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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게시판 스크랩 내 맘대로 `진짜 반전 영화` 베스트 5
이명하 추천 0 조회 991 11.01.17 10:4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야기는 왜 즐거움을 줄까? 그 유희의 핵심에는 궁금증이 있다. 궁금증 유지를 위해 드라마는 복선이라는 미끼를 던져 추리를 끌어내고,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뒷통수 치기를 반복한다.

 

 

 

 예측 하지 못한 반전, 그리고 무릎을 치게 하는 딱딱 맞아떨어지는 복선은 쾌감을 준다. 특히 반전이 있는 결말은 지금까지의 전개를 통째로 뒤엎는 만큼 강렬하다. 그래서 그 강렬한 기억을 바탕으로 '반전 영화 베스트 5'를 뽑았다.

 

 

 

 

  선정 기준은 개인적 취향이다. 개인적 취향을 조금 풀어 말하자면, 이야기에서 반전이 주는 진정한 묘미는 상식이 뒤집어지는 순간이다. 나는 그렇다. 우리의 선입견과 신념이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반전은 굳은 머리를 내려치며, 인생의 불규칙성을 잊지않게 해준다. '혹성탈출'의 반전이 감동적인 이유는 단지 예기치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스포일러는 있고, 이미 영화를 본 사람의 지루함을 고려해 줄거리 설명은 그닥 친절하지 않다.

 

 

 대중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

 '퀴즈쇼(Quiz Show)'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1995년 개봉작 '퀴즈쇼'는 반전 없이도 좋은 영화다. 하지만 반전으로 인해 월등히 좋은 영화가 됐다. 이것은 내 기준에서 좋은 반전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반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 영화는 그래서 나에겐 결함이 있는 영화다.

 

 인기 프로그램 '퀴즈쇼'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조작 방송을 제작한다. 미리 답을 알려줘 영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태인 존 터투로는 연승하는 배역을 맡았다. 하지만 다수 대중의 환호를 끌어내기 위해 광고주와 방송국은 최고의 학벌과 집안, 외모를 갖춘 백인 랄프 파인즈를 새로운 퀴즈왕으로 내세운다. 졸지에 탈락자 역으로 추락해 경제난에 빠지게된 존 터투로는 소송을 제기하고 조사 과정에서 조작이 드러난다. 랄프 파인즈는 결국 답안지를 받고 퀴즈 프로그램에 참가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여기까지만해도 영화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하지만, 더러운 거짓말이 밝혀지고 대중이 분노하는 정의로운 결말로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랄프 파인즈의 양심 선언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아무 문제없이 굳건하다. 이것이 이 영화의 충격적 반전이다. 가식적인 조작쇼의 주인공인 랄프 파인즈는 오히려 '미국 지성의 양심'의 대명사가 된다.

 

 이 영화의 탁월함은 스스로 종속당하려는 대중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다. 대중은 진실을 원한 것이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허상을 원한 것이다. 더불어 엘리트에 대한 허위의식을 강렬한 반전으로 비판한 점도 인상적이다. 타 종족에 대한 지배와 인종차별을 백인의 양심으로 반성하는 내용이 90년대초반까지 헐리우드에서 유행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지적인 시각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듣고 보고 아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함정(Arlington Road)'

 

 테러리스트로부터 가족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사투라는 소재는 뻔한 헐리우드 액션물을 연상시키지만, 이 영화는 뜻밖의 전율적 메시지를 담은 수작이다. 꽤 잘 만든 감각적 스릴러지만, 반전이 없었다면 이토록 인상적인 영화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1999년 개봉당시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던  기억이다.  몇몇은 예상 가능한 반전이라고, 몇몇은 허점이 있는 반전이라고 불평했다. 이보다 다수 대중이 호감을 갖지 못한 결정적 이유는 반전 자체가 비흥행적이기 때문이다. 액션스릴러물에서 정치영화 같은(사실은 정치영화기도 하지만) 찝찝한 결말을 누가 예상했겠는가.

 

 영화적 장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들이 설사 구멍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함정'의 반전은 대단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반전은 그저 놀래주려는 이벤트가 아니라 이 영화의 주제며, 그것은 범상치 않은 깊이를 지녔기 때문이다. '함정'의 결말이 진정 충격적인 이유는 일개 소시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테러리스트로 규정지어질 수 있다는 공포, 우리가 아는 모든 진실은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혼란감을 반전이라는 장치를 통해 경험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본능을 억압하며 사는 이유

'휴먼네이쳐(Human Natur)'

 

 

 음, 그러고보니 '함정'에 이어 또 팀 로빈스 출연작이다. 또 그러고보니 '플레이어'의 반전도 인상적이었다. 전성기 시절 팀 로빈스의 대본 보는 안목이 좋았다. 2002년 개봉작 '휴먼네이쳐'는 찰리 카우프만 각본, 미셸 공드리 장편 데뷔작이다. 블랙코미디에 열광하는 개인 취향이 반영된 것이지만, 미셸 공드리 감독의 출세작 '이터널 선샤인'보다 훨씬 더 좋다. 

