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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9일 물사랑
싱그러움으로 그 절정을 이루는 5월
사람들의 마음이나 자연의 마음이나 하나 같이 같은 점이 있다면 이 계절을 맞아 새로움과 희망으로 가슴 부푼 꿈을 안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바짝 말라 그 생명의 여린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그 겨울의 나무도 이제는 파란 꿈을 가지 가득피우고 있다.
추운 겨울 그 나무는 이런 봄날의 꿈을 키우며 어둠 속을 지나 왔을 것이다.
활짝 피어 그 화려함으로 온 산을 불태우듯 가득 덮고 있는 진달래도 그 앙상한 가지 속에 이런 화려한 날의 기억을 키워 왔기에 오늘이 가능했으리라.
‘내일의 꿈을 가진 자 반드시 성취하리라’ 혼자 중얼중얼 되 뇌이며 8시간의 긴 산행이 예정된 이번 주 무박 산행에 참여하기 위해 배낭 가득 물을 채우고 천년뷔페 앞으로 향한다.
토요일 회사 직원들과 새봄의 정기를 받아 활기찬 새 바람으로 사업의 새 국면 전환을 꾀하고 상호간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양재동에 있는 청계산에 다녀왔다.
작년 까지만 해도 가끔 청계산에 오를 때면 턱까지 차오르는 호흡에 정신마저 아득해지곤 했는데 지난 일년 열심히 산을 다닌 효과가 있음인지 힘들다고 투덜대며 따라오는 직원들을 독려하며 오르는 발걸음은 혼자 생각해도 이상하리만치 가볍게 느껴진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법은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듯이 ’건강관리에 힘쓰지 않는 자 신은 내일을 허락지 않는다‘ 라는 말을 새롭게 만들어 보기도 한다.
또한 내일은 어버이날 인지라 청계산에서 돌아와 가까운 곳에 사시는 어머님을 찾아뵙고 유별나게 꽃을 좋아하셔 꽃나무 두 그루를 화분에 심어 선물로 드리고 오늘 무박산행에 들어가기 때문에 미리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했더니 잠도 못자고 고생이 심할 텐데 특별히 조심해서 다녀오라 하신다.
어째든 어두워진 거리에는 가로등이 대낮처럼 환하게 도심을 밝히고 있고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자동차들은 쏜살처럼 도로를 질주하는 천년뷔페 앞은 시원한 5월에 밤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온다.
어린이날에 어버이날에 또 징검다리 연휴에 아마도 오늘은 참여 인원이 적을 것이라 예상하며 두루두루 산우님들은 모두 태우고 나니 29명이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많다는 생각을 했고 대부분이 몇 번 보았거나 아니면 처음 보는 분들로 이런 분위기도 새롭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잠을 청하건만 점차 흐려져야 할 사고의 캔퍼스가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지기만 하고 별의별 생각들이 자꾸만 안면을 방해한다.
버스는 밤새 달려 새벽5시 조금 안된 시간에 한치재에 경인에 산님들을 내려놓는다.
아직까지 사위는 온통 어둠으로 가득하고 엊그제 내린 비로 공기는 축축한 습기가 느껴져 살랑대며 불어오는 바람이 자못 선선함을 느끼게 한다.
이리저리 몸을 풀며 산행을 준비하며 화장실에 가신 분들이 모두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최대장님의 산행개시 신호가 우렁차게 떨어진다.
오늘 선두 무전기는 북극성님이 잡고 최대장님이 중간에서 앞뒤로 종횡무진 대활약을 예고하고 후미 무전기는 박선배님께서 수고 해주시로 하였다.
오늘은 한치재를 출발하여 아미봉(418), 일림산(626)을 거쳐 삼비산(654)과 다음은 골치산(614) 그리고 사자미봉(668), 사자두봉에서 회귀하여 간재 곰재산(614)을 거쳐 오늘의 주산 제암산(778)을 접수하기로 예정되어 대략 시간이 7시간 정도 소요되는 근자에 들어 조금은 장거리 산행이 예고되어 있다.
