이나 들의 풀밭에서 잘 자란다. 5~6월에 연한 녹색으로 피는 꽃은 가지 끝이나 엽액에 취산화서로 달리고, 소화경에 털이 다소 있으며 화관은 네 갈래다. 


*원추리꽃

 

용문산 정상부의 군사기지 철조망 밖으로 난 산기슭 길을 따라가다가 드디어 장군봉으로 가는 능선길에 올라선다. 용문산 서쪽 능선 산기슭에는 노오란 원추리꽃이 한창이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식물인 원추리는 한국이 원산으로 6~8월에 1m 정도 되는 꽃대 끝에서 등황색의 꽃이 핀다.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지만, 계속해서 다음 꽃이 피어난다. 유사종으로 각시원추리, 왕원추리, 골잎원추리, 홍도원추리, 큰원추리, 애기원추리, 노랑원추리 등이 있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는다. 원추리는 봄철의 맛있는 산나물 중 하나로 '넓나물', '넘나물'이라고도 한다. 원추리의 꽃을 말려서 술을 담그기도 하는데, 자양강장이나 피로회복에 좋다. 잎과 꽃, 줄기, 뿌리를 달여서 주독을 푸는 데 쓰기도 한다. 원추리의 뿌리를 한방에서 훤초근(萱草根)이라고 한다. 양혈이수(凉血利水)의 효능이 있어 수종(水腫), 배뇨곤란, 임탁(淋濁), 대하, 황달, 코피, 혈변, 붕루(崩漏), 유옹(乳癰, 유선염), 석림(石淋, 요로결석증) 등을 치료한다.

 

시름을 잊게 해준다는 중국의 고사로 인해 원추리를 훤초(萱草) 또는 망우초(忘憂草)라고도 한다. 원추리를 삶아서 먹으면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 있는 사람은 원추리를 삶아서 먹을지어다. 그러나 그 사람이 태어나 자란 곳에서 십 리 밖에 있는 원추리는 망우효과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한편 한국의 부녀자들은 예로부터 원추리 꽃대로 비녀를 만들어 머리쪽에 꽂고 다니기도 했다. 그것은 고추모양의 원추리 꽃봉오리를 몸에 지니면 뱃속에 든 딸이 아들로 변한다는 속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신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남아를 선호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아를 선호하는 풍습은 아직까지도 뿌리깊게 남아 있다. 남아선호 사상이 사라지지 않고는 민주 평등의 사회로 가는 길은 멀고도 먼 길일 뿐이다.

 

*천남성꽃

 

오늘 천남성꽃은 처음 만난다. 천남성의 꽃모양은 좀 특이하게 생겼다. 나팔처럼 생긴 꽃통을 모자처럼 긴 꽃잎이 덮고 있다.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 숙근성 식물인 천남성은 보통 산지의 습한 음지에서 잘 자라는 특징이 있다. 유사종으로 넓은잎천남성, 육수(肉穗)꽃차례의 끝이 채찍처럼 길어져 포 밖으로 나오는 섬천남성, 포가 자줏빛인 남산천남성, 잔잎에 톱니가 없고 포가 녹색인 둥근잎천남성, 두루미천남성, 무늬천남성, 잔잎 3장이 모여나는 큰천남성, 잎이 2개이고 줄기에 갈색반점이 있는 점박이천남성이 있다. 꽃은 5~7월경 암꽃과 수꽃이 다른 나무에 육수꽃차례를 이루며 피는데 꽃차례의 끝은 뭉뚝하다. 포는 통부의 길이가 8㎝ 정도로 녹색이고 윗부분은 모자처럼 끝이 뾰쪽하게 난상 긴 타원형으로 앞으로 꼬부라져 통부가 비를 맞지 않도록 하고 있다. 화서의 연장부는 곤봉형이며 불염포를 관상한다. 열매는 빨간색으로 익는다.

