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에서 오래 살아 오면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을
찾아 가는 길이 그리 쉽지만은 않더군요
물어물어 가 본 동네가 바로 대동 산 1번지입니다
가쁜 숨 몰아 쉬며 배낭에서 카메라를 꺼내 스케치하려고 하는데
맞은편에 할머니 두 분이 그늘에 앉아 정담을 나누고 계십니다

길을 따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닙니다, 처음 온데다 골목길들이 거미줄같이 얽혀 있어
같은 길을 뱅뱅 돌기도 하고, 그래서 웃음도 나오고 한숨도 나오고^^

같은 곳을 3-4회 정도 가 보면 제법 길눈이 생깁니다
처음 갔을때 만큼 헤매지 않고, 또 가보지 못한 깊숙한 곳까지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골목 한켠에 세워진 자전거의 모습은 골목안 풍경에 빠질 수 없는 구성요소입니다^^

다 찍은 필름을 감고 있는데, 할머니와 두 손녀가 담장 아래 떨어져 있는
쪼꼬만 감들을 주워 공기 놀이를 합니다(그것도 바로 옆에 와서는..ㅋ^^)
아이들도 그렇지만 할머니가 더 즐거워 합니다
먼 옛날, 당신 어릴 적 소꼽놀이하던 시절이 생각나지는 않았을런지요?

골목 안으로 들어가 보면 길 옆에는 자전거가 서 있고, 담장 안팎으로는 빨래가 널려 있고,
볕 잘드는 길가 한 모퉁이에는 이처럼 조그만 화분들이 많이 놓여져 있습니다

지난번에 가 본 연탄 가게에는 동네 할머니 몇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인사를 드리고 몇마디 대화를 나눕니다
제일 안쪽에 계시는 분이 주인 할머니인데
저 보고 동네 없어지기 전에 사진을 많이 찍어
놓으라고 하시면서 인심좋은 웃음을 짓더군요~~
사진의 기록성에 대한 가치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어릴 적 부터 익숙한 낯 익은 풍경
그래서 낡고 오래 되었어도 포근하게 다가오는 이미지들
이런 곳에 가만히 서 있으면 코 흘리며 뛰노는 내 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거나
가끔씩 친구랑 치고 받고 싸운 뒤 울며 불며 집으로 돌아 오는길에
옹색한 내 모양새를 안스럽게, 바라 보던 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들의
애정 어린 눈길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마치, 싱그러운 봄 바람이 바지 가랑이 사이로 기어 올라와
내 몸을 간질거리게 하는 바로 그런 느낌입니다
세월은 흐르지 않았는데, 이미 내가 늙어 버린겁니다...흑

언뜻 보기에도 경사가 심한 언덕입니다. 계단이 많아서 그런지 더 가파르고
오르기가 만만치 않게 보입니다, 나인 든 노인분들에게는 수월치 않은 길이겠지요
사진의 소재로는 멋스러울지 몰라도 현실 속에서는 힘들고 고달픈 언덕 길입니다~~

이 사진을 보고 국산 렌즈에 대한 저의 생각이 마니 바뀌었습니다
물론 과거에도 호감이 있었지만(폴라 28mm2.8 렌즈는 일제 렌즈들과 충분히 견줄만 합니다)
저렴한 삼양 폴라 줌렌즈(28-105mm 3.5-4.5)는 제 기대 이상의 화질을 보여 주었습니다

노인분들이 주로 거주하는 이런 동네에 저런 아리따운 미인들의 모습은
이질적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너무나 고맙게 다가옵니다^^,
비록 화보 속 사진이지만 자꾸 눈길이 가고 걸음이 멈춰집니다
"청춘은 축복이요 여자는 은총인데, 축복과 은총을 넘보는
우리(중년 이상의 남자들)의 눈길을 추파라고 한다"
(나 역시 중 늘그니임에 틀림없는가보다.....orz...ㅋ으으)
그래도...
젊음은 새벽이슬처럼 잠깐이지만 향유하는 순간은 영원하답니다
(손철주 에세이/'꽃피는 삶에 홀리다'에서 인용함)

제주의 올레처럼 자기 집으로 이르는 길이 담으로만 둘러쌓여 있는 곳에는
으레히 화단을 조성하거나, 하다 못해 꽃이라도 몇 송이 심어 놓으려 하는 것은
우리네 소박한 백성들의 아름다운 심성이 아닐까 싶다

"저기 길 끝에, 밝은 빛이 환하게 웃으며 우릴 기다리고 있어!
미로처럼 얽힌 어둡고 힘든 우리네 인생도
뚜벅이 처럼 앞을 향해 걷다 보면, 밝게 빛날 날이 올거야~~
사진이 그렇게 말해 주잖니?"