장시간 산행은 길기만 한 버스여행의 고통을 감수하며 참여한 이유 중에 하나이고 또한 인터넷을 통해 미리 알아보니 아미봉에서부터 사자두봉과 곰재까지 거의 산행 전 여정에 걸쳐 폭 넓게 발달한 철쭉이 만개하여 그 화려함의 극치를 예고하였기에 만사 제치고 참여한 두 번째 이유이다.
산행 들머리로 진입하자 자욱한 안개에 헤드랜턴의 불빛이 반사되어 바로 앞 등로의 사정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 될 정도이지만 바닥에는 별로 장애물이 없어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땅은 촉촉하게 젖어있지만 미끄러울 정도는 아니고 그 덕에 발을 통해 전해 오는 흙의 감촉이 최고급 양탄자를 밟는 것보다 더 폭신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습기와 함께 진하게 풍겨오는 흙냄새와 그에 신선함을 더해주는 초목들의 그윽한 풀냄새로 그저 잠깐 눈을 감고 그 향을 음미해 본다.
새벽 남도의 산자락은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와 자욱한 안개 속에 태초 신이 천지를 창조할 때의 신비로움 그 자체인양 그윽한 품으로 우리 경인의 산우님들을 감싸며 품어오는 느낌이 여간 좋은 것이 아니다.
벌써 잠에서 깨어났는지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듯한 맑고 청아한 음색의 새소리가 눈과 발을 거쳐 코를 감동시키고 이제는 귀마저 대자연이 새봄을 맞는 그 향연의 한자리에 참석한 경인의 산우님들의 마음을 황홀지경으로 이끌고 있다.
이로써 5감중 4감을 진동하는 봄의 향기와 마술과도 같은 환상적인 변화 속에 내 맡긴다.
등로는 그다지 험하지 않고 그저 조금 경사가 있는 공원의 단정한 길처럼 그렇게 다소곳이 이어져 있다.
분명 헤드랜턴에 비춰지는 등로 좌우 풍경에는 화사한 철쭉이 보이지만 자욱한 안개와 LED램프의 색감으로 조금은 창백해 보이고 그래도 밤새 내린 이슬로 잎사귀에 보석처럼 영롱한 물방울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하늘거리는 새벽바람에 살짝살짝 흔들리는 모습이 여간 매혹적인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밝아 옴을 느끼건만 안개로 인해 그저 시야는 흐릿하기만 하고 이는 오히려 현실감을 감춰 주게 되어 오히려 환상적인 분위기와 꿈속 같은 아련함을 더해 주기도 한다.
이제 등로 좌우로는 활짝 만개한 철쭉들이 귀빈을 맞아 도열해 있는 인파들처럼 아예 터널을 이루며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어찌도 그리 칙칙하게만 보이던 겨울 산을 완전히 벗어나 변신을 해도 이렇듯 화려하게 변신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한 여인이 이보다 더 아리따울 수는 없으리
그 고운 정서와 화사한 아름다움에 오늘은 새벽부터 몽롱해져 가는 현기증을 느껴 본다.
산행은 그다지 힘들지 않게 길을 허락해 주지만 20미터 남짓 오르고 10미터 내려가고 또 30미터 오르고 20미터 내려간다.
그렇게 헤아릴수 없이 오르고 내리다 보니 어느덧 이마에는 이슬인지 땀방울인지 모르겠지만 송글송글 맺히다 이제는 줄줄 볼을 타고 흐르다 눈으로 들어가 쓰라리게 한다.
아미봉 정상인 듯 이정표도 정상석도 없지만 능선 길에 올라 좌우를 바라보니 온통 하얀 연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 사는 세상을 뛰어넘어 구름을 헤치고 신선들이 산다는 천상에 올라선 듯 우리가 서 있는 주위만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앞으로 신들이 가꾸어 그들만이 볼 수 있는 꽃밭인양 보아서는 안 되는 모습을 몰래 훔쳐 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천상화원이 드넓게 펼쳐진다.