 

천남성의 덩이뿌리를 한방에서 천남성(天南星)이라고 하는데 조습화담(燥濕化痰), 거풍정경(祛風定驚), 소종산결(消腫散結)의 효능이 있어 중풍으로 가래가 끓거나 침을 흘리는 증, 구안와사(안면신경마비), 반신불수, 전간(癲癎), 경련, 파상풍, 풍담현훈(風痰眩暈), 후비(喉痺), 나력, 옹종(癰腫), 타박골절, 사독충교상(蛇毒蟲咬傷) 등을 치료한다. 그러나 천남성은 유독성 식물이므로 반드시 한의사의 처방에 따라야 한다.

 

*이름모를 새의 새끼

 

앞서 가던 사람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길가 나무둥치 밑을 가리킨다. 사람들의 인기척에 놀란 새가 날아간 새둥지엔 알에서 갓 깨어난 듯 보이는 새끼 새 두 마리가 따뜻한 온기를 나누기라도 하려는 듯 서로 붙어 있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가에 둥지를 틀다니..... 아마 초보엄마 새인가 보다. 어미새는 사람들이 자기 새끼를 어쩌기라도 할까 봐 나무 위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시끄럽게 지저귄다. 어미새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그 자리를 떠난다.



*장군봉 정상

 

장군봉으로 가는 능선길은 밋밋해서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 능선의 산기슭에는 원추리꽃 말고도 꿩의다리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산책을 하는 기분으로 산길을 걷는다. 숲이 우거져서 전망은 별로 좋지 않지만 싱그러운 산기운을 받으면서 걷는 길이 참 좋다. 얼마쯤 가다가 몽긋한 봉우리에 올라선다. 백운봉과 상원사 갈림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용문산 장군봉 정상 1067m'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보인다. 장군봉이라고 해서 우뚝 솟은 봉우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능선을 따라서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장군봉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장군봉 정상 표지석

 

장군봉 정상 공터에는 검은색 점판암으로 만든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장군봉 정상은 큰 나무들의 숲이 우거져 전망이 좋지 않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산속의 적막감을 깨뜨리고 있다.  


*장군봉 정상에 세워진 이정표

 

정상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용문산 전망대에서 여기까지 1.5km의 거리다. 상원사를 향해 장군봉을 떠난다. 장군봉에서부터 상원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곳곳에 가파른 암릉길이 나타난다. 가파른 길은 오르막길보다도 내리막길이 더 힘들고 어렵다.

 

*상원사길에서 바라본 용문산 정상

 

조금 더 내려오자 전망이 좋은 바위봉우리가 나타난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용문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상당히 넓은 고원평지로 보이는 용문산 정상에는 각종 군사시설들이 꽉 들어차 있다. 웅장한 산세를 가진 용문산을 바라보는 것으로 정상을 밟아보지 못한 아쉬움을 대신한다.


*바위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상원사

 

이번에는 산 아래로 눈을 돌려 계곡의 시원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한다. 푸른 숲의 바다 한가운데 섬처럼 떠 있는 듯한 상원사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인다. 용문산에서 내려오는 산줄기와 계곡이 상원사를 향해서 모여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해는 어느덧 서산에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바위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소나무

 

바위능선길을 내려가는데 큰 바위 한가운데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어찌하여 저 소나무는 흙 한 줌 없는 바위에 씨가 떨어져 싹을 틔우고 살아가게 되었는지 참 복도 지지리 없다. 언뜻 보아도 억수로 고생을 많이 한 소나무다. 바위틈과 같은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는 키를 키우지 않고 가지도 많이 내지 않는다. 키가 크고 가지가 많으면 그만큼 비바람에 상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키를 키우지 않기 위해 그들은 새끼를 꼬듯이 몸통을 뱅뱅 돌리면서 자란다. 바위틈에서 자라다가 수명을 다하고 죽은 나무를 보면 자기 몸을 얼마나 비틀었는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게 자라면 키도 훨씬 덜 자라거니와 장력도 커져서 바람에 견디는 능력이 강해진다. 인간의 눈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나무들도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생존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된다. 눈비와 비바람을 맞으면서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을 저 소나무..... 극한적인 생존환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저 소나무에게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산을 내려간다.

