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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행기
2009년 9월 13일
디디투어 여행사에서 12일간 여행에 일인당. 259만원과 옵션은 별도로 약정하고 스. 모. 포.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디디투어에서 성원이 않되, 부득이 자유투어 연합으로 우리부부를 인계한다고 다시 설명을 해서 하는 수 없이 날자를 변경하여 출발하기로 한다.
어제 여행사에서 인천공항에 가이드와 시간 엄수하여 가이드를 만나라고 한다.
이곳 서울 태릉에서 첫 전철이 오전 5시35분에 있어 공항까지는 빨라야 7시 40분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더니, 기다린다고 약속을 해 부지런히 새벽부터 (4.30분)일어나 인천 공항에 약 두 시간 걸려 도착했다. 무려 2~3 시간을 더 기다려야 출발 할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허비하나, 생각 끝에 아내와 아이쇼핑하기로 하고 명품 점엘 기웃거리며, 시세를 알아본다. 이런 일도 재미로 하면 즐거움을 더하여 준다.
9시 10분에 ke925편으로 인천을 출발하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잠시 머물다가 재차 출발 한다. 현지 시각은 9월 13일 오후 2시 30분이다. 시차는 7시간이 뒤로 간다. 실지 비행시간은 인천에서 암스테르담까지 11시간 50분. 이곳 공항에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한 장소에 머물도록 격리 안인 격리를 시키며, 한 곳에 무려 1시간 40분가량 대한항공의 화물을 적재하려고 대기하는데, 지루하기 말할 수 없다. 자주하는 여행이지만 이번에도 점심과 저녁을 모두 기내식으로 처리하니 하는 수 없이 맥주 한잔을 먹고 속을 달래며 잠을 청하였으나, 별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지루한 비행여행을 할 수 밖에 없다. 이곳에서 마드리드까지 2시간 30분이 걸려 저녁 5.30분에 스페인에 도착했다. 마드리드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숙소(holiday inn)를 잡고 내일 일정을 준비한다. 남유럽의 첫 밤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으나 비행여독에 피곤할 뿐이다. 이제부터 유럽의 시간대로 시차적응을 할 일만이 남았다. 요즈음 자주 유럽여행에서 겪는 일이지만 시차적응은 쉬운 일은 안이다. 이곳에 도착하여 진정 무엇을 얻으려 이렇게 먼 포. 스. 모. 관광을 하기로 하는지...., 약3.000km의 이동거리를 버스로 달리는 쉽지 않는 거리와 비행시간만도 총 28~60시간의 왕복 비행, 여행상품 중에 5번째 드는 여행인 만큼 무엇보다 좀 더 실질적인 것을 얻고자 이 낮선 땅까지 왔는지를 곰곰이 생각게 한다. 여행은 어려운 반면 즐겁고, 신기하기까지 한 것, 미지의 모든 것을 직접 느끼고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곳 국민들은 왕족들의 생활에 관심이 많으며, 인구는 약 3천6백만 명으로 평균 자녀수가 적은 나라다, 유럽국에서 최고의 저 출산 국이며 장수 나라다. 결혼 초대장에는 무조건 가며, 대략 200명 내외가 모인다. 또한 좋은 날이라고 해서 돈을 많이 쓴다. 역시 개인주의 생각과 자신의 행복 추구가 인생의 최고 목표다. 공기 좋고 물 사정도 좋은 편이라서 병충해가 없고 대체로 낙천적인 면이 있다. 평균 수명은 여자가 84세. 남자는 78세다. 하지만 지나친 지방색(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간에)으로 자주 국정에 혼선을 준다고 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이 제일 많은 나라답게 관광수입도 대체적으로 관광 수입이 년 4백억 불로 세계 제일이다. 맑은 하늘이 362일 정도로 개이며 휴양지가 많고,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다.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하루에 다섯 번의 식사를 하며, 특유의 노는 시간이 많고 좀 개으른 민족으로 꼽힌다. 아침을 대체로 8.30분, 저녁을 마치면 거의 11시가 된다고 하니, 먹고 놀기만 하는 듯하다. 시간 개념이 없어서 스페니쉬 타임이란 말도 있다. 그들은 실제로 인생의 목적은 삶 자체를 즐기고, 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현실을 무척 즐기며 순박하고 말하기를 좋아하고 손짓을 많이 사용한다. 도로 중앙에 인도와 가로수가 있고 좌우로 차도가 있으며 아름드리 가로수가 있는 것이 특색이다. 북쪽(바르셀로나)의 경제가 남쪽(마드리드)보다 상위권이다. 두 도시는 지방감정이 심하다, 그 예로 92년 올림픽 때 수도 마드리드 사람들은 TV도 켜지 않고 지역감정을 크게 만든 올림픽이란 말이 있다. 올림픽 때 중앙 정부에서 지원을 하지 않아서 부족한 숙박호텔을 호화 유람선과 크루스를 총동원하여 대신 하였다. 마드리드 축구팀이 다른 팀과 시합을 하면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꼭 레알 마드리드 팀이 지기를 바란다. 북쪽 주들은 독립을 원해 가끔 테러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 우스갯소리로 이곳에서는 독일여자와 결혼하고 프랑스차를 타고 영국식당에서 밥을 먹는 남자가 가장 불행하다고 말하며. (프랑스 차는 싸고 영국은 먹을 것이 없고, 독일 여자는 무뚝뚝하고)스페인 여자와 결혼하고 독일 차를 타고 프랑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남자가 행복한 사람이란다.
9월 14일 2일차
아침 식사는 콘티넨탈(대륙의)식으로 아주 간단한 커피와 빵, 치스, 소시지, 달걀 삶은 것이 전부 식사다.
마드리드 시가지에 들어서니 그들 특유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과 현대적인 건물이 혼합되어 큰 거리를 이루고 있다. 그들이 자랑하는 섹스피어보다 훌륭한 세르반테스가 탄생한 곳이다. 돈(영어의 ,sir)키호테는 당시의 국왕을 말하고 산초판사부하(돈키호테의 부하)는 스페인의 어리석은 국민을 표현하며, 그 시대의 정세를 풍자한 소설로서 유명하다. 마드리드라는 뜻은 "물이 좋은 곳"이라는 의미인데 물 사정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가는 곳 마다 물을 하루에 몇 병씩 사먹어야 했으니(500ml 병에 1유로<1.750원>)이것도 큰일이다. 시내에서 목적지(유적지)까지 4시간 30분이나 버스로 달려가는 이 길은, 양편에 이곳의 유명한 올리브 나무로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길게 펼 처진 대로는 오히려 상막한 평야를 연상케 한다. 세계문화유산지역인 로마시대 유적으로 유명한 메리다로 이동한다.
