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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금)일에 계획되었던 홍도 깃대봉 산행은 참여자 부족으로 연기되고, 갈 데를 잃어버린 뒤 생각해낸 대안이 서울행이었다. 2일간의 휴일은 긴 시간이고 25일(일)에 삼무회 유명산 산행이 있다하니, 서울로 올라가면서 산 한 곳을 들렀다가 서울 가서 친구들 만나고 다음날 삼무회 산행에 참가하면 제법 쓸만한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는 10.24일 아침 일찍 우리는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충남 금산에 있는 서대산에 들른다. 정해진 시간에 서울에 도착하려면 경부고속도로 근처에 있는 명산을 찾아야 하는데 내 눈에 금산 서대산이 적합한 산으로 찍혔던 것이다.
경주에서부터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달려 충남 옥천IC에서 내려 금산 방향으로 내려간다. 순식간에 금산군 추부면 성당리로 들어가는데 바로 왼편에 큰 산이 나타난다. 바로 서대산이다. 충남에서 가장 고봉이라니 보기에도 우뚝하게 솟아있다. 서대산의 들머리는 주로 서대산드림리조트이다. 산행은 서대산드림리조트에서 시작하므로 이 곳을 지나칠 수 밖에 없다.
서대산드림리조트는 400여명을 수용하는 목조 숙박시설과 500여평 규모의 충남 최대 야외 풀장, 놀이동산, 대강당, 소강당, 축구장, 캠프파이어장, 서바이벌장, 팜스테이 체험장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 종합 레저타운이다. 지나면서 가만히 살펴보니 야외풀장, 캠프파이어장, 서바이벌게임장, 운동장, 놀이기구(바이킹, 우주전투기, 모노레일, 꼬마열차, 스카이사이클 등...), 펜션, 테마 문화촌 등 다양한 시설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등산객 출입금지'라는 드림리조트를 바로 들어가지 않고 이정표의 지시대로 리조트 정문에서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산에 오른다. 미친 색히들! 입장료 받아놓고 리조트 출입금지라니..............웃기고 있구나!
처음에는 길이 이렇게 크게 나 있다. 우측이 드림리조트이다. 리조트를 빙 둘러 리조트 뒤에 있는 서대산을 바로 오른다. 올라갈 때는 이렇게 속지만 내려올 때는 리조트 한가운데를 뚫고 나왔다. 출입금지라니.........아무 것도 없더구만............
펜션 지나면 이렇게 문화 체험촌이 나오는데 이 곳은 몽골촌이다. 몽골유목민들이 거주하는 형태의 가옥이 지어져 있다. 이런 숲속에 하루밤 지내는 것도 재미있겠다. 고기 구우면서.............지글지글~~~~~~!!
드림리조트를 빙 돌아 오르면 길은 자꾸 좁아진다. 더 올라가면 더 좁아지겠지.
이제 본격적으로 서대산 얘기를 해 볼까? 서대산은 충남 금산군 추부면과 군북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904m이다. 충남 남동부의 금강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금산고원에 속해 있으며, 노령산맥을 이루는 정수이자 충남의 최고봉이다. 명산 계룡산보다 1m 더 높다. 옥천에서 서남쪽으로 직선거리 10km 지점에 있다. 남서쪽의 대둔산(大屯山:878m), 남쪽의 국사봉(國師峰:668m)과 함께 동쪽은 충북, 남쪽은 전북과의 경계를 이루며 주위에 방화봉, 장룡산 등이 있다.
산마루는 매우 급경사이며 남쪽으로 갈수록 점차 완만해진다.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옥녀탄금대에는 샘이 있는데, 이 영수(靈水)를 7번 이상 마시면 아름다운 미녀가 되어 혼인길이 열리고 첫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정상에서 북쪽 546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주변에는 장령대, 북두칠성바위, 사자굴, 쌀바위 등이 산재해 있다. 협곡을 가로질러 높게 설치된 약 50m의 구름다리 주변은 신선바위 등의 기암절벽들이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구름다리에서는 다리 밑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과 능선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다리 밑으로 내려가서 유원지 쪽으로 가는 길이 경관이 좋다. 서쪽 사면 중턱에는 원흥사(元興寺), 개덕사(開德寺) 등이 있으며, 서쪽산 기슭에는 신라 문성왕 때 무양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서대사(西臺寺)가 있었다고 한다.
옛날 서대사에서 출판하였던 <화엄경>이 국내의 여러 절에 있는 것으로 보아 서대사는 규모가 크고 불사도 활발하였던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옛날 동국여지승람에는 조선초 이전에 서대산에 3개의 서대사가 있었다고 한다. 서대산의 서편 기슭, 현재의 원흥사 터에 서대사가 있었으며 고려말의 고승 취운당(翠運堂)의 부도등 큼직한 청석부도가 많이 남아 있다. 서대산이라는 산 이름도 서대사에서 유래한다.