 


*조록싸리꽃

 

가파른 바위벼랑길 중간쯤에 홍자색의 조록싸리꽃이 피어 있다. 싸리와 조록싸리는 잎을 보면 쉽게 구별된다. 조록싸리는 잎의 끝이 뾰족하지만 싸리는 조금 작은 잎의 끝이 둥글납작하고 가운데가 오목하다. 콩과의 여러해살이 낙엽활엽관목인 조록싸리는 2~3m까지 자란다. 꽃은 액생 또는 정생하는데 복총상화서로 달리고 화축에 털이 있다. 꽃은 6~7월부터 홍자색으로 피기 시작하고 소화경에는 털이 있다. 꽃받침은 중열 예첨두로서 옆에 달려있는 포는 피침형이고, 기판은 자적색, 익판은 홍자색, 용골판은 연한 홍색이다. 유사종으로 어린가지와 화서 및 잎표면에 개출모가 있는 털조록싸리, 접협화의 모두가 흰꽃이 피는 흰조록싸리가 있다. 기판이 백색, 익판이 자주색, 용골판이 홍색으로 3가지 색깔의 꽃이 피며 완도와 진도에서 자라는  삼색싸리도 유사종이다.

 

조록싸리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잎은 사료용, 수피는 섬유용, 나무는 싸리비용 또는 울타리용으로 이용된다. 요즘에는 플라스틱 빗자루가 나와서 옛날만큼 싸리비가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조록싸리는 또 황폐지의 사방조림용으로 식재하기도 하고, 꿀을 채취하기 위한 밀원용으로도 가치가 높으며, 도로변이나 경관이 좋지 않은 곳에 차폐용 생울타리 소재로도 적합하다. 한편 조록싸리는 염료로도 이용할 수 있다. 싸리나무 종류는 적갈색 염료로 쓰이지만 종류, 계절에 따라서 색상이 약간씩 달리지는 경향이 있다. 매염제에 대한 반응도 좋은 편으로 다양한 색을 얻을 수 있다.

 

*숙은노루오줌

 

가파른 비탈길을 다 내려오자 평탄한 능선길이 나타난다. 길도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걷기에도 편하다. 숲이 우거진 산기슭에는 아주 연한 분홍색의 노루오줌꽃이 피어 있다. 숙은노루오줌은 진퍼리노루오줌과 함께 노루오줌의 유사종 또는 근연종으로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숙은노루오줌은 6~7월에 연홍색의 꽃이 피는데 노루오줌보다 화서가 쳐지는 특징이 있다.


*까치수염꽃

 

작고 하얀 꽃을 한창 피우고 있는 까치수염 군락지를 만난다. 까치수영이라고도 하는 까치수염은 어디서나 잘 자란다. 까치수염 군락지에서 이 녀석이 가장 잘 생긴 모델이다. 까치수염은 앵초과의 여러해살이 초본으로 한국이 원산지다. 6~8월에 흰꽃이 줄기에서부터 꼬리처럼 옆으로 굽은 총상화서에 촘촘히 모여서 핀다. 꽃잎은 좁고 긴 타원형이다. 어린 순을 생으로 먹거나 나물로 먹을 수 있다. 까치수영과 큰까치수영의 전초를 한방에서 낭미파화(狼尾巴花)라고 하는데, 산어조경(散瘀調經), 청열소종(淸熱消腫)의 효능이 있어 월경불순, 월경통, 열감기, 인후종통, 화농성 유선염, 타박상, 염좌 등을 치료한다. 실제 임상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둥굴레 열매

 

산등성이에는 군데군데 둥굴레 군락지가 보인다. 잎 겨드랑이마다 작고 동글동글한 열매가 달려 있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초본인 둥굴레는 한국이 원산지로 산둥굴레, 큰둥굴레, 맥도둥굴레, 왕둥굴레 등이 있다. 6~7월에 피는 꽃이 지면 둥근 장과가 열리는데 9~10월에 까만색으로 익는다. 뿌리는 대나무처럼 땅속을 옆으로 뻗어간다. 황백색의 굵은 육질의 뿌리는 단맛이 난다. 양식이 부족하던 보릿고개 시절 둥굴레는 배고픔을 해결해 주던 구황식물이기도 했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또 관상가치가 높아 화훼용으로 재배되기도 한다.