* 메리다는 기원전 24년에 지어진 고대 로마원형극장과 경기장이 있는 곳이다. 직접 들어가 보지 못하고 바깥 울타리에서 돌아보는 이상한 구경을 했다. 다른 외국여행자들은 표를 사서 들어가 구경을 하는데 말이다. 이것은 아마 여행사들이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한 짓인 듯하다. 한편 현지 담당자들의 횡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행지 안내서에 절묘한 문장으로 이해를 하도록 유도한다. (즉 전경.全景을 감상한다는 용어로) 안내자에게 물었더니 글자 그대로 전면만 들러보는 것이라고, 바로 이런 답을 한다. 속 좁은 나의 판단일까, 다른 사람들도 서울 가서 따져야 하겠다고 항의하듯 투덜거린다.
점심은 현지 스페인에서 유명하다는 음식인 돼지고기와 빵, 그리고 야채가 든 습을 먹었는데, 일행 중 한분이 제대로 이곳 격식을 차려 먹어보자는 뜻이라며, 포도주를 산다. 다음에 차례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 하면서, 주위를 유도한다. 알고 보니 일행 4명은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온 현지 교포분이고, 또 4명은 처남남매간이며, 싱글여성이 6명. 남 1명. 신혼부부한 쌍. 부부가 6쌍인 총 29명이 동행자였다.
* 파티마 대성당은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와 로자리오의 기도를 권하였다는 유래로 가톨릭 순례지로 알려졌다. 특히나 성당 앞 광장은 유난히도 넓은 광장을 조성하고 있다.
일행은 오후에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장거리 버스여행을 하며, 내일은 포르트갈로 간다.
9월 16일 4일차
15일은 포르트갈을 여행했고, 또다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꼬르도바로 이동 한다. 오늘도 고적들을 돌아볼 일이 많다고 가이드가 서두르며 재촉한다.
* 세비야 성당(1.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성당. 2. 런던에 세인트폴 대성당에 이어 3번째인 스페인 최대성당) 이 성당은 고딕양식이며 기둥이 굵은 것이 특징이다. 굳게 닫힌 정문은 3번 열렸는데, 대주교 사망 때, 교황방문, 스페인 국왕이 왔을 때라고 한다. 이슬람교도를 몰아내고 가톨릭의 우월성을 과시하기위해 회교사원을 부수고 120년 만에 그 자리에 세비야 성당을 지었고, 그 내부에는 화려함의 극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당 천정의 디테일함이나, 성당유리의 스테인 그라스까지 그저 감탄에 또 감탄을 할 정도의 웅장한 성당이다. 또한 이사벨여왕의 금 왕관은 보석으로 온통 치장한 청, 황색갈이 빛나는 초호화 찬란한 왕관이 아직도 진열되어 있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와의 관계를 짐작케 한다. 콜럼부스의 무덤도, 이사벨 여왕의 사랑을 받던 그는 후에 여왕의 눈에 벗어나자 스페인 땅에 묻히기 싫다고 해서 땅이 아닌 공중에 떠받힌 상태로 관에 모셔져 있다. 성당의 내부에는 고야의 그림들이 잘 보관되어 있으며 한쪽 벽에는 온통 금으로 장식되어 있어 당시 권력과 강대국의 세력을 알 수 있다. 세비야 대성당은 세계에서 3대성당으로 유네스코에 등록 되어 있다는 증서가 보관되어 있다.
* 바로 옆에는 12세기말에 지은 높이 97m의 히랄다 탑이 38층으로 되어있고 올라가는 계단이 없고 구불구불한 언덕길처럼 되어있는데 높이 97m의 히랄다(바람개비라는 뜻)탑은 이슬람 건축과 기독교 건축의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68m에 종들이 있는 곳까지 올라갈 수 있어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이슬람 지배 시절에는 하루에 5번 기도하는 이슬람인 들에게 기도시간을 알려주려고 마을의 연장자가 하루에 5번 이탑을 올라가서 코란을 외쳐야 했는데, 연장자가 오르기에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말을 타고 올랐다고 한다. 말이 올라갈 수 있게 나선형으로 계단에 올라간다. 종루에 오르니 말도 어지러웠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나에게도 몹시 힘든 꼬불꼬불한 코스다. 그들을 물리친 그리스도 교인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대로 사용한 그 탑 위에 가톨릭 교인들은 예배 시간을 알리는 28개의 종을 달았고, 그 위에 신앙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하게 했다.
이 아름다운 조화처럼 지구상의 우리 인종들도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 수는 없을까....같은 하나님의 자손으로서 말이다.
이곳을 둘려보고 나오니, 하얀색으로 칠해진 안달루시아의 고색창연한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바람에 여행의 묘미를 마음껏 느껴본다. 성당의 뜰은 오렌지 나무들로 가득 차 있어 오렌지 뜰이라고 불린다. 무슬림들이 지배했을 땐, 오렌지 뜰이 세정식(손, 귀, 입을 씻던)을 하던 곳 이었다고 한다.
* 황금의 탑(겉모양은 별로 특징이 없지만, 항해사 마르코 폴로의 출발점인 것이 유명하고, 금색 타일로 지붕을 덮어놓은 것에 햇빛이 반사되어 빛을 발한 데서 온 이름)은 무어인들이 강으로부터 침입하는 기독교도로부터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12각형의 탑이다. 이 탑은 강 건너편에 있었다고 하는 은색 탑(은의 탑)과 함께 항구를 방위하고, 지나가는 배를 검문하는 목적으로 세워졌다. 지금은 유명한 스페인 항해자와 선박의 모형과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는 해군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객들이 뽑는 허무관광지 5곳이 있다는데, 우리를 웃기는 곳은. (1.) 덴마크 인어 공주 상 (2.) 로렐라이 상 (3.) 벨기에 오줌싸개 동상 (4.) 로마 진실의 입( 5.) 스페인 황금의 탑인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탑이 5대 허무관광에 속한다는 말인데. 그러나 결단코 이 곳 만은 그렇지는 않은 곳으로 나는 생각한다. 이곳은 13세기 초에, 강의 통행을 검문하기 위해 지었다는 중요한 곳. 포르투갈의 벨렘 탑처럼 출입국 사무실, 세관업무를 보던 역사상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들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좁은 뒷골목에서 하몽(스페인의 전통 음식으로 소금에 3년간 절여 건조한 돼지의 다리로 만든 햄)가게들이 예쁜 카페처럼 즐비하게 늘어서 우리들의 구미를 당긴다. 가랑비 오는 오후, 좁은 뒷골목에서는 더욱 더 한잔 생각이 나는 풍경이다.
* 마리아 루이사 공원은 19세기 만들어진 넓은 숲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고, 페드로 1세가 정열을 기울인 궁전이자. 스페인 특유의 이슬람양식인 무데하르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알려진 알카사르 궁전 외관을 관광 후, 궁전의 한 정원을 방불케 하는 광장으로 이동한다.
