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중국 개발자들의 침공으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SW) 개발자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국내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초급 개발자의 단가는 약 350만원 수준이지만, 중국 개발자는 3분의 1이 채 안되는 인건비면 충분하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그러나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한국 SW개발자 생태계를 와해시키고, 더 나아가 한국 IT산업의 경쟁력을 깍아 먹는 최악의 선택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현재 진행 중인 금융권의 한 차세대 프로젝트에서는 이러한 중국 개발자의 활동 현황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금융권 차세대 프로젝트인 만큼 고급 개발자들의 영역인 '비즈니스 로직' 업무에는 투입되지 않지만, 초급 개발자들의 영역인 일명 'CRUD(등록, 수정, 삭제, 조회)'의 4종류 화면을 만드는 기본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의 인건비 단가는 월 100만원 수준이다. 한국 개발자 단가에 비하면 무려 3.5배를 줄일 수 있다. 일례로, 단가 350만원의 한국 초급 개발자 4명을 4개월 동안 쓸 경우 지출해야 하는 5천600만원 대신 1천600만원이면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비용절감 위해 대형 IT서비스 업체 '원격지 개발' 도입
이 프로젝트의 주 사업자인 LG CNS는 중국 개발자를 활용해 인건비 절약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는 고객사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메이드 인 차이나'인 점을 고려할 때, 개발 품질에 위험(리스크) 요소는 있다. 그러나 핵심 업무 개발이 아닌 단순 개발 업무이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것이 LG CNS측 설명이다.
LG CNS의 한 관계자는 "프로젝트를 '사업'과 '개발'로 구분해서 개발 부분에 있어 중국 개발센터에서 개발된 것을 국내에 공급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단순 모듈을 개발하는 수준으로 프로젝트 전반의 품질 저하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업무 방식은 주로 원격지 개발이다. 즉 한국에서 통역사를 통해 구체화된 '화면설계 요건'을 갖추고 중국에 꾸려진 개발팀에 업무지시를 내리는 방식이다. 간혹 이들을 한국에 불러들일 때도 있는데, 이 경우 체류비를 포함해 200만원 정도 지급한다. 그래도 남는 장사다.
이에 대해 한 국내 중소 개발회사 대표는 건설현장 노동자들을 이민자들이 대체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아직 본격적으로 중국 개발자들이 밀려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대형 IT서비스 업체들이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클라우드 컴퓨팅의 확산으로 가상데스크톱(VDI)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이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원격지 개발의 최대 맹점인 소스코드 유출 등 보안 문제가 상당부문 해결됐기 때문이다.
품질 문제와 고객사의 부정적 인식만 해결한다면 대형 IT서비스 업체를 통해 중국 개발자들이 대거 유입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한 대형 IT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표면상으로 보면 중국 개발자를 활용하면 인건비가 절감된다"라며 "그러나 품질과 검수비용 등을 따져봤을 때 어떤 것이 가격 경쟁력이 있는지 아직 판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 정서와 맞지 않아...대형 프로젝트에 활용될 듯
현재 중국 개발자들의 활용되는 분야는 앞서 언급된 금융권 차세대 프로젝트 같은 대형 프로젝트 위주다. 대형 IT서비스 업체들이 아웃소싱 인력으로 중국 개발자를 활용해 입찰을 따내고 운영비용을 줄이기 위함이다.
공공 및 국방 등 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분야나 중소 IT서비스 업체들이 수주하는 소형 프로젝트에서 활용될 가능성도 낮다. 한국 정서에 맞는 로컬라이징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양수열 인피언컨설팅 R&D센터 소장은 주로 대기업에서 가능한 일이고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쓰기 어렵다고 이야기 한다.
양 소장은 "언어 문제로 커뮤니케이션 비용 부담이 있고 현지 인력을 관리할 국내 관리자 파견에 대한 부담이 있다"며 "특히 문화와 정서적 차이로 개발속도가 훨씬 느려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물론 대형 프로젝트에서도 장벽은 존재한다. 당장은 단순 개발 업무 외에 활용이 힘들다. 하드웨어(HW)는 물론 SW품질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익명을 요구한 A은행의 전산실장(CIO)은 "최근 중국이나 인도 개발자를 활용해 인건비를 줄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라며 "그렇지만 해당 국가에 맞는 특수한 문화와 비즈니스를 녹인 프로젝트에서 외국 개발자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막연히 비용절감을 고려하기 보다는 각종 위험 요소를 따져봐야 하기에 아직 이르다는 느낌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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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지디넷코리아가 개최한 개발자 컨퍼런스에 참석한 개발자들. 매년 이들의 열정은 매우 뜨겁다. | |
■한국 개발자 생태계 파괴되나...'SW산업 퇴화' 우려
무엇보다 중국 개발자 유입의 가장 큰 문제는 무분별한 저가 중국 개발자의 유입으로 우리나라 SW 산업의 근간인 개발자들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한국 SW 산업이 퇴화될 수도 있다.
VDI를 통해 원격지 개발 환경(스마트 워크)이 제대로 갖춰질 경우, 한국의 프로젝트매니저(PM)와 통역사, 그리고 외국 개발자들이 호흡을 맞추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이들 중국 개발자들의 가격 경쟁력에 밀려 우리나라 초급 개발자들이 사라지면, 3~4년 후 중급 개발자도 자취를 감추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대학원을 마친 박사급의 고급 개발자 역시 개체수(?)가 줄어들고, 오히려 이들의 단가는 천정부지로 솟구쳐 올라 시장 혼란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러한 악순환과 한국 SW 산업의 퇴화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일부 개발자들은 개발 단가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개발자 인건비는 지난 2000년부터 무려 10년이 넘게 변함이 없다. 토종 개발자들이 줄어들고 SW 산업이 기우는 가장 큰 이유다. (개발 단가는 말 그대로 사업자(개발사)에 지급되는 계약상의 인건비다. 실제 개발사에 소속된 초급 개발자들이 받는 연봉은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자바 개발자인 허광남씨는 "개발자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다면 시장논리에 맞게 가격을 높여야 한다"라며 개발자 인건비 정상화를 주장했다. IT노조 설립도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반면 대형 IT서비스 업체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중국 개발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수요가 많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개발자 인건비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시장논리로 보면 틀린 것 만은 아니다.
그러나 천연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근접하게 한 원동력은 '사람'이다. 특히 IT는 오늘날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있게 해주었고, 향후 인재 배출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담보해 주는 산업이다. 국내 벤처기업 펌킨네트웍스의 최고기술임원(CTO) 권희웅 이사는 "단순히 비용절감 논리에 맞춰 인재 양성을 소홀히 한다면 중장기적으로 국가 IT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