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오면서 비겁한 적이 많았습니다.
순간의 수치와 부끄러움과 책망과 눈총을 피하기 위해
군중 속에 섞여 힘없고 죄없는 소수의 약자를
비웃고 조롱하고 깔보고 괴롭힌 적도 있습니다.
비겁하고 졸렬하게 살아왔고 떳떳하지 않으니
그래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 안되는 줄도 알고 있습니다.
무척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저는 충청도하고도 전기도 안들어오고 자동차도 안다니고
봄이면 먹을 게 없어 풀을 뜯거나 소나무 껍질벗겨먹고
여름밤이면 귀신우는 소리를 듣고 한줌 손에 담을 듯 별이 쏟아지고
가을에는 겨울에 먹을 풀뜯어 말리고
겨울이면 삵쾡이 울부짖는 소리가 늘상 들리는
시골하고도 깡촌하고도 범벅골이라는 데 살았습니다.
지금생각하면 도무지 연상이 안되는 곳이었고 시절이었지요.
저희 집에서 2~300미터 외떨어진 곳에 너구리가 들어 살 듯한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이 있었고 누군가가 살다가 이사간다고
버리고 간 집이었습니다.
그곳에 초등학교 2학년인 여자아이와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남자아이 둘이 있었는데 언젠가 같이 살던 부모는 아이들을 두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때도 그랬습니다.
집이 워낙 가난한 사람들은 아이를 자식없는 집에 주고 밥이나 빌어먹던지
아이들이 죽던말던 어딘가에 내버려두고 나가버리거나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지금도 한국의 시골에 가면 여전합니다.
기가막힌 현실이지요.
그때,
먹을 게 없던 그아이들은 굶다굶다 못해
초등학교 2학년인 누나가 이집저집으로
밥을 얻어다가 동생들을 먹였습니다.
착하고 좋은 누나였던 듯합니다.
그런데 짓궂은 동네아이들이
그아이들을 무척 괴롭혔습니다.
거지들이 산다며 그아이들이 사는 집에
돌을 던지고 소리지르고 때린다고 위협하고
더럽다고 다른데로 가라하고...
그때 누나되는 아이가 말했습니다.
"애들아~
우리 부모님들은 어디론가 돈벌러 가셔서
돈많이 벌면 우리를 데리러 오실거야.
그때 다른데로 이사갈거니까
너희들이 우리를 괴롭히지 말아줄래?"
무척 착하고 동생들을 사랑하고 인정이 많은
여자아이였습니다.
그런데도 동네아이들을 그아이들을 괴롭혔습니다.
어느날이었습니다.
저는 동네아이들과 무리를 지어
그아이들을 괴롭히러 그집에 갔습니다.
그집에 누나는 없고 남자아이 두명이 있었고
이때다 싶어 그집에 돌은 던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두 남자아이가 서로 엉켜붙으며
무서워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 불쌍하면서도 한편으로 재미있어서
더더욱 크게 소리지르고 그아이들이 괴로와 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후로는 그러지 않았지만,
어느날 그아이들은 동네에서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어디론가 이사를 갔거나 누가 데려갔거나...
그집앞을 지나면 늘 궁금했고
혹시나 다시오지 않았을까 몰래 들여다 보기도 했으나
몇년을 두고두고 그집은 빈집이었고 버려진 채였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2학년인 아이들 누나의 간곡한 부탁과
두남자 아이의 무섭다며 울고불고 벌벌 떠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제의 일처럼~~
그때 했던 저의 행동이 너무도 미안하고 마음아파서
그 아이들에게 사과를 해야하는데 평생 그렇게 할 기회를 잃었으니
또한 평생의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후로 무슨 일이있어도
불쌍하고 힘없는 사람을 놀리고 조롱하고 괴롭히는
비겁하고 비열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비겁한 저의 행동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4년 전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아버님은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고
사회적인 배경도 없이 별볼일 없는 분이었습니다.
시쳇말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놀림받고 왕따당하던 분입니다.
평생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못배우고 가난하고 빽없어서 주변사람들에게
친척들에게 심지어는 친형제들에게서 조차
멸시당하며 사셨습니다.
게다가 그리 똑똑한 편도 아니어서 어딜가든
꿔다놓은 보리짝이고 개밥의 도토리였고
냄새나는 썩은 생선이었습니다.
그렇게 사신 아버님은 평생 단 한마디만 하셨습니다.
"비겁하게 살지 마라."
젊은 시절,
아버님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전투경찰로서
무장공비 토벌에 끌려다니셨고
한국전쟁 때는 전쟁이 끝나던 날까지 전쟁을 치루셨습니다.
한번은 전투를 치루셨는데
부대원이 몽땅죽고 아버님과 다른 한분만 살아남으셨고
고향에서는 전사했다는 연락이 와서
해마다 아버님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은 훈장은 커녕 군번도 없고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이나 혜택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평생 가난하면서 무능하게 사셨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언제나 바르고 정직하셨습니다.