* 스페인 광장의 이름이 붙은 이유는 17세기 때 바티칸 주재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주 무대가 되었던 스페인 광장의 137계단을 올라가면 트리니타데이 몬티 교회가 있으며, 광장의 중앙에는 생각보다는 아담하고 자그마한 휴식장소로 세르반테스, 산초, 돈키호테, 동상과 분수대가 탑 주위를 장식하고 있다. 건축가 베르니니의 부친이 바로크 양식으로 만든 아름다운 조각배 분수가 있는데. 이곳에서 우리들은 영화장면을 연상하며 잠시 옛날의 일들에 잠겨본다. 당시 이 지역은 로마 교통의 중심지로, 외국인들을 위한 호텔과 상점들이 즐비해 있었다. 스탕달, 발자크, 리스트, 바그너 등 유명한 예술가들도 즐겨 찾았으며, 그 옆에는 키츠와 셸리의 기념관도 있다. 이런 여러 곳을 방문하며, 새로운 멋에 도취되어 시내의 색다른 건물들을 관광하고. 타리파(유럽과 아프리카의 연결 통로 지브럴터 해협의 항구 도시)로 이동하는 길 양편에 특유의 큰 소의 형태를 형상화한 간판이 우리들의 눈길을 준다. 역시 투우의 나라로 인식된 것일까. 광야에는 풀을 뜯는 소떼들이 옹기종기 거닐며, 시내의 주택들도 역시 흰색을 칠한 건물들이 많다. 옛날 이베리아 무어인들이 지배하고 건설한 요새가 있던 곳이다. 좀 더 가면 해변에 페리호가 있는데 이것은 모로코로 가는 연락선이다.
9월 18일(6일차)
하루를 모로코에서 관광하고, 아침에 이곳을 출발하여 해변 가로 돌아와 고속 페리호를 타고 40분 만에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 말라가로 이동한다,
* 지부럴터 해협은 어려서 영화 구경을 한, 장면이 자주 떠오르는 바로 이곳에서 옛 사연도 많은 이 바다를 항해하는 오늘의 나는 정말 행운을 맞은 듯 감개무량하다. 푸른 바다위에 하얀 파도가 물결을 가르며 지나면 갈매기들이 뒤 쫓아 서로 달리기를 하듯 하며, 시원한 바닷바람이 온 몸을 감싸주며, 저 멀리 바다 끝 양편에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에 절로 미소 짖게 만든다. 40분이 아까울 정도의 시간이 야속할 뿐이다. 그리스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육지를 벌여 놓았다는 바로 지부럴터 해협, 하얀 파도의 물거품을 바라보면서 정말 멀리도 왔구나 생각하며, 앞으로 나머지 할 일들을 이루려고 재삼 마음먹어 본다.
해안에서 버스로 달려 토레몰리노스로 간다.
이곳 호텔(marina sur)은 깨끗하고 아담하고, 정말 마음에 드는 곳으로, 여장을 풀만한 아름다운 곳이다. 호텔 전체가 아늑한 분위기를 준다. 마을 자체가 너무나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운 저택들이 모인 마을이고, 바닷가 근처해변 가에 별장들이 모여 있어 전연 다른 풍경을 자아내는 곳이다. 호텔 3층에서 내려다보면, 근처 집들의 정원이 넓고 보통 차가 3대 이상인 차고가 있고 풀장도 가춘 그런 집들이 있는 부촌이다. 일정 중에서 가장 호화스러운 저녁다운 뷔페 식사로 즐겼고, 저녁식사 후 일행과 같이 이곳의 넓고 깨끗한 달빛어린 해변 가를 따라 여러 세계인들과 어울려 거닐다보니 피곤이 확 풀리며 새 힘이 솟은 듯싶다. 그리워하던 바로 이런 남쪽 정열의 나라 스페인의 바닷가에서 모래알을 사뿐히 밟으며, 산책을 원하던 것이 이루어져, 이것이 바로 여행의 진미며 진수(眞髓)라고 할까, 우리 부부는 포근한 기분에 빠지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와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오랜만에 젊음을 되찾은 듯, 이곳의 시간을 만끽하며 거닐고 있다. 정말 좋은 여행에 즐겁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9월 19일 (7일차)
지난밤에 경치가 너무나 화려하고 해변 가 해수욕장을 마주보고 있던 방에서 잠을 잦던 탓인지 한결 기분이 상쾌한 마음으로 밝은 아침을 맞이하며, 아름다운 흰색 벽들이 이어지는 하얀 마을 미하스로 가기위해 버스로 일행은 무려 4시간을 소비하면서 목적지로 달렸다. 끝없는 올리브 나무의 농장은 길 양편에 끝도 안보일정도로 잘 정돈된 채로 늘어서있고 이곳 천박한 땅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나름대로 주어진 듯 그 풍부한 올리브유를 이곳 국민에게 주셨다고 한다.
* 그리스풍의 아름다운 하얀 마을 미하스, 정말 휴지조각 하나 없고 온통 계단마다 꽃 단지가 진열되어 있어, 이것이 바로 정원이고 이웃집과 소통하는 그런 통로로 활용하는 건축미가 더 한층 이 마을을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이 느낌을 주고 있어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집들이 온통 흰 색(의무적으로)칠을 하여 붙은 이름인지는 모르나, 온 마을이 깨끗한 인상을 주고 주민자체가 순수한 마음씨로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안동 하해마을 연상케 한다.
주민들도 한가로이 산책을 하고 상점에서 물건들을 사는 표정에서 여유 있는 그들의 생활에 즐거움을 갖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마을 광장에 여행객들을 위해 역마차가 몇 대씩 줄을 서있는 풍경도 한 멋을 낸다. 흰 벽 집들이 이어지는 미하스 거리를 자유 시간에 우리는 골목들을 이리저리 신기하면서도 즐겁게 구경하고, 상점에 들려 상품도 흥정하여 본다. 이곳은 별도로 우체국, 기념가게, 은행. 박물관, 교회, 구청. 호텔 등 모든 것을 가추고 있는 마을이다. 현지인들은 대체로 늙은 층이 살고 있는 듯 거의 마주치는 사람들은 노년층으로 깨끗한 옷차림에 활보하는 생활상을 엿 볼 수 있었다.
신대륙을 발견하여 부의 극치를 달리던 그들 국민도 나태한 안주로 근세에 와서는 하락일로를 걷다가 이제 겨우 선진대열로 발 도듬을 하고 있다고 한다. 드넓은 평야는 이들 조국에 풍요를 준 반면, 게으른 국민성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옛날의 영광이 이제 서서히 부의 길을 창조하고 있는 듯 생기를 찾아 여러 곳에서 건설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스페인은 감귤, 포도 등이 세계 네 번째 규모로 유명하며 대리석도 유명하다. 올리브 생산은 세계 1위로 재배 면적만도 남한 면적과 비슷하다. 올리브 열매는 녹색에 이어 자주 빛으로 나중에는 검은 색으로 변하는데, 한해가 지나면 사용치 못한다. 공복 시 큰 스푼으로 두 스푼 쯤 마시면 건강에 좋단다. 축복의 열매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식당에는 반듯이 다른 음식과 올리브가 나온다. 오후에는 구시가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된 코로도바(황금이란 뜻)로 이동했다.