전체적으로 산세가 온후하면서도 웅장하고 경치가 좋으며 용바위·신선바위·장군바위·마당바위·노적봉·서대폭포 등의 관광자원이 산재해 있고,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꼭대기에서는 대전시내와 옥천·금산 일대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여 주요 관광지로 꼽힌다. 또한 산세가 원뿔형이며 암산(巖山)으로 이루어져 있어 암벽등반을 즐기는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다.
서대산 오르면서 처음으로 만나는 용바위이다.
서대산(904m)은 충남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참고로 2번째는 계룡산(903m), 3번째 오서산(791m), 4번째 진악산(732m)이다. 서대산 산세는 솟아오르는 불길처럼 우뚝 솟아 대전 근교와 충북 남서부 어느 지역 산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늠름하고 독특한 산세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충남의 아버지 산으로도 불리는 이 산은 군서면 추부면 군북면 들판에서 원추형으로 우뚝 솟아 있다.
산자락 곳곳에는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들을 들어올린 험준한 암릉들이 부챗살처럼 퍼져내려 있다.
이렇게 험준한 산세로 인하여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가 맞서는 경계선이었고, 동학란 때에는 동학군들이 숨어들었으며, 6.25를 전후해서는 옥천, 금산, 무주 일원에서 활동하던 공산 빨치산 1개 대대가 주둔, 서대산을 아지트로 삼아 경찰서와 군청 등을 습격하는 활동지역으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서대산은 주변 사람들에게 보약이자 의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매우 유익한 산이다. 대전권 등산 애호가들이 건강을 위하고 호연지기를 키우기 위해 이 산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중에는 천년고찰이 있었다는 명당 절터마다 새롭게 단장된 서대사, 일불사, 성불사, 성심사, 효심사, 보광사 등 사찰이 자리하고 있어 불자들의 발길도 잦다. 여기에다 서대폭포, 신선바위, 선바위, 사자바위, 구름다리, 용바위, 마당바위, 두부모바위, 장선대바위, 북두칠성바위, 장군바위, 석문, 옥녀탄금대, 병풍바위, 미륵바위, 닭벼슬바위, 살바위, 사자굴, 남근바위, 망부석 등 많은 명소와 기암괴석들로 무장된 아름다운 서대산은 사계절 자신있게 전국의 등산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서대산 접근은 대전보다는 옥천으로 바로 내려오는 것이 가깝다. 옥천에서 불과 10km이기 때문이다. 서대산 산행은 주로 추부면 성당리에서 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른 곳은 등산로가 개발이 더딘이다. 이 산은 코스가 짧다고 얕보고 오를 산이 아니다.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는 기점에서 주능선으로 오르려면 온통 급경사 바위 협곡과 험준한 암릉으로 코스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이 서대산이 두번째인데 10여 년전 한여름에 올랐던 서대산에 대한 기억이 너무 나빠서 이번에는 계절 좋은 가을에 다시 와 서대산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씻어보려는 의도를 조금 가지고 왔다. 이번에도 여전히 가팔랐지만 서대산의 가을은 나의 이 산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을 많이 지워주었다.
용바위 좌측으로 난 침목 계단을 오르고...............
그리고 바로 이정표가 나타난다. 왼편 제비봉 코스는 서대산을 완전히 빙 도는 것이고, 우리는 제2코스를 따라 마당바위 방면으로 바로 오른다. 이게 주능선으로 오르는 다이렉트 코스이다.
이정표 뒤에 바로 나타나는 서대산전적비. 6.25전쟁 때 인천상륙으로 고립된 북한군들이 빨치산이 되어 험준한 서대산에서 활동함에 따라 이를 소탕하고 전적비를 세웠다고 한다.
조금 오르면 나타나는 마당바위. 서대산에는 큰 바위마다 갖가지 이름들을 붙여 놓았지만 조금은 오바하는 것 같다. 그렇게 한다면 경주의 조그만 산 경주남산에 있는 바위는 모조리 이름을 붙여야 할 판이다.
요즘은 큰 바위 밑에 저렇게 나무가지 지지대를 세워놓는 것이 유행인 모양이다. 하기야 저렇게 받쳐주지 않으면 돌이 굴러 내리겠지? ㅋㅋㅋ
서대산의 유명한 된비알(가파른 오르막)............이제 시작이다. 한번 땀 좀 내 볼까?
