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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의 상실
역대하 21:8-10
21:8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운고로
21:9 여호람이 장관들과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출정하였더니 밤에 일어나서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쳤더라
21:10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더니 오늘날까지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도 배반하여 여호람의 수하에서 벗어났으니 이는 저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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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경에 있는 이 내용을 보면
오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안 맞다고나 할까요,
좀 엉뚱한 면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 믿는다는
유다 나라의 여호람이라는 왕이
하나님을 버리고 배반하니깐
유다 나라의 지배를 받던
립나와 에돔이라는 나라도
유다 나라에 대해 배반해서
그 지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버리기는
유다 나라가 버렸는데
왜 가만히 복종 잘하던 이웃 나라들이
갑자기 유다 나라로부터 벗어나려 할까요?
좀 이상하지요.
내가 하나님을 버렸는데
우리 집 강아지가 나를 물려고 덤비는 식입니다. .
자, 이러한 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사이이기에
하나님 안 믿는 사람마저
감히 하나님 믿는 우리를 모독하고 떠나버리는가,
하는 점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어떤 식으로 징벌을 내리시느냐 하면,
개 같은, 하나님을 모르는 민족도
나를 얕잡아 보고 쉽게 떠나듯이
하나님이 지금 너의 상태에 대해서
이처럼 참 심각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사는
유다 나라가 하나님 안 믿는 족속과는
확실히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이런 식으로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웃 나라조차
하나님을 믿는다고하는 유다 나라를
시시하게 볼 정도이면
현재 유다 나라의 신앙 상태가
얼마나 형편없이 되어 버렸느냐에 대해
깊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인이라고 해서
믿지않는 사람과 외형적으로 별다른 점이 있습니까?
행색이 다른 이들 보다 특별날 게 없습니다.
하지만 행색과 상관없이
하나님 보시기에 특별히 크게 애착을 가지고
사랑을 퍼부어 주는 대상이
바로 유다 나라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의 혜택을 잊고 있고
그걸 무시하게 되면
바로 하나님 안 믿는 자들이
오히려 우리들을 모독하고 짓밟고 우습게 보는
그런 이상스러운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그런가 하면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어가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유대 나라 사람들은
자기 주위에 있는 여러 민족을 향해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을 안 섬긴다고 철저하게 무시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톡톡히 무시당했던
그 이방 민족들로 하여금
도리어 어설픈 신앙을 가진 채
하나님을 안다고 거짓말하고
유다 나라에 대항하여
가볍게 무시하는 경우를 당하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안일하게 하나님을 대했던
모든 자들에게 마음의 혼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이방 민족의 종류가 많다 할지라도
참된 하나님은 이방 민족이 아니라
유다 편이라고 그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 하나님은
유다 나라 앞에서
이방 민족의 기를 더 세워주는 듯한 활동을
한다고 하니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드려야 합니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찾으십니다.
따라서 먼저 자신이 이방 민족 못지 않고
개별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즉 내형적으로 구별된 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난 뒤 대단치도 않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계속 대단한 관심으로서 돌보아 주실 때
우리를 대단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대단함,
사랑의 그 풍성함을
우리가 특별히 더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본문이 쓰여진 것입니다.
유다의 여호람 왕이 하나님을 버리니깐
하나님께서 어떤 조치를 내리셨습니까?,
그 동안 군말 않고 유다 나라에 잘 충성하던,
하나님 앞에 겁을 내던 그 민족도,
이렇게 건방을 떨면서
"유다 너희들 정도야" 하면서
독립해 가버리고,
립나도 배반하고 독립해 가버렸는데,
이러한 현상을 통해서
그 동안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를
어떤 차원에서, 큰 특별한 은총으로 이렇게 지탱해 주셨는가를 본문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때의 유다 나라나
지금의 우리나
모두들 아무 것도 아닌 존재고
똑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은
유다 나라를 특별히 관리 대상으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만해도
유다 나라는 절대로
다른 민족의 모임과 같지 않습니다.
자, 그걸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나라에서의 이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전쟁인가를 먼저 알아야 됩니다.
구약에는 전쟁이 자주 등장하는데
신과 신들이 붙는 전쟁입니다.
모든 인간은 신을 섬기는데,
그 신들은 전부 다 가짜입니다.
그런데 가짜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 하느냐하면
진짜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비로소 가부를 알 수 있겠지요.
