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세브란스 병원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법원 판결에 의한 존엄사가 실시 중이다.
난 존엄사라는 어휘 자체를 싫어한다. 누구를 위한 존엄사인지 주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기에는 '존엄사란 유가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죽음'이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할머니 때문에 간병도 귀찮고 병원비도 필요 이상 들어가니 유가족들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실 분은 어서 가시라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어느 정도 과장된 느낌이라는 건 나도 안다.
그래서 존엄사 대신 자연사라는 말을 쓰고 싶지만, 그러면 치료할 수 있는데도 내버려 두어 죽게 하는 게 자연사라고 오해할까봐 그럴 수도 없다.
할머니에게 존엄사를 집행하는 자리에 유가족들이 모여 막 임종하는 사람 대하듯이 무겁고 슬픈 찬송가를 부르고 '어머니 은혜'까지 울며 불렀다고 한다. 방송뉴스에서 이 장면을 보고 난 무슨 사형집행장 장면인 줄 알았다. 호흡기 제거 때 여성들은 충격을 받을지 모르니 나가라고 하여 남성 유가족만 남은 자리에서 시행했다고 한다. 사형집행 같다는 느낌은 나만 느낀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돌아가시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계시다고 한다. 23일에 집행한 존엄사가 오늘 27일에도 완결되지 않고 있다. 할머니를 존엄하게 하는 것인지 더 고통스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존엄이란 말인가.
24일엔가 할머니가 자연 호흡으로 멀쩡하게 생존하시자 유가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과잉진료를 했다고 소송을 건다는 소식이 들렸다. 난 도리어 이 유가족들에게 소송하고 싶은 마음이다. 원래 병원측은 할머니에게 존엄사를 실시할 수 없다는 반대 측이고, 존엄사하자는 쪽은 유가족과 유가족 편을 드는 다른 의료인들이었다. 그래서 호흡기만 떼면 금방 죽는다는 유가족의 주장과 설득에 판사들이 다 속아서 덜컥 판결을 내려주었는데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집안에 식물인간 한 명 있어본 적이 없고, 중환자실에 처자식이 누워 있어본 경험이 없는 판사들이 그 마음을 이해할 리가 없는데, 우리 사회는 뭐든지 판사들에게 최종 결정권을 주는 어리석음을 범하곤 한다.(판사를 만물박사로 여기는 이런 풍조는 반드시 바뀌었으면 한다. 판사를 최하 40세 이상 변호사 중에서 임명하든지.)
인간의 생명은 끊어질 듯하다가도 살아나고, 살 듯하다가도 꺼져버리는 불가사의한 측면이 많다. 암 말기 환자 중에서도 벌떡 일어나 완치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감기 몸살 앓다가 죽는 이도 있다. 판사들이 인간의 사망 시점까지 판결할 권한은 없다. 의사도 못하고 과학자도 못하고 점쟁이도 못하는 게 사망 시점이다.
호흡기 제거 직전 할머니가 눈물을 지었다고 하는데, 의사들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의미한 눈물이면 왜 하필 호흡기 제거 직전에 흘린단 말인가. 한 가닥 희망이라도 있다면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한 것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게 존엄한 것이지 잘 안죽는다고 빨리 죽으라고 하는 게 존엄이 아니다.
할머니에게 기적이 일어나 다시는 제 부모 호흡기 떼달라고 대법원 항소까지 하는 자식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