최근에 단미는 스태미너가 많이 떨어져 있다. 예전보다 스트레스도 많은 것 같다. 모두가 마음의 병이겠지. 사람은 좀 무던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내가 컨디션이 좋은 편이다. 이럴 때 형철이나 종성이하고 한번 붙어야 하는데............사실 어제 저녁에도 서울대반 어머니모임에 나가 밤 12시가 넘게 술을 마시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여기까지 날라온 것이다. 그래도 컨디션이 좋으니 컨디션이란 종체...............? 그냥 생각 없이 오르다 뒤 돌아보니 단미가 힘들게 쫓아오고 있다.
나타난 서대산의 명물 구름다리. 서대산에서는 이 구름다리 주변의 경관이 가장 아름답다. 뒷 배경의 바위가 신선바위이다.
구름다리 입구 직전에 이 통천문을 지나야 한다.
구름다리에서 올려다 본 북두칠성 바위.
구름다리다. 설치한 지 오래되어 건너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흔들어 보니 튼튼하다. 우리도 이쪽에 있는 정상으로 가기에 이 구름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된다. 그저 촬영만 한다.
구름다리 건너편에 있는 신선바위
구름다리 옆에 있는 viewpoint(전망대). 산이 가팔라 땀 꽤나 흘렸다. 그래서 이마에 수건을 댔다. 강대춘! 너도 꼴을 보니 이제 많이 늙었구나.
주능선에 올라 20여분 가면 정상부가 보인다. 장령대 바위와 오른편 끝부분이 서대산 정상부이다.
장령대바위 밑 석문을 지나면서................
서대산 정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산군조와 범자고(梵字攷)에는 ‘옛날 상·중·하 세 곳의 서대사가 있었는데, 그 중 중서대사는 지금 없어졌다’는 기록과, 가람고(伽藍考)에는 ‘군에서 동쪽으로 40리 지점에 서대사가 있다’는 기록, 그리고 선조 25년(1591년) 고경명(高敬命) 선생의 제봉집(齊峯集) 5권에 ‘금천사(金川寺)에서 휴양 중에 서대사(西臺寺)에 오르지 못함을 한탄한다’는 기록 등이 전한다.
이 세 기록을 토대로 서대산에는 18세기 후반까지 상서대사(上西臺寺), 중서대사(中西臺寺), 하서대사(下西臺寺) 세 사찰이 사세를 계속 유지해온 것으로 보인다. 이 사찰들은 18세기 후반 서대산과 인접한 모든 고을들이 동학란에 시달리는 과정과 일제 점령기에 이어 특히 6.25전쟁 통에 빨치산 토벌작전 등으로 인하여 불타 버린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옛 문헌을 근거로 상서대사터는 지금의 정상 아래 옥녀탄금대, 중서대사터는 지금의 서대폭포 옆 성심사(개덕사), 하서대사터는 지금의 서대사(원흥사)로 보고 있다. 특히 세 절터 중 하서대사터였던 서대사에만 유난히 오래된 부도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서대사가 가장 사세가 컸던 것으로 여긴다.
서대사는 신라 문성왕 13년(851) 도선국사가 창건하고, 이후 조선 명종 6년(1550) 풍수의 대가였던 남사고(南師古)가 중수했다 전해진다. 현재 서대사에는 4기의 부도가 있는데, 조선 선조 22년(1588)에 서산대사와 함께 숭인장고(崇仁長考) 문하로 있으면서 효종 2년(1650) 77세에 서대사에서 입적했다는 취운당대사(翠雲堂大師)의 부도도 있다.
이 서대사로 말미암아 산 이름도 서대산(西臺山)으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지금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의 西大山은 틀린 이름이라고들 말한다. 지금 서대사는 1931년 김만덕화(金萬德華) 보살이 재창하고 원흥사(元興寺)라고 이름을 붙였다가 2004년 본래의 서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중서대사터였던 성심사는 1947년 정대신행(鄭大信行) 보살이 개덕사(開德寺)라는 이름으로 재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웃에 있는 폭포는 절이름을 따서 개덕폭포로 불리다가 최근 서대폭포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6년 9월에 오고 다시 왔으니 서대산에는 13년만이다. 그간에 나도 많이도 늙었다. 세월에 장사가 있겠냐!
지나 온 서대산 주 능선.
서대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금산군 추부면 성당리이다. 추부면을 가리켜 소위 마전이라고 부른다. 옛날 말을 사고 파는 장터가 있었단다. 금산군청에 따르면 조선시대 말까지도 금산방면에서 한양으로 올라갈 때 지나가는 곳이 추부면이며 이곳에서 마달령이라는 재를 넘어서 대전으로 들어가고 다시 한양으로 나아갔다고 한다. 한마디 이 지역에서는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다.
성당리 서대산 밑을 확대 촬영해 보았다. 서대산드림리조트도 보인다.
