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보병전술(重裝步兵戰術)이 도입되면서 전술은 개인전에서 집단전으로 바뀌었다. 왼팔에 고정된 방패를 들고 긴 창을 공격무기로 하는 중장보병은 가로로 전열(戰列)을 짜고 이 전열을 몇 겹(보통 8겹)으로 겹쳐 밀집대를 편제할 때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가졌다. 그러나 측면과 배면(背面)에 약점이 있어서 그리스의 명장 에파미논다스의 사선진전법(斜線陣戰法)은 이 약점을 찌른 것이었다.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는 긴 창(sarissa)으로 무장한 보병을 중핵(中核)으로 하였는데, 기병대(騎兵隊)나 경장보병(輕裝步兵)과 유기적으로 부대가 편제되어 대부대이면서도 기동성이 뛰어난 밀집부대였다. 동방원정에서는 무적(無敵)을 자랑하였으나 BC 168년의 피드나의 싸움에서는 로마 군단에 패퇴하였다
*전에는 귀족들이 중심이 된 기병들이 전투의 가장 큰 핵심이었대요.
그래서 귀족들의 발언권이 강할 수 있었던거구요.
하지만 중무장 보병과 밀집대형 전술이 발달하면서 그 주체가 되는 평민들의 힘이 강해졌다죠??
귀족과 평민의 대립은 나중에 성산사건으로 이어지면서 평민들의 권익이 많이 향상되었다는데..
수업때문에 시간이 없어 더 적지는 못하겠고..;
수업 끝나면 다시 올릴게요..^^
첫댓글 아하,, 그렇구나! 오늘 수업시간에 귀족과 평민의 대립이란 말 많이 들은것 같았는데, ㅋㅋㅋ 성산사건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