* 코로도바는 무슬림(이슬람교도)이 스페인을 지배하던 때의 수도였으며, 옛날의 통치자들의 잔존물인 좁은 길인데도 유적으로 지금까지 간직한 에스파냐 시민들이 자랑할 만하다. 미로 같은 흰 벽의 꽃 골목과 유대인의 마을을 좁은 골목길로 잠시 들어가면 양쪽 흰 벽에 예쁜 화분들이 가득 걸려 있고, 수많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유난히 아름다운 골목이 나온다. 이곳이 꽃 골목이라는 곳인데. 그 많은 여행객들의 유명한 촬영장이 되곤 한다. 또한 이곳에서 유명하게 인정하는 것은 각 가정마다 서로 자랑스러운 정원 가꾸기 대회 같은 것이 있을 정도로 경쟁이나 하듯이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있다. 현재는 유태인의 집단 거주지인 동시에 유대인 거리를 말한다, 집집마다 화분을 내건 인상적인 꽃 길 등, 이곳에 1.200년 된 우물을 관람하는데 유별나게 일본과 한국의 글들이 낙서로 벽을 누볐다. 역시 알아주는 동양의 상식이 이곳에서도 잘 나타났다. 작은 가게 안에 반원형 우물을 선전하면서 역시 자신들의 가게물건을 팔려고 한다는 것을 후에 알았지만..... 이 골목 안에도 작은 광장분수대 주위에 오렌지 나무가 심어져 있고,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장소로도 이용된다.
* 톨레도는 1985년 세계 문하유산에 등제된 옛 수도로 지금은 마드리드에 자리를 내 주었지만 옛 정취를 400년 전 도시의 맛을 지니고 있다. 비사그라는 정문(붉은 문)을 통해서 시내로 들어가는 문이며. 중세 도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조용한 도시다. 강과 다리, 이것들은 옛날 중요한 요새의 조건을 잘 갖춘 요충지답다고 생각이 든다. 토래도 성당, 시청건물, 이 모든 건물들이 역사적인 것과 고풍스러운 모습 그대로 우리들의 눈을 현혹시킨다.
* 톨레도의 중앙에 우뚝 솟은 대성당은 톨레도의 명물이다. 이 성당은 본래 회교도 사원이었던 것을 13세기에 개축하였으며 1277년부터 266년을 걸려 완공된 성당이다. 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고딕 양식으로, 중세 톨레도의 언덕을 온통 뒤덮었던 이슬람 예술의 전통을 처음으로 타파한 것이다. 완성 후, 다른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양식으로 개수, 증축되었지만, 지금도 옛날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정교한 조각, 역대 주교들의 초상화, 엘 그레코의 작품으로 홍포를 입은 그리스도, 베드로의 참회 초상화, 12사도 초상화 등이 있고, 순금의 성체, 성경의 글자를 금으로 입힌 성경도 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하늘에서 내려와 돕고 있는 엘 그레코의 대표작 "오르가즈 백작의 죽음"은 세계 3대 명화 중의 하나라고 한다. 대성당 내부의 넓이 안길이 113m, 좌우 57m, 높이는 본당 중앙부가 30m이며, 기념비를 겸한 5개의 문이 유명하다. 대 제단 아래 상부에는 "최후의 만찬"을 상징하는 회색의 대리석 조각물들을 볼 수 있는데,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각도를 고려하여 만든 작품이다. 정말로 이 모든 것들을 인간이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정교하고 웅장함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 비사그라 문
가장 통행이 빈번한 곳이며, 북쪽은 광활한 평원지대와 연결되는 곳이다. 이 평원지대를 아랍 사람들은 '사그라(Sagra : 붉그레한)'라고 불렀는데 이는 이 지역의 땅이 붉은 색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 마드리드는(물이<좋은>고이는 곳, 아랍어)10세기경 톨레도(당시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무어인이 세운 성체에서부터 이루어졌다. 거리의 건물 1층은 상가이며, 식당가인데 저녁때면 본격적인 장사 시간이며 값은 비싼 편이다. 축구광이 많은 스페인 로얄 마드리드 11명의 몸값은 4~5천억이라고 한다. 이것이 구단 재산이다. 한 경기를 보는데 2~3만원이 보통이고, 좋은 경기는 5만에서 10만원한다. 회원권은 몹시 비싸고 사기 어렵다. VIP회원은 년 간 19경기를 볼 수 있는데 1년 회원권이 5억 정도란다. 그래서 보통 시민은 BAR에서 구경들을 한다.
*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 중 하나다. 15세기 이후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그림과 조각을 위한 전용 박물관으로 설립되었으며 5천개 이상의 그림과 2천개 이상의 판화, 천개 이상의 주화와 메달 그리고 2천 개 이상의 장식물과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조각상은 7백개 이상이 있다. 이탈리아와 에스파냐 그림이 많으며, 에스파냐 3대화가인 엘 그레코, 고야, 벨라스케스 작품을 자랑한다. 고야의 흑백시대의 그림들이 나에게는 진정한 감동을 주는 그림이었다,
* 메스키타는 가톨릭과 이슬람 문화가 혼합된 이슬람 사원이며, 기둥과 벽이 독특한 엄청난 규모로 한번에 2만 명의 신도가 예배를 보고, 종탑도 아름답고 정원의 귤나무가 탐스럽다. 그 크고 긴 성벽 울타리에 놀랄 뿐이다. 메스키타 사원은 785년에 아라비아 왕족 압 달라만 1세 때 처음 지어지기 시작되어 점차 확장되었고 1236년부터 기독교 교회로 사용되었으며 1523년에 사원건물 중앙에 성당이 세워졌단다. 당초 이 건물에는 천여 개의 대리석 기둥이 있었는데 성당으로 개조되면서 현재는 약 850개만 남아 있고. 그 중에는 여러 지방에서 가지고 온 기둥으로 재질이 다르고, 로마와 그리스 신전에서 온 것들로도 세워졌다고 한다. 16세기에 성당이 세워졌을 때 카를5세는 "당신들은 어디에도 없는 것을 부수고 어디에나 있는 것을 지었다"고 한탄하며 성직자들을 책망하였다고 한다. 성문을 통해 들어가면 기린처럼 큰 야자수와 오렌지 정원이 반긴다. 웅장한 종탑과 분수가 있는데 그 옆에는 일천 살이 되었다는 올리브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고, 오렌지 나무로 정원이 꾸며져 있다. 메스키타 사원을 나서면 바로 과달키비르 강과 만난다. 강은 로마 아우구스 황제 때 지은 로마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다리 끝 반대편에 칼라오라 탑이 파수꾼처럼 늠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예전엔 시내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했고 이슬람시대에 요새 용도로 지어졌단다. <게르니카>라는 피카소의 그림이 유명하다. 교민은 약 3천명이 산다. 인구는 25만,
* 그라나다로 이동, 그라나다는 "석류"라는 뜻이며. 지형이 석류의 모양과 흡사하단다. 711년 경 부터 스페인을 약8세기동안 다스렸던 이슬람 계통의 나사리 왕국의 최후 거점 지었다. 스페인 역사의 중심이 되는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이사벨여왕이 그라나다를 함락시킴으로 오늘날 스페인의 모습을 이루었다. 그라나다 시내는 3개의 언덕이 있는데 사비카 언덕에는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곳이며 알바이신 언덕은 이슬람교도의 마지막 도피처로 작은 골목길이 인상적이며 사크로몬테 언덕은 동굴 속에서 사는 집시들이 주점으로 개조되어, 관광객을 상대로 플라멩코를 보여 주며 집시의 땅이었다. 안드레서 세고비아의 출생지며 기타 곡으로 유명한 도시며, 음악 유학생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그라나다”라는 음악의 제목도 좋았지만, 또한 그 도시의 정보가 궁금하던 차에 이렇게 실지로 현재모습을 대하고 보니 정말로 기쁘다.
