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춘천마라톤은 세 번째 도전이다. 1년에 딱 한번 도전하는 것이다 보니 준비과정이 어렵고 체계적인 연습이 부족하다 싶어 9월부터 마라톤클럽에 가입하여 주1회 시민운동장 돌기를 했다. 나름대로 꾸준하게 연습을 한 것 같다. 400m트랙을 LSD로 10바뀌달리기-스트레칭-80%로 10바뀌 달리기를 1시간 30분 정도 하고 나면 기분좋은 즐런훈련이 된다. 직장의 업무 등으로 장거리 도로연습을 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지만 체력적으로는 충분해서 완주는 물론이고 기록향상도 살짝 기대해 보게 된다. 훈련과 휴식 식사조절 등 준비는 거의 된 듯하다. 10월 28일 새벽4시 상주를 출발하여 춘천 공지천으로 간다. 날씨가 살짝 걱정되기는 한다. 예보상으로는 12시쯤 비가 온다고 했지만 벌써 빗방울이 떨러진다. 기온도 상당히 내려가 살짝 추위가 느껴진다. 좀 달리다보면 괜찮겠지 싶지만 출발하기도 전에 비에 옷이 젖는 것도 문제이고 추위에 체온유지가 걱정되어 일행과 함께 우비를 하나씩 준비했다. 서너번 춘마에 참가하다보니 요령도 생긴다. 꼭 출발그룹에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 캠프근처에서 몸을 풀다 순서가 되면 그룹에 합류하면 되었다. 출발카운트와 함께 완주를 기대하며 춘마스타트~. 일단 완주가 목표이고 조금 더 욕심내면 언더5 하는 것으로 소박하게 정했다. 오늘 데뷔하는 그룹보다 한 발 앞서 달리기로 한다. 5km까지의 시내 언덕길은 이제 제법 익숙하여 워밍업하는 구간 정도로 생각하며 달려간다. 10km주자들이 돌아가고 이제 본격적으로 풀코스 도전이다. 의암댐을 지나고 춘마의 최고 아름다운 가을 경치구간을 즐기며 그야말로 나만의 즐런을 한다. 가야할 길이 멀기에 체력을 충분히 아끼고 후반에 더 속도를 낼 수 있을 정도로 페이스조절도 잘 하고 있다. 이렇게 여유있게 달리는 마라톤의 매력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의암댐을 지날 때 무릎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꼈다. 불길한 조짐과 함께.. 지난 달 장거리산행에서 막바지에 겪은 무릎통증이 생각난다. 걱정이 되면서도 달리다보면 통증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며 조심조심 페이스를 더 늦춰가며 달려본다. 의료요원이 제공하는 소염제도 잔뜩 발라보면서 괜찮아지겠지 주문을 외워본다. 같이 달리던 일행을 한 명 한 명 앞서 보내고 이제부터는 혼자만의 싸움이다. 오로지 무릎에만 집중하며 달리다보니 이전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 사색을 할 여유가 없는 것이 아쉽다. 체력적으로 지치는 것은 아니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15km쯤 지날 때 같이 온 후미 그룹의 데뷔넌트 2명이 다가와 같이 달리게 되었다. 반갑기도 하면서 과연 끝까지 같이 달릴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같이 달리는 친절한 훈련부장님이 끊임없이 완주에 대한 조언과 격려의 멘트를 보내준다. 마라톤 첫 도전자를 배려하는 페이스에 맞춰주니 나로서는 무척 고마웠다.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다리가 불편한 나만의 처지를 생각한 여러 가지 가정을 해 보니 머리속이 복잡하다. 그렇게 네 명이서 수많은 러너들을 앞으로 보내면서 우리의 페이스를 고집스레 지켜가면서 한걸음 한걸음 달려간다. 신매대교가 보인다. 나는 저 다리위에서 완주와 포기를 결정하리라 생각했다. 반환점을 되돌아 나오면 도전은 계속되는 것이고 그대로 직진하면 포기다. 신매대교 앞에는 초코파이와 음료가 잔뜩 준비되어 있다. 2시간여를 달리다보니 허기가 져서 연거푸 파이를 먹는다. 대교 건너편의 반환점까지 가면서 완주와 포기사이를 10번쯤은 고민한 것 같다. 반환을 돌아 나오면서도 과연 남은 20km 를 해낼 수 있을까 갈등했다. 페이스를 조금 더 줄이면 지금의 통증정도는 참고 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체력도 충분하고 남은 코스공략에 대한 전략도 나름 준비되어 있다. 이런 정도의 어려움에 굴복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대에도 어긋나고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다. 한편으론 후반부 20km의 어려움을 겪어본 경험으로는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신체적 피로감도 덜하고 에너지는 충분하나 과연 무릎이 견뎌낼 수 있을까, 무모한 객기부리다 한 번의 성공을 위해 다리가 완전히 망가지고 다시는 달리기를 못하는 건 아닌지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뚝심으로 정신력으로 극복할 문제가 아니다. 