 

둥굴레와 왕둥굴레의 뿌리줄기를 한방에서 옥죽(玉竹)이라고 하는데 보음약(補陰藥)으로 분류된다. 보음약이란 음액(陰液)을 자양해서 음허증(陰虛證)을 개선하는 약물을 말한다. 음허증은 폐음허증, 위음허증, 신음허증, 간음허증으로 세분할 수 있다. 폐음허증은 입이 마르고 목구멍이 깔깔하며, 마른 기침이 나면서 가래는 적고 간혹 각혈을 하기도 한다. 위음허증은 혀가 붉고 설태가 적으며, 입안이 마르면서 갈증이 난다. 신음허증은 허리와 무릎이 시리면서 약하고, 귀에서 소리가 나며, 유정(遺精), 조열도한(潮熱盜汗)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간음허증은 눈이 깔깔하고 시력이 떨어지며, 어지러움, 진전(震顫), 잠들기 어려우면서 꿈이 많아지는 등의 증상이 생긴다. 간음허증과 신음허증은 종종 겸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옥죽은 양음윤조(陽陰潤燥), 생진지갈(生津止渴), 제번(除煩)의 효능이 있어 열병음상(熱病陰傷), 해수번갈(咳嗽煩渴), 허로발열(虛勞發熱), 소곡선기(消穀善飢), 빈뇨(頻尿) 등 증을 치료한다. 옥죽을 장기간 복용하면 혈색을 좋게 한다. 옥죽을 생것으로 쓰면 청열양음(淸熱養陰) 작용이 비교적 좋고, 쪄서 쓰면 오로지 자보양음(滋補養陰)의 작용이 있다. 둥굴레로는 차를 만들어 복용해도 좋다. 둥굴레차는 숭늉처럼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둥굴레를 차로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한다.

 

*쪽동백 열매

 

능선길을 거진 다 내려온 지점에는 쪽동백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열매가 달려 있다. 때죽나무과의 낙엽활엽소교목인 쪽동백나무는 때죽나무, 물박달나무, 개동백나무라고도 한다. 약 10m까지 자라는 이 나무는 원추형의 수형과 특색있는 줄기 뿐만 아니라 꽃이 아름답고 열매가 귀여운 모양이어서 관상 가치가 크다. 유사종으로 쪽동백에 비해 잎이 약간 소형이며 잎의 윗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결각상의 톱니가 있는 좀쪽동백과 잎 뒷면에 백색 털이 밀생하는 흰좀쪽동백이 있다. 꽃은 양성화로 5~6월에 흰색으로 핀다. 꽃은 아래로 쳐지고 총상화서는 새로 자란 가지에 달리며, 끝이 넷으로 갈라진 하얀 통꽃 20송이 내외가 달린다. 화경과 꽃받침에는 털이 있다. 화관은 다섯 개로 깊게 갈라지고 겉에 성모가 있으며 수술대와 암술대에는 털이 없다. 목재는 기구재나 단판으로 쓰이고 푸른 열매는 농촌에서 물고기 잡는데 이용되기도 하며 기름을 뽑아 쓰기도 한다. 나무껍질에서 나오는 수지는 향료, 방부제 원료로 쓰인다.