제아무리 험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이런 풍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는 없으리라
남덕유산 그 현란한 서리꽃 터널을 지날 때 슬프도록 창백한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오늘 이 길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는 분홍빛의 열정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아무 생각 없이 이 안에서 이들과 하나 되어 그렇게 사라진다 해도 그 어떤 후회도 없을 듯 하다.
무엇이 이리도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겨 해체 시키는지 알 듯 하다가도 막연해 지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이고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이고 또한 이렇게 넋을 잃게 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을 갖고 태어나 무엇을 갖고 살다가 무엇을 갖고 무엇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황홀한 철쭉들의 군무에 빠져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 스스로 공허한 존재의 의미와 인간의 정체성들의 의미를 떠올리며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수 없이 던져본다.
봄의 요정 그 연분홍빛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 천상화원의 조경사 들은 또 이토록 신선하고 청결한 녹색지대를 만들어 빠져 있던 환상 속에서 손을 잡아 꺼내준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솟아 있는 사람을 스타라고 부르듯 자연의 화려함도 혼자서는 결코 이룰 수 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지금 다가온 녹색의 향연도 결코 연분홍 연정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녹음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태워버린 살신의 흔적들이 있기에 그 푸르름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아닐까
우연하게 올려다본 소나무 그 상순에는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드러나 보이지도 않지만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 묵묵히 그 역할을 다하는 송화의 마음이 있어 또한 읽어 보려 눈길을 던진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이름 모를 꽃들과 풀들 그리고 화려함의 이면을 소리없이 받쳐주고 있는 또 다른 이런 환경이 비로소 자연을 위대하게 만드는 기본적 요소 인듯하다.
일림산 정상에 오르니 쩔쭉들의 향연은 더욱더 그 화려함으로 가득한데 사람들은 산의 정상석마저 서 서로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하는 와중에 땅속에 파묻혀 지나는 산꾼들이 발로 파놓아 그 덕에 흐릿한 글자들로 우리 앞에 놓여 있어 서글픈 느낌을 던지고 있다.
뒤에 따라오시는 분들과 간격을 압축하기 위해서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고의성이 짙은 알바를 했지만 그 어디고 아름다운 화원 속인지라 바보처럼 허허 웃고 덮어 버린다.
삼비산 정상에서 식사하려 했으나 바닥이 흙뿐이고 또한 젖어 있어서인지 산우님들이 좀처럼 앉지않으려하자 조금 더 진행하다 골치산을 지나 멋지게 자란 소나무 밑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아마도 아까 그 알바 덕분인지 한자리에 앉아 선두고 후미고 가릴 것 없이 어울려 식사를 하는 것도 참 드문 일이다.
다시 한번 탁월한 리드에 감탄과 함께 존경을 보내고 싶다.
철쭉으로 멋지게 장식한 공원길처럼 아름다운 길을 따라 식사를 마치고 걷는 기분은 즐겁고 유쾌하기 이를데 없다.
사자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
토요일 산행이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연이은 산행과 식사 후 먼저 출발한 팀과 합류하기 위해 한참을 뛰어서 인지는 몰라도 평상시 왼쪽 무릎이 약했던 것과는 다르게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려와 등로 옆 풀밭에 주저앉아 배낭을 열고 아대를 꺼내 바짝 조이고 난 다음 다시 출발한다.
절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철쭉이 거칠게 뿜어 나오는 호흡을 진정시킨다.
수 만년을 이어온 바위에 고독을 위무하기 위함인가.
그 사이로 수줍게 피어난 철쭉이 손끝까지 저려올 정도로 짜릿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다.