이곳 작은 광장에서는 밤 10시가 되면 조명 쇼가 펼쳐진다. 낯선 도시, 그라나다의 밤을 환하게 비춰주는 불빛에 젖어들다 보면, 플라멩코의 나라 스페인에 왔음이 실감난다.
* 세빌리아(세비야)는 안달루시아 주 수도로, 세빌리아의 이발사(로시니)로 유명하며 오페라 카르멘의 무대이고, 돈 주앙의 바람피운 장소로도 유명하다(카르멘과 이발사의 오페라 아리아를 좋아했던 차에 이렇게 맞나보니 감회가 깊다).
* 황금의 탑은 강 주변에 서있는데 빛나고 태양 빛에 눈부시게 반사 하는 모습에 찬란한 후광을 맛볼 수 있다. 거리에는 오렌지 나무가 우리나라 가로수 모양 자라고 있는데 주렁주렁 달린 열매는 먹을 수 없는 관상용이지만 그 빛과 태양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서 장관을 이룬다. 정면의 본관과 아치형으로 된 성의 모습이며 좌우 맨 끝의 종탑에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답다. 군데군데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멋있어 보인다. 그런 자연스러운 곳이다.
스페인 여행 중 휴게소에서도 당연이 쉬는 시간을 엄격이 지켜야 나중에 검사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기사가 운전할 때 피곤함을 방지하고 교통사고를 미연에 차단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란다. 그래서 우리 생각에는 필요 없는 시간도 꼭 쉬고 있어 좀 지루한 면도 있었다. 점심에는 이곳에 유명하다는 해물 찜 밥 <빠에야>가 있는데 우리나라 해물볶음 밥 같은 정도의 것이며, 밥을 쪄서 요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단, 짠맛이 강한 것이 특징. 스페인의 더위로 사람들이 땀을 많이 흘리기 때문에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이해하며, 독특한 맛도 그 나라의 문화라고 여긴다면 여행의 묘미는 배로 늘어날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을 먹지 못하고 가면 스페인의 여행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정도라면서. 점심은 이것뿐이라 들어 보라고 해서 먹고 보니 쌀은 덜 익은 듯 생선은 별로고, 홍합이 몇 개 들어있는 요리로 우리 일행들은 잘 못 먹고 다들 남겼고, 이상한 향료 탓도 더욱 더 그렇다. 식사를 하고 부두 가에 잠시 모여 있는 사이에 아내가 돌을 헛디뎌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여 주위사람들이 한동안 놀라는 일이 발생해 나도 당황했다. 늘 발로 걸어가는 여행인데 발목이 잘못 되였을 가보아서 걱정했는데 얼마 시간이 지나 다행히 별일 없이 걸을 수 있었다.
9월 20일 (8일차)
아침을 먹고 시내로 향한다. 오늘도 이곳의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위해서....
* 알함브라 궁전은 그라나다의 상징이자 이슬람 문화의 최고 걸작인, 이 궁전(일명 붉은 성)은 80만평의 크기의 성이다. 성안으로 들어가면서 특이한 구조와 세밀함이 있는 물로 이용한 그 많은 분수가 첫 눈에 와 닫는다. 그리고 궁전 밖의 정자가 너무 아름답게 꾸며졌으며, 잘 정돈된 나무숲과 분수에서 계속 뿜어내는 소리가 태양에 반사되어 나오는 그 빛깔은 형용색색으로 변하면서 이색적인 감을 준다. 감시탑에서는 전 시가지가 전부 잘 보였고, 당시 적을 감시하기에는 적당한 곳이었을 것이다. 오른쪽 것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며, 산등성이로 이어지면서 더욱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붉은 색의 흙벽돌과 잘 다듬어 지어지진 궁전 중앙에 위치한 기독교 궁전은 실내는 미완성이지만 들어가 보니 원형 경기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고 복도의 공간은 전시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왕과 왕비의 기거하던 곳은 여러 모양의 방들이 웅장하고 거대한 느낌을 주면서도, 다른 궁전에 비해 화사함은 없지만 소박하고 따스한 느낌을 주어 안락감을 준다. 성 밖에는 정원과 꽃, 분수가 잘 어우러져 정자 안을 더욱 화사하게 보인다. 13세기 그 이전부터 있었던 성채(알카사바)를 확장하면서 착수하여 1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알함브라 궁전은 크게 왕궁, 카를로스 5세 궁전, 알카사바, 헤네랄리페 정원 등 4개의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궁전이 오늘에 이르게 한 공(功)은 두 인물이 있는데 그중 한명은 미국인으로 ‘스케치북’의 작가 워싱턴 어빙이며, 다른 한명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한 스페인 작곡자 타레가의 공로가 아닌가 싶다. 이유인즉, 그리스도교들이 이 지역을 차지한 후 이슬람교도들의 이탈로 이 지역은 몰락하기 시작하였고, 그 후 약 200년간 관리가 소홀한 채로 방치되어 알함브라의 참상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이때 미국 스페인 주재공사이며 작가인 어빙이 이곳을 찾아 약3개월간 머물며 이곳에서 알함브라의 이야기를 집필하게 되었고 이것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스페인 정부도 이 궁전을 국가의 기념물로 복구하기 시작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된다. 스페인 정부도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이 궁전의 북쪽 가장 안쪽에 어빙이 책을 쓴 방을 어빙의 방이라고 부르며 보존하고 있다. 그 얼마 후, 이 궁전을 널리 세계 곳곳에 알려지게 한 다른 계기는 작곡자 타레가로, 그는 그의 제자 콘차 여인과 이곳을 방문하고 그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곳에서의 추억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곡속에 묻어 남기게 된다.
알함브라 궁전을 처음 여행 계획 당시는 알함브라 궁전에 대해 유럽의 다른 궁정과 같은 줄 알았는데, 막상 실질적인(예전엔 사진으로만 보았다) 관광 후 아람브라궁전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고, 크게 기대했던 톨레도 보다 훨씬 더한 감동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던 곳이라 본다.