그모습을 닮지 못한 저는 비겁한 일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평생 씻지못할 비겁함이었는 지도 모릅니다.
오늘 무척 마음아픈 일을 보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우리가 전혀 알지못하는 사람이
우리가 전혀 알지못하는 또다른 사람에게
무고하게 난도질당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사람의 가족이 난도질당하는 일도 보았고
일부사람들이 그 난도질에 동참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난, 몰라'하며 뒷걸음질쳐 내빼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자기일이 아니고 손해볼 일이 아니라고
모르는 남이라고 함부로 상처주는 일을 하고도
안그런 척, 뒤로 빠지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난도질당한 사람과
그 가족들의 참혹한 심경과 죽고싶은 심정을
어느누구도 감당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사람의 실명과 직업과 주소와 가족의 이름을
상세히 올려놓고 망신주고 생계를 끊고
한 가족을 난장판으로 만든 사람조차도
자신이 누구인지 한마디 언급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난도질당한 사람과 그 가족들의
갈갈이 찢긴 마음과 죽고싶은 심정과 치욕스러움은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한번 인터넷에 올려진 어떤 특정인의 모든 상황은
그 내용을 읽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다수의 불특정인들을 이용해
누군가를 망신주고 피해주고 심하게는 자살하고픈 충동도 유발합니다.
그것이 인터넷 상의 악플이지요.
그런 황당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심경은 어떠할까요?
인터넷으로 고발할 일은 필요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특정한 누군가를 논할 때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고민에 고민을 해서
불특정 다수에 의해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합니다.
정말 용서받지 못할 사깃군이고 증거가 확실한 범죄자라면
법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인권도 존중해주고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도 하늘아래에서
숨쉬고 법먹고 살고 인간답게 살 천부적 인권이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날고 긴들 우리는 그래봐야 하늘 아래에서 인간일 뿐입니다.
첫댓글 항상 제 마음속의 부족함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괜시리 맘 짠해지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동감합니다. 악풀이 개인적인 인격침해를위한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당연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죠 그런 용도의 악풀은 아마 다수에의해 정리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소심한 시민이 불의를보고 눈을 돌리는거보다 익명으로 알려주는것은 소시민의 양심적 실천이라고생각합니다. 한국의 "노라조"라는 보컬이있는데 악풀에 대응하는것을 보면 건전한 정신이라면 굳이 악풀에 시달리지않을까생각합니다 더 큰 문제는 불의를보고 입을 다무는 절대 다수의 소시민이 아니겠는지요.. 그것이 악풀인지, 댓글인지는 인터넷 이용자가 판명하리라 생각합니다 말씀대로 당연히 조심해야죠... 기본은 지키는 문명인이되어야죠
진솔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정말로 아쉬운것이, 아프고 슬픈일은 덮어주고 감싸주어 작게 만들어주고, 기쁘고 즐거운 일은 동참하고 복돋아주어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정말 좋은 격언이 있으면서도 요새는 그러한 상황이 아닌것에 정말 힘이 빠질때가 많습니다. 시골버스님께서 이야기 하신것처럼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을수도 있다는것 항상 명심하면서 지냈으면 합니다.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아무사심없이 쓴 제 댓글에 쪽지를 장황하게 마구마구 함부로 해 대는 말로 써서 보냈더라구요. 어쨌든 문제 발단이 제 댓글이어서 죄송하다고 하지만 오해니 푸시라는 글을 보냈는데 아무 대꾸도 없었습니다. 진짜 아무리 얼굴 안보고 쓰는 글들이라도 그렇지 참 예의가 없고 너무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상식이 통할 수 있는 인터넷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크롤 압박.. 넘 길어서 패스..
글솜씨가 대단하세요. 쏙쏙 와 닫네요. ^^
얼굴 안보인다고 가면 뒤에 숨어 악글 악플을 다는 인간들 많이 있어 인터넷 전체를 욕먹이는 인간들이 많습니다. 글을 쓰고 댓글을 달때는 한번씩 생각하고 글을 쓰야 타인 감정 안건드리게 됩니다.
자기 목적달성을 위해 틈을 찾고 권리주장 목청을 있는 소리 높이높이 외치면서 정작 최소 자기 의무는 자기랑 아무 상관없다며 내팽개치고 마는... 아니면 말고식 빠지는 누군지도 모르게 하는 사람...이기적 사람들 넘 많습니다. 인터넷에서 이런일을 종종 대하면서 씁쓸할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시골버스님의 글에서 좋은 교훈을 많이 배우고 얻고 늘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맨 처음 인터넷에 글 올렸는데 댓글이 하도 말도 안되서... 대꾸해주자니 너무 수준이 안되는 사람인 듯 싶어 말았습니다... 그리고 생긴 제 습관이 내 글에 달린 댓글 안 보기에요....좀 서글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