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번에 아프간 피랍사태를 보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런 일이 또 다시 발생하는 것을 미리 막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반성하고 고쳐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이 글을 통해 생각해 보고 있다. 사태가 발생하기 약 1개월쯤 전의 일이다. 대학로의 한 불고기집에서 한 잡지사의 기자와 함께 식사를 겸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긴 시간의 인터뷰와 식사가 끝난 후 그 기자가 사적인 질문임을 전제로 물었다.
“저와 친한 어떤 분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단기선교를 떠날 계획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뭘 어떻게 생각해요?” “걱정되서 그래요” “선교에 있어서 안전이 최우선적 고려 사항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안전만 생각한다면 안가는 것이 좋습니다.”
피랍사태가 발생한 직후 그 기자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 피랍팀이 바로 그팀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네 사람이 피랍자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직장 동료들이란다. 필자는 비록 간접적인 경로이기는 하지만 안전만을 고려하면 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러나 필자의 진단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효력을 미치지 못한다. 직접 물어온 것이 아니니 그렇고, 파견단체의 명의로 물어온 것이 아닌 개인 차원의 질문이니 그렇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자의 답변과 진단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데이터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다. 각종 통계와 관련 보도 내용을 종합한 진단일 뿐 필자가 아프가니스탄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으니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여러 해에 걸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던, 그리고 해마다 봉사단을 보내고 있던 쪽에서 보면 필자의 이야기는 현장감도 현실감도 없는 탁상공론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필자뿐이 아니다. 한국선교연구원(KRIM)도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들을 대상으로 선교여행권장국가와 반대국가를 분류하는 작업을 해 그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발표를 보면 아프가니스탄은 선교여행에 가장 부적합한 최하 등급을 받고 있다.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듯이다. 그러나 이 역시 현장에서 몇 년째 사역을 펼치고 있고, 단기팀도 해마다 파송하고 있는 엄연한 실적을 가지고 있는 한민족복지재단이나 분당샘물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여지껏 아무 일이 없었는데 뭐가 위험하다는 말이냐?”라고 반문했을 법하다.
또 정부 역시 아프가니스탄을 여행 제한국가로 묶어두고 한국인들의 아프간입국을 자제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었지만, 이번 봉사단원들은 그 입국을 자제해 줄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현판을 배경으로 사진까지 찍는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에서도 보듯이 그들의 풍부한 경험은 정부의 경고를 흘려듣지는 않았을지라도 아주 진지하게 고려하지는 않게 만든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현상을 종합해 볼 때 경험은 두 가지 속성이 있다. 첫째로 경험은 데이터를 무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미 아프가니스탄은 한민족복지재단 말고도 여러 NGO, 선교지향적인 NGO, 선교사 등이 상주해서 활동하고 있고, 교민까지 치면 상주인구가 200 명이 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분당샘물교회는 해마다 단기팀을 파송해 왔고, 이 교회가 아니더라도 해마다 약 2-30 팀의 단기팀이 들어왔다가 아무런 안전사고 없이 떠난 경험이 있다. 반면 KRIM이나 필자나 외교통상부의 판단은 경험보다는 각종통계와 보도, 그리고 직간접적으로 입수되는 정보에 의거한 판단이다. 경험이 풍부한 사람은 이러한 데이터에 의거한 판단을 탁상공론이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을 수 밖에 없다.
경험의 두 번째 속성은 안전불감증에 걸리게 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그리고 매번 아무 일이 없었다면 자연히 처음 가졌던 경계심이 풀리고 안전 문제에 어느 정도 자신을 갖게 되고, 이러한 자신이 방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러나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루에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는 자동차는 수십만 대가 넘는다. 그러나 하루에 발생하는 교통사고 건수는 불과 몇 건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만일의 경우”도 아니고 “십만의 일의 경우”이다. “만일의 경우”란 문자 그대로 하면 1만 번에 한번을 뜻한다. 그러나 수십만대 가운데 몇 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만일의 경우”가 아니라 “십만일의 경우”도 안되는 확률이다. 그러나 그 확률로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교통사고 발생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분류되고 있고, 운전자들은 십만분의 일의 확률 안에 들어가는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요약하여 다시 정리하면 경험은 정보를 무시하게 만드는 약점이 있고, 정보는 현실감이 없다는 약점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경험을 고스란이 정보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양질의 공신력 있는 정보를 생산하여 제시함으로 하여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 정보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공신력을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선교정보기관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교기관은 크고 작은 것을 다 모으면 약 200개쯤 되는 것 같은데 이처럼 많은 선교기관과 그곳에 속한 수많은 사역자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사역의 전략과 방향을 제시해 줄 선교정보기관은 변변하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필자는 몇몇 선교기관들을 방문해 본바 있고, 각 기관마다 자료실, 혹은 정보실이라는 방을 따로 만들어 놓고 있기는 하지만 빈약한 비디오 자료나, 책 몇십권 혹은 몇 백권을 비치해 놓고, 대출대장에 기록하고 빌려주는 정도였지, 꾸준히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조직도 못봤고 전문인력도 없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충분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전문가들에 의해 정리된 정보를 날카롭게 분석할 수 있어야만, 각 지역별로, 국가별로, 권역별로 효율적인 선교전략와 방법을 제대로 개발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틈만 나면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에는 선교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관이 제대로 서 있지도 않다. 또 메이저 교단이나 대교회들이 선교사들을 파송하는데는 열심이지만 파송된 선교사들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이를 위해서 제공해 줄 만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활동을 별도로 벌이는 경우를 보지는 못했다.
또 크고 작은 신학대학교에 설치된 선교대학원에서 배출되는 수많은 석박사들 가운데 선교정보학을 연구해서 학위를 취득한 선교정보학자가 거의 없는 것 같다. 필자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선교사, 선교학 석박사는 많았지만, 선교정보학자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현상 역시 우리나라의 선교정보사역이 초보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 기관만 찾아가면 선교에 관한 모든 전략과 정보를 다 찾을 수 있다." "그 기관의 자료만 있으면 선교준비는 절반은 끝난 것이다."라고 할 수 있는, 그래서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전세계의 선교사들과 선교기관들이 다 한번씩은 찾아오고 벤치마킹할 수 있는 그런 선교정보기관 한번 만들어 보자. 명색이 세계선교사 파송 2위, 3위 국가라면 그정도 기관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하지 않는냐 그말이다. 그것이 오늘도 내가 꾸고 있는 꿈이고, 기도제목이기도 하다.
작은 구멍가게 시절에는 그저 흘러다니는 뜬소문만 정신차리고 들으면 된다. 그러나 그 가게가 점점 커져서 백화점이 되고, 다른 기업을 또 창업하고 인수하여 대규모의 재벌 그룹이 되면 그룹산하에 정보를 전담하며 각 일선의 영업과 생산조직에 필요한 정보를 적기에 공급해 주는 조직이 꼭 필요하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삼성그룹의 정보력이 국정원보다 낫다는 소문도 있지 않은가?
동네 통반장이라면 모르되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 각부 장관을 거느리고 국정을 수행하려면 국정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여 각 기관에 전파해주는 우리 나라의 국가정보원이나 미국의 CIA 같은 기구가 꼭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 나라 선교는 이미 구멍가게 수준을 넘어 섰다. 세계 2위의 선교대국 아닌가? 수만 명의 선교사들을 해외에 보내놓고 그들의 사역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여 전달해 줄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은 커녕 초보적인 시스템 조차 갖추지 못한 것은 진정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은 선교정보사역의 필요성을 강하게 일깨워 준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