누추하고 남루해 보이는 풍경에 자꾸 셔터가 눌러지는 걸 보면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아날로그식 낡은 인간인게 틀림없습니다^^

나리꽃이 피는걸 보니 6월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대전으로
돌아온지가 벌써 일년이 넘었습니다~~
쫌 있으면 궁남지 연못에 연꽃도 피겠지요

동네 꼬마 녀석들, 말 그대로 동네 야구를 합니다
공을 던지는 제일 큰 아이는 제법 투수폼이 나던데
두번째 만났을때는 날 보고 무척 공손하게 인사를 합니다
자기가 공 던지는 모습의 사진을 저에게 꼭 달라고 하던데
이런 사진을 주기가 너무나 민망합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망원으로 근사하게 찍어 놓을걸...(후회 막급입니다)
진우라는 이름의 예의 바른 친구입니다

키 작은 지붕 위에는 큰 장독과 함께 쬐만한 화분도 보이고
용도미상의 빈 우유병도 보이고...ㅎ

한 아주머니가 화분용 분무기를 들고, 꽃과 고추 모종 시들지 말라고 물을 뿌리며 다닙니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사진 찍으러 댕기기 힘들것네"
"... 머, 그래도 (사진 찍는) 재미 쏠쏠하고, 보람 되고 좋습니다...ㅎ"
'처미 밑의 까치 소리에 게으른 꿈을 깨고 보니
꿈 속에 고향 가던 길이 실낱처럼 또렷해라'
(운초 부용의 시 / 우중서회(雨中書懷) 부분인용 )
2009 봄과 여름의 경계선상에서 바라본 대전시 삼성동과 대동 일대
Minolta XD-5 / MC Rokkor 28mm 3.5
Pentax MG / Mir 1b 37mm 2.8
Pentax ME / 50mm 1.7
Pentax P50 / Polar 28-105mm 3.5-4.5
Texer Automat
Kalimar flex
Lomo LC-A
120 format / Fuji superia 100
135 format / Mitsbish MX 100, Fuji superia 200, Agfa Vista 400
P/S
지난번 올린 사진 댓글에 영란님이 대동과 3년간 인연이 있었다는 말씀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추측했었는데 이번에 3 번째로 대동지역을 답사한 결과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대동 오거리에서 지하철을 내려 7번 출구로 나와 산 쪽으로
쭈욱 걷다 보니 두 개의 학교가 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습니다
여학생들 특유의 재잘거리는 목소리와 깔깔대는 웃음 소리가 멀리서도 잘 들립니다
바로 대전 여고와 한밭 여중입니다
영란님이 아마 대전여고를 졸업했다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꽤나 명문이었습니다^^...ㅎ
첫댓글 님 덕분에 우리도 삼성동을 다녀왔어요. 한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사진에 대한 거부감도 그다지 크지 않더군요. 옛날의 그 활기는 다 어디가고 양지가 음지가 됐더군요. 대동은 그당시도 변두리였고요. 충남여중을 다녔는데 수세식 화장실이었는데 고등학교는 재래식이라서 끔찍했던 기억도 떠오르네요. 줄을 잘서야하는데~~~~~~
다녀 갔군요~~ 연락이 안와서 안 올줄 알았는데^^ 오실 줄 알았으면 얼굴이라도 볼껄 그랬습니다^^ 아뭏튼 영란님이 다니던 학교라 그런지 대동 일대도 좋았습니다
회원님들과 다녀왔어요.
날잡아서 대전을 답사하고픈 욕심?도 나네요. 언제가 될른지는 몰라도..........
대전에 오시면 연락 주셈~~촬영 가이드?는 물론, 따순 밥 한끼도 대접해 드리죠~~
고맙습니다^^
매력이 있는 사진입니다.... 한 번 가보고 싶군요.....
대전에도 그런 변두리가 있네요.깜짝놀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