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과학자 코페르니쿠스의 무덤 앞 비석에는 그의 유언을 따라 이런 비문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나는 바울의 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나는 베드로의 능력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회개하는 강도에게 주셨던 은혜를 구합니다" 오늘 이 아침 우리 모두가 이런 은혜를 구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내 삶과 가정과 비전의 근거는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 기초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를 주십니다. 광야에서의 만나의 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늘 새로운 은혜를 갈망하는 개척자의 태도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어떤 새로운 은혜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본문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입술을 통하여 우리에게 현실에 안주해선 안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점령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은 많은 탈취물과 영토를 얻게 되었고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아직 남은 땅에 대한 도전이 아닌 얻은 것에 대한 누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망치는 때는 목표 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가 아니라 얻은 것에 지나치게 만족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을 때입니다.
유정옥 사모님의 책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속에서 자신의 친정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를 하나 합니다. “세 마리의 쥐가 있었단다. 한 마리는 하수구로 떠내려 오는 밥알이랑 음식물 찌꺼기를 건져 먹으며 살았지. 추운 겨울에 그것들을 더러운 물에서 건져 먹으려니 쥐의 털은 물에 젖어 꽁꽁 얼어붙었지. 그래도 그 쥐는 매일 달달달 떨면서 그곳에서만 살다가 죽었지. 다른 한 쥐는 온몸에 똥을 뒤집어쓰고는 냄새나는 똥통에서 똥 냄새를 풍기며 살았지. 또 다른 한 쥐는 쌀 곳간에 살았어. 사시사철 넘쳐나는 하얀 쌀을 마음껏 먹고 졸음이 오면 따뜻하고 깨끗한 쌀가마니 위에서 쿨쿨 늘어지게 잠을 잤단다. 얘야, 쥐가 다니는 길이 따로 정해져 있니?” 내가 말했다. “아니요.”“그래. 하수구에 살던 쥐가 곳간에 가면 절대로 안 된다고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하수구에 사는 쥐는 일평생 그 하수구를 떠나지 못한단다. 더러운 물에 떠내려 오는 밥 알갱이를 주워 먹지 못하면 배고파 죽을까 봐 그곳을 못 떠나고 달달달 떨면서 살다가 죽는 거야. 똥통에 있는 쥐도 마찬가지야.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견딜 수 없으면서도 그곳을 떠나지 못하지. 왜 못 떠나니?”“그 쥐도 그곳을 떠나면 죽을까 봐 겁나서요.”“그래. 언제라도 네가 있는 곳이 하수구 같거나 똥통같이 더럽고 냄새나는 곳이거든 다른 곳으로 가거라. 사람에게도 가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을 떠나면 금방 죽을 것 같아도 떠나라. 깨끗한 길을 계속 찾아 살거라. 깨끗한 길에서도 절대로 죽지 않는단다.”그렇죠. 사람은 익숙해지면 그것이 썩고 냄새가 나도 그곳을 떠나지 못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안주하고 있는 신앙의 자리는 어떤 모습입니까? 이만한 성경지식, 이만한 기도시간, 이만한 헌신이면 됐다고 안주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더 높은 목표를 정하십시오. 자신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말고 주님의 기대를 향하여 도전하십시오. 푯대를 향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달음질했던 바울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인생이 늘 도전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 우리가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주차장에서 한두번 경험한 낭패가 있습니다. 건물을 빠져 나오기 위해 출구에 섰는데 주차증을 두고 온 것입니다. 그후로는 늘 확인을 합니다. 확인하는 일은 시간낭비가 아니라 목적을 분명하게 만들고 시간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왜 여호수아는 이미 오래전에 정탐한 그 땅을 다시 정탐하게 만들었을까요? 지금까지 가나안 땅에서 여리고성을 정탐한 이후 정탐한 적이 없었는데 남은 땅을 정탐하게 만들었을까요? 이 정탐을 통해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살다보면 자신의 삶의 목적이 항상 분명하던가요? 아니죠. 때로는 불투명하고 때론 이게 아니다 싶지 않습니까? 그때 목표를 확인하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하단 말씀입니다. 월트 캘러스태드 목사님의 책 ‘당신의 꿈을 키우라’에서 목표에 대해 점검하기 위한 몇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목표를 위한 일을 즐기는가?(자발적인가?) 최선을 다하는가?(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집중하는가?)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인가?(어떤 비중, 가치를 갖는가?) 자신의 인생과 바꿀 수 있다고 믿는가?(목표의 가치)
본문안에서 하나님은 목표란 단순히 생각 그 자체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단순히 주어진 것을 수동적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가나안땅의 삶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하나님의 약속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그땅의 치열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우리의 노력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의 조상이 정탐했던 그 땅이 아닌 그들 자신에게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으로 그 땅을 새롭게 보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발로 그 땅을 밟아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프리티 우먼’이란 영화에서 리처드기어가 여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망설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차에서 내려 그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풀밭을 밟고 오가면 생각합니다. 그는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내려야 했기 때문에 맨발이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도 이제 남겨진 땅을 그들의 발로 밟아야 했습니다. 그땅을 밟으면서 그들은 이 기업이 하나님의 현실적인 약속임을 다시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은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위험을 무릎쓰지 않고서는 목표를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상식적으로 가나안족속이 유대인들에 대한 태도가 어땠을까요? 매튜헨리 주석은 이때 가나안인들의 심리적인 상태를 새끼를 빼앗긴 곰과 같았다고 묘사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은 분노와 치밀어 오르는 화에 사로잡혀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이 정탐이 결코 편안하고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적들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는 일에는 무엇보다 믿음의 용기가 요구되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일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자신안의 안정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고 도전정신으로 그 자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안전하게 실로의 여호와 앞에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또는 그들의 할 일을 포기하고 중도에 도망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안전하게 그들에게 주어진 일을 다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적진 한 가운데를 헤집고 다녔지만 적들은 그들을 해칠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편23:4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그들은 언제 공격을 받아 죽을지 모르는 가나안 땅을 밟고 다녔지만 하나님의 지키심이 있었기에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고 있는 사람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는 일이 때로는 모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조항권 목사, 아프리카 수단 보마사역>. 미국으로 떠나며 그는 염려하는 대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결코 맛볼 수 없는 평안입니다.