정상 바로 아래 위치한 치성단. 석굴인데 수도하는 사람들이 기거하면서 도 닦는 곳이란다.
치성단에 있는 어느 도인의 움막에 여러가지 낙서가 있다. 그냥 웃어 넘겼는데 가만히 읽어보니 어럅쇼! 제법 철학적인 글들이 눈에 띈다. 몇 마디만 옮겨볼까?
道를 왜 닦냐구? 아 道가 있어야 닦지. 道를 가져와 봐! 닦아 줄께!
마음을 비워야 된다구? 마음 본 놈 있으면 일루 와 봐! 보지도 못한 놈들이 사기 치냐?
제발 사람이 없어도 쓰레기....특히 술 좀 버리고 가지 마십시오.
4대 성인이 한 말? 착하게 살자! 어렵냐?
이득이 되면 예를 갖추고 깔 보이면 함부로 한다. 고치고 싶은데 잘 안된다.
정신 수련? 인류의 지성을 높이고 물질문명도 동시에 발전시킨다.
여기 사는 내가 미친 놈 같으냐? 술 먹고 지랄터는 놈들이 미친 놈 같으냐?
인간답게 살고자 정신 공부를 한다. 마눌이 기다리지만......
사랑은 바람과 같다. 볼 수는 없어도 느낄 수는 있다.
지구? 생명체, 동국에서 서국으로 호흡을 한다.
여기 왜 있냐구? 내 말이...........
사랑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ㅋㅋ 애쓰며 수행하는 도인의 심정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하산길에 가을은 더 완연한데..............
가을! 온 산은 이제 더 깊은 가을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서대산 하산길..............어느 여름날 땀 흘리며 올랐던 길이 이제는 낙엽 쌓인 비탈이다.
옛날 중서대사였던 성심사는 1947년 정대신행(鄭大信行) 보살이 개덕사(開德寺)라는 이름으로 재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에 서대폭포가 있지만 서울로 가는 일정이 바빠 바로 드림리조트로 간다.
개덕사에서 길을 따라 드림리조트 방면으로 나아가면 산행 시작 때 오르던 갈림길에 다시 이른다. 올라올 때에는 좌측 1,2코스로 올라갔지만 이제는 3,4코스에서 나온다. 우리는 구름다리가 있는 2코스로 올랐다가 4코스 개덕사 코스로 떨어진 것이다.
드림리조트 안에서 서대산을 배경으로 촬영한다.
이곳이 서대산드림리조트 입구이다. 뒤로 보이는 긴 바위가 신선바위이다.
서대산을 떠나면서 차 안에서 촬영한 서대산 전경이다. 우측에 가장 높은 곳이 정상이다.
우리는 서대산을 떠나 옥천으로 들어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경부고속도로 옥천IC로 나가서 서울로 올라간다. 대전 지나고 청원 지나 남이분기점에서 경부를 버리고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계속 올라간다. 이천 지나서 제2중부고속도로로 올라 한강 건너고 남양주, 구리, 의정부를 지나 서울시외곽고속순환도로를 타고 고양IC까지 가서 덕양으로 들어간다.
서울 친구들과의 벙개모임 시간이 저녁 7시였는데 나는 7:20분 경에 만남 장소인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향연한정식집에 들어간다. 예상대로 친구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위 좌로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오랜만에 만난 신환희, 이유경, 김단미, 전종성, 이정, 반영환, 장병선, 문성호다. ㅋㅋ 이제부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지? 무슨 재미있는 일? 그건 나도 모른다. 모였다하면 늘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으니까.....ㅋㅋㅋ
얘기는 한창 무르익어 가고 마시던 술도 서서히 술이 사람을 잡아 먹기 시작한다.
역시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자유주의자 신환희를 제어하는 것은 이정 뿐이다. 누구에게나 천적은 있게 마련. 서양 춤, 개다리 춤으로 부족했던지 급기야 전통 춤까지 등장한다. 신환희가 누구냐? 왕년에 명동에서 노래하던 잘 나가던 아이 아니냐? ㅋㅋㅋ
노래도 잘 해요. 춤도 잘 춰. 얘기도 잘해. 완전히 신환희 독무대다. 욕도 제일 잘 한다. 십쌔끼!
이때는 이미 자정이 넘어가고.........결국 장병선, 신환희, 문성호는 나와 함께 덕양의 모텔에서 잔다. 문성호는 마눌님한테 또 죽었다. 그는 '매일 죽는 남자'이다. 우리는 향연, 노래방, 돼지껍데기집까지 전전하며 새벽 4시를 맞았다. 아! 아름다운 서울이여! 모두들, 그 사실을 모르지. 나처럼 멀리 살다 2달에 한번씩만 올라와 봐. 금방 알게 될테니..............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