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4전북순환관광 고창을 관광하다
1. 일시 : 2012-8-4 익산역주차장8:40출발 귀착 익산역 19:10
2. 여행코스 : 익산역앞-고창읍성- 고인돌박물관- 선운사-미당시문학관-귀로길.
3. 인원 : 19명
4. 유적지 입장료 : 전라북도 지원으로 무료
5. 관광해설사 : 1명동승 해설 및 현장해설사 별도 해설
6. 요금 : 10,000원
2012-8-4전북순환관광 고창지역관광은 관광해설사가 동승하여 매우 뜻있고 실속 있는 관광이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첫코스로 들른곳은 고창읍성, 해설사의 말에 의하면 고창읍성은 우리나라 3대 읍성의 하나라고 하며, 낙안 읍성, 해미읍성과 더불어 평지에 세워진 성으로 원형이 잘 보존 되어 있다.
고창읍성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전라도민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사적 제 145호로 일명 모양성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고창읍성 답사 중 인상에 남는것은 고창읍성안에 있는 맹종죽림이다.
고창읍성내에 맹종죽림이 있는데 중국이 원산지인 죽림은 1938년 청월 유영하 선사가 불전의 대중포교를 위해 읍성안에 위치한 보안사라는 사찰을 세우고 그 운치를 돋우고자 조성한 것이라 하는데 대나무의 그 굵기가 엄청나드라고...
시간이 나면 맹종죽림을 구경하기 위해 고창읍성을 또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고창읍성에서 50분 시간이 주어져 심층 있는 답사가 않되어 실망했지요.
다음에 간 코스 고인돌박물관 관람이었는데 학생들의 학습탐방이 많아 다소 복잡한 가운데 탐방을 했습니다.
고인돌박물관 탐방을 마치고 선운사로 향하여 선운사부근 식당에서 탐방객 전원 점심을 하고 선운사경내 구경후 약 4:00 자유시간이 주어져 도솔산 숲길을 산책하다.
도솔산 숲길은 나무가 울창하여 그늘의 숲길 산책이 매우 좋았으며 계곡에 흘러내리는 물이 좋아 계곡에서 약1:00 물담그고 휴식하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지막코스로 미당시문학관을 방문하여 전문해설사로부터 서정주문학관에 대하여 상세한 해설을 들었음.
서정주시인이 이곳 고창에에서 태어난줄은 이번에 알았으며 대한민국의 유명한 시인인 줄도 이기회에 알았음.
그러나 서정주시인은 일제때 일본을 찬양한 시를 썼으며, 전두환시절에 전두환을 찬양하는 시를 써서 기회주의자로 낙인되어 있으나 시인으로서는 천재적인 면이 있는 시인으로 평가함.
가는 코스마다 해설을 들으며 여행한 보람이 있었음.
교통비 10,000원으로 알찬 유적지 답사를 하고 왔음
☞고창 선운사 유래
도솔산은 선운산(禪雲山)이라고도 하며, 조선 후기 선운사가 번창할 무렵에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에 이르는 요사(寮舍)가 산중 곳곳에 흩어져 있어 장엄한 불국토를 이루기도 하였다.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눈 내리는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ㆍ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단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이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지역에는 도적이 많았는데, 검단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ㆍ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름도 '검단리'라 하였다. 선운사가 위치한 곳이 해안과 그리 멀지 않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염전을 일구었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보아, 염전을 일구어 인근의 재력이 확보되었던 배경 등으로 미루어 검단스님이 사찰을 창건한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