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순아, 어디 있니?" "누구 반순이 본 사람 있나요?"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 신화'를 창조, "대~한민국"의 폭발적인 함성이 전국을 뒤덮고 있던 지난달 하순 지리산에선 "반순아, 어디 있니?" "누구 반순이 본 사람 없나요?"라는 메아리 없는 외침이 안타깝게 쏟아졌다. '반순'은 지난해 9월 지리산에 방사된 반달곰 4마리 가운데 마지막 암컷이었다. 지난해 10월에 암컷인 '막내'가 자연 적응에 실패, 회수된데 뒤이어 수컷 2마리와 함께 동면에 들어갔던 암컷 '반순'이 전파발신기만 남긴 채 사라진 것이다.
국립환경연구원은 수컷 두 마리와 함께 동면에 들어간 것으로 알았던 '반순'이가 전파발신기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생존 증거를 찾을 수 없어 수색작업을 한 끝에 낫 등 예리한 도구로 끊어진 전파발신기만 회수했다. 동 연구원은 6월27일 '반순'이가 사라져 죽은 것으로 발표했다. 환경연구원은 수컷들과는 따로 떨어져 생활해 온 '반순'이가 먹이를 찾아헤매다 동면 직전에 아사한 것으로 추정했다. "숨지거나 탈진한 반순을 누군가가 전파발신기를 끊고 웅담 채취를 위해 사체를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반순'이는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밀렵꾼에 의해 희생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한다. 반달곰 쓸개 웅담은 최고 3억원까지 호가하니 이를 노린 밀렵꾼의 짓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곰은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개만큼이나 흔한 동물이었다. 현재 중국에는 2만마리, 일본에는 1만마리나 서식한다. 하지만 곰의 쓸개 웅담을 만병통치약으로 착각하는 한국에선 70년대 이래 곰이 자취를 감추었다. 2000년 11월 진주 MBC의 카메라에 반달곰이 포착된 지리산에는 5~8마리의 야생 반달곰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 반달곰도 자체 생존력을 이미 상실했으며, 앞으로 20년 이상 생존할 가능성은 50%밖에 안 된다는 것이 서울대 이항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지난 5월23일 현재까지 수집된 반달곰 자료를 바탕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분석한 결과 100년 안에 멸종할 확률이 97%에 이른다고 밝혔다. 밀렵만 완전히 막을 수 있어도 생존확률은 70%로 증가하지만, 이것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지리산에 야생하는 반달가슴곰은 근친 번식으로 인해 새끼 출산율도 낮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도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국립환경연구원이 지난해 9월8일 새끼 반달곰 4마리를 방사한 것도 멸종위기에 처한 지리산 반달곰 개체수를 증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장군', '반돌', '반순', '막내'의 네 새끼곰은 2001년 1월에 태어났다. 어미곰이 겨울잠을 자는 시기여서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이들의 몸무게는 400~500그램에 불과했다. 이들은 4개월만에 야생적응훈련에 들어갔다. 특히 '반순'은 뱀에게 호기심을 갖고 접근했다가 얼굴을 물려 얼굴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야생 적응을 위해 응급조처도 하지 않았지만 곧 정상을 찾았다.
'반순'이 등이 태어나 지리산 방사훈련장에 옮겨지고 야생적응 훈련을 거쳐 방사되어 동면에 들어가기까지의 1년여에 걸친 전과정은 지난 2월11, 12일 SBS 설날 특집 다큐 '자연으로 돌아간 반달가슴곰'으로 생생하게 소개가 되었다. 이와 별도로 MBC는 지난 1월3일 신년특별기획 다큐멘터리로 '지리산 반달가슴곰'을 내보냈다. 진주MBC 김석창PD가 3년동안 끈질기게 추적한 반달가슴곰을 마침내 몰래카메라에 담아내는 전과정을 보여주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사례를 들어 반달곰의 복원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리산에 방사된 새끼 반달곰 네마리 가운데 '막내'는 야생 적응에 실패, 등산객을 좇아 되돌아왔고, '반순'은 전파발신기만 남기고 사라지고 말았다. 국립환경연구원의 추정대로 '반순'은 불귀의 객이 된 모양이다. 문제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환경연구원은 현재 5~8마리로 추정되는 지리산 반달곰 개체수를 2011년까지 50마리 수준으로 복원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또 기존 서식 야생곰 보호를 위해 출입통제구역을 현재의 106㎢에서 159㎢로 늘리고 단속과 감시활동도 강화한다는 것이다.
반달가슴곰 보호를 위한 환경부의 의지는 아주 확고하다. 앞으로 반달가슴곰을 잡거나 거래하면 최고 30억원의 과징금을 물릴 것이라고 한다. 환경부는 생물자원의 보호와 관리를 강화하고 야생동물의 밀렵과 밀거래를 뿌리뽑기 위해 자연환경보존법과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을 통합한 야생동물보호법 제정을 추진해 왔는데, 올 연말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달곰으로 하여 지리산의 개방구역은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지리산 골짝골짝을 곰처럼 누비고 다니는 이들에게는 상당한 제약이 따를 듯하다.