알함브라 궁전의 여름별궁은 수로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수로에 비친 그림자의 모습까지 아름답기만 하다. 왕궁 어디를 가도 수로가 공존한다. 정원은 모두 수로로 연결되어 있고 이 수로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만년설이 녹은 물길을 끌어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하에서 솟아나는 수로의 비밀을 발견하지 못해 비밀이 풀리기 전까지는 불가사의로 여겨졌었다고 하며, 궁전 내 대사관의 방 천장은 마치 우주를 보는 뜻 한 착각이 들 정도로 온통 별들 모양 수를 놓아 그림으로 채색되어있다. 아벤세라헤스(그라나다 왕국의 유력한 귀족 가문, 왕국말기의 정쟁 때 모반을 의심받아 가문의 우두머리인 남자들이 모두 처형당했다. 살해현장이 궁전 안이었다 하며 지금도 아벤세라헤스의 방으로 남아 있다)의 방은 종유석 모양을 형상화 한 듯하고, 마치 동굴 안에 들어와 서있는 뜻한 감을 느낀다. 또한 방마다 설치된 무늬가 레이스인양 아름다운 선들의 모습과 기하학적 색상으로 이루어 저 인상적이다. 어빙의 방 옆을 지나면 건너편으로 알바이신 지역을 조망할 수 있다. 알바이신 지구는 옛날 아랍인들의 집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꼬불꼬불 골목길과 하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사이프러스(상록수로 높이가 45m까지 크다)나무와 건물들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제 알함브라 궁전 없는 그라나다는 생각할 수 없고, 그라나다의 보석인 알함브라 궁전을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1일 입장인원만 8,500명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매표소 앞 사이프러스나무 숲길이 시원한 모습에 색다른 풍경을 감상하며, 오랫동안 구경하고 다니는 것도 정말 힘든 일이여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고 아내와 같이 바위에 걸터앉는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올리브나무와 함께 4대 신성한 나무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곳 알함브라 궁전 및 헤네랄리페 정원 주변에 유난히 많다. 사이프러스 특징 중의 하나는 뿌리가 옆으로 퍼지지 않고 수직으로 내려가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왕궁이나, 묘지 인근에 많이 심었단다. 아무튼 아랍인들은 사이프러스나무를 무척 좋아했던 모양으로, 현대인인 우리가 보기에도 동양에서는 보기 드문 키 큰 신기한 나무로 여겨진다.
* 말라가는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로 지중해에 위치하고 있고. 이곳은 무어(moor 아랍인 스페인인, 베르베르인의 혼혈인 스페인계 이슬람교도. 오늘날 영어권에서는 Moor라는 표현은 모로코 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식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성곽과, 전통적인 엄청난 경관을 가지고 있는 파라도르 (스페인 숙박시설의 일종으로 스페인 고성을 개조하여 만든 특색 있는 숙소)가 매우 유명하며, 19세기 동안 말라가는 유럽인의 겨울 리조트로 매우 각광 받던 곳이었다. 겨울 내내 이곳에서는 야외 콘서트가 열리며 관광객들을 즐겁게 하는 이벤트가 계속 열린다. 피카소는 이 도시에서 태어난 가장 유명한 인물로 이곳에는 그의 작품을 전시한 다양한 갤러리가 있다. 메르세드 광장에 피카소의 생가가 있다. 안내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집안 곳곳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곳에는 피카소가 소년 시절에 쓴 편지와 일기, 그가 그린 만화가 보존되어 있다. 말라가는 197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비센트 알렉산드라로부터 “낙원의 도시여! 너는 하늘 아래와 물위와 또 하늘 사이에서 지배하는 자와 같아라.” 라는 찬양을 받은 곳이다.
* 말라가 시내 동쪽에 있는 알카사바 요새와 히브랄하로 성은 11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보존상태가 우수한 아랍의 유적이다. 이 성은 말라가의 가장 높은 언덕에 세워졌으며, 성벽에서 시작한 길을 따라 알카사바 요새와 연결되어있다.
그 바로 옆으로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이 위치하고 있고 주변에 푸른 숲으로 뒤덮인 언덕이 있는데 이곳에서 시내와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 플라맹고는 아랍어로 팔랑(농부)+맹고(이주자)로 아랍시대에 이베리아 반도로 이민 온 집시들의 한 매친 민속춤이다. 플라맹고를 옵션으로 보라고 하지만 사전에 나는 알고 관람을 하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은 보고 실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로 작은 소극장에서 하는 것만 못한 시설에 초라한 연기와 장소에 놀람을 참고, 1시간 30분의 지루한 시간과 돈만 허비했다고 씁쓸한 표정들이다. 헤네랄리페 정원관광. 아랍인들의 마을인 알바이신 지구 관망 후, 스페인 제3의 도시 오렌지 고장인 발렌시아로 이동했다.
* 바렌시아는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 주의 주도, 옛 발렌시아 왕국의 수도이며. 투리아강 어귀의 지중해 안에 있으며, 100개의 종탑 도시라고 불리고 있다. 가장 뛰어난 종탑은 미겔레테 탑(1381~1424), 산타카탈리나 탑(1688~1705)이다. 오늘날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휴가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며,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바렌시아로 가는 고속도로 변에 광대하게 펼쳐진 오렌지 농장은 한눈에도 광활하게 펼쳐진 농장으로 보인다. 버스길 저 건너편 토산에 보이는 토굴 속에서 아직도 집시 무리들이 기거한다고 한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라이벌 격인 스페인 발렌시아의 음악당이 있는데. 세계적인 지휘자인 로린마젤은 이 극장의 예술 감독을 맡았으며, 주빈 메타는 정기적인 음악 축제를 담당한다. 시내 아랍인의 마을을 돌아보고, 아담한 집들과 웅장한 성곽을 구경했다. 저녁에 일행 중 32년차의 처녀가 생일이라고 포도주를 한턱내서 많은 일행들이 즐겁게 먹었다.
9월 21일 (9일차)
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로 4시간 30분경이나 달려서 이동한다.
*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건물들이 옛 도시인 마드리드와는 전여 다른 도시 모습이다. 서유럽에서 본 파리 같은 건물과 거리가 눈앞에 전개된다. 특히 바르셀로나 최대의 번화가, 다양한 거리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람브라스 거리는 파리의 샹제리에 거리와 같을 정도로 호화롭다.
* 번화가인 람브라스 거리, 이곳에는 화가와 동양적의 무술, 기타 중국풍이 많이 가미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잠시 옛 중국풍을 접하게 된다. 길 양 편에는 다양한 기념품가게와 팬터마임 비슷한 모습으로 지나는 행인을 유혹하는 자세로 우리를 맞아주는 익살스러움도 볼 수 있다. 북쪽이라서 그런지 수목들의 종류가 다양하면서 울창한 산들을 접하게 된다.
* 올림픽 경기장 앞에서 난데없이 이곳 주민인 약 50대로 보이는 남성이 국부만 팬티 같이 페인팅 한 나체로 우리들 일행이 버스에서 내리는 동안 자신의 나신을 과시하며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모두들 놀라 어쩔 줄 모르고, 한편에서는 여자들이 놀라면서도 호기심 많게도 힐끔 힐끔 보면서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남녀노소를 막논 하고 이성간의 문제는 역시 동서를 떠나 화제인 것만은 당연한가 보다. 이것도 이국에서 처음 보는 하나에 즐거운 행사로 보아주면 된다. 가이드 자신은 몇 번이나 방문하였으나 이렇게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면서 좋은 구경을 했으니 30유로씩 내노라고 농담을 한다. 바르셀로나 시내 정경이 내려다보이는 몬쥬익 언덕, 이곳은 황영조 선수가 일본선수를 앞질러 따라 이긴 그 유명한 바로 그 장소인데 감회가 새롭게 기뻐지고 힘이 나는 곳이다, 이러한 장면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경기장 바로 앞에 우리나라 당시 경기도 지사와 이곳 바르셀로나 시장과의 친교 증거로 한글로 잘 새겨진 비석을 대하니 우리나라 남성의 권위가 돋 보인다.
