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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 가면 남해가 있다-
나: "다음 주 수업 쉰다."
학생들: "아싸~"
- 학생들은 수업을 안 한다고 하면 무조건 좋아라 한다.-
'얘들아 그렇게 좋아하면 선생님 섭하잖니......'
학생 : "근데 왜 쉬는데요?" -수업 안 한다고 좋아할 땐 언제고 왜 쉬는지가 왜 궁금한거야-
'남해'로 여행을 가게 되어 수업을 쉰다고 했더니 한 학생이 되묻는다.
학생: "해수욕할 때도 지났는데 남해는 왜 가세요? "
나: " 남해에 가 보려고."
학생: "그러니까 남해 어디냐구요? 구체적으로 남해 어디로 가시는 건데요?"
-맞다 그냥 '남해'라고 하면 다분히 중의적이다. 남해에 있는, 행정구역상 남해군에 간다고 했어야 하나?
논술을 가르칠 때 근거를 막연하게 쓰지 말고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고 가르쳤더니
녀석 '구체적'이란 말을 이렇게 인용하는군. '음~ 어떻게 설명해야 이 녀석 속이 구체적으로 시원해질까? -
나: "선생님이 좋아하는 시 중에 '남해 금산'이라는 시가 있어.
잠깐 기다려. 좋아는 해도 외우고 있진 못 하니까 내가 찾아서 읽어 줄게.
- 이성복의 '남해 금산'-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남해에 가면-
나는 휴강의 정당성을 밝히기라도 하듯 찬찬히 남해에 대한 설명을 늘어 놓는다.
이 시의 배경이 되는 남해 금산이 바로 통영과 여수 사이에 있는 '남해'의 금산이라는 곳인데
선생님 생각에 남해의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라 대표로 뽑혀서 '남해'라는 이름을 얻은 것 같아.
이번에 '남해'에 가면 금산 보리암에도 가 보고, 바람 흔적 미술관에도 가 보고,
미조항, 몽돌해안, 상주 은모래비치에도 갈 거야.
바닷가에 병풍처럼 둘러 쳐진 물건방조림에 가면 오랜 세월 바다를 향해 우뚝 우뚝 서 있는 나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보고 싶어.
언젠가 밀려 왔다 가 버린, 다시 오지도 않을, 흰 파도를 사랑한 바보 같은 나무가 꼭 있을 것 같거든....
또 유럽 분위기가 난다는 독일인 마을을 둘러 보고 나선 커피를 마시면 좋을 것 같아.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실 수 있으면 좋겠어.
독일인 마을은 60년대 우리 나라 경제가 어려웠을 때 독일로 파견되어 고생했던 우리나라 광부나 간호사들이
은퇴해서 고국으로 돌아와 남은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유럽풍 마을을 만들어 준 곳이래.
아참~ 다랑이 논으로 유명한 가천다랑이 마을에도 가 볼거야.
"근데 다랑이논이 뭐예요?" -늘 호기심 천국인 학생의 질문-
'근데'로 시작하는 녀석의 호기심을 평소에 높이 평가해 왔으니 암~ 자세히 설명해 주고 말고.
"400년 전, 남해를 굽어 보는 가천면 설흘산 자락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는데,
가파른 비탈에 돌을 쌓고 그 안에 흙을 다져 넣어 계단식 논을 만든거란다.
높은 곳에 있는 논이라고 '다락논'이라 부르다 발음하기 쉽게 다랑논이 된 것 같아.
척박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삶의 터전을 일군 조상들의 지혜가 만든 아름다운 풍경화 같지 않니?
날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그 풍경화는 살아 있는 풍경화라고 해야 할 것 같구나"
"......"
내 설명을 듣고 있는 녀석은 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감흥이 없는 눈치다.
학생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땐 재빨리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내 오랜 경험이 쿡쿡 찔러 준다.
-드라마 '환상의 커플' 촬영지-
나: " 참 너희들 '환상의 커플'이란 드라마 봤어? "
"왜 한예슬이 나왔던 드라마 있잖아 개념 상실, 기억 상실, 무개념 나상실이
말끝마다 ' 꼬라지 하고는~' 했던 거 생각 안 나?
' 한 번 지나간 자장면은 돌아 오지 않는다 ' 선생님은 이 말이 정말 재밌었는데..."
남해에서 '환상의 커플'도 찍고 '맨발의 기봉이'도 찍었댄다.
학생: " 아~ '환상의 커플'이요? 남해가 그 드라마 촬영했던 곳이예요? 저 '맨발의 기봉이' 도 봤어요.
진작 남해가 거기라 그러셨으면 제가 금방 알죠."
녀석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역시 요즘 학생들에겐 한 편의 아름다운 시보다 TV에서 만나는 드라마가 더 가깝다.