여러분, 사람이 제일 기쁜 것은
내가 믿고 있는 그 분이
진짜 지금도 우리를 창조하신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때,
신앙인들은 가장 기쁩니다.
그것보다 더 든든한 게 없습니다.
비록 수입이 적고
남보다 출세에 뒤떨어진다 할지라도
지금 내가 의지하고 있고,
내가 믿고 있고,
또 나를 알고 계시는 그분이
진짜로 우주를 심판하실
하나님이신 것을 안다면
우리가 그 비빔밥 한 그릇 뚝딱하고 먹은 이상으로 든든하지요.
아무리 세상이 추악하고 더럽다 할지라도
내 인생은 정돈되어가고 있구나,
어떤 풍파라도 흔들릴 필요조차 없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발견함으로써
그 안에서 진짜 내가 누구냐를 동시에 알 때,
그 때 인간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말해서
인간승리란 내가 누군가를 확실하게 잡을 때,
그것이 최고의 경지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서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진짜 신과 가짜 신을 싸우게 하셔서
진짜 여호와 하나님이 승리케 함으로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하나님께서 개입을 하셨는데
사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홍해 바닷가에서 물을 퍼냈습니까?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가진 지팡이가 들려질때
뒤따라오던 애굽인들은
완전히 바닷물에 몰살해버리고
자기들은 가만히 박수를 치면서
찬양하며 바라보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 혜택은
진짜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셨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그들이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출애굽기 20장부터도
역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자기들이 들어가야 될 약속의 땅이
코앞에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홍해 강가에서 경험했던
그 참 신을 계속해서 의지하고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그들 국가의 운명과 장래도 결정될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보면
십계명 중에 제 일 계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있게 말지니라"
이것이 일 계명으로 나옵니다.
십계명을 어떤 사람은 윤리라고 보는데,
저는 윤리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면 십계명은 뭐냐?
진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느냐는
하나의 신앙에 관한 지침이지,
윤리 도덕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는데,
여기 "나 외에 다른 신"이라고 할 때에
"나"가 누구입니까?
2절에 보니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그러니까 우리가 십계명을 대하면서
아무리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간음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탐내지 않고 살았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애굽에서 나올 때에
홍해에서 있었던 그 일,
우리는 아무 공로도 없었으나,
아무 행한 것도 없었으나
주님의 공로로 덜렁 구원받게 되었고
은총을 입게 되었다는 이 놀라운 기적을
계속 마음속에 유지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그것을 만약에 빼버린다면
이것은 다른 신을 섬기는
이방 잡종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의 싸움입니다.
다른 민족들은 탱크나 비행기나 미사일이나
막강한 무력으로
자기의 영토와 국가를 지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스라엘나라가 앞으로 부딪쳐야 할
모든 사항은
옛날 애굽에서 홍해를 갈라지게 했던 그 하나님,
그 분만 마음속으로 의지하는 경우에만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답게
유지하고 보존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 참 쉽게 말하시네요.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여느 교인들처럼 일일이 지침을 주시면
따라하면 쉽잖아요.
말씀도없이 마음속으로 하나님 의지하라는 것은 진짜 신경쓰이는 일입니다.
교회에서의 주특기가
하나님 말씀 잘 지키고 선행을 과시하는 것인데,
자기의 종교행위가
옆 사람 보다 더 뛰어나고 놀랍다는 것을
자랑하는 재미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보고
보이지도않은 하나님을 보고
구원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믿느냐 말입니다.
"목사님 어렵게 말하지말고.
시켜만 주세요.
시키는 건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습니까?
그런데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허황되고 추상적인
이상한 소리는 하지마십시오
그러나 바로 십계명은
윤리 도덕이 아닙니다.
인간이 대충 노력만 하면
누구나 해내는 것들이 아닙니다.
영에 속한 자가 아니면
영에 속한 일을 모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육에 속한 자가
아무리 흉내내기로 버틸 수 없는 것이
신앙세계 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역사를
어떻게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자꾸 어떤 강력한 무기나
상대방 국가가 갖고 있던
그냥 두렵고 화려한 것들은
전부 다 없애고
여호와만 있으면 되는 겁니다.