이번 도전이 모든 것을 걸 만큼 마지막은 아니리라 생각하며 어려운 결정을 하였다. 훈련부장과 첫도전자들의 무사완주를 기원하며 이번 도전을 멈추었다. 작별을 이야기하고 멀어지는 뒷모습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몇 걸음 더 따라가 보았으나 역시 이번 도전은 여기까지만 이라고 생각하고 멈춰선다. 여태 살아오면서 실패나 좌절을 많이 겪어보지 않았다는 걸 새삼 느껴본다. 그만큼 허전한 마음이 가슴깊이 파고든다. 더 슬픈 건 다리를 건너오니 진행 스탭이 다가와서 완주포기냐 묻길래 그렇다고 하니 배번침을 회수하겠단다. 그렇구나 하는 순간에 기록칩을 배번표에서 빼내어간다. 살며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찍 소리가 날 정도로 확 뜯어간다. 포기자의 상처입은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무 비참한 마음이 든다. 힘들었겠다는 위로나 걱정의 말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교 끝단의 회수차량들이 10대도 넘게 대기하고 있다. 전에는 나와 관계없이 스쳐가던 버스들이다. 물어보니 40분정도 후 출발한단다. 걸어가도 되겠다 싶어 버스를 지나친다. 출발점인 공지천으로 돌아가는 길에 춘천댐을 돌아오는 완주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연스레 합류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 지쳤고 기록칩도 이미 제거된 처지라 같이 달린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힘들어하는 완주자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로 옆으로 비켜서며 걷다가 달리기를 반복해본다. 체온이 내려 갈까봐 최대한 천천히 달리기도 해보지만 여전히 힘들다. 차라리 기다리더라도 버스를 이용할까 생각해본다. 조금 더 가니 37km 표지가 나온다. 아직 5km이상 남았으며. 1시간이상 이 이 추위에 걸어야 한다는 의미다. 대교로 되돌아 가서 회수버스를 이용하기로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마지막 남은 코스를 최선을 다해서 달리는 사람들에게서 이 세상의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리라는 결연한 표정들을 수없이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을 마주보며 되돌아 걷는 중도포기자가 겪어야 하는 이런 난감한 경험이 참 어색하다. 버스에 오르니 거의 만원이다. 포기자라는 약간 머쓱한 마음을 감추며 뒤쪽의 빈자리에 앉는다. 이 오묘한 기분이란.. 일단 차량이 따뜻해서 추위에 위축된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해준다. 같은 처지의 일행이 한 차 가득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기도 하고 서로에게 좀 어색한 미소지만 ‘괜찬아, 추위에 수고했어, 다음엔 잘 할거야’하며 위로해주는 듯해서 부끄러움이 희석되는 느낌이다. 출전만 하면 거의 완주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렇지 않은 세상의 이면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렇게 완주했을 때 이상의 많은 생각을 하며 춘천 버스투어를 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연을 가슴에 품은 러너들이 달린 이 길을 비오는 회송버스 속에서 사색하며 되돌아보는 것도 운치있는 춘마의 추억일 것이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을비에 젖은 의암호의 단풍이 새삼 아름답다.
실패한 수많은 사람들의 쓰라린 기록위에서 완주자의 성공이 돋보이는 것이리라. 너무 쉽게 성취하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수많은 포기자가 있기에 이를 극복한 완주자가 칭송받고 명예를 인정받는 듯하다. 차라리 지워버리고 싶은 오늘의 참담함 속에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는 지혜를 배우며 춘천마라톤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간다. 기록은 쉽게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무 쉽게 첫완주를 이룬 듯하여 이 기분을 이제야 느껴본다. 이전의 멋모르고 첫 완주를 달성한 나에게도 누군가 큰 격려와 축하를 보내주었으리라 생각하며 첫 입문하는 대회에서 보기드문 악천후에 최선을 다한 첫 완주자들에게 큰 축하를 보낸다. 2019년을 기약하며 춘마 파이팅. 배번 9499번 이석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