 

 자연 속에서 자라온 야성인 퍼프를 문명인으로 교육시키는 심리학자 나단. 고통스러운 사회화 과정을 거쳐 문명인이 된 퍼프는 동물적 본능과 우아한 문명의 세계 사이를 오가며 혼란스러워한다. 이 과정을 지켜본 라일라는 퍼프를 다시 야성으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도식적 결말을 예상하면서, 그런 결말이라도 칭찬할만큼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는 순간 신선한 반전을 펼쳐보이는 이 영화의 유쾌하면서 씁쓸한 결말은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문명은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경멸하도록 강요받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인간이 행복해질까? 자연보다 더 달콤한 것이 문명이며, 한번 문명을 맛본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캠페인도 한낱 쇼에 불과할지 모른다고 말하는 듯한 '휴먼네이처'의 반전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아, 이거 다 쓰고 다시 봐야겠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공포심으로 미친 군중이야말로 괴물이다

'미스트(The Mist)'

 

 앞선 영화들이 모두 반전이라는 날개를 달고 작품의 수준 자체를 몇 단계 상승시킨 경우라면, '미스트'의 반전은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다. 공포 앞에 한 없이 나약한 인간 심리에 대한 영화 전반의 묘사, 특히 하이라이트 부분은 결말보다 더 충격적인 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트'를 베스트에 넣은 것은 역시 그 반전의 철학적인 면모 때문이다. 

 

 작은 마을에 짙은 안개가 드리우고, 안개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인간을 죽인다. 마트에 피신한 마을 사람들. 대상의 모호성은 공포를 극대화시키고, 이성을 잃은 인간집단은 폭력과 신앙 등 비합리적 방법으로 상황을 극복하려 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인간이야말로 괴물이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풀어나가던 이 영화는 결말에서도 충격적 반전을 통해 주제를 거듭 강조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자살로 이겨내려는 어리석은 인간을 냉소하는 결말은 짜증날 만큼 허무하긴 하지만, 인간이 광기와 공포로 자멸하는 존재임을 강조하기에는 더 없이 효과적인 반전이 아닌가 싶다.

 

 

루저가 위너가 되다

'나의 사촌 비니(My Cousin Vinny)'

 

 세상에는 좋은 영화들이 너무나 많다. 반전 영화도 그렇다. 그래서 '나의 사촌 비니' 정도의 전형화된 법정물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건 수긍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감정적으로 마구 끌리는건, 세상에 좋은 영화들이 많고 많지만 이런 류의 잘 짜여진 코미디 찾기는 이제 하늘의 별 따기기 때문이다. 아기자기 유머러스한 대사들, 편안하게 익숙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 사랑스러운 캐릭터... 같은 조건을 갖춘 영화 말이다. 1992년 개봉 당시 관람했고, 10년 이상 지나도 긍정적 기억이 선명해 최근에 한 번 더 봤다. 내 기억은 틀리지 않았다.

 

 억울한 누명을 쓴 범인이 극적으로 무죄를 입증 받는 해피엔딩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법정 드라마의 규칙이다. 이런 반전이란 이름이 무색한 상황에서도, 이 영화의 반전이 기억되는 이유는 범상치 않은 통쾌함 때문이다. '나의 사촌 비니'는 반전 씬을 통해 비주류에 대한 비아냥과 편견으로 가득한 엘리트의 얼굴에 묵직한 펀치를 제대로 날린다. 그것도 보수적인 아리조나의 시골 마을, 그것도 엄숙주의의 상징인 법정을 대상으로.

 

 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시종일관 배꼽잡는 코미디로 그려내는데, 이 또한 가장 적합한 선택이다. 진지한 엘리트의 얼굴로, 그들의 언어로 권위의식을 비웃는것은 그 자체가 이미 어쩔 수 없이 권위적인 것을. 철저하게 싼티나는 비주류를 내세워 비주류적 방식으로 전복을 꾀하는 이 영화의 형식은 그래서 진정성을 더한다. 여러모로 '금발이 너무해'를 떠올리게 하는데, 영화적 구조와 주제가 거의 똑같다. 하지만 '나의 사촌 비니'가 9년이나 앞서 제작됐다. 나는 '금발이 너무해'가 영향을 받았다고 믿고 있다.

 

  작은 키에 법정에 걸맞지 않는 튀는 의상을 입고 다니는 풋내기 변호사 비니는 사고만 일으키고 비웃음만 사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 실력을 발휘해 막판 뒤집기 한판승을 얻어낸다. 개인적으로 대중문화란 주류 이데올로기를 뒤집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류 이데올로기에 푹 절여져 사는 우리가 그 때가 아니면 언제 이 굳건한 질서를 의심해 보겠으며, 편견을 한번쯤 수정해볼 생각이나마 해보겠는가. 그런면에서 루저가 루저가 아님을 시원하게 증명하는 이 영화의 반전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인생의 반전을 보여주는, 진짜 반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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