* 구엘 공원은 바르셀로나 북쪽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도심에서 벗어난 언덕에 있는 조용한 공원이다. 원래는 에우세비 구엘이란 사람이 영국풍의 조용한 주택가를 조성하기 위하여 15hr의 돌산을 구입하여 스페인 최고의 건축가였던 가우디에게 설계를 의뢰하였으나, 1900년에 시작한 이 공사는 당시 교통 여건이나 수도시설 등 시대에 앞선 사업으로 계획했던 60여 채였는데, 그 중 2채 밖에 분양이 되지 않아 1914년 공사를 중단하고 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구엘 공원은 공원 안의 건축물 어디에서도 직선과 각을 찾아 볼 수 없다. 모두 둥글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진 건축물들이다. 가우디는 이 공원을 영국식 정원으로 또한 이상형 도시로 꾸미려고 했지만 자금 부족으로 30호 가량의 집과 공원의 일부만을 완성시킨 뒤 공사를 중단해야만 했다. 그 안에 가우디가 살았던 집도 있다. 공원 입구부터 향토색 돌과 구부러진 기둥으로 동화에서나 나오는 마귀나, 요정들이 등장하는 동굴과 행복한 모습의 색, 곡선을 이용한 색체가 강한 타일로 벤치(3백m)와 인형의 집 같은 아름다운 작은집, 상가를 과학적으로 만들어 물로 계속 이용하는 이 모든 것이 발상의 의도하는바가 신기할 뿐이다. 그리고 마치 피에로처럼 익살스럽고 장난기 어린 천진난만한 모습과 동화적인 어린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 것에 감동을 받았다. 구엘은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은행가 제비우스 구웰의 이름을 딴 것 이다. 공원 근처에 있는 미완성 성당을 보려고 간다.
* 천재 건축가 가우디(자유분방한 형태, 풍부한 색채와 질감, 유기적 통일성이 특징인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냈다)는 거의 평생을 바르셀로나와 그 근처에서 일했으며 최후의 작품 '성가족(聖家族) 교회'를 짓는 데 일생을 바쳤으나 이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건축은 자연을 이용하여 빛과 색감, 모든 것이 곡선으로 이루어져있다. 자연에는 직선이 존재치 않는다는 루소의 자연론에 영향을 받아 건축가, 수학자, 디자이너로서 시민적이면서 최고의 고집쟁이고, 완벽을 추구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43년 동안 성당교회를 짖기 위해 전념했다. 이 성당의 건축 진행을 보여줄 현지 가이드가 (정말 이곳에서만 수년간을 안내한 독보적인 한인교포 여성으로 특히 이북출신임을 강조하는 인물이 나타나) 우리를 안내한다. 기존의 교회 건물과는 다른 것으로 앞으로 몇 십 년은 더 지어야 할 것 같다는 안내인의 말이지만, 제자가 없었던 탓에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일행은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 파밀리아 성당은(가우디가 심혈을 기우렸던 성당)서쪽에는 현대적인 감각의 조각으로 성서를 기초로 만들었고 실내는 나무와 나뭇잎을 형상하여 만든 작품이 계속 이어지고 상층부에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의 곡선미는 정말 정교한 예술의 극치라 안이할 수 없다. 가우디는 그때마다, 생각해서 설계로 이어지는 창의력이 다분한 건축가였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장 큰 문인 파사드(건물의 정면)만 해도 3개나(탄생의 문, 수난의 문, 영광의 문)되어서 아직까지 완공까지는 200년이 훨씬 넘을 것으로 예견한다. 완공되었을 때의 규모도 엄청 날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도, 가로 150미터, 세로 60미터, 높이 170 미터로 추정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다 보인다. 지금도 연구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검토하며 수많은 건축사들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눈 여겨 보니 참 위대한 성과를 이루겠구나 하고 생각이 든다. 성당 건축비는 관광수입비로 충당하고 있는데, 지역 신문에 따르면 2004년에도 이 성당을 찾은 사람은 모두 226만 명으로, 프라도 미술관과 알람브라 궁전을 제치고 에스파냐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건축물이다. 나로서는 성당의 웅장함에는 거의 유럽에 있는 것들이 그러하지만, 이곳은 반듯이 찾아가 볼만하다고 생각이 든다. 이곳을 관람 후 이웃 상점에서 일행들이 이곳의 기념품을 사려고 한동안 혼잡을 이룬다.
9월 22일 (10일차)
연이은 고적들을 탐방하는 일도, 너무나 많은 건축물과 역사 속에 휘말려 얼을 잃을 지경이다. 또한 한 번에 거의 비슷한 성당들을 돌아보는 것은 무엇을 보았는지 아리숭 할 때도 있다. 또다시 일찍 일어나 다음 목표지에 가려고 버스에 올라탄다.
아라곤 왕국의 수도였던 사라고사로 이동,
* 사라고사로 이동 중 버스 옆자리에 눈을 감고 테너의 아리아를 듣고 있는 아내의 얼굴에서 피곤해 애처로운 듯한 모습이 스며들어, 벌서 흰 머리가 나온 세월에, 한편 측은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나와 맞나 어언 46년의 파란 많은 세월 속에 오늘 이렇게 스페인 여행 중에 서로의 마음을 잠시 나마 읽을 수 있는 현실에 감사 하면서도, 무엇인가 허전하고 완전히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을 느끼게 하는 마음 한 구석의 감정은 무엇 일까? 아내의 모습에서 아련한 마음을 느끼면서, 나 자신과 아내와의 지난날 허술한 점을 탓하며, 남은 시간을 얼마나 많은 애정을 담아주어야 할지 걱정이 된다, 즐거움을 같이 나누며. 더욱 더 세련된 행동의 모습과 아름다운 표현의 말들을 사용할 것을 잠시나마 느껴본다. 이런 것도 다 여행의 참 모습이리라.