자꾸 이런 쪽으로 나가니까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나면서
믿는 자,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끝까지 믿자고 이야기하고,
믿음이 없는 대다수의 민중들과
왕과 거짓 선지자들은
타협과 편법과 뇌물로 마찰을 줄이는 쪽으로
안절부절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이 전쟁이 개인이나, 개인의 어떤 자질이라든지 성품이라든지 성격이라든지,
개개인의 어떤 국가적인 실력이라든지,
지위라든지 그 싸움이 아니라,
이스라엘은 어떤 신이 박혀 있으며
저 쪽 나라에는 어떤 신이 박혀 있는가?
그리고 그 신들 중에 어느 신이
진짜로 살아계신 하나님이냐,
말만 하나님이 아니고,
우주를 진짜로 만드신 그 하나님이
어느 나라에 계시면서
지금도 현실적으로 인도하고 있는가?
그런 것을 보여주고 증거하는 역사가
바로 이스라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걸 이해의 차원으로 접근하면
이해가 될 리가 없습니다.
마음 자세 자체가 틀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명기 7장 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고 되어 있습니다.
또 사람들의 마음을 헷갈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세상 것을 얻기 위해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자들에게는
속을 뒤집어버리는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큰 것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에 맞서서
하나님은 가장 작은 군사력으로
밀어붙이시는 이유는,
힘으로 하나님을 알겠다고 나서는 것은
하나님이 용납하시지 아니시고
오히려 가장 적은 숫자의 군사력을 남기므로
그들이 진정 하나님을 믿는 지 여부를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정말 이지 누가 봐도
유다 나라 백성들을 얕잡아 볼 수밖에 없는
연약한 집단입니다.
그래서 주위의 힘께나 쓴다는 나라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찝쩍댑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건방지고 교만한 모습입니다.
강한 이방 나라가
유다 나라의 고관대작들을
많이 사로잡아 갈 때는
그들도 신이 났겠지요.
그러나 그들아 잡았다고 여기는
그들을 핍박했다는 이유로
거대한 제국들은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잘난 체하고 힘 자랑하는
모든 제국들이기에
상대적으로 유다 인을 얕잡아 보게 된
그 태도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감히 유다 나라를 얕보다
자기 수하에 두려고 하다가
거꾸로 유다 나라의 하나님에 의해서
크게 낭패를 당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세계 만방에 보이고자
하나님은 유다 나라를
그 때 그 때마다 징계해 왔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적이 얼마나 막강하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 나라가 이방화 되어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가차없이
주변에 포진되어 있는 이방민족들로
쳐들어오게 해서
이스라엘을 핍박하게 할 것이고,
또는 이스라엘 수하에 있던 나라도
독립해 나가버리게 하는 거예요.
그것이 신명기 7장 16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붙이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고 진멸하고
그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그들을 두려워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식으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시느냐 하면
믿음이 없는 것 같으면
필히 두렵지 않을 수밖에 없는 그런 조항들을
자꾸 유발시킵니다.
믿음만 없다면
자기를 굴복시킬 수밖에 없는
그런 난처한 사항을 만들어 놓고
하는 말이 "두려워 말라
네가 겁내고 있는 저 막강한 민족들보다도
지금 너와 함께 있는 하나님은
그 보다도 몇 십배, 몇 천배 더
능력이 계신 분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는 식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죠.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은
막강한 적들,
두렵지 않을 수밖에 없는 그런 적들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더 세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신명기 7장 25절에 보면
그것보다 더 무서운 유혹 같은 게 있습니다.
"너는 그들의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것으로 인하여
올무에 들까 하노니"
그렇습니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적은 이스라엘 내부에 있는데,
내부에서 유혹으로 다가오는 적은
정말 이기기 힘듭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그 신상을 보니까
금과 은으로 조각해 놓았다 말이죠.
그러니까 사람이 재물에 대한 탐욕,
돈에 대한 탐심,
뭔가 풍성히 소유한 데서 오는 안락함이라든지 넉넉함으로 동기 유발되어서 빼앗기는 그 유혹,
매력, 집착, 예수는 이왕 믿는 것이고
부자로 한번 살아 보겠다는 돈에 대한 사랑,
그건 정말 우리 내부의 적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바로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유인하려고 합니다.
교회 오면 복 받는다는 게,
안 믿는 사람들이 갖고 있던 그 막강한 돈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탐나지요.
그러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기도하면 얻을 수 있다는 거예요.
이건 신명기 7장 25절을
정면으로 지금 부딪치는 상황입니다.
제가 다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만 있으면
굶어 죽는 거지라도
천당을 갈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지 나사로의 예가 그렇지요.