사자미봉에서 사자두봉은 원점 회귀해야 하는 코스라 그러지 않아도 무릎이 편치 않은터라 같이 하는 산우님들만 갔다 오라 했더니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고 성화다.
하는 수 없이 오늘 처음 참여하신 부부 산님과 같이 사자두봉에 가기 위해 1키로 정도 갔을까 벌써 북극성님이 되돌아 오신다.
이때부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하고 완만하기는 했지만 군데군데 바위가 섞여 있는 길을 거의 뛰다시피 진행한다.
마음은 급해도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고 바다에 인접한 산을 산행한다는 것이 무색 할 만큼 안개로 인해 조망이 안 좋았는데 이곳 능선에서야 비로소 저 앞에 펼쳐진 바다를 보게 된다.
저 앞에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사자두봉이다.
사자미봉으로 다시 돌아오던 중 우리가 북극성님을 만났던 지점쯤에서 혼자 오시는 박선배님을 만난다.
‘에이 그냥 돌아가지 뭐’하더니 아무래도 서운한지 그냥 사자두봉 방향으로 걸어가신다.
거의 1시간10여분을 소요하고 사자미봉으로 돌아오니 종전까지 만해도 선두였는데 더 이상 사자두봉 방향으로 다른 산우님 들이 오지 않는걸 보아 대부분 그냥 지나친 듯 하고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맨 꽁뎅이다.
간재를 지나 곰재산 까지는 아직까지도 화려했지만 여기가 가장 철쭉군락의 절정 인 듯 하다.
곰재를 지나 내려오는 경사가 매우 급하고 땅이 젖어 있어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이제는 무릎에 상당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한발한발 옮기기가 힘들고 고통스럽워 다른 문제가 없을까 은근히 걱정된다.
마주 보이는 오늘의 목적지 제암산에 반드시 올라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컨디션으로는 무리라는 판단이 들자 은근히 스스로에게 짜증스러워진다.
자욱한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저 산이 날 부르고 있는데 그냥 무시하고 확 가버릴까
아니지 다음을 위해 오늘은 참자 혼자서 문답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위로해 본다.
곰재에 내려오니 최대장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평상시도 마찬가지였지만 다리가 불편한 상태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부상당한 곰꼴이 되어 곰재를 지나 내려오자니 오늘 산행을 내가 곰처럼 한듯하여 다시 한번 부화가 치민다.
하지만 세상은 새옹지마라 하였듯이 모처럼 정말 모처럼 최대장님과 단둘이 하산주를 하는 횡재아닌 횡재를 얻었다.
특히 제암산 자연휴양림의 멋진 풍경과 솔잎 향 그윽한 동동주는 자꾸만 시동이 걸릴 듯 하기만한데 다음 스케줄이 녹차해수사우나라서 최대한 자제하는 고통도 감수한다.
이 또한 새옹지마 인가.
20여분이 지나자 북극성님을 필두로 속속 합류하여 시원한 탁배기 한잔으로 갈증을 달래고 꽃속에 묻혀 꽃과 함께한 사자산 제암산 산행을 마무리한다.
휴양림 계곡 앞에 서 있는 시비에 내용이 가슴에 다가와 적어본다.
제암에 올라
어릴 적 할아버지 같은 산
타향을 돌고 돌아 이십여 년
낮선 등산객 되어 찾아 오르니
왕 바위는 그대로 앉아 있었네
햇빛 별빛 달빛 다 받아먹고
눈 비 서리 이슬 세수하고
천둥 번개 구름 안개 벗삼아
그대로 그 자리 앉아 있었네
꿈 많은 소년시절 어느 여름 밤
바위굴에 누워 별을 헤던 친구들
지금은 흩어져 소식 없는데
그 굴도 그대로 비어 있었네
야속한 세월에 밀려가는 인생
뒤돌아 보며보며 죄인처럼 떠나올 제
왕바위는 그대로 말없이 앉아
하얀 억새손만 수없이 흔들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