* 필라르 성모성당(사라고사 대성당)이 있는 사라고사는 스페인의 5번째 대도시로 수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중간에 위치하여, 시내를 가로지르는 에브로(Ebro) 강가에 있는 필라르 성모성당은 화려하게 타일을 붙인 11개의 둥근 지붕으로 유명하다. 옛날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신앙을 전파하러 온 야곱에게 기둥을 전했다는 것에서 유래됐다. 성당 천장에는 이 도시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인 고야(F.Goya:1746~1828)의 천정화가 있다. 스페인 내전 때 이 성당을 뚫고 들어온 포탄 2개가 다행히 불발이 되었는데. 그때 불발된 포탄도 성당 한쪽 벽에 걸려 있었고, 또한 고야가 그린 프레스코화는 오늘날까지 무사히 보전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이한 일로 전하여 진다. 매 시간 마다 미사가 있어 넓은 성당 안에서는 엄숙한 마음으로 성당 안을 구경해야 한다. 성당 내부에 있는 성모상은 벤뚜라 로드리게스의 작품으로 빛나는 은과 꽃들 사이 기둥 위에 작은 성모상이 있다. 성당 한 쪽에 작은 보석 박물관에는, 역대 성당 주교들의 장신구, 18세기 귀족들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기증한 각종 보석들이 전시되어있다. 성모 대성당을 보고 정말 유럽에서는 대체로 많은 성당이 온통 마을을 점령하고 있으나 이곳 성당도 큰 목을 하는 훌륭한 성당이라고 생각이 든다.
저녁에 호텔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들 모여서 시내로 구경 간다고, 돈을 모아 택시로 가고 없어서, 우리 부부는 바로 옆 슈퍼에서 맥주를 사려고 갔더니 상상 이상으로 물건 값이 싸다. 즉 맥주 3개 한 상자에 0.48유로(816원 정도) 사서 즐겁게 아내와 마셨다. 내가 신혼부부에게 그 곳을 알려주었더니 정말로 싼 것을 많이 구입하였다고 다른 이에게 자랑하며, 안내를 한다.
9월 23일 (11일차)
호텔 조식 후, 천년의 고도 톨레도로 이동,
* 까떼드랄 대 성당은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이며 구시가지안에 있는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성당 안에 성물을 보았는데 그중에서 양피가죽으로 마든 성경책이 너무나 신기하였다. 13기초에 만들었다는 것이 가죽자체가 현재의 우리 종이와 같이 흰색을 발하고 있고, 거의 종이와 다름없이 느낌을 주는데 감탄했다. 그리고 이곳 시가지는 둘로 형성 되여 있는데, 산위에 있는 성으로 이루어진 구시가지고, 아래쪽에 펼쳐진 곳은 소위 신시가지로 분류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이곳은 신구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구시가지 성안에서 파는 여자화장품인 오일제품에, 많은 여자 일행들이 분비면서 여러 가지 상품을 사 간다. 일행 중에 미술관에서 촬영을 금지한다고 여러 번 주의를 주었으나 이를 어겨서 감시자에 욕을 먹으면서 퇴장 당하는 사건이 벌어져 자국민으로서 정말 망신스러움과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있었다.
가이드의 말씀이 오늘 점심은 잘 대접해 드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해준다는 것이 냉동한 것을 레인지에 여러 번 익혀 온 돈가스 모양의 소고기 가스를 주었는데 너무나 질겨서 일행들이 거의 못 먹고 다들 남기고 불평을 했다. 좀 이상한 짖을 가끔씩 하는 여행사의 메뉴 같다. 계속 하는 일을 이렇게 허술하게 해서는 다음 여행객에게 소문나선 안 될 덴데 어쩌나,.....
일행 중 30대 초반의 젊은 여행객은 우리들의 고생스럽던 과거역사를 잘 몰라서 그런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저축 없이 돈을 낭비하는 그런 생활태도에 약간 신경이 쓰여 앞날이 걱정되는 그런 면도 엿보인다.
중식 후 마드리드로 귀환하여 스페인 회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한다.
*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 중 하나다. 15세기 이후 스페인 왕실에서 수집한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림과 조각을 위한 전용 박물관으로 설립됐으며 5천개 이상의 그림과 2천개 이상의 판화, 천개 이상의 주화와 메달 그리고 2천 개 이상의 장식물과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조각상은 칠백개 이상이 있다. 이곳을 정신없이 과람하고, 5시에 교통 혼잡을 피하여 미리 공항으로 갔다. 마드리드공항에서 저녁 7시10분에 이륙하여 한국으로 갈 ke926편에 몸을 실었다.
앞으로 8~9시간의 비행을 어떻게 지낼까 하고 걱정이 앞서는 순간, 이국적인 얼굴 모습에 검정색 상하로 입은 여성이 짐칸에 무거운 짐을 힘겹게 올려 넣고는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눈인사를 하는데, 일본인 아니면 외국교포 같은 인상, 건강한 체격에 아름다움을 풍긴다. 그녀는 비행기에서 사용하는 목 베개에 공기를 넣어 정리하더니 그것을 내게 선뜻 주면서 “피곤할 때는 이것을 사용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라고 하면서 굳이 권하고, 자신은 방석 하나로 자리에 눕는 언행과 그 자태에, 피로에 지친 나 자신은 얼떨결에 고마운 마음씨를 말없이 받아주었다. 얼마 지나 그녀는 몹시 피곤한지 돌아눕길 하면서 여행에 지쳤는지 잠을 못 이루는 것을 보고, 나 자신도 미안하고 해서 베개를 돌려주는데 받는 태도도 가히 능숙하고 씩씩한 모습에 또 한 번 젊은이의 예절에 반갑기만 하다.<교양 있는 젊은이는 색다른 점이 있구나.>.
옆에 앉은 서양인과도 영어로 대화하는 것으로 보아 외국인 인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신문을 읽고 있어 물어보니 한국인이며 혼자 비즈니스 때문에 스페인의 전시회장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말하는 표정도 당당하며, 살짝 웃는 모습에 상큼하고 우아한 멋을 풍기는 여인이다.
잠시 후 옆자리 둘을 통해 담요를 두르고 누운 그 매력적인 태도, 건강하고 늘씬한 몸매에 더 한층 신선한 맛을 풍긴다. 자신의 일이지만, 이렇게 잠도 못자고 열심히 해외에서 일을 하고 조금이라도 우리 상품을 외국에 알리고 수출 하려는 모습에 감사할 뿐이다. 도착 후에도 같이 내려 걸으며, 짐을 찾고 나서 우리 부부에게 “여행의 진 맛을 알고 살아가시는 멋진 노부부로 보입니다.”라고 말 하면서 몹시 부러운 말투로 인사를 하기에, 우리 부부는 오히려 당신 같은 젊은 여인이 당당하게 일하는 모습이 오히려 부러울 뿐이라고 대응해 주었다. 인상이 밝은 그런 현대 여성들이 해외에서 자주 발 벗고 진출하면 우리나라 앞날이 밝아져 행복하고 장래가 든든한 마음이 든다. 잠시 여행의 여독을 풀어주는 한 장면이었다.
8시간의 비행 끝에 9월 24일 오후 2시 30분에 인천공항 도착했다.
스페인 여행에 느낀 점은 모스크 사원과 성당들이 도시 마다 너무 많아 구분 못할 정도로 구경했다는 것과 유적의 관광비 수입으로 국민들이 잘 살수 있다는 선조들의 은공을 현실적인 문제로 느꼈다.
그리고 요즈음 해외여행은 여성들(기혼과 미혼들 구분 없이)의 경제적 상황이 좋아져서 그런지 여성단독 여행자가 많다는 특징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