그래서 난 곽재구 시인이 남해 미조항을 배경으로 수채화처럼 쓴 글
'미조 포구에서의 짧은 하룻밤의 기록'이란 글 이야기는 꺼낼 엄두도 내지 못 했다.
나를 남해로 부른 게 바로 이성복의 '남해금산'과
곽재구의 '미조 포구...'였다는 걸 녀석들은 얼마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해할 수 있을까.
한 편의 시나 혹은 한 편의 글이 생생한 현장 사진보다 더 큰 끌림과 여운으로 다가 올 수 있다는 걸
언젠가 녀석들도 이해할 날이 오겠지.
그날 나는 학생들에게 꼭 들려 주고 싶었던 곽재구의 '미조 포구...'를 읽어 주지도 못 한 채
서둘러 수업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삶과 여행
이번 남해 여행 이야기는 곽재구가 남해 미조 포구에서 쓴 글을 읽었을 때의 느낌으로 시작해야겠다.
그는 긴 여행에서 돌아 온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좋다고 한 것이
릴케인지 베르그송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이쯤의 나이를 먹고 보면 이미 그 긴 여행이라는 것이 우리네 삶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리고 그 거짓말이라는 게 삶의 진실을 의미하는 얼마나 지독한 반어적 표현인가를,
그가 말해 주지 않아도, 그저 가만히 눈만 감아도 알 수 있을 테니까....
뒤돌아 볼 것도 조금 있는, 삶이라는 먼여행의 중반을 이미 넘긴 이 시점에서
이제는 내 마음 가는 대로 여정을 짜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내 발길 닿는 대로 길을 걸어도,
그 삶이라는 여행의 끝이 진실로 아름다울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남해 힐튼 리조트-
이번 남해여행에서 내가 가장 편안한 안식을 얻은 곳은 우리 일행이 이틀 동안 묵었던 힐튼 리조트가 아니라
바로 바람 흔적 미술관이었다.
-누군가 힐튼 리조트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비싼 당신이라고 했다던가?
사방을 둘러 보아도 그림 같은 골프장 정경과, 점점이 떠 있는 섬을 안고 있는 푸른 바다가 보이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살랑이고, 누우면 쏟아질 듯한 별이 보이는 노천 온천도 있고,
바다를 연해 나무로 데크를 만든 산책길,
단풍 든 나무들 앞으로 목책이 둘러 쳐진 한적한 오솔길이 바다와 닿아 있는 아름다운 곳이긴 하나
다음에 다시 남해에 간다면, 그 땐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은 작은 펜션이나
등이 굽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오손도손 함께 사시는 민박집에 머물고 싶다.
비용도 절감할 수 있고, 남해를 더 깊이 느낄 수 있을테니까....-
-바람 흔적 미술관-
어떤 이는 이곳을 다녀 가서 미술관 이름을 '바람 소리 미술관'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 미술관에 직접 다녀 온 사람이라면 100 %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머얼리서 이미 '소리'로 느낄 수 있는 미술관.
그날도 쟁강쟁강 맑은 종소리가 우리를 마중하러 나왔던 것 같다.
바람이 흔들고 가면 아니 살짝 스치고만 가도
철물로 구조를 짜고 양철로 날개를 만든, 커다랗고 빨간 바람개비는 웅웅웅 마찰음을 내며 돌아가고.
바람개비 사이에 달린 작은 종은 노래하듯 맑은 소리로 화답하는 곳. 바.람.흔.적.미.술.관.
미술관에 들어 가서 그림을 만나기도 전에 이미 그 소리가 내 마음에 그림으로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유년의 기억 같은 그림,
내 꿈의 흔적 같은 그림.
마침 또 하나의 작품을-바람개비를- 열심히 만들고 계시는 최영호님을 만났다
"내가 이 바람개비들 다 만든 아저씨예요."
-"내가 이 미술관 관장입니다." 라고 어깨에 힘주며 말씀하시지 않은 것,
집 떠나면 모두 '숙녀'들이라며 우리를 아줌마라는 호칭에 묶어 두지 않으신 것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 아저씨께서 건물이 위치한 언덕 아래 강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지.
"이 아저씨가 좀 욕심이 많아서 보다 많은 바람개비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저 아래 강물이 위에까지 차 오르면
강물 위에서 춤추는 바람개비들까지 볼 수 있답니다."-올해는 가뭄이 들어 그 장관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미술관 건물의 전면도 유리로 만들어 놓아 고개를 돌리면 유리창에 비친 바람개비의 수는 어느새 두 배로 많아져 있다.