 

*장군봉 등산로 초입에 세워진 이정표

 

해가 서산에 거의 넘어갈 무렵 등산로 초입에 도착했다. 깊은 산속이라 저녁 어스름이 밀려오고 있다. 등산로 초입에는 장군봉과 백운봉의 방향과 거리가 표기된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 이젠 거의 다 내려온 셈이다.

 

*상원사 계곡

 

이장표가 있는 곳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상원사 계곡이 나온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면서 흐르고 있다. 계곡으로 내려가 시원한 물에 얼굴을 씻고나니 상쾌하기 그지없다. 계곡바닥에 박혀있는 바위에는 누군가 작은 돌탑들을 쌓아 놓았다. 작은 돌을 한 줄로 쌓아서 만든 돌탑이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이 위태로워 보인다.

 

*상원사 계곡의 목제 다리

 

세수를 하고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면 바로 상원사 앞 공터가 나온다. 오늘 산행은 사실상 여기서 끝나게 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산을 함께 오르는 것은 그 자체가 행복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참 행복한 하루였다.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세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이 아닐까!


*층층나무 열매

 

다리를 건너면 바로 제법 큰 층층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열매들이 조발조발 달려 있다. 말채나무라고도 하는 이 나무는 층층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키는 20m, 지름은 1m까지 자란다. 특히 꽃이 아름답고 수형이 층이 진 우산모양으로 멋들어지므로 조경수나 관상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꽃은 5~6월에 흰색으로 피는데, 화서는 햇가지 끝에 산방상으로 달리며 털이 있거나 없다. 꽃잎은 넓은 피침형이며 꽃받침통과 더불어 겉에는 털이 밀생한다. 꽃에는 많은 꿀을 갖고 있어 밀원용 나무로도 가치가 있다. 층층나무의 목재는 건축재나 기구재, 조각재, 양산자루 등을 만드는데 쓰인다.

 


*석잠풀꽃

 

상원사 앞 공터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연못가에는 연분홍색의 석잠풀꽃이 피어 있다. 꿀풀과의 숙근성 여러해살이 관화식물인 석잠풀은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을 수 있다. 꽃은 6~9월에 연한 홍색으로 피고 마디사이에서 윤생한다. 꽃받침은 종형으로 밑부분에 털이 약간 있고, 열편은 가시처럼 뾰족하며 통부보다 짧다. 화관은 통 모양이고 끝 부분은 순형이다. 상순은 원형이고 하순은 세 갈래로 갈라져 있으며, 흰색에 가까운 엷은 홍색이 난다. 유사종으로 원줄기의 능선과 잎 뒷면의 중륵에 밑을 향한 털이 있는 개석잠풀, 전체에 털이 많은 털석잠풀, 그리고 우단석점풀이 있다.

 

석잠풀은 꽃이 예뻐서 정원에 심어도 좋다. 또 꿀이 많아 밀원용으로도 좋은 식물이다. 석잠풀의 전초를 말린 것을 한방에서 광엽수소(廣葉水蘇)라고 하는데 청열(淸熱化痰),항균소종(抗菌消腫)의 효능이 있어 풍열해수(風熱咳嗽), 인후종통(咽喉腫痛), 백일해, 이질, 대상포진 등을 치료한다. 한의사들은 거의 쓰지 않는 약재다.



*지느러미엉겅퀴꽃

 

석잠풀 옆에는 자주색 지느러미엉겅퀴꽃도 피어 있다. 이 꽃의 원줄기는 곧게 서고 모서리가 있으며 날개가 달리는데 날개의 가장자리에 가시로 끝나는 치아상의 톱니가 있다. 그래서 지느러미엉겅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뱅이, 엉겅퀴와 마찬가지로 이 꽃도 국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로 유럽과 서아시아가 원산지다. 어린 순은 나물로 식용하기도 하며, 연한 줄기의 껍질을 벗겨내고 날것으로도 먹을 수 있다. 꽃은 6~8월에 자주색 또는 흰색으로 피는데 총포는 종형이다. 포편의 외편은 점차 짧아지고 중편과 더불어 선상 피침형으로서 뾰족한 끝이 가시로 되어 퍼지거나 뒤로 젖혀진다. 