진짜 하나님만 믿으면,
진짜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이 기쁨과 포만감만 있으면
땟거리가 없어도
하나님은 그 사람을 귀하게 보고
특별한 존재로 간주한다는 말입니다.
꼭 돈이 많은 집사, 장로가 되어야
하나님이 더 특별히 봐 주는 게 아니고
그 직분이나 돈 없어도
하나님만 있으면 족하다는
그러한 순수한 신앙만 가진다면
그 신앙보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 어떠한 인간보다
더 월등한 존재로 간주해 주신다는 겁니다.
이게 지금 신명기에 나오거든요.
신명기는 나중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말씀을 줄줄이 나열하신 것은,
반드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면
이런 유혹, 저런 유혹,
공포의 대상들이 누군지
살면서 마주쳐야 될 그런 문제이기 때문에
사전에 조심하라고 당부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세요.
그렇게 당부했건만
그 이스라엘 왕이라는 사람도
다른 신을 부러워하고,
힘을 부러워하고,
나도 이방나라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하나님만 믿어서 이게 뭐냐,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식으로 넘어가지요.
그런데 본문 21장 8절에 보면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였다고 말합니다.
여기 에돔은 뭐냐하면
에돔 민족의 조상을 말합니다.
그 조상의 이름이 "에서" 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입니다.
야곱의 형 같으면
동생과 친하게 지낼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의 형은
동생 야곱(이스라엘)이
평생 저주해야만 될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형 "에서" 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야곱의 형 에서는 저주받아야 될 운명으로 태어났으니까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그 대대로 인류 역사상 끝날 때까지
저주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저주받아야 될 너의 형을 바라보면서
"나는 왜 저주 받아야할 운명이 아니라,
그토록 축복만 받아야 될,
축복에 선택된 사랑을 받았는가" 하는 사실을
그 형의 운명을 바라보면서 절감하고
또 기뻐하고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행동 여하에 따라서
축복과 저주가 바뀔 것 같으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하나는 저주의 사람으로,
하나는 축복 받을 사람으로
결정되어서 태어났습니다.
그 결정된 운명이
지상에 쫙 깔리는 것이
인류의 역사입니다.
결국은 에돔, 즉, 에서의 저주의 운명에 있는 자들,
축복 받은 이스라엘이
그걸 한 손에 쥐고 있으므로 말미암아
곧 네가 저들보다 잘나서 지배하는 것이 아니고,
너는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저주받을 자를
저렇게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을
감사하라고 주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본문에 보니까
자칭 복 받았다는 이스라엘이
자기에게 그런 사랑을 주신
하나님을 버리니까 어떻게 되겠어요?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저주받을 대상을 지배할 권한이 있는데
본인이 사랑으로부터 벗어나 버리니까
저주받을 민족과 똑같이
되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사는 차이가 없어졌지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경고하기 위해서
네가 보기에 차이 있다고 생각하는 에돔 나라가
너를 떠난 걸 보니까
네 본분과 네 위치가 떠났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에돔이 독립해 떠나게 함으로
정신 차리게 하는 거예요.
제가 복잡하게 이야기한 것 같지만
복잡한 게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이 세상은
하나님이 복 줄려고 태어나게 한 사람이
따로 있고
영원히 저주받고 나중에 지옥가야 할 사람이
따로 있다는 것을
먼저 가슴속에 받아들인다면
제가 하는 이야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아, 복 받을 사람은
저주받을 세상 사람들에게
얼마나 호사스럽게 잘 살고
빌딩을 짓고 출세를 하고
무얼 어떻게 해도
그것 보다 참 하나님이 나를 선택했다는 이 사실에 놀라워하고 감격하고 고마워할 때,
그런 현상이 받아드려질 때만
진정 그 사람이 선택된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꾸 그들의 문화 좋아보이고,
우월해 보여도 섞이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에 이끌리지도 마시고
그들이 가진 권리나 능력이나 권세를
두려워하지도 마시고
하나님께서 너를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부러워하라는 것도 아니고
두려워하라는 것도 아니에요.
금, 은, 보화를 부러워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금, 은이나 권력으로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랑하심으로
그 사랑하심이 우리를 에워싸서
우리가 구원받았으면,
이 특별한 존재가
세상의 지푸라기 같은 그런 것들을
갖고 있는 그들을
부러워해서 되겠습니까.
바로 본문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네가 누군지 아느냐"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이 시민권을 우습게 보지 않는
우리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