다음으로는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정상에서 만납시다란 책으로 유명한 최고의 동기부여가라고 알려진 지그 지글러는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책에서 ‘목표를 수립하고 그것을 종이에 옮기라’고 충고합니다. 그 순간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3%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계획 즉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남은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내면서 특별한 요구를 한가지 합니다. 6절에 ‘그 땅을 일곱 부분으로 그려서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민수기 13:2절 여호수아 자신이 모세로부터 가나안 정탐의 명령을 받았을 때는 없었던 요청이었습니다. 왜 여호수아는 그림을 그리라고 요구했을까요? 카타브라는 이 단어는 신명기 6:9장에서 사용되었는데,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이 말의 의미는 새기라는 것입니다. 새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목표를 향해서 그림을 그림으로서 목표를 잊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시각적인 효과를 통해서 이스라엘이 목표를 향해 더 진진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SMI의 창업자이며 30대에 백만장자가 된 폴 마이어는
연초에 자기 회사 사원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가장 원하는 소원이 무엇인가를 쓰라고 합니다. 일부 직원들은 소원을 종이에 쓴다고 뭐가 이루어지느냐고 비웃으며 쓰지 않았지만 소원을 쓴 직원들에게는 그 종이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날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그 목표를 향해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고 격려했습니다.
때때로 그는 소원종이를 기억하게 하고, 도전하도록 용기를 주었습니다. 3년후 종이에 목표를 썼던 사람들 중 80% 이상이 자신들의 소원을 이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새기십시오. 그것을 입으로 고백하고 눈으로 보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남겨진 기업을 그려온 사람들은 그 땅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 누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에 대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책을 펴는 순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새롭게 확인하고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목표에 대한 그림이 있습니까? 그 그림이 당신의 삶 전체가 그 꿈을 향해서 노력하도록 만드는 도구로 쓰이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에 꿈을 꾸었습니다. 형들이 그에게 절하고, 심지어 그의 부모도 그 앞에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그림(이미지)을 그의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그 그림 때문에 그는 자신의 삶을 절제할 수 있었고, 그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자신의 삶을 마구 내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소중한 꿈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노예로 팔렸어도 낙망하지 않았고, 여인의 유혹을 받았을 때는 유혹을 떨쳐버렸으며, 기약없이 감옥에 갇혔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꿈은 그를 어둠속에서 인도하는 등불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꿈과 목표의 실현을 위해서 자주 그림을 그리십시오. 의사가 되어 수술하는 그림/ 목사가 되어 설교하는 그림/ 선생님이 되어 교단에 서는 그림/ 운동선수로서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그림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찰리 패독이라는 유명한 육상 선수가 제시 오웬즈가 다니던 고등학교를 찾아와 강연을 했습니다. “이 가운데 미래의 올림픽 챔피언이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목표를 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라”강연이 끝난 후 깡 마르고 다리만 긴 제시가 그를 찾아가 “당신과 같은 최고의 달리기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고, 챨리 패독은 그를 격려해주었습니다. 제시는 용기를 갖게 되었고 자신의 코치에게 “나는 꿈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죠. 코치는 제시를 보며 "너의 꿈이 뭔데?" "나는 찰리 패독처럼 되고 싶어요." "제시야, 꿈을 가지는 것은 훌륭하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꿈에다 사닥다리를 놓아야 해. 사닥다리의 첫 번째 단은 인내이며, 두 번째 단은 헌신이고, 세 번째 단은 훈련이며, 네 번째 단은 태도란다." 그후 제시는 1936년 히틀러가 백인의 우월성을 자랑하기 위해 연 올림픽에서 100미터와 200미터에서 세계 기록을 세우며 모두 4개의 금메달을 따 히틀러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기 위한 모험에 도전하십시오. 목표를 새김으로 구체화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