 

지느러미엉겅퀴의 전초를 말린 것을 한방에서 비렴(飛廉)이라고 하는데 거풍청열(祛風淸熱), 이습양혈(利濕凉血), 산어(散瘀)의 효능이 있다. 풍열에 의한 감기, 두풍(頭風)으로 인한 현기증, 풍열에 의한 비통(痺痛), 피부자양(皮膚刺痒), 요로감염, 유미뇨, 뇨혈, 대하, 타박으로 인한 어종(瘀腫), 정창종독, 화상을 치료한다.

 

*상원사 대웅전(大雄殿)

 

박 건 작가와 함께 상원사(上院寺)를 둘러보기로 한다. 상원사 경내는 불공을 드리러 온 보살님네들 두어 사람 외에는 인적이 보이지 않는다. 상원사를 높은 곳에서 바라볼 때는 용문산의 능선과 계곡이 흘러내려와 모여드는 곳이라 아늑한 느낌이 들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상당히 가파른 산비탈의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상원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상원암이라고도 한다. 절이 세워진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일 것으로 짐작된다. 1330년대에 보우스님이 이 절에 머물며 수행했고, 1398년(태조 7년)에 조안스님이 중창했으며, 무학스님이 왕사를 그만둔 뒤 잠시 머물렀다고 한다. 1462년(조선 세조 8년)에는 세조가 이곳에 들러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어명을 내려 크게 중수했다고 하는데, 최항이 그 때의 모습을 기록한 '관음현상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역사가 오래된 사찰은 대부분 그 당시의 최고 권력자와 관련된 일화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일화들을 문자 그대로 믿기에는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사찰의 영험이나 신성성을 신도들에게 부각시키기 위해서 또 포교의 목적으로 이런 류의 일화들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상원사는 세조 이후에도 계속 중수되어왔으나, 1907년 의병 봉기 때 일본군이 불을 질러 다 타고 법당만 남았다. 1918년 화송스님이 큰방을 복원하고 1934년에는 경언스님이 중수했으나 6·25전쟁 때 용문산 전투 당시 다시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1969년에 덕송스님이 복원에 착수하면서 용문사의 암자에서 독립시켰다. 1970년 경한스님이 요사를 복원하고 1972년에는 삼성각을, 1975년에는 대웅전을 차례로 복원했으며, 1977년에는 용화전과 청학당을 지었다.

 

조용한 산사의 마당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고타마 싯타르타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산을 오르는 과정도 어쩌면 도를 닦는 하나의 방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온세상 사람들이 하나같이 도를 닦는 마음으로 산을 오른다면 극락세계가 바로 여기서 이루어지리라. 내가 머무는 이 세상 모든 자리가 법당이요, 성당이요, 교회요, 모스크요, 기도처요, 성소가 아닌 곳이 없느니..... 내가 머문 자리가 곧 불국토요, 서방정토가 아니겠는가! 그러니 죽어서 서방정토에 갈 생각을 버리고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극락세계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고타마 싯타르타의 참된 가르침이 아니랴! 내가 만약 해탈을 하게 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해탈하고 난 뒤에 마지막으로 피안의 강을 건너는 뗏목을 타리라. 내가 만약 극락세계에 가게 된다면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극락세계에 들어간 뒤에 마지막으로 가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이조차도 헛되고 헛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상원사 제월당(濟月堂)

 

상원사는 용문사에서 서쪽으로 3.5 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울창한 숲과 계곡이 잘 조화되어 뛰어난 경치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조선조 효령대군의 원찰이기도 했던 상원사 경내에는 석사자상과 팔각석탑이 있다. 대웅전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제월당이다. 제월당은 요사채로 스님들이 머무는 생활공간이다.  