무인미술관을 차려 놓고,
향 좋은 커피와 아이스크림까지 준비해 놓고 단돈 2천원 그것도 내고 싶은 사람만 내라는
이 욕심 없는 미술관 관장님, 최영호님이 스스로 욕심이 많다고 하시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 미술관은 한 달 단위로 작품 전시를 한다는데
전시실엔 청바지에 그려 놓은 유화들로 평범한 청바지가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탐나는 작품들이 걸려 있었고
길 건너 숲속 오솔길에 보물찾기 하듯 숨겨 놓은 조각품들을 만나는 것도 좋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세상이 아름다운 건 그렇게 아름다운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서, 맑은 소리를 내는 빨간 바람개비처럼 열심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바람흔적미술관 화장실 문에 써 있던 '마음까지 비우시지요' 란 말.
욕심없는 마음이 될 수 있도록 우리들 마음을 비운다 해도
다른 이에게 기쁨을 가득 안겨 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욕심은 맘껏 부려 보아도 좋으리.
-죽방렴-
추석 선물 중 고가에 속하는 식품 중에 '백화고' '봉화 송이' '영광 굴비' 그리고 '죽방 멸치'라고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죽방멸치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았다.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말린 것이 바로 죽방멸치란다.
조상 대대로 해 오던 원시어업형태 죽방렴을 이용해서 잡아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으로 말린 멸치이니
무형문화재가 빚은 솜씨에 다름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죽방 멸치가 비쌀 수 밖에 없나 보다. -1Kg에 30 만원 이상이라니....-
창선 대교 근처 지족해협에 가면 V자 형태의 죽방렴을 볼 수 있다.
10 미터가 넘는 참나무 말목 300 여개를 물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개펄에 박고
-요즘은 적당한 나무를 구할 수 없어 쇠말뚝을 박기도 하는데 그나마도 죽방렴이 30 개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대나무로 촘촘히 그물발을 만들어 물살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설치해 둔 고정식 어망인 셈이다.
하루 두 번 물이 빠졌을 때 죽방렴에 가서 살아 있는 고기들을 건져 오기만 하면 되는데
그 지역의 유속이 워낙 빠른 곳이라 그곳에서 잡힌 물고기들은 맛이 좋고
-죽방렴에서 잡힌 물고기들은 미끼를 덥석 물다 잡힌 멍청한 고기들이 아니라 물길을 잘못 탄 죄 밖에 없는
운 나쁜 물고기들인 셈이다. 그래서 어디서든 줄을 잘 서야 하는 것인가......-
죽방렴에서 살아 있는 멸치를 건져 와 신속하게 처리해서 하나하나 건조 시키기 때문에
죽방 멸치는 은빛이 살아 있고 비린내도 없어 비싼 값을 톡톡히 한단다.
5월에 남해에 가면 죽방렴으로 잡은 기막힌 멸치회를 맛볼 수 있다니
멸치회맛이 궁금하다면 그 때를 놓치지 말고 여행계획을 잡아야 할 것 같다.
참고로 은빛 싱싱한 갈치회 맛을 보려면 10월에 가야 한다.-올해는 갈치 풍년이라 갈치회 갈치구이 갈치조림을 원없이 먹었다-
갈치회나 멸치회 둘다 무침으로 나오는데 남해산 마늘이 듬뿍 들어간다는 그 회무침은 깻잎에 싸 먹어도 맛있고
밥에 비벼 먹어도 그저 그만이다.
-남해 금산 보리암-
비단 錦자를 쓴 남해 錦山의 유래는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로부터 연유한다.
새 나라 건국을 꿈꾸었던 이성계가 명산을 찾아 다니며 치성을 들였다는데
금산-이전엔 보광산-에 와서 기도를 하며 자신이 꿈을 이루면 이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 주겠다고 했단다.
그런데 제왕이 되어 약속을 지키긴 해야겠는데 그 높은 산을 비단으로 감싸기가 어디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그 때나 지금이나 JQ-잔머리 지수^^-가 높은 신하가 있기 마련.
"약속대로 산을 비단으로 감싼다 해도 세월이 지나면 비단이 헐어 보기 흉할터이니
대신 그 산에 비단 錦자를 하사하여 錦山으로 부르시면 될듯 하옵니다."
그로부터 보광산이 금산으로 이름이 바뀐거란다.
등산을 하며 금산의 속살을 보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끝까지 가서
상사 바위를 보고-'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너를 생각해 낼 길이 없구나'로 시작하는 상사바위라는 시비도 있었다-
쌍흥문을 통과하고-그 굴 사이로 바라다 보이는 다도해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지난 번, 통영 갔을 때 가 보았던 욕지도까지 보인다-
이 아름다운 섬 남해가 실은 보길도와 더불어 유배지였다고 한다.