*상원사 삼성각(三聖閣)

 

대웅전 왼쪽 뒤에는 삼성각이 자리잡고 있다. 뒤에 보이는 새로 짓고 있는 건물은 삼성각을 옮기기 위한 것이다. 삼성각이 완공되면 그 기념으로 9월 1일 산사음악회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삼성각은 삼신을 각각 안치하여 숭배하는 전각이다. 삼신을 모시는 전각에는 독성각(獨聖閣),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이 있는데, 대개 삼성각에 삼신을 같이 모신다. 독성각은 불교에서 말하는 독각(獨覺)을 모신 곳으로 독각이란 고타마 싯타르타처럼 스승 없이 홀로 깨우친 자를 말한다. 대승불교의 교학에서 독각은 타인을 위해 가르침을 설하지 않고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자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좋은 의미의 독각이다. 산신각은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는 산신을 모신 곳이며, 칠성각은 북두칠성에 축원하는 도교의 신앙을 받아들여 북두칠성을 불교의 여래로 조화하여 모신 곳이다. 

 

삼성각의 출현은 불교가 들어올 때 토착신앙 또는 민간신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외래신앙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토착신앙과의 투쟁과 융합의 결과인 것이다. 이런 식의 변용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그것은 이질적인 신앙을 불교로 포용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유도한다는 데에 그 본래의 의의가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불교가 기복신앙 위주의 주술적 신앙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조선불교가 기복신앙으로 타락하는 폐단이 있음을 간파한 만해 한용운은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무속적인 산신과 칠성을 없애버리고 석가모니불만을 봉안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현재 한국의 불교 뿐만 아니라 기독교나 다른 종교들조차도 기복신앙의 요소가 다분히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것은 종교의 본질을 왜곡한 것이다. 기복신앙을 바탕으로 자신을 신격화한 사이비 종교인들의 악행과 폐해는 이루 말할 수조차 없다. 종교를 빙자한 사이비 종교인들은 여성신도들을 노리개로 삼아 강간이나 간통을 하거나 사탕발림과 속임수로 재산을 갈취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신을 안 따르는 신도들을 죽여서 암매장하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구제받을 수 없는 인간들이 바로 이런 인간들이다. 여호와여, 부처여, 알라여, 이런 인간들에게 벼락을 안 내리시고 뭐하고 계시나이까? 사람들도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사이비 목사, 사이비 중, 사이비 신부, 사이비 무당에게 걸려서 패가망신하기 전에.....



*상원사 너머로 바라본 용문산

 

상원사 지붕 너머로 용문산을 바라보니 어느덧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있다. 이제는 산을 내려가야 할 때다. 오늘은 나의 인생길이 용문산으로 나 있었다. 용문산을 넘어서 가야만 하는 나의 인생길..... 나는 왜 용문산을 넘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거기에 내가 가야 할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문산의 산기운을 가슴에 담은 채 귀로에 오르다.

 

산을 내려와 경춘가도 바로 옆에 자리잡은 개고기 요리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가기로 한다. 식당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개고기 요리를 상당히 잘 하는 집이다. 무사히 산행을 마친 기념으로 하산주도 한 잔씩 돌린다. 박 건 작가의 아틀리에에 들러 조촐한 다과회를 가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박 건 작가가 1985년도 박홍규 작가의 판화작품인 '농가월령도-김매기' 한 점을 선물로 준다. 너무나도 귀한 선물이다. 만약 나의 꿈 가운데 한 가지인 '어린이를 위한 미술관' 건립이 실현된다면 그곳에 전시하리라. 박 건 작가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일박이일간의 양평여행과 용문산 등반은 나에게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2006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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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7.22 22:47

    첫댓글 아직도 오염이 덜된 산이죠...계곡의 수량이 풍부하고 용문사의 풍광이 아름다운곳입니다..^^*

  • 06.07.26 11:18

    저는 한옥에서 자라서 그런지 지금도 잘 지은 절에 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좋더라구요. 종교와 관계 없이....^^* 풍광이 빼어나게 좋은 산에는 멋진 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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