-죽방렴이 설치된 지족해협과 보길도 앞바다의 유속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곳이라 하니 유배지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할 자연적 장치까지 고려한 절대 고도 유배지인 셈이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되었던 섬 노도를 보았는데 주변 풍광이 아름다웠다.
서포는 유배지에서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 주옥 같은 작품을 썼고 윤선도는 보길도에서 어부사시사를 완성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일이란 늘 동전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으로 유배 되지 않고 한양에서 벼슬을 계속했더라면
그런 걸작품을 후대에게 남겨 줄 수 없었을 지도 모를 테니까......
보리암에서 소박한 삼층석탑의 숨결을 느끼고, 해수관음상의 미소를 만나고
끝없이 펼쳐진 남해, 다도해의 절경에 취하는 것만으로도 대만족.
정끝별 시인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이 되고 바위가 되는지 남해 금산에 가 보면 안다고 했다.
남해 금산의 하늘가 상사암에 가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불길 속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 한 채 돌이 되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때, 상사암을 바라 보며 나는 잠시 꿈을 꾸었나 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새가 되어 날아 보고 싶었다.
은빛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 올라 아직 푸른 꿈이 있던 시절로 돌아가
꿈틀거리는 내 꿈과 사랑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겨 보고 싶었다
-남해를 떠나며-
금산 보리암, 가천 다랑이 마을, 바람 흔적 미술관, 물건 방조림, 미조항,상주 은모래비치, 죽방렴,
편백림, 용문사......
나는 2박 3일 동안 남해에서 보고 싶었던 것을 보았고,
내 마음에 남해를 가득 안고 돌아 왔다.
남해에 관한 글을 쓰고 있자니 내 마음에 담아 온 '남해'가 마음 한 켠에서 일렁이는 듯하다.
나는 언젠가 또 남해에 가야 할 것 같다.
첫댓글 밤늦게, 여행기를, 아니 우울탈출기를 남겼구나. 잘 읽었어. 정말 경림이는 사는 것처럼 사는구나. 나는 방법을 몰라. 참 바보다, 그지?
역시 시인의 한 방이 있네. '우울 탈출기' . 확 와 닿는다^^ 다음에 그걸 글 제목으로 해서 글을 한 편 써도 되겠지? 은경아 너도 방법을 찾아 봐. 의외로 쉬운 곳에 답이 있을 지도 몰라.
경림이의 멋진 삶이 부럽구나. 인생을 사는 방법이 많고 다양한데 그녀는 가장 문학적인 멋을 한껏 풍기면서 날아다니는것 같구나. 다음에 남해에 갈땐 같이 갈수 있는지??
맞아 참 삶의 모습들도 다양하지 . 가끔 보이는 영자씨의 삶도 멋지던걸요^^ 누가 나보고 답사를 잘 해 오라고 했는데 친구들이 2박 3일 정도-멀어서 1박 2일엔 좀 무리지 싶어- 시간들을 낼 수 있으려나 모르겠어.
그래.. 이 맛이야~ 경림의 맛과 멋..ㅎ 좋은 글과 정보 고맙다~ 근디, 동행인들은 누구? 미인들..
동행인들은 상담교사 모임에서 -교육청 소속 중학교 상담 자원봉사자- 만난 15년 친구들인데 그 중 한 명은 수도 2년 후배야. 왜 터키 사진에서도 봤었지?... 원래 4명인데 이번에 한 명이 못 갔어. 모임 이름은 절대로 말 못해. 몰매 맞을까 봐....ㅋㅋ
참 멋진 여행기를 오랫만에 읽었네~! 물론 사진까지 곁들이지 더욱 눈까지 즐겁고~! 마지막에 있는 멋스런 무쇠난로도 아주 패션어블한 디자인이네~! 참 디자인이 좋다~!
이번 여행 가기 전에도 미리 공부를 좀 해서 여기 저기 갔었는데 그 예쁜 난로가 있던 바람흔적 미술관, 참 좋더라...
너무 멋있다!! 경림식 여행을 흉내내야지....".같이 여행하고픈 여인 1위에 당첨 됐음을 축하합니다"
뭐 1 등 하면 매화회에 가서 밥 사야 하는 거 아닌가? ㅎㅎ 16일 종강 하자마자 놀러 갈게요.
기다린 보람 있네. 멋진 기행문 역시 ... 어디든 또 한 번 꼭 같이 가고 싶다. 언제 얼굴 보여 줄거야? 눈 다 짓물렀응께 책음져유ㅋㅋ
그날 조금 늦더라도 꼭 갈게요~ 모두다 보고파용~
경림이 갔다 온 다음에 갈걸~~ 남해에 끌려서 3년전쯤 여름에 가족여행 갔다 왔는데... 언젠가 다시 가보리라~~ 아름다운 여행 나눔도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